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대 이정훈교수님 분이 간증한 이야기입니다. 그는 종자연이라고 하는 불교 단체에서 교회를 대적하기 위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절에 들어가서 교회를 대적하기 위한 연구를 하려고 했는데, 절에만 들어가면 이상하게 머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절에 있지 못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이분이 열심히 시청하는 방송이 CTS 기독교 방송이었다고 합니다. 기독교를 대적하기 위해서는 목사님들의 설교를 통해서 교회를 잘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목사님이 설교를 하시는데, 모든 사람은 다 죄인이라고 하는 말씀을 들을 때에 조롱하며 ‘죄인 웃기고 있네!’라고 혼잣말로 했답니다. 그때 순간 번개에 맞은 것 같은 느낌이 들며 혀가 굳어져 버렸다고 합니다. 그래서 바닥에 엎드리게 되었는데, 이제는 죽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그때 자신은 윤리 도덕적으로 굉장히 의롭다고 생각했는데, 그 순간 자신은 엄청난 죄인임이 깨달아졌습니다. 이분은 거기서 주님의 은혜를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완전히 새롭게 변화되어 예수님을 전파하는 전도자로 바뀌었습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입니다. 죄로 인해서 형벌 받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에게 사면의 소식입니다.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값을 십자가에서 대신 치러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빅뉴스요 복음입니다.
1. 말씀을 전하다 감옥에 갇혔습니다.
12.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고소를 당해서 로마로 압송되었습니다. 그리고 로마에서 가택 연금된 상태에 놓였습니다. 그렇게 바울이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전파에 진전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내려놓았습니다. 복음 전파를 위해 로마 시민권이나 가말리엘 문하생이라는 학벌, 그리고 종교적으로 바리새인이라고는 기득권도 포기했습니다. 그는 세상의 영광을 하늘의 영광과 바꿨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땅의 부귀와 권세를 분토같이 버렸습니다. 그리고는 복음 전도에 매진하다가 로마 감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모습이 많은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습니다.
오늘의 우리나라 교회가 약해진 것은 하늘의 영광보다 땅의 영광을 더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보다 육신의 이익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탄에게 속고 세상에서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수를 위하기보다는 자기의 이익을 위해 신앙생활하기 때문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상실했습니다. 예수의 복음이 우선이 아니고 자기 육신의 이익과 일이 더 우선입니다. 예수는 이 땅에서 자신이 복을 받고, 나중에 자신이 죽어 천국가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에 따를 뿐입니다. 이러한 신앙은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금송아지 숭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짜 온전한 성도는 자기를 부인하고 주어진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14.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으로 말미암아 주 안에서 신뢰함으로 겁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담대히 전하게 되었느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의 다수가 바울이 감옥에 갇힘으로 해서 더욱 믿음이 담대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겁 없이 전파하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담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이 악한 영들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강릉에서 두 명의 소방관이 불을 끄다가 순직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이런 소방관의 자세가 필요하고, 지옥불에 대항해서 싸우는 거룩한 사명자가 되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담대하게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구원자이심을 알리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물에 빠져서 죽어 가는데 모른 체하는 것은 양심불량입니다. 빨리 밧줄을 던지던지 아니면 119를 불러야 합니다. 죽어가는 사람이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여 도와야 합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중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수많은 영혼들이 죄악의 바다에 빠져서 지옥의 무서운 불심판을 향하여 떠내려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영혼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구원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생명줄을 내려주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 영혼들을 살려내는 구원의 방주가 교회입니다.
사람들은 육신의 건강을 위해서는 많은 투자를 하면서도 그보다 더 중요한 영혼의 구원과 건강을 위해서는 너무 관심이 없습니다. 오늘 이 시대의 가정과 학교의 문제는 영혼에 대한 무관심에서 옵니다. 사람들의 겉은 화려하고 멋있어 보이는데, 사람들의 마음과 영혼은 공허함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날마다 폭력과 자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런 것은 육신의 문제가 아니라 영혼의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2.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했습니다.
20.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러워하지 아니하고 지금도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게 하려 하나니
인생 최대의 문제가 죽음입니다. 어차피 우리 인생은 한 번은 죽게 됩니다. 그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 죽음이 찾아 온 것은 죄 때문입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죄 문제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습니다. 죄로 인해 온 세상의 고통 때문에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해결됩니다. 예수님의 진리를 깨달아야 해결됩니다. 진리의 말씀이 믿어질 때에 참된 자유를 얻고 영생의 축복을 받게 됩니다.
이 진리는 간단합니다. 우리의 죄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희생양이 되셨음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바울이 이 진리를 알고부터는 세상의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 이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결단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돈 버는 것도 중요하고 성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돈을 많이 모으고 크게 성공을 한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인생은 불행합니다. 죄로 인하여 심판을 받고 영원한 멸망에 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원한다.”라고 합니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인생의 목적이 그리스도의 복음전파가 된 것입니다.
어제 대진리에 전도 나갔는데, 불교를 믿는 한 분이 예수님을 믿어야 죄사함을 받고 천국에 간다고 하니까, 사람들의 착하고 선하게 살면 극락이나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어떤 사람이 나병에 걸려서 온 몸이 고름으로 가득하고 살이 문들어져 가는 고통 가운데 있어서 그 사람이 입은 옷이 완전히 누더기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불쌍히 여겨, 어떤 사람들이 찾아가서 깨끗하게 씻어주고 아름다운 비단으로 만든 흰옷을 입힌 다음에 사람들 앞에 내세웠다고 하면, 그들의 수고에 사람들이 박수를 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사람의 외관상의 아름다움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얼마 못되어 나병환자의 육신이 썩어 옷에 피가 배어나오고, 썩는 냄새가 날 것입니다. 그의 옷, 그가 만지는 모든 것이 순식간에 부패하고 불결해질 것입니다.
영적으로 보면 우리 인간의 모습이 바로 이런 나병환자와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고 선행을 많이 해도, 인간의 노력만 가지고는 우리의 허물과 죄를 다 씻을 수가 없습니다. 아담이 저지른 불순종의 죄,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숨고 싶은 속성이 우리의 DNA에 심어져 유전되고 있습니다. 땅에서 난 자 아담의 후손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난 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흘리신 예수님의 피로만이 우리의 허물과 죄가 씻어지고,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21.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
바울은 자신 안에 사는 것이 그리스도라고 고백합니다. 바울의 옛사람은 죽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인 되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도 육신을 따르는 인생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땅에 영광만을 추구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늘의 영광을 전파하는 복된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땅의 부자만을 꿈꾸지 마시고 하늘의 부자를 꿈꾸시기 바랍니다. 썩어질 영광만을 바라보지 마시고 영원한 하늘의 상급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이 땅의 것은 잠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님을 위해 수고한 것은 영원합니다.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의 삶은 험난함의 연속이었습니다. 그의 삶은 늘 목숨의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고난의 삶이었습니다. 이승과 저승 사이에 끼어 있다고 말씀하면서 차라리 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씀합니다. 솔직한 심정으로 그렇게 하고 싶다고 말씀합니다. 지금이라도 죽어서 주님계신 천국에 가고 싶다고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24. 내가 육신으로 있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그런데 바울이 육신으로 있는 것이 빌립보 교인들에게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아직 바울이 이 땅에서 살아 있는 것이 많은 교인들과 불신 영혼들의 구원에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의 삶은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삶이었습니다.
3. 우리도 복음에 합당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에게 가 보나 떠나 있으나 너희가 한마음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
“오직 빌립보 교인들아! 너희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라고 사도 바울이 부탁을 하고 있습니다. 성도의 삶은 복음에 합당한 생활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처럼 재물이나 권세를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살지 말아야 합니다. 사는 목적이 달라야 합니다. 성도의 삶의 목적은 복음을 전파해서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부탁하는 것은 한마음과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진리의 복음을 위하여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의 이유는 우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영광이나 이익보다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예수님만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희생이 우리의 모든 허물과 죄를 씻고 하나님 앞에 다시 설 수 있게 해 줍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죽음 이후에 세계, 영원한 천국과 지옥 심판에 대해서 확실히 알려주지 못합니다. 오직 예수님은 분명하게 죽음 이후에 영원한 천국과 지옥이 있다고 확실하게 알려주십니다. 예수님만이 참된 진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해서 천국에서 영생을 얻게 해 주십니다.
28.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아니하는 이 일을 듣고자 함이라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로마황제들의 엄청난 박해 가운데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할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영원한 천국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사자 밥에 되고, 거꾸로 십자가에 달려서 화형 당하면서도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세상은 잠깐이지만 죽음 이후에 천국에서는 영생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대적하는 사람들은 멸망 받을 것이요, 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고전16:22.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우리 주여 오시옵소서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죄값을 자신이 치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죄값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있습니다. 그 죄값은 우리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것임을 모르게 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깨달음이 내가 죄인라는 것을 아는 것과 그 해결책은 오직 예수님의 보혈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에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에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같이 하리라고 했습니다.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둘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받으라”라고 하십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목자로 믿고 따른 성도들입니다.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라고 선포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염소같이 자기 마음대로 산 사람들에게는 지옥불의 심판이 임하는 것입니다.
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주님을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신다고 했습니다. 초대 교회 교인들은 은혜 받고 고난도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은혜와 축복을 받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주님을 위해 고난 받기는 싫어합니다. 그러나 고난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십자가에서 나의 육신적인 자아가 죽어져야 부활의 영광이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기 위해서 치르신 희생을 생각하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부르짖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무엇이든지 ‘그리스도를 위하여’라는 목표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하나님과 화목하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으로만이 가능합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는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이지만(벧전2:7-8), 믿는 성도들에게는 무한히 귀한 보배가 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