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에 온 한 무명의 선교사의 편지로 오늘 말씀을 시작하겠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곳 조선 땅은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모두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같습니다. 선한 마음과 복음에 대한 열정으로 보아, 아마 몇 십 년이 지나면 이곳은 예수님의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탄압이 점점 심해지고 있습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순교했고,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숨어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밤은 유난히도 고향에 돌아가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어쩌면 이 편지가 마지막 일수도 있습니다. 제가 이곳에 오기 전, 뒤뜰에 심었던 한 알의 씨앗이 이제 내년이면 온 동네가 꽃으로 가득하겠지요. 그리고 또 다른 씨앗을 만들어 내겠지요. 저는 이곳에서 작은 씨앗이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저는 이 땅에 저의 심장을 묻겠습니다. 바로 이것은 조선을 향한 저의 열정이 아니라, 조선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란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아버지 사랑합니다.
조선에 온 젊은 청년 선교사의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구구절절이 느껴집니다. 주님의 은혜를 따라 조선에 와서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복음을 위해 고난을 당하였지만, 지금은 하늘의 영원한 집에서 주님과 함께 기뻐하고 있을 것입니다.
1. 내게 주신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설계도 : 하나님의 은혜)
10.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다른 이가 그 위에 세우나 그러나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따라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경험보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삶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인생의 길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 가치, 삶의 능력이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은혜가 있어야 영적으로 풍성해집니다. 주님의 자랑하고 싶어 견딜 수 없습니다. 말씀을 보는 것이 기뻐지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 기다려집니다. 확실한 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광야와 같은 삶에서 승리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 가지 시험과 문제가 계속해서 닥쳐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은혜는 어떻게 할 때 임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을 묵상할 때에 받습니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감동하심이 우리 마음에 전달되어야 합니다.
큐티목회로 유명하신 우리들교회 김양재목사님의 책에서 읽은 내용입니다. 한 미장원 집사님이 있었습니다. 이 분은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아서 늘 열등감 속에서 살아가는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김양재목사님이 목회하시기 전 집사 때에 그분과 함께 큐티를 하였다고 합니다. 당시 미장원 집사님은 생활력이 없는 남편과의 불화로 이혼할 상황까지 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나누는 큐티를 통해서 남편과의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서 은혜를 받고 미장원에 오신 손님들에게 늘 자기가 은혜 받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삶의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미장원이 말씀을 나누는 전도의 현장이 된 것입니다. 당시 손님으로 오신 한 권사님이 미장원집사님의 말씀을 나누는 것이 너무 좋아서 단골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권사님이 미국에 가시게 되었는데, 나중에 이 집사님을 미국으로 초청하게 되었습니다. 이민 사회의 한국 동포들에게 큐티를 통해서 은혜의 역사를 일으켜야겠다고 미장원집사님을 초청하였습니다. 큐티를 통해서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니까, 미국으로 이민 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중에 김양재목사님이 미국에 가서 만나게 되었는데, 초등학교 밖에 안 나오신 그 집사님이 미국에서 너무나 잘 되어 있더랍니다. 큰 미장원의 주인이 되었고 돈도 잘 벌었습니다. 그리고 자녀들도 미국의 좋은 학교에 다니고 있었는데, 서울대를 나와 부잣집에 시집 간 자기보다 더 잘 된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살면 이런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게 됩니다.
2. 반석이 되신 그리스도 위에 지어야 합니다.(터 : 예수 그리스도)
11.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당시 고린도교회의 문제 중에 하나는 파벌이었습니다. 교인들이 바울파, 베드로파, 아볼로파, 예수파 등으로 나뉘어 분쟁했습니다. 예수님을 믿기로 작정한 성도들이 모인 교회에도 육적인 욕망 때문에 서로 다투는 일이 생깁니다. 교회 안에 무슨 일이 있으면, 예수님이 간데없고 육신적인 이익에 따라 편을 가르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직분자 선출을 하려고 할 때, 직분을 받을 사람이 주님 앞에 충성된 일꾼이 될 수 있는지를 생각하기 보다는 나와 육신적으로 가까우냐를 생각할 때에 교회 안에 편 가르기 현상이 나타납니다. 주님의 뜻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육신적인 욕망이 앞설 때에 교회가 문제가 됩니다.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도 중요한 일을 할 때에 하나님의 뜻보다 육신의 생각이 앞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것에 대해서 바울은 인생의 기초는 오직 예수님이라고 말씀합니다.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진정한 구원자는 오직 예수뿐입니다. 베드로파나 바울파를 만들지 말라고 합니다.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믿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구원자라는 사실이 마음 깊숙이 믿어져야 합니다. 철저하게 예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로또복권 당첨보다 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것은 자녀가 명문대에 합격한 것보다 훨씬 보배로운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부자로 사는 것보다 더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보다 더 높은 권세를 가집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보배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가장 고귀한 것을 얻은 것입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면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들은 그것보다 더 기뻐해야 합니다. 세상의 영광은 잠깐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얻는 영광은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의 런던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꼭 찾고 싶어 하는 곳이 유명한 웨스트민스터 사원이라고 합니다. 오래 전에 방문객들이 이 유명한 교회를 방문했을 때 그들을 인도해주던 안내자가 있었습니다. 이 안내자는 사원에 대한 역사적인 내력과, 그리고 무덤에 묻혀 있는 지나간 세기의 찬란한 영웅들에 대해서 설명을 했습니다. 또 현재 그 교회가 어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가를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설명이 끝난 후에 안내자는 방문객들을 향해서 질문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때 미국의 아이오와 주에서 방문했던 어느 여 성도가 안내자를 향해서 던진 질문이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관한 여러 가지 내용에 관해서 훌륭한 설명을 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그런데 제가 질문을 한 가지만 하겠습니다. 최근에 이 사원을 통해서 구원받은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이 뜻밖의 질문 앞에 대답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던 안내자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건물이 화려하고 과거에 많은 분들이 잘 잘 믿었다고 해도 지금 예수님을 통해서 구원 받는 사람들이 없다고 하면 그 교회는 죽은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기초가 되는 성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가치와 인생의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인생, 예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마7: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예수 그리스도는 신령한 반석입니다. 이 반석 위에 믿음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집이 지어집니다. 영원히 불타지 아니하는 믿음의 집을 짓게 됩니다. 주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자라고 하십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닙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삶에서 그대로 실천하는 자가 참된 성도입니다. 그런 사람은 반석 위에 집을 지었기 때문에 홍수가 나도 끄떡없습니다. 그러나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비가 많이 내려서 홍수가 나면 무너져 떠내려갑니다.
3. 불타지 않는 영원한 집을 지어야 합니다.(재료 : 금, 은, 보석 이나 나무, 풀, 짚 -- 불시험, 검사)
12.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그 터 위에 금이나 은이나 보석 같은 재료를 가지고 집을 짓고 어떤 성도들은 그 터 위에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다는 것입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 사람들은 하늘에서 받을 공적이 별로 없습니다. 이 땅에서 그 영광을 다 받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자기 이익과 영광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말하지만, 막상 자기 이익에 관련된 문제에서는 절대로 양보하려고 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욕심이 많은 것은 신앙적으로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인도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하늘의 상급이 없습니다.
15.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으리니 그러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누구든지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자신은 불 가운데 겨우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는 했으나 여전히 자기 영광만을 위하여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뜻과는 상관없이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이름보다 자기 이름을 드러내고 자기만족을 위하여 사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런 성도들은 겨우 천국에 들어가는 부끄러운 구원을 받습니다.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집을 짓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것들로 지으면 불시험이 왔을 때에 다 타버립니다.
13. 각 사람의 공적이 나타날 터인데 그 날이 공적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라
주님의 재림의 날에 그 공적인 밝혀집니다.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는 불시험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시험의 결과 공적이 밝혀진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공로가 인정되기 위해서는 불시험을 통과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운 집이 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으로 집을 지어야겠습니까? 당연히 금이나 은이나 보석으로 지어야 합니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금이나 은과 같은 귀한 믿음의 재료를 써서 집을 지어야 합니다. 금이나 은, 보석은 변치 않는 것입니다. 변치 않는 영원한 재료로 믿음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이 땅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도 영원히 인정받는 그런 재료로 영원한 집을 지어야 합니다. 이러한 집을 짓는 성도는 하늘에 그 공을 쌓는 사람들입니다. 땅에서의 영광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영원한 상급을 쌓아 갑니다.
중국으로 선교하러 간 선교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최고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큰 병원의 원장님으로 일했습니다. 그러니 사회적으로 명성을 얻었고 돈도 많이 벌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이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달란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중국의 의료선교사로 헌신했습니다. 중국의 한센병 환자를 위해 병원을 세우는 등 열심히 의료선교를 하였습니다. 한국에서의 좋은 생활을 버리고 복음을 위하여 헌신한 것입니다. 한 목사님이 그 선교사님에게 물었습니다.
“선교사님, 한국의 안정된 직업과 명예를 포기하시고 중국의 선교사로 가셨는데 힘들지 않으십니까?” 그러자 그분의 대답입니다. “저는 천국의 영광을 위해 선교사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한국에서 편안하게 원장으로 있을 때보다 훨씬 더 행복합니다.”
이 땅의 영광을 포기하고 하늘의 영광을 추구하는 헌신적인 삶입니다. 우리 주님의 삶이 바로 이러한 삶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