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두막이라는 소설에 나온 읽은 것입니다. 주인공인 매켄지라는 사람이 오두막이 있는 야영지에서 어린 딸 미시를 유괴를 당해서 잃어버리고 고통 가운데 지내게 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하나님으로부터 온 쪽지를 받고 딸이 실종된 그 오두막에 가서 하나님을 만나는 이야기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어린 딸이 유괴 당할 때에 하나님은 왜 가만히 계셨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때에 그는 천사에게 이런 질문을 받게 됩니다. 당신의 자녀들 5명 중에서 2명은 천국, 3명은 지옥에 보내야 한다면 어떻게 결정할 것입니까? 주인공인 매켄지에게는 잃어버린 미시를 포함해서 5명의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분명히 아이들 중에는 속을 썩이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느 자식을 지옥에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결정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이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지옥에 보낼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잘못 때문에 꼭 지옥에 가야 한다면, 대신에 자신을 보내 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이제 당신은 예수님 같은 마음을 가졌습니다. 매켄지, 당신은 판결을 아주 잘했습니다. 당신이 정말 자랑스럽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하나님의 걸작품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 복음 전파의 사역을 위해 우리를 부르신 것입니다.
1.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으로 전해야 합니다.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모든 이방인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순종하도록 이끄는 것이야말로 바울의 소원이었으며, 그의 부르심의 목적이었습니다. 바울 사도가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방인을 순종케 하기 위해 자기가 수고한 것은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자기를 통하여 역사하셨다는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라는 표현은 어떤 문장을 강조할 때에 이중의 부정사를 사용하여 훨씬 더 강한 긍정을 이끌어 낼 때에 사용하는 어법입니다. 이 문장을 직역하면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는 것은 어느 하나라도 말하지 않겠다', 즉 '성령의 능력으로 역사한 것만을 말하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증인이 되기 위해서는 나와 함께 하신 성령님의 은혜, 성령님의 역사를 체험해야 합니다.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말씀하심을 들을 수 있고, 볼 수 있는 영적인 귀와 눈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성령님과 같이 살면서도 전혀 대화가 안 되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분별할 수 없다면,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것입니다. 혹시나 지금 내가 그렇다면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은혜를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 계시고, 우리와 함께 사십니다. 그러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그러한 체험이 바로 간증이 되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전파하는 전도의 도구가 됩니다.
영국의 존 웨슬리는 회심을 체험한 뒤 약50년간 말을 타고 33만4000㎞의 거리를 여행하며 전도했습니다. 그리고 10만여명의 양육자와 500여명의 순회 설교자도 배출했습니다. 이렇게 놀라운 일을 한 전도자가 될 수 있었던 비결을 그가 임종을 앞두고 고백했습니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려고 가다가 대낮에 하늘에서 임하는 강렬한 빛을 받고 말에서 떨어져 엎드려집니다. 그 때에 그는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주님 누구시니이까?”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행26:12-18).
사도 바울은 이렇게 자신의 삶에서 주님을 확실하게 만나는 체험을 하였습니다. 이 사건은 그의 인생을 180도로 바꿔 놓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가는 대적자였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겪은 이후에는 오히려 예수님을 전파하는 전도자가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나타난 것은 예수님을 본 일과 장차 나타날 일에 대하여 바울을 종과 증인으로 삼아서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보내고자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뜨게 하고,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고 불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시며 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영이 순수해지고, 진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를 원하면 언제나 만나실 수 있는 분입니다. 날마다 우리의 삶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어떤 때는 좋으신 아버지로, 어떤 때는 위기에서 건져주시는 구원자로, 어떤 때에는 위로자로 나타나십니다. 우리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숨결을 진심으로 믿고 살아가실 수 있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복음은 말과 행동으로 전파 됩니다.
18. 그리스도께서 이방인들을 순종하게 하기 위하여 나를 통하여 역사하신 것 외에는 내가 감히 말하지 아니하노라 그 일은 말과 행위로
교회에 열심히 봉사하는 부인이 한 사람이 있었는데, 남편과 자녀들은 교회에 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하루는 목사님이 그 가정을 방문하여 남편과 단둘이 이야기 나눌 시간이 있었습니다. 목사님은 그 남편 되는 사람에게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생활을 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사님, 저의 아내가 교회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제 아내는 불같은 성질을 가지고 있습니다. 집에서 한번만 화를 냈다 하면 아이들과 저는 숨어 버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정도입니다. 저는 이러한 것이 올바른 교회의 신앙생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목사님은 그 여 성도님을 만나서 한 달간만 남편을 잘 섬겨 달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부인이 남편의 잘못된 점을 지적하며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은 자신을 간병인이라고 생각하고 남편 환자를 한 달간만 돌본다고 생각하고 친절하게 해 주라고 했습니다. 간병인은 항상 환자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어야 하지 않습니까?
이 일이 있은 지 며칠 후였습니다. 남편이 낚싯대를 가지고 집안으로 들어오다가 실수를 했습니다. 새로 사다 놓은 지 며칠밖에 안되는 전등을 산산조각으로 깨뜨린 것이었습니다. 당황한 남편은 아내로부터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이상하게 벼락이 떨어지지를 않았습니다. 그 여자 성도님은 목사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말폭탄을 발사하는 것을 꾹 참고 그 대신 빗자루를 들고 와서 깨어진 조각을 쓸어 담았습니다. 그리고 미소를 지으며 "여보, 괜찮아요."라고 했습니다. 남편이 볼 때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그때에 남편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주일에 남편은 아내와 나란히 교회에 나왔습니다.
전도는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간절하게 부탁하신 것이 복음을 전파하는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증인이 되는 것은 말과 행동을 통하여 전파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이 이 복음을 위하는 삶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주님을 믿는 성도로서 세상 사람과 차이가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나를 통해서 오래 몇 명이나 전도가 되었습니까? 내가 전도해서 교회에 몇 명이나 나왔는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로서 올 해 들어서 전도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고 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주님의 뜻과는 전혀 상관없이 살던지, 인격과 삶이 별로 좋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정이 많아서 친절하게 대해 주고 밥을 몇 번 사주면서, 초청 잔치 때에 와달라고 하면 어지간하면 나와 준다고 합니다.
감신대 이정배 교수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는 욕망 지수와 자살률이 높개 나왔습니다. 보통 욕망과 종교는 반비례하는데, 우리나라는 종교가 무용지물입니다. 이 세상을 거슬러서 살아 내는 것, 이 단순성이 21세기의 화두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행한 것만큼만 아는 것입니다. 머리로만 아는 것은 모르는 것보다 더 나쁜 것입니다. 온몸으로 아는 것은 그야말로 삶이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참으로 우리는 머릿속으로 아는 성경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신앙이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이번에 떠들썩하게 하는 공관병 사건에서 사령관의 가정이 기독교인 것 같았습니다. 어떤 신문에 성경책을 정리하는 일을 시켰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4성 장군의 부인이라면 자기 가정에서 일하는 장병들에게 얼마나 전도하기가 좋겠습니까? 주님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잘 해 주었다면, 좋았을텐데 그러지 못한 것 같습니다. 갑질했다는 말만 나오지 그들을 진심으로 자식처럼 대해주었다는 말은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성도들의 말과 행동이 중요합니다.
지금은 신학교 교수님이신 목사님이 옛날에 영어교사로 근무할 때였다고 합니다. 안수집사인 부장선생님이 차를 마시러 가자고 해서 선생님들 몇 분과 따라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들어갈 때 보니까 이상하더랍니다. 알고 보니 찻집이 아니라 아가씨가 있는 술집이었습니다. 그 순간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이 생각났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안수집사인 부장선생이 욕을 퍼 대더랍니다. 이런 집사를 잡사라고 합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도 성도요, 교회 밖에서도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해야 합니다.
19. 표적과 기사의 능력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졌으며 그리하여 내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두루 행하여 일루리곤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편만하게 전하였노라
그리스도께서는 이방인을 향한 효과적인 전도 사역을 위하여 바울로 하여금 표적과 기사의 능력을 행하게 하셨습니다(행13:7-12). 여기서 '표적'(세메이온)은 영적인 의미로서 인간들의 눈앞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초월적인 역사를 의미합니다. 즉 영적으로 볼 수 없는 실재를 눈앞에 나타내준 증표인 것입니다. 그리고 '기사'(테라톤)는 놀라운 일을 뜻하는 것으로서 일반적으로 볼 수 없는, 즉 자연 법칙을 초월하는 기적을 말합니다(miracles, NIV). 이로보건대 표적과 기사는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자임을 증명할 뿐만 아니라 그가 전한 복음이 하나님이 계시하신 진리임을 증거합니다. 아울러 무엇보다도 그 복음이 가리키는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역사상에 현실로 임했음을 일깨워 주는 표입니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는데, 그 종은 점으로 그 주인들에게 큰 이익을 주는 자였습니다. 그 여종이 바울 일행을 따라와 소리 질렀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다.” 이같이 여러 날을 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바울이 심히 괴로워하여 돌이켜 “그 귀신에게 이르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했습니다. 그러자 귀신이 즉시 나갔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신 것입니다.
귀신을 쫓아낸 것 때문에 고소를 당해 매를 많이 맞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깊은 감옥에 갇히고 발에는 차꼬가 채워졌습니다. 그런데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 찬송을 감옥에 있는 죄수들이 듣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날 밤에 그곳에 있던 죄수들은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것입니다. 그리고 간수와 그 가족도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전당포 주인이었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후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신앙생활을 하게 된 후 주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는데 하루는 술에 취한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것을 권면했습니다. 그때 술 취한 사람이 빈정거리며 말했습니다.
"여보슈, 내가 정말 지옥과 천당이 있다는 걸 확신한다면 당신처럼 이렇게 소신 없게 전하지는 않겠소, 나는 더 열정적으로 전할 거요."
이 말에 충격을 받은 그 사람은 그 때부터 열정적으로 구령하고 구제 활동을 펼쳤습니다. 그가 1878년 구세군을 창설한 윌리엄 부스입니다.
파스칼은 “교회가 오로지 하나님밖에 의지할 것이 없을 때, 그 때가 교회를 위해서는 가장 행복한 때이다.”라고 했습니다. 다른 것보다도 하나님을 먼저 의지하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바울의 삶의 목적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성도들과는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복음을 전파하는 것보다 우선해서 다른 가치들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생들은 복음보다 공부가 우선이고, 사업가는 복음보다 돈 버는 것이 우선입니다. 한마디로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보다 자기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복음의 능력이 약해지고 구원 받는 수가 적어집니다. 교회에 다니는 것도 주님의 증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것이기 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일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오늘 이 예배 시간을 통하여 복음의 빚진 자 의식을 가지고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자 몸부림을 치는 바울의 신앙을 본받으시기를 소망합니다. 복음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까지 아끼지 않는 바울의 열정이 우리의 마음에도 불타오르는 성령의 감동이 함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먼저 믿는 우리를 통하여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세상 가운데 성령의 능력이 나타나야 합니다. 세상을 이기는 성도,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거룩한 성도가 되도록 성령의 능력을 덧입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