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희는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라 / 마 5 : 13-16 성경은 이 세상을 흑암과 어두운 세상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세상을 마귀가 주관함으로 사람들은 사망의 그늘에 앉아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맹인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회복시키는 예수님은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추는 빛입니다. 죄로 인하여 소경이 된 인간들에게 그 눈을 뜨게 하고 생명을 주는 빛이 예수님입니다. 이 예수님을 믿어야 눈을 뜸으로 하나님과 하나님나라를 보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돌아옴으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백성인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알아보지 못하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요1:9-11)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것은 백성들을 인도하는 종교지도자들이소경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수의 사람들만 예수님을 믿고 따랐는데 이들이 사도들과 제자들입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산에 올라 말씀을 전했는데 그 말씀이 산상수훈입니다. 시내산에서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여호와께서 십계명을 말씀하신 것처럼 예수님도 산위에서 하나님나라 윤리인 팔복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나서 너희는 어두운 세상의 빛이요 부패한 세상의 소금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팔복을 알지 못하고 성령님을 힘입어 팔복대로 살지 않으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팔복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에게 주었지만 씨앗과 같기 때문에 성령님을 통해 발아되고 성장하여 선한 영향력으로 나타남으로 빛과 소금이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 순간부터 팔복의 마음과 삶을 나타내지 못합니다. 거듭나서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성령안에서 끊임없이 가져야 할 마음과 태도입니다. 이러한 마음과 삶이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기 때문에 우리는 팔복의 의미를 알고 성령안에서 자기를 부인하며 성령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온 성도들은 영적으로 파탄되어 아무 것도 없는 거지입니다. 나사로와 바디메오 처럼 아무것도 없고 무능력한 존재임을 알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의지하며 사는 것이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부모님의 보살핌이 없이는 아이가 살 수 없듯 한순간도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음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자기 처지를 알고 애통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으니 하나님을 향해 우는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살 수 없으니 도우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우는 것입니다. 아이가 할 수 있는 것은 우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무엇인가 필요하면 웁니다. 그래도 해결이 안되면 큰소리로 울면 부모가 달려와서 해결해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함 받았지만 연약하여 하나님 자녀답게 살 수 없습니다. 육체에 남아 있는 죄 성으로 인해 자꾸 죄를 짓고 넘어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일어나지만 또 넘어짐으로 웁니다. 변화되지 않는 자신을 바라보며 울고 가족들과 이웃들의 영혼을 생각하며 웁니다. 하나 되지 못하는 교회를 바라보며 울고 선교지를 생각하면서 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이런 일로 우는 사람이 애통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님의 위로를 받음으로 온유해 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데 온유해 질 수 없습니다. 계속되는 훈련과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통제를 받으며 온유해 지는 것입니다. 벌판을 뛰어다니는 야생말은 사납고 힘이 좋고 고집이 셉니다. 그런데 훈련을 통해 길들이면 야생의 기질이 사라지고 온순한 기질을 갖게 됩니다. 길들여진 야생마는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강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온순해짐으로 주인의 의도에 자기 뜻을 굴복시켜 순종하는 것이 온유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고난을 받고 공격을 받을 때 반격하지 않고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이삭이나 모세처럼 부드럽게 대하는 태도입니다. 그래서 온유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성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사람에게 나타나는 성품입니다. 말씀과 기도와 성령님을 통해 변화를 받아 나타납니다. 온유해 질수록 자기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갈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향해 주림과 목마름으로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의로 충만하지 않으면 자기 의를 가지고 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불의를 행하여 하나님을 실망시키기 때문에 간절히 의를 갈망해야 합니다. 불의한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살려면 우리 힘이나 의지로 되지 않기 때문에 날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예배를 사모하며 말씀과 기도에 힘씀으로 바르게 보고 말하고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의로 충만하면 긍휼한 마음과 눈으로 주변 사람들을 보게 됩니다. 긍휼은 자비, 인애, 친절,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고 긍휼의 반대는 무자비, 잔인, 포악, 무정,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긍휼은 불행한 자를 외면하지 않고 손을 펴서 돕는 것입니다 긍휼은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이타적인 사랑입니다. 그래서 이웃들의 슬픔과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돕는 것입니다. 긍휼은 높고 낮음을 가리지 않고, 있고 없음을 떠나 누구에게나 베푸는 것입니다.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고, 자랑하지 않고 자비를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이러한 긍휼을 베풀었고 지금도 이러한 긍휼이 풍성하십니다. 우리 마음이 하나님의 의로 충만하면 마음이 청결해집니다. 모든 만물 중에서 최고로 더러운 곳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피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을 때 우리 마음에 예수님의 피가 뿌려져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히10:22>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딛1:15>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면 새 마음과 새 영을 받고, 그곳에 성령님이 거하십니다. 그래서 거듭난 성도는 마음의 성전을 더럽히지 말고 깨끗하게 지켜야 합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 가는 곳과 보고 듣는 것을 조심하고 구별되게 살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불의를 행하여 마음이 더러워짐으로 성령님께서 탄식하십니다. 그래서 주리고 목마름으로 의를 구하면 마음도 청결해짐으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는 순간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화평케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계속 화평에 힘쓰고 화목의 대사로 살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가 바르지 않으면 모든 것이 잘못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화평하지 않으면 이웃과 화평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지속적으로 하나님과 화평할 수 있을까요? 영적파탄 자임을 알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 하나님을 의존해야 합니다. 육체에 남아있는 죄성과 자기 무력함을 알고 애통해야 합니다. 자기 고집과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통제를 받는 온유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해짐으로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의를 버리고 하나님의 의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삶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일은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합니다. 그래서 채워 주시는 하나님의 의를 가지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산상수훈의 말씀을 따라 살면 하나님의 위로도 받지만 핍박도 받습니다. 이 핍박은 우리의 허물이나 과실 때문에 당하는 고난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때문에, 그 의를 추구하는 믿음 때문에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핍박은 어느 시대나 있어 왔지만 믿음으로 인내하며 이겼습니다. 핍박을 받을 때 믿음으로 인내하며 원수를 사랑하며 기도할 때 주의 영광이 나타남으로 부패하고 어두워진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되는 것입니다. @소금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존재성이요 정체성입니다. 소금의 특성은 짠맛이므로 짠맛을 잃어버리면 소금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소금이 되었음으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것입니다. 모일 때마다 은혜를 힘입어 자기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흩어져서는 세상에서 팔복의 상태로 살아감으로 소리 없이 선한 영향력을 부패한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소금이 녹으면 자기를 희생하고 배품으로 선한영향력이 나타나 기쁨을 주고 유익을 줍니다. 소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선한 영향력을 나타나지 않는다면 맛 잃은 소금이 되어 땅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입니다 (마6:2-5)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팔복의 상태를 부패한 세상에 나타내지 못할 때는 맛을 잃은 소금이 됩니다. 그래서 심령이 가난한 상태를 잃어버리는 것, 애통함을 상실하는 것, 온유함을 잃어버리는 것,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아 불의와 타협하는 것, 긍휼이 여기지 않는 것, 마음이 청결치 못하는 것, 화평하게 하지 않는 것, 의를 위해 살지 않음으로 핍박받는 것이 없다면 거룩의 맛을 잃어버린 소금입니다. @세상의 빛인 그리스도인들은 어두운 세상에 빛을 나타내는 존재입니다. 빛에 원천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는 태양처럼 스스로 빛을 밝히는 발광체입니다. 성도는 발광체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빛을 반사시키는 반사체입니다.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빛을 공동체에 나타냄으로 교회는 그 빛을 반사시키는 것이고 성도들도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빛을 어두운 세상에 반사시키는 것입니다 일부로 빛을 숨기지 않거나 방해하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주의 빛이 나타납니다. 일부러 빛을 숨기고 말 아래 둔다면 빛은 비쳐지지 않습니다. 숨기는 목적은 빛을 비추면 사람들이 싫어하고 손해볼까봐 숨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고 핍박을 두려워함으로 숨기는 것입니다. (마25: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자연스럽게 의와 진실과 사랑과 선함과 용서와 능력이 나타납니다. 자신을 부인하며 성령으로 살 때 예수님의 영광의 광체가 삶에 현장에 나타납니다. (갈5:8-13)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움이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래서 16절에서도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너희 빛을 착한 행실이라고 했는데 여기서 착한 행실은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선이 아니라 팔복을 통해 나오는 성도들의 선한 영향력입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사는 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애통한 마음으로 자기 영혼을 바라보며 주변 환경을 바라보며 우는 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온유한 마음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착한 행실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름으로 하나님을 향해 의를 갈망하는 삶이 착한 행실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마음으로 곤경에 처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며 베푸는 삶이 착한 행실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에 힘쓰고 이웃들과 화평하는 삶이, 착한 행실입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고도 낙심하지 않고 기쁨으로 사는 것이 착한 행실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결론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소금처럼 은밀하게 거룩한 맛을 내는 존재들이며 의에 빛을 드러내는 존재가 되었으니 그 맛을 잃지 말고 빛의 기능을 감추지 말고 선한 영향력을 끼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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