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전한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15:19).”라는 말씀으로 오늘 설교를 시작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바라는 것이 이 세상의 삶뿐이면 우리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서 더욱 불쌍한 자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처럼 주일날 놀러 가거나 쉬지도 못하고 교회에 와서 예배드리고 봉사해야 합니다. 또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성질도 못 내고 참아야 할 때도 있습니다. 만약에 부활의 영광이 없고 이 세상으로 우리의 인생이 끝난다면 매일 매일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것이 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이 이 세상의 썩어질 것으로 끝나지 않고 하늘의 영원한 영광이 있다면 예수님을 믿는 성도의 삶은 세상의 어떤 사람들보다 가치 있고 소중한 인생이 됩니다.
1. 장차 나타날 영광을 소망하자.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당시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현재의 고난은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복음을 전한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고후11:24-25), 감옥에도 수차례 갇혔습니다. 초대교회 시절에는 예수님을 믿고 예배를 드리는 것 자체가 위험한 것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고난이 있었습니다.
얼마 전 북한 당국이 성직자가 십자가로 어린이의 이마를 내리쳐 살해하는 반(反)기독교적 내용의 발레공연을 TV방송에 방영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겉으로는 “종교 탄압은 없다”고 선전하면서도 실제로는 기독교 폄하는 물론 왜곡마저 일삼고 있는 북한당국의 실상이 드러난 셈입니다. 그런데도 현재 북한의 지하교인들이 50만 명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기독교를 극심하게 탄압하는 상황에서 신앙을 지켜 나가기가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아마도 초대교회 교인들이 당하는 고난과 오늘 북한 성도들이 당하는 고난이 비슷했을 것입니다.
그런 고난 속에서도 바울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라고 선포합니다. 사도 바울이 극심한 고난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장차 나타날 하늘의 영광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의 죄로 인하여 모든 피조물이 오늘날까지 다 함께 신음하며 진통을 겪고 있습니다. 피조물도 멸망의 사슬에서 풀려나서 하나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영광스러운 자유에 참여할 날을 고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방인 아리스티데스는 그리스도인을 지켜보면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글을 남겼습니다. “그들은 다른 세계가 임할 것을 바라며 모든 부정함에서 자기 자신을 삼간다. 가난한 자나 궁핍한 자, 또는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는 자들이 있으면 이삼일 금식을 하여 궁핍한 자들에게 필요한 음식을 공급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의 법이며 행동양식이다.”
이 글을 통해서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얼마나 거룩하고 참된 삶이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이 다른 세계, 영원한 하늘나라를 소망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욕심에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돕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대에 천만 가까운 그리스도인들이 산다고 하는데, 세상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못 미치는 것은 지식적인 신앙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어서 자기 욕심이나 자기 영광을 얻으려 하는 육신적인 신앙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신앙, 진정으로 주님을 따르는 신앙은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헌신과 희생의 삶을 살아갑니다.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을 낮추고 희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쫓아가는 넓은 길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좁은 길을 찾아갑니다. 이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은 이 땅의 것만이 아니라 영원한 하늘까지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2. 종노릇에서 해방된 영광의 자유를 소망하자.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인간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있는 피조물까지 썩어짐의 종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타락하기 전 에덴동산의 피조물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맺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의 불순종으로 사람들뿐만 아니라 피조물들도 죽어서 썩어지게 되었습니다. 썩어짐의 종노릇을 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생물들이 생로병사의 상태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피조물들도 예수님의 재림하시는 날 새롭게 회복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처럼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소망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들이야! 얼마나 더 소망해야겠습니까? 그런데 아직도 수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썩어질 것에만 집착한 나머지 영원한 하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직 이 땅에서의 영광, 즐거움, 부귀영화만을 목표로 살아가는데, 내세에 있을 영원한 자유와 기쁨은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역시 주님의 재림 때에 있을 영원한 심판과 지옥 형벌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에 보면 태어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이 나옵니다. 제자들은 그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자신의 죄인지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 모든 사람에게 적용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고통 받는 이유, 우리가 잘 되는 이유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 사람이 맹인 된 것은 죄 때문이거나 저주를 받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나타내시고자 함입니다.
우리 인간을 비롯한 이 땅의 모든 만물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존재합니다. 피조물은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것이 존재 목적이 되는 것입니다. 앞을 보게 된 사람이 한 가장 큰 일은 “주여 내가 믿나이다(요9:38).”라는 신앙고백입니다. 그는 육신의 눈만 떠진 것이 아니라 영적인 눈이 열려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구원자가 되심을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구분을 경배하고 사람들에게 담대히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고 전파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라고 담대히 전했습니다. 참으로 오늘을 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러한 신앙고백과 주님을 향한 열정이 있어야 합니다.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우리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피조물까지도 함께 탄식하며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인간의 잘못으로 자연이 훼손되고 물과 공기가 오염되었습니다. 피조물들의 잘못이 아니라 우리 인간의 잘못으로 지구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그러한 고통은 이상기후 현상, 가뭄, 홍수, 지진, 전염병, 전쟁 등이 되어 우리 인간의 삶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탐욕, 허영심, 죄로 말미암아 수많은 사람들과 피조물들이 탄식가운데 신음하고 있습니다.
며칠 전 알콜중독치료센터에서 만난 40대 남녀가 강원도 정선으로 여행을 가서 희한한 일을 저지릅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마셔보자"며 열흘 동안 소주 60병을 마셨습니다. 결국 그들의 소원대로 여성은 죽었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온전한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생각이 타락되었고, 잘못된 것들에 붙들려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입니다. 마귀의 종노릇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고통과 신음에서 우리를 해방시킬 영원한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이 땅에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지도자가 나와도 사람의 공로로는 구원을 완성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야 합니다. 우리의 가정과 우리 동네에 예수님이 소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 나라에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이 전파되어야 합니다.
23.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바울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을 기대한다는 것입니다. 죄악된 몸의 속량을 받을 그날을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신령한 몸으로 부활할 영광스러운 그날을 기대하는 마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말씀의 은혜를 받고 기도할수록 우리는 신령한 사람이 됩니다. 하늘의 영광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립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소망하자.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우리의 소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의 상속자가 되고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망은 눈에 보이는 썪어질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하늘의 영원한 것입니다.
이 땅의 우리의 삶은 유한합니다. 앨버트 몰러라는 목사님이 한 이야기를 책에서 읽었습니다.
“시계가 째깍거리는 순간마다, 달력을 한 장 넘길 때마다, 한 번 숨 실 때마다 우리는 태어난 순간보다 죽는 순간에 가까워져 간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이 명하신 것을 해야 한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유한한 이 땅의 삶을 바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한 중에서 가장 귀중히 생각해야 할 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일을 기억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자랑하고 복음을 전하는 증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의 부르심 때문에 좁은 길을 따라 희생해야 하고 고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늘의 영원한 영광을 소망할 때에 우리는 기쁨으로 고난을 이기는 영원한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신앙은 보지 못하는 것들을 바라는 것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향한 약속들입니다. 그 약속은 우리 눈에 당장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분명히 이루어질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우리는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며 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1572년 죽은 스코틀랜드의 종교개혁가 존 낙스의 무덤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여기 평생에 한 번도 사람의 얼굴을 두려워하지 않은 사람이 눕다.”
그는 새로 등극한 메리 여왕이 은밀한 곳에서 비밀리에 미사를 드리자 존 낙스는 에든버러의 세인트 자일스교회에서 여왕을 향해 외쳤습니다. “나에게는 이 땅에서 한 번의 미사를 드린다는 것이, 이 땅에 만 명의 무장 군인이 쳐들어왔다는 소식보다 더 두렵다.” 타락한 중세 가톨릭에 단호히 반대한 것입니다. 그는 이 설교 때문에 여왕 앞에 붙잡혀 갔습니다. 그렇지만 낙스는 주저 없이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유일하고 참된 복음, 우리를 구원하는 은혜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에 여왕은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골로새서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사도 바울은 골로새교인들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삶, 초대교인들의 삶은 편안하고 형통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누리는 고난이 없는 이런 삶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숱한 고난과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선포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6: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사도 바울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것이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건져주신 예수님, 그분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자가 됩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진심으로 느끼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충만한 은혜가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존 파이퍼는 경건함이란 성경을 읽고, 교회에 가고, 명령을 지키는 것만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도 그 모든 것을 행했다는 것입니다. 진정한 경건함은 하나님께 강력하게 사로잡히고, 하나님으로 만족하고, 하나님으로 충만하고, 예수님으로 움직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지식으로만 아는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중심에 계신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되고 능력이 되어야 합니다. 죽은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의 삶에서 실제적으로 살아계신 주님을 체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거룩한 영향력을 미치고 우리의 생각과 삶이 온전해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 사순절 기간에 진정으로 예수가 중심이 되며, 예수님으로 충만한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가치관이나 생활방식이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살아가는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