CAFE

온전한 가정을 세우자(마가복음10:1-12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2|조회수0 목록 댓글 0

한 신문의 제목에 “출산율 '뚝', 이혼율 '쑥'… 흔들리는 대한민국”라는 글이 실린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가다가는 우리 대한민국이 사라질 수 있다는 말이 나오기도 합니다. 가정이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오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가정의 소중함을 깨닫고 가정을 든든하게 세워는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1. 완악한 마음이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2.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묻되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바리새인들이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사람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질문 자체가 완악합니다.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고 어떻게 대답하는가를 보자고 물은 것입니다. 이 질문이 옳다하면 사랑이 없다 할 것이고, 옳지 않다하면 ‘모세는 허락했는데요.’ 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함정에 빠지게 하려고 질문을 던졌습니다. 심보가 잘못되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남자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아내를 버리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당시 여자들은 남자에 비해서 약자였습니다. 언제든지 버림받을 수 있는 처지였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이유 중에는 아내가 아침에 빵을 태우거나 불을 꺼뜨렸을 때, 남편이 기르는 개를 아내가 걷어찼을 때, 아내보다 더 사랑스러운 애인이 생겼을 때 등이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생각하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이유들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세상은 타락한 것입니다. 완악한 마음은 이기적이고 교만한 것입니다. 자기밖에 모르는 마음입니다.

 

3절 말씀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라고 주님이 물으셨습니다.

그들이 말했습니다.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

자기들의 완악함을 합리하기 위하여 모세의 법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모세가 버리도록 허락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남편이 이혼증서를 써 주지 않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이면, 평생을 홀로 살아야 하는 부인을 보호하기 위해서 이혼증서를 써 주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 시집 갈 수 있는 길을 열어 주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의도를 모르고 아내 버리는 것을 허락했다고 주장했습니다. 자신들의 마음이 완악하니까, 모세의 선한 의도를 오해 한 것입니다.

 

 

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마음의 완악함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가정 파탄의 원인은 완악함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완악해지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게 되고 사람의 존귀함도 모르게 됩니다. 오직 자기의 이익이나 쾌락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으로 가는 길이며, 마귀의 손아귀에서 놀아나는 것입니다. 완악함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규칙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신 짝을 버리는 것이 완악함입니다.

 

 

완악함은 마음에 악한 것이 들어가고 강퍅해져서 길가밭처럼 굳어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완악한 마음, 길가 밭과 같은 굳어진 마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떨어져도 자라날 수가 없습니다. 새와 같은 마귀가 와서 빼앗아 가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에는 마음밭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성령의 폭포수가 임해야 합니다. 진실한 회개를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딩크족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해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하는 맞벌이 부부로, 수입은 두 배이지만 아이는 갖지 않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던 한 딩크족이 후회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저와 남편 이제 41살, 딩크족으로 살아온 지 10년이 되네요. 처음에는 딩크가 주는 자유 여유 고요함 모두 좋았습니다. 해외는 약 30개국 돌아다녔습니다. 남편이 사업을 해서 경제적인 여유도 많고 저도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후회가 밀려옵니다.

사회적 출세 성취, 돈, 자유 이게 다가 아닌 것 같아요. 공허함, 내가 죽었을 때 내 핏줄이 하나 없는 쓸쓸함.... 결국 저희는 이제 포기하고 아이를 갖으려 해요. 돈이 아무리 많아도 취미활동과 일에 몰두해도 허무하고 우울증이 오네요. 저희는 그래서 딩크족 포기합니다. 우리 인간은 주님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살 때에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2. 음행의 죄에 빠지지 말아야 합니다.

11. 이르시되 누구든지 그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 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요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에 장가드는 자는 본처에게 간음을 행함이고 또 아내가 남편을 버리고 다른 데로 시집가면 간음을 행함이라고 하십니다. 버리는 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은 물건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편과 아내를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소중한 존재로 인식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서로 사랑하며 온전한 가정을 이루라고 맺어준 것임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음행은 우상숭배이고 불신앙입니다. 그 마음에 하나님을 상실한 사람들이 마귀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고전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음행은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음행은 사람을 타락시키고 가정을 파괴합니다. 음행은 영혼을 더럽히고, 하나님께 대한 배신행위가 됩니다. 나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고전6:19). 성령이 거하시는 전이 영혼이라고 표현해도 되는데, 굳이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몸을 얼마나 소중하게 다루어야 하는지를 일깨워주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나의 몸이 소중합니다. 음행의 죄에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가정을 세우는 길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값으로 주고 산 존재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소중한 존재입니다. 따라서 당연히 몸을 아끼고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예수님의 피 값으로 사신 것이기에 내 몸은 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값을 지불하고 사셨기 때문에 나의 몸의 소유권은 주님께 이양되었습니다. 나의 몸은 이제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이고 나는 단지 그것을 빌려 쓰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印)을 치시고 자기의 소유로 공표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간음하지 말라"는 이 계명만큼 이 시대의 세상 문화와 충돌을 가져오는 명령도 많지 않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바람을 피우는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아름답게 포장되고 있는지, TV나 영화를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좋으면 되었지 무슨 윤리나 도덕 같은 거추장스러운 것이 필요한가? 라는 풍토가 시대를 휩쓸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음행의 문제를 다루는데 있어서 이 세상 문화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그것이 우리의 판단의 기준이 아닙니다. “영화나 텔레비전에서 어떻게 보여 주는 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고, 이 세상 문화와 가치관을 하나님의 뜻 안에서 새롭게 해 가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산장로교회 카페>

 

 

미국의 어느 대학교수가 가정문제를 연구한 결과를 보면 가정의 최대 불행은 75%가 십계명 중의 제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긴 것 때문에 생긴다고 했습니다.

 

 

가정이야말로 축복의 근원이 될 수도 있고 타락과 불의의 온상이 될 수도 있습니다. 로마제국의 멸망사가 남긴 교훈 가운데 하나가 바로 도덕 불감증과 가정의 파괴였습니다. 로마 가정들의 붕괴와 함께 역사가 무너져가는 그 마지막 황혼을 지켜보면서 한 철학자는 "애국자여 가정을 지키시오"라고 호소했으며 "신이여, 기도하는 가정을 로마에 다시 일으켜 세워주십시오"라는 기도문을 남겼다고 합니다.

 

 

3. 진실된 사랑이 가정을 세웁니다.

6.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하나님이 처음 세상을 만드실 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습니다. 이것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사랑하고 도와야 할 존재라는 것입니다.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할 때 온전한 가정이 이루어지고 사회가 발전해 갑니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위해 꼭 필요한 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서로를 향한 귀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참된 사랑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그분의 은혜로 얻게 됩니다.

 

 

창2: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여기서 사람은 아담을 말합니다. 아담을 만들어 놓고 보니 너무 외로워 보였습니다. 남자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로 하와를 만들어서 함께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수술에 들어가셨습니다.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하와를 보자마자 아담이 반해버렸습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라고 했습니다. 아담이 하와의 아름다운에 푹 빠져버렸습니다.

 

 

8절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아담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이 하와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역시 하와에게서도 아담을 볼 때 진실된 사랑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얻는 진실된 사랑만이 가정을 세우는 힘이 됩니다. 사랑도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지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맺어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서로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모든 필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채워 주실 것입니다. 내가 준비하려고 하고, 내가 다 갖추려고 하면 가정을 이루기 힘듭니다. 어떤 조건보다 중요한 것이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 드라마에서 남자 주인공의 말이 멋졌습니다. “저는 미연이랑 있으면 다른 것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좋아하면 조건이 필요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4:8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가정에서 필요한 것이 진실한 사랑입니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면 허다한 죄를 덮어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외모를 가지고 평가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를 바라볼 때에 하나님이 만드신 걸작품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명품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보는 마음이 주님의 마음이며, 사랑의 마음입니다.

 

 

영국의 시인 C. 스와인 (1801∼1874의 글을 소개합니다.

"가정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가정은 마음을 기쁘게 하는 속삭임이 있는 곳입니다. 가정은 우리를 만나주고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한 마디로 가정은 포근함이 있는 곳입니다. 힘들고 지친 마음과 몸이 쉴 수 있는 곳입니다. 이런 편안한 안식처가 되는 가정을 든든하게 세워야 합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고향에 조그마한 집을 한 채 지었습니다. 그 집은 대기업 총수가 살기에는 매우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이건 너무 초라하지 않나요.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 주위 사람들은 걱정스럽게 포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대답했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더라도 주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이지요.”

그렇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주님의 은혜 안에서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사랑을 이해한 사람은 가족을 사랑하는 헌신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편128:1~2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가정이 잘 되는 것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야 되는 것도 아니고, 부모의 교육수준이 높다고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부모가 높은 지위에 있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가정이 바로 되는 것은 부모와 자식이 하나님 앞에 바로 서야 되는 것입니다. 가정의 건전성은 자녀의 학력이 높을수록 떨어진다고 조사됐습니다. 많이 배우게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하나님을 잘 믿고 은혜 받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그것이 가정이 잘 되는 비결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