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강원도 태백의 산골에 있는 예수원에 가 있는 동안에는 스마트폰을 압수당하고 TV도 없어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어서 걱정할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북한이 미사일을 쏴서 세상이 시끄러웠다는 것을 다녀와서 알았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마음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는 것이 염려입니다. 뉴스를 들으면 전쟁이 일어나면 어쩌나 하면서 걱정되고, 가정이나 주변의 모든 것들을 생각해 보면 불안한 마음이 찾아들어 염려가 됩니다. 하나님은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염려와 걱정 속에서 살아갈 때가 많습니다. 저는 특별히 염려가 많은 사람입니다. 대범하지 못해서 안해도 될 염려까지 사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25.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대부분의 염려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입니다. 즉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고민하고 염려합니다. 염려하지 않으면 굶어 죽을 것 같아서 고민하며 이 대책 저 대책을 세웁니다. 음식 때문에, 입을 옷 때문에 염려하지만 음식보다 목숨이 소중하고 의복보다 몸이 더 중요하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어도 나 죽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아무리 비싼 옷을 가졌어도 몸이 아프면 귀찮습니다. 부귀영화를 못 누려도 예수님 믿고 구원 받는 것이 낫고 좋은 옷을 입지 못해도 건강한 것이 백번 낫습니다. 염려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 받고 그 말씀을 진심으로 믿을 때에 가능합니다.
1. 공중의 새를 보라
26.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라고 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공중에 나는 연약한 새들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된 성도들을 먹이시지 않겠느냐고 하십니다. 우리는 공중의 새들보다 귀하다는 것입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짐승은 먹을 것을 쌓아 놓으려고 일하지 않는다. 그냥 저마다 자기의 일에 충실한다. 새는 날고, 지저귀고, 둥지를 틀고, 새끼를 기르고 먹이를 먹는다. 이것은 새가 하는 일이지만, 새가 이 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새들의 먹을 것은 하나님이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일하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축복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열심히 일을 한다고 행복하고 잘 살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노력만 가지고는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한다고 공기나 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인생에게 필요한 양식이나 중요한 것들은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살 수 있습니다. 농부가 농사를 짓지만 결실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어부가 바다에서 고기를 잡지만 물고기를 기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27.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
제자들이 걱정 없이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의 뛰어난 능력이나 노력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능력이나 가진 재물 때문에 염려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진심으로 믿을 때에 염려가 사라집니다. 너희 중에서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 할 수 있겠느냐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염려해도 우리의 키는 자라지 않습니다. 그렇듯이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 우리 앞에 있는 문제 때문에 아무리 염려해도 미래가 밝아지거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걱정은 우리가 할 것이 못됩니다. 우리는 세상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세상을 통치하시고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걱정은 하나님의 몫입니다.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염려를 기도로 바꿔야 합니다. 기도는 염려가 사라질 때까지, 마음에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올 때까지 해야 합니다.
눅12:26. 그런즉 가장 작은 일도 하지 못하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
하나님은 키를 크게 하는 것이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나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사람의 키를 크게 하는 것은 하나님에게는 작은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작은 일인 그것도 하지 못합니다. 그러면서 어찌 다른 일들을 염려하느냐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을 의지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내 생명과 미래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주인, 모든 만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우리의 생명과 미래는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은 못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인의 뜻에 따라 하루하루 주어진 사명에 충실 하는 것입니다. 원망이나 걱정 없이, 스스로 자랑하거나 주인행세 하지 않고 주인이 맡겨주신 일에 충성하는 선한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걱정은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걱정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2.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28.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솔로몬왕이 누린 부귀영화도 들에 핀 백합화 하나만 같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들의 핀 백합화나 하늘을 나는 새는 먹고 살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먹이시고 입히신다는 것입니다. 백합화가 자기가 입을 옷을 만들기 위해 수고도 아니 하고 길쌈도 안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만든 화려한 옷보다 더 멋진 자태를 가지고 뽐낸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염려하며 노력을 해도, 들에 핀 백합화 하나 보다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입고 살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냥 있는 대로 입고 살면 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남보다 더 잘 입고 자신을 뽐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잘 입어도 들에 핀 백합화하고 비교해 보면 꽃보다 아름답지는 못합니다. 요즘에 TV에서 꽃보다 남자, 꽃보다 할배라고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게 하기 위한 선전이지 실제로는 사람이 아무리 잘 꾸미고 있어도 예쁜 꽃 옆에 서면 사람보다 꽃입니다.
제가 첫 단독 목회를 보길도에서 했습니다. 그때 서울 영락교회에서 헌옷이나 재고품 옷들을 많이 보내줬습니다. 당시 교회를 건축을 했기 때문에 작업복으로 옷을 입다가 보니, 옷이 별로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때는 신학교를 다닐 때라서 가난해서 옷을 사 입을 돈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영락교회에서 보내 준 옷을 대충 골라서 입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한 번은 한 교회의 초청으로 섬 아이들을 데리고 서울 구경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초청한 교회의 사모님이 옷을 빨아 준다고 하는데, 안 빨아져도 되는데 하는 생각을 했지만 할 수 없이 내놓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살이 쪄서 보기 좋지만, 당시에는 아주 날씬했습니다. 아마도 당시 허리가 30~32정도 되었을 것 같은데, 제가 입고 간 바지는 허리가 36~38정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허리띠로 졸라매서 입고 갔는데, 사모님이 보니까 빼빼한 사람이 바지통이 엄청 큰 것을 입고 온 것을 보고는 얼마나 돈이 없으면 그런 바지를 주워 입고 왔을까 생각해서 교인들에 말해서 양복 한 벌을 사 주었습니다.
누가복음 11:3 우리에게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이번에 갔던 예수원의 대천덕신부님이 성공회신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고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학생들이 잘 안 믿어서 자신이 직접 삶을 통해서 보여주시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성공회신학교 학장직을 내려놓고 강원도 태백의 깊은 산골로 들어가서 천막을 치고 1965년에 예수원을 시작했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하나님만 의지하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그 산골로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자신들의 생활을 전적으로 맡기고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돌보심의 은혜를 구했습니다. 거기서 지내는 동안 부족함이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천덕신부님이 돌아가신 후에도 예수원은 방문객들에게 돈을 받지 않고 운영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매일 매일 필요한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예수원은 40%의 자립도를 유지하고 있는데,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신다고 합니다.
3.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주인이 자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일을 자기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가 염려하며 고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하지 못하기 때문에 골치가 아픈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기 때문에 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광야에서 농사도 짓지 아니하고, 목축도 하지 아니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굶기지 아니하시고 안전하게 인도하셨던 하나님이 지금은 우리의 목자가 되시어서 인도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을 아시고 주신다는 것입니다. 물론 내 욕심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서 주십니다. 우리의 지구는 사람들이 살기에 필요한 것들을 다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들의 욕심과 염려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서로 나누면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의 욕심이 그것을 한없이 이 땅에 쌓아놓으려고 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합니다.
세상 사람과 성도의 차이는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는 성도는 걱정이 사라집니다. 주님께서 책임져 주시는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이번에 예수원에 가서 포항새물결교회 한 집사님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분이 화장품 장사를 했는데, 손님들을 만나서 열심히 전도를 했더니, 화장품이 너무나 잘 팔려 나가더랍니다. 그래서 그 교회에서 자신이 십일조를 제일 많이 하게 되었답니다. 전도를 했더니 자신이 하는 일이 형통하게 잘 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순종하니까,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해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염려란 마치 흔들의자와 같다고 합니다. 그 의자에 앉아서 아무리 흔들어 봐도 여전히 제자리에 그냥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아무리 염려를 해도 제자리일 뿐 한 발자국도 못 나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려 속에 몰두하여 계속 염려하고 또 염려하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 아닙니까? '염려는 비생산적인 것이며 비신앙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을 향한, 하나님 앞에서의 행동입니다.
4.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성도는 범사에 내 목적 내 소원을 앞세우면 안 됩니다. 정말 우리의 모든 목적 소원이 그분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구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 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예비하십니다. 나는 죽고 주님의 영광을 먼저 나타내야 합니다. 천국 가는 사람이 자기가 유명 질 필요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보다 더 높은 것이 어디가 있겠습니까? 우리의 상급, 우리의 보물은 하늘에 있습니다. 성도는 먼저 주님의 나라, 주님의 뜻을 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세상 사람과 다른 것입니다. 세상 사람은 항상 자기 생각이나 자기의 뜻을 우선합니다. 자기의 이익이나 욕심에 따라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자신이 주인 되는 삶을 살게 되고 불안과 염려에 시달리게 됩니다.
찰스 휴멜이라는 사람은 “우리들이 삶에서 만나는 온갖 문제와 딜레마들은 시간과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일의 우선순위를 잘못 선택함에서 온다.”고 주장했습니다. 성도들이 삶에서 만나는 많은 문제는 시간과 물질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우선순위가 바뀌어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자기중심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염려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염려 해결책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우리가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옛날 오래된 학교에서 종을 치는 종치기 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종을 치다가 노이로제에 걸렸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보고 “당신은 왜 그렇게 행복하지 못합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종치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저는 이 종을 삼만 육천 번을 쳐야 합니다. 매일 이 학교에서 열 번씩은 종을 칩니다. 일주일이면 칠십 번, 한 달이면 삼백 번, 일 년이면 삼천 육백 번, 내가 이 일을 끝내기까지는 앞으로 10년이 더 남았습니다.”
한사람이 보다 못해서 이런 지혜로운 충고를 했다고 합니다.
“형제여! 하루에 열 번씩만 종을 치시고 한 번에 한 번씩만 종을 치시면 되지 않습니까?” 10년 동안 종을 칠 것을 미리 앞당겨서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염려를 붙들어 매라’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염려를 어디다가 붙들어 매느냐가 중요합니다. 염려는 주님의 말씀과 기도로 붙들어 매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일만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내일의 일은 내일 가서 생각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미리 가불해서 쓰면 별로 좋지 않습니다. 특별히 내일 염려를 오늘 가져다가 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5:7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우리의 염려를 다 주께 맡기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돌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