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람(시리아) 왕의 군대 장관 나아만은 그의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그렇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통해서 아람 나라를 구원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기 전부터 그는 주님의 은혜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나아만은 다름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택함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하나님으로부터 택함을 받은 자라는 사실은 아무도 모릅니다. 나아만 자신도 모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자신이 택한 나아만을 구원하시기 위해 일 하셨습니다.
이 나아만은 큰 용사였으나 나병에 걸려 있었습니다. 나병에만 걸리지 않았더라면 세상 적으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형통한 삶을 살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병 때문에 그 인생은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나아만을 고통스럽게 했던 나병이 그를 겸손하게 만들었고 하나님을 인정하는 삶을 살게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나병이 그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축복의 문이 된 것입니다. 그는 나병 때문에 하나님을 인정하게 됩니다.
1. 종살이하면서도 하나님을 인정하며 살았습니다.
아람 군대에 의해 포로로 끌려 온 한 이스라엘 소녀가 나아만 장군의 집으로 끌려가서 그의 아내의 종이 되었습니다(2절). 이 소녀는 비록 전쟁 포로로 끌려 왔지만, 그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실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지하는 기도의 삶을 산 것입니다. 그 고난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심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17살에 형들에 의해 애굽의 팔려간 요셉처럼, 이 소녀도 남의 집에서 종살이 하면서도 믿음으로 살았고,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했습니다. 주인이 볼 때에 참 착하고 성실한 아이라고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러니까, 주인이 이 소녀의 말에 신뢰를 하였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 것입니다. 이러한 신실한 삶을 살아갈 때에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성도의 삶은 세상 사람과 다른 거룩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사랑하는 헌신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또한 남보다 좀더 수고하고 손해 볼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확신 있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게 됩니다.
3. 그의 여주인에게 이르되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가 그 나병을 고치리이다 하는지라
이 소녀가 여주인에게 장관이 걸린 불치의 병에 대해 근본적인 처방책을 제시한다고 하는 것은 신분상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나아만은 이방인이었지만 소녀는 미움 받는 유대인이었습니다. 나아만은 크고 존귀한 자였지만, 소녀는 작은 계집아이요 한낮 종에 불과했습니다. 나아만은 군대장관 이었지만 소녀는 적국의 땅에 사로잡힌 포로 신세였습니다. 그런데도 철저하게 하나님을 인정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2. 이방인들도 하나님을 인정했습니다.
이 소녀는 어느 누구도 두려워서 감히 입을 뗄 수 없는 커다란 신분상의 차이에서도 담대하게 입을 열어 여주인에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렸습니다. 소녀는 훌륭한 의사를 소개한 것이 아니라 ‘선지자’를 소개했습니다. 낯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알려 준 것입니다. 이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습니다. 만약에 나아만이 선지자를 찾아가서 낫지 못했다면, 이 소녀는 거짓말로 주인을 농락한 죄로 처형당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확실하게 믿지 못하면 이렇게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땅의 많은 사람들은 영적으로 병들어 있고 죽어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 마귀의 종살이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가면 마귀가 가는 지옥에 가게 됩니다. 확신을 가지고 십자가의 복음, 부활의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제 참된 선지자인 예수님을 소개해야 합니다. 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만나야 영적인 나병에서 치료받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소녀처럼, 세상에서 죄악의 노예, 질병의 노예, 문제의 고통 가운데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주 예수님을 만나게 안내 해 주어야 합니다.
나아만은 자기 주관이 매우 강하였습니다. 자기 생각이 제일이요 뭐든지 자기 생각대로 하여 실패한 일이 없기 때문에 누구의 말도 듣지 않습니다.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도 자신의 전술로 이겼습니다. 이런 사람에게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듣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이스라엘에서 사로 잡아온 어린 여종의 말을 들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아만이 어린 여종의 말을 들었다는 것은 신기합니다.
자기 주관이 강한 나아만이 어린 여종의 말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나병환자이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가 아니면 어린 여종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살이 썩는 고통을 주는 나병환자였기 때문에 어린 여종의 말을 들었습니다. 나아만이 나병환자가 된 것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병입니다. 나아만처럼 자기 생각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나무랄 데 없는 사람, 주변 사람들로부터 존경 받는 사람, 법 없어도 살 수 있다는 사람, 흠 잡을 데 없고 말 한마디도 실수 없는 사람에게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는 말을 하면 듣지 않습니다. 먹고 살기 어렵지 않고 뭐든지 하면 자기 생각대로 되는 사람에게 ‘하나님 믿고 천국 갑시다.’라고 하면 잘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이 나병환자였기에 어린 여종의 말을 들었습니다. 여종의 말을 듣고 아람 나라 왕을 찾아갔습니다.
4. 나아만이 들어가서 그의 주인께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땅에서 온 소녀의 말이 이러이러하더이다 하니
그러자 아람왕도 그대로 믿었습니다. 포로로 붙잡혀 온 이스라엘 노예의 말을 장관과 왕이 그대로 곧이들은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으로 굉장히 자존심이 상한 문제입니다. 감히 한 나라의 왕이 포로의 말을 듣고 행동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역사 나타난 것은 소녀의 배후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 소녀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늘 기도하며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비록 노예로 살지만 당당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었습니다.
3.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못했습니다.
나아만은 왕의 친서와 엄청난 양의 예물을 가지고 이스라엘로 선지자를 찾아 나섰습니다(5절). 나아만 장군의 방문을 받은 이스라엘 왕은 기가 막혔습니다.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나병을 고쳐달라고 왔는데, 그것도 계집아이의 말을 듣고 아람 왕이 친서를 보내왔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선지자를 믿지 않았습니다. 이방나라의 아람왕도 믿었던 선지자를 이스라엘 왕이 안 믿었던 것입니다.
7. 이스라엘 왕이 그 글을 읽고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내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하나님이냐 그가 어찌하여 사람을 내게로 보내 그의 나병을 고치라 하느냐 너희는 깊이 생각하고 저 왕이 틈을 타서 나와 더불어 시비하려 함인줄 알라 하니라
이스라엘 왕은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이가 하나님뿐이신 것도 잘 알았고, 또 자기가 하나님이 아닌 것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과거 이스라엘이 전투하고자 할 때 많은 가축과 군대에게 물을 주사 먹이게 하시고, 모압왕과의 전투에서 놀라운 능력으로 승리를 주신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했음에도 그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때로는 이런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전능하신 하나님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삶을 산 것입니다. 세상 사람도 믿고 찾아오는 하나님인데, 이스라엘 왕은 별로 하나님과 친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자칫하면 이런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은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분으로 여기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히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더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조금 안다고,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거나 외면하는 굳어진 마음, 잠들어 있는 신앙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이런 이스라엘왕을 보다 못한 엘리사가 본문 8절 “왕이 어찌하여 옷을 찢었나이까 그 사람을 내게로 오게 하소서 그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가 있는 줄을 알리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중에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는 것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능력을 초월하시는 전능한 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자기 능력에 비추어 안 될 것이라고 믿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은 자기 생각보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어야 했습니다. 그는 말씀보다 자기의 능력이나 경험을 앞세웠습니다. 그것 때문에 절망하고 의심하며 옷을 찢었습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를 믿지 못한 것입니다.
4. 자기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아만장군은 엘리사선지자를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용한 시골 마을에 화려한 마차 행렬이 찾아든 것입니다. 대국의 군대장관이 엄청난 양의 선물을 싣고 나타났으니 동네 사람들은 구경하러 몰려들었을 것입니다. 드디어 나아만장군의 말들과 병거들이 엘리사가 있는 집 앞에 이르렀습니다. 이런 경우 당연히 엘리사선지자가 나와서 공손하게 자기 집으로 안내를 해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10. 엘리사가 사자를 그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가서 요단 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 네 살이 회복되어 깨끗하리라 하는지라
얼마나 좋은 소식입니까? 지금 당장에 가서 요단강 물에 일곱 번 씻으면 나병이 낫는다고 하니 너무 좋아서 기뻐 춤출 일입니다. 엘리사의 말은 너무나 평범하고 쉬운 것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요구한 것도 아니고 이스라엘의 포로들을 돌려달라는 요구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은 그 기쁜 소식을 듣고도 기분이 나빴습니다. 그 이유는 자존심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는 대국 아람나라의 군대장관인데, 이스라엘 왕도 자기 앞에서는 깍듯이 예우를 하는데, 감히 시골의 선지자가 나와서 자기에게 인사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였습니다. 나아만의 문제는 자기가 죽지 못한 것입니다.
11. 나아만이 노하여 물러가며 이르되 내 생각에는 그가 내게로 나와 서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그의 손을 그 부위 위에 흔들어 나병을 고칠까 하였도다
나아만은 자기 생각대로 하나님이 움직여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가 군대장관이니까, 높은 권세를 가졌으니 하나님도 자기 생각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명심해 할 것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자기 생각이나 기분에 따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는 것입니다. 자기 자존심이나 고집을 버리고 철저하게 낮아져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가장 큰 적은 자기가 주인 되는 것입니다. 자기 생각, 자기 마음, 자기 경험을 앞세우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아니라 자기가 주인 행세를 하는지 모릅니다. 자기가 죽어져야 예수님이 내 안에서 사시게 됩니다.
내 뜻을 내려놓아야 주님의 뜻이 나를 통하여 이루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평생에 과제가 내가 죽어지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어제 두호동 주영광교회 주변에서 호미곶등대교회 목사님과 전도를 하면서 한 이야기입니다. 전도를 하다 보니 어른들은 자기생각이나 경험들이 있어서 복음을 잘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순수해서 복음을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가능하면 어렸을 적에 복음을 잘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18:3)”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나아만장군에게는 지혜로운 종들이 있었습니다. 그 종들이 장군에게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에게 큰 일을 행하라 말하였더면 행하지 아니하였으리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까!”라고 설득하였습니다. 참 훌륭한 참모들입니다.
14.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요단 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의 살이 어린 아이의 살 같이 회복되어 깨끗하게 되었더라
기적은 믿음으로 순종할 때 나타납니다. 자존심이나 고집을 꺾고 겸손히 말씀에 순종할 때 놀라운 은혜가 임합니다. 그가 일곱 번째 목욕을 했을 때 선지자의 말대로, 나병이 나았습니다. 악취가 나고 썩어 들어가던 몸이 아이처럼 깨끗한 피부가 되었습니다. 나아만은 인생에 처음으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진심으로 순종하는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소녀가 처한 상황은 아람의 군대장관인 나아만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려웠습니다. 오히려 나아만 장군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도 그 소녀는 나아만 장군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로 나올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롭고 부족함이 없는 것 같은데, 그 마음은 공허함에 시달리고 우울증이나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삶의 행복과 만족을 얻지 못해서 쾌락이나 탐욕을 통해서 자기 욕구를 채우려고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인 나병에 걸려 있습니다. 참으로 이러한 위기에서 구원 받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 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만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건져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합니다. 그 믿음만이 인생의 시험과 문제에서 이겨낼 수 있게 합니다. 우리 인생길에서 경험하게 되는 가장 놀라운 축복은 로또에 당첨되거나, 거대한 빌딩의 주인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죽으신 사랑의 주님을 가슴으로 만나는 일이 가장 위대한 사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만나는 일보다 가치 있고 더 중요한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