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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생명의 가치(눅15:1-7)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3|조회수1 목록 댓글 0

1858년 보스턴에 있는 한 주일학교 교사 킴벌은 구두방에서 일하는 자기 반 학생을 직접 방문하여 성경을 가르치고 결국 그를 그리스도께 인도했습니다. 그 가난한 학생의 이름이 후일 세계적인 전도자가 된 무디입니다.

21년후 무디는 런던을 방문하여 큰 전도집회를 열었고 집회에 참석했던 메이어가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이 메이어가 나중에 목사가 되고 미국에 가서 설교를 했을 때 채프만이라는 사람이 은혜를 받고 회심하였습니다. 이 채프만은 야구선수였던 썬데이에게 성경을 가르쳤습니다. 나중에 전도자가 된 썬데이는 3주간 집회를 가졌으나 너무나 실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신자는 열두 살짜리 소년 한 명 뿐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이 바로, 훗날 전 세계 수백만 군중에게 복음을 전한 빌리 그레함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계보의 출발은 한 사람의 주일학교 교사 킴벌이었습니다. 한 영혼을 사랑하며 전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수많은 영혼보다 한 영혼을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 생명의 가치는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서 큰 기쁨의 잔치가 벌어진다고 합니다.

 

 

1.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바리새인과 예수님의 차이는 사람들을 보는 태도가 달랐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율법의 잣대를 가지고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을 비판하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병자를 보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어서 병에 걸렸다고 생각했고, 고난을 당하는 사람을 보아도 뭔가 하나님 앞에 잘못해서 그렇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러한 사람들과는 가까이 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의 수준에 맞는 가문이 좋고 건강하고 잘 나가는 사람들과만 어울렸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피해 버렸습니다. 자기와는 상관이 없는 일로 여겼습니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병들고 아픈 사람들의 어려움을 함께 나누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사람들과 함께 하며 식사하는 것을 보고 죄인들과 어울린다고 비난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런 사람들에게 전도하려고 식사를 같이 한 것인데, 영혼을 사랑하는 주님을 마음을 그들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병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보면, 그냥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어떻게든지 도와주려고 힘썼습니다. 고난을 당하는 사람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었습니다. 그들과 함께 해 주었습니다.

 

 

어떤 집사님의 이야기입니다. 큰 아들이 결혼할 아가씨를 만났는데, 그 가정에 문제가 있었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이 모두 장애인이었습니다. 그 아가씨만 장애가 없어서 온 가족을 돌보아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그 장애는 유전성을 가진 것이었기 때문에 앞으로 태어날 손자가 장애아로 태어날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이 하나님께 기도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집사님이 기도한 내용을 생각나게 했답니다. 믿음이 좋은 사람, 착한 사람, 자신을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을 며느리로 삼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생각나게 하셔서 네가 기도한 대로 이루어졌으니 며느리로 맞으라고 하더랍니다. 그래서 비록 환경이 좋지 않는 장애인 집안이지만 큰 며느리로 삼았답니다. 바로 이런 자세가 주님을 닮은 마음입니다. 나중에 손자들도 건강하게 잘 태어났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느냐고 따지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셨습니다(마9:13). 바리새인들이 세리와 죄인으로 여기고 인간취급을 안 했던 그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의인이라고 하며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과연 누가 죄인입니까? 자신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깨닫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들이 죄인입니까? 자기들 스스로 율법을 잘 지킨다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대적하는 바리새인들이 죄인입니까?

 

 

주님은 “건강한 자에게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의원이 쓸데 있느니라.”라고 하셨고, “인자의 온 것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하셨습니다.

 

 

러시아의 위대한 작가 톨스토이가 어느 날 길을 가고 있을 때 한 거지가 길을 막으며 구걸을 하였습니다.

톨스토이는 주머니를 뒤져보았지만 돈이 한 푼도 없었습니다.

그는 미안해하며 거지에게 말했습니다.

“미안하구려, 형제여, 안타깝게도 지금 내겐 돈이 한 푼도 없소.” 그러자 거지가 허리를 구부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누구신지는 모르나, 당신은 제게 돈 이상의 귀한 것을 주셨습니다.

저를 형제라고 불러주신 것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출처] 한 영혼의 가치는 무한하다|작성자 마리안

 

 

그렇습니다.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 영혼의 가치는 세상의 어느 것과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한 생명의 가치가 무한다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돈이나 지위로 판단할 수 없는 소중한 것입니다.

 

 

2. 길을 잃은 영혼이 우리 곁에 있습니다.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만약에 양 한 마리를 잃어 버렸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목자는 당연히 그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에 힘쓸 것입니다. 목자는 양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한 마리는 99마리에 비해서 작습니다. 숫자로 비교하면 상대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목자는 99마리를 들판에 두고 한 마리를 찾아 들판을 헤맵니다. 찾을 때까지 수고하고 애씁니다. 세상은 어떻습니까? 당연히 다수를 따라 갑니다. 많은 사람 위주로 갑니다. 힘없고 연약한 사람들은 소외되고 맙니다.

 

 

자녀를 기르는 부모가 ‘나에게 자녀가 아직 몇 명 더 남아 있으니 한 명쯤은 사라져도 괜찮아’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10명의 자녀가 있다고 해도 어느 한 자녀가 소중하지 않겠습니까? 크든 작든, 잘났든 못났든 부모에게는 모든 자녀가 다 귀중합니다. 이렇게 한 사람의 영혼의 가치를 모든 사람의 영혼을 합친 것보다 결코 작게 보지 않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주변에 길을 잃고 방황하는 영혼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사랑과 기도가 죄악에 빠진 영혼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사랑과 기도가 질병과 고난 가운데서 헤매고 있는 불쌍한 영혼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나타날 때까지 간구해야 합니다. 그 이름을 부르며 날마다 기도하십시오. 그러면 반드시 성령님께서 주물러 주십니다. 분명하게 하나님은 역사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잘 안 믿고 간절히 기도하지 못하고 복음을 전하려고 시도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에 멀리 떨어진 바닷가 마을 매진리에 전도나갔습니다. 그곳에서 한 아줌마(66세)를 만났는데, 민박집과 횟집을 운영하는 성격이 화통하고 말씀도 잘 하신 분이었습니다. 시집가서 30년간 구룡포에서 살다가 친정 동네로 다시 돌아왔다고 하였습니다. 교회에 대해서도 많이 알고 있었고,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흰 저고리와 검은 치마를 입고 성경을 옆구리에 끼고 교회에 나가고 강단 꽃꽂이 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습니다. 영접기도 하자고 하니까 잘 따라서 하셨고 간절히 기도 드렸습니다. 그리고 성경공부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전도 나갔다가 이런 분을 만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준해 놓으신 영혼이었습니다. 앞으로 자주 와서 말씀도 나누고 예배드리기로 하였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안 믿는 사람들을 많이 만납니다. 우리는 불신자를 만날 때에 제일 먼저 해야 할 것이 속으로 “예수님, 이 영혼을 구원하여 주십시오. 가만두면 지옥 갑니다.”라고 기도하고 어떻게든지 복음을 전하려고 힘써야 합니다. 물론, 여러 가지 일로 만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항상, 우리의 마음속에는 불신 영혼들을 구원하겠다는 119구조대의 정신이 있어야 합니다. 지옥 불에서 건져주는 것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몇 년 전, 미국의 한 동물 보호단체가 한국에서 개 57마리를 비행기로 실어 왔다고 합니다. 해당 단체는 이 개들이 보신탕용으로 사육되고 있다고 밝히면서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비판했습니다.

이번에는 11마리의 개를 비행기에 태워 11시간 비행 끝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이 개들은 서울 외곽의 한 시장에서 보신탕용으로 판매되기 직전에 구조했다고 동물 보호단체는 밝혔습니다. 개들이 죽기 직전에 구원을 받아 개들의 천국인 미국까지 갔습니다. 이 개들은 전염병 예방을 위해 일주일가량 격리된 뒤 입양 절차를 밟게 될 것이라고 동물 보호단체는 밝혔습니다.

이 뉴스를 보면서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를 구원하기 위해서 이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개들의 구출을 위해서도 이렇게 애를 쓰는데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더욱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3.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 기쁨이 가득합니다.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회개는 하나님께로부터 떠나 있던 사람이 되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헬라어로는 ‘메타노에오’(metanoeo)이며 ‘생각을 고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죄인 한 명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늘에는 기쁨이 가득합니다. 한 영혼의 이름이 천국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는 때에 하늘에는 축하의 나팔소리가 울립니다. 한 영혼이 천하보다 소중합니다. 그 귀한 영혼을 위하여 주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보혈의 피를 흘려주셨습니다. 하나님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에 기준에 맞춰서 저 분은 안 될 것이라고 속단해서 안 됩니다. 하나님은 사도 바울과 같은 예수님의 대적자를 변화시켜 위대한 전도자로 만드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우리 지역에 불신 영혼들을 위해 날마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5-6.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양을 찾게 되면 즐거워서 어깨에 메고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서 잔치를 연다는 것입니다.

 

 

도행전 5장에 보면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날 밤이었습니다.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서 옥문을 열고 사도들을 감옥 밖으로 탈출시켰습니다. 그리고 “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라고 했습니다. 성전은 사도들이 붙잡혀 왔던 바로 그 장소이며 언제든지 다시 붙잡힐 위험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은혜를 체험한 제자들은 두렵지 않았습니다. 복음의 능력으로 충만한 제자들은 즉시 성전으로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사도들은 말씀에 순종하여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아마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을 것입니다. 또한 씻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밤에 잠도 잘 못 자서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들려갔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되신 복음을 담대하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또 잡혀 갈 것을 알면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복음에 대한 사도들의 열정이 대단합니다.

 

 

복음에 대한 열정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사람들은 이 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 새벽부터 열심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들도 새벽부터 열심을 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목적이 ‘주님의 복음을 위하여’가 되시기 바랍니다. 새벽부터 일하고 공부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열심이 되시기 바랍니다. 복음의 증인되기 위한 열정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는 일에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하나님은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지옥 갈 영혼 살리려고 교회를 세워주셨고, 우리를 먼저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 땅에 것은 일시적인 것이며 잠깐 있다가 사라질 것들입니다. 우리는 그것만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을 위해 사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김숙자 집사님, 박장로님 모친, 김하월성도, 김순남예비신자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우리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 영혼이 우리의 가족일 수 있고 우리의 이웃이 되기도 합니다. 바로 우리 주변에 있고 우리가 늘 만나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영혼이 마귀에게 붙잡혀서 고생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단이 방해를 해도 우리는 기도하고 전도해야 합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감이 다시금 불타올라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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