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목사님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딸이 직장에 다니는데, 새 옷을 사서는 입지 않고 옷걸이에 걸어놓고 있더랍니다. 새 옷을 사놓고 왜 안 입고 다니는가했더니, 사귀는 남자친구를 만나러 가는 때에 입으려고 그랬답니다. 그것을 보고 남자친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답니다. 남자친구를 만날 때 새 옷을 입고 만나려고 아껴두듯이 우리 성도님들도 주님 오실 때 흰옷을 입고 만나기를 기대하며 준비하는 삶이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성도님들이 가장 기다리는 분은 신랑 되시는 주님, 다시 오실 예수님이 되어야 합니다.
1.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당시 헬라인들은 죽음을 깨어날 수 없는 영원한 잠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러니까 죽음은 슬픈 것이며 영원한 이별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인들은 죽은 사람들이 부활의 생명으로 다시 깨어날 것을 믿었습니다. 여기서 자는 자들은 죽은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당시 데살로니가 교인들 중에 죽은 성도들이 어떻게 되느냐에 대한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하지 아니하노니”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죽은 자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예수 안에서 죽은 자들에게는 희망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바울은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주님 안에서 자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을 떠나가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죽음을 끝이라고 말합니다. 죽은 자는 가엾고 불쌍하며 죽은 자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은 죽지 않고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이사를 가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확실히 알기를 원합니다. 이 사실을 모르면 소망이 없는 백성이 됩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물론 이것은 예수님을 구주로 믿을 때에만이 주어지는 영생의 축복입니다.
우리 동네에 사시는 한 할머니 이야기입니다. 이 할머니는 아들을 먼저 떠나보낸 것이 가슴에 한이 되어 살아가시는 분입니다. 죽음은 비참한 것이고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할머니의 아들이 예수님을 믿고 죽었습니다. 그 아들이 기도원에서 봉사를 했고 신학교에 가려고까지 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에 저의 마음에 소망이 생겼습니다. 그 아드님은 죽은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자고 있습니다.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할머니에게 예수님 믿으시면 천국에서 아드님을 다시 만날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할머니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믿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수많은 사람들이 내세에 대한 소망, 천국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이 땅의 성공에만 소망을 두고 살아갑니다. 눈에 보이는 권세나 재물에 욕심을 부리다가 패가망신을 당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은 참된 소망이 무엇인지 아는 것입니다. 영원한 소망, 영원한 상급이 천국에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탐욕을 따라 살지 말아야 합니다.
스위스의 한 순교자가 맨발로 장작더미 위에 올랐습니다. 끔찍한 장면을 앞두고 모두 다 긴장되어 있는데 막상 순교할 당사자는 얼굴에 평화가 있고 여유가 있었습니다.
그는 그 사형집행을 감독하던 치안판사에게 말했습니다. “판사님 저의 가슴에 손을 한번 얹어 보세요. 만약 저의 심장의 맥박이 평상시보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뛴다면 제가 믿는 종교를 불신하시고 하나님을 저주하셔도 좋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순교자의 표정이 너무 담담하여 의아했던 판사는 떨리는 손으로 순교자의 가슴에 손을 얹었습니다. 그 순교자는 화형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침대에 잠자러 가는 사람인양 평온하기만 했습니다. 죽음이 불신자들에게는 마지막이요 무섭고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이지만 구원 받은 성도들에게는 주님을 만나는 시간이며 주님이 예비하신 아름다운 영원한 집으로 들어가는 순간입니다. 무디목사님은 임종을 앞두고 “세상이 점점 멀어지니 천국문이 열리도다”라고 유언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이렇게 확신 있는 믿음입니다.
2. 죽은 자들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14. 우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그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 기독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3일 만에 살아나신 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믿는 것은 죽은 사람들이 다시 살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있다고 합니다. 바울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주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이 주님과 함께 우리를 맞이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해서 재림하실 때에 주님과 함께 우리를 맞으러 올 것입니다.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데살로니가교회가 환난과 핍박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하늘에서 나팔소리가 들리고 하늘로부터 강림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때에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 소리가 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됩니다.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고 바울은 말씀합니다. 살아 있다고 해서 죽은 자보다 낫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 있느냐 없느냐?’ 입니다.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가 그 인생을 판가름하는 것이지 죽음이라는 것이 인생의 승패를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 오실 때에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그 나팔소리를 듣고 주님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승리자입니다.
마태24:31.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주님의 나팔 소리 울려 퍼질 때에 예수님을 믿는 택하신 자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이게 됩니다. 선택 받은 사람들은 천사들의 인도로 신랑되신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은 통곡하게 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님과 함께 천국에 들어갈 권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왕이 되신 주님은 분명히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3. 지금은 깨어서 믿음을 지킬 때입니다.
마가복음 13:35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일는지, 밤중일는지, 닭 울 때일는지, 새벽일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여행을 떠나 집주인이 언제 올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합니다. 우리 주님은 언제 오실지 모릅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깨어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한 왕이 멀리 여행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왕국에서 침실을 청소하는 종은 왕이 사용하는 침대에 누어보았습니다. 그렇게 누어보니 이 세상에서 가장 편한 침대임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거기에서 자기 침대인양 멋지게 낮잠을 자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밤이 되니 점점 더 잠을 편안하게 잘 자게 되어 밤새도록 깊은 잠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또 왕만 타고 다니는 말을 책임지고 있는 종은 왕이 없는 동안 그렇게 타고 싶었던 왕의 말을 한번 타 보았습니다. “야 신이난다. 정말 천하가 다 내 것 같다.”라고 하면서 그는 말을 몰고 왕의 승마코스를 따라서 숲속을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말 자기가 왕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왕관을 보관하고 정비하는 종은 왕이 떠난 사이에 다이아몬드관과 루비관을 번쩍 번쩍 빛나게 닦은 뒤에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그는 왕이 앉았던 보좌에 왕관을 쓰고 앉아 보았습니다. 왕관을 쓰고 보좌에 앉아보니 왕이 따로 없었습니다. 마치 자기가 왕이 된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오래토록 왕관을 쓰고 보좌에 앉아서 그만 잠에 취해버렸습니다. 종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어리석게 행동을 했고 깊이 잠들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나팔소리가 들리더니 왕이 돌아왔습니다. 생각지 않은 시간에 돌아온 것입니다. 왕이 침실을 가보니 신하가 자기 침대에 들어 누워 잠자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굿간에 가보니 타던 왕의 말이 없어지고 신하가 말을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을 발견하였습니다. 또 왕실에 들어가 보니 신하가 왕관을 쓰고 보좌에 앉아 깊은 잠에 빠져있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왕이 그 장면을 보고 얼마나 화가 낫겠습니까? 그래서 자기의 직분을 망각하고 어리석게 행동한 종들을 목을 치라고 명령했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라는 하나님의 나팔소리에 귀를 기울이라는 교훈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깊은 잠에 빠져서 주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일에만 빠져 있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어리석은 종들처럼 마치 내가 주인인 것처럼 행세하여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이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주님 오실 날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세상일에 취해 있으면 영적인 감각이 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집중하지 못하고 영원한 것을 목표로 삼지 않고 살아가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아무리 성실하게 보이고, 점잖게 보이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사실은 세상적이고 정욕적이고 마귀적입니다. 영적 감각이 둔해지면 멸망이 덮치는 순간에도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오늘의 형편은 노아 시대와 비슷합니다. 점점 세상의 쾌락과 유혹 속에 너무 빠져 들어가 살고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마저도 인본주의적 형태로 변해가고 하나님 중심에서 멀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어야 하는데, 어떤 면에서 사람이 중심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의 형편과 사정을 앞세우려고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순간, 어떤 형편에도 철저하게 예수님 중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세상에서 거룩한 영향력을 미치는 길입니다.
눅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마음이 둔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마음이 둔해지는 이유는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 때문입니다.
방탕을 극단적으로만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들을 자신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방탕의 시작이고 그래서 모든 것을 탕진하는 것이 방탕의 마지막입니다. 따라서 시간, 재산, 정력들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은 방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술 취함이란 술 취하는 것 자체만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술 취하는 것이 대표하는 생활을 말합니다. 자신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정욕적인 생활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국 술취함은 음란과 부정으로 진행되기 쉽습니다. 생활의 염려란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온통 신경을 쓰고 그것 때문에 마음이 얽매어 생활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없어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에 젖어 있는 마음가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한다고 잘 살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형통은 주님의 은혜를 받을 때, 말씀으로 영혼의 양식을 삼고 기도할 때에 얻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밥은 먹어야 합니다. 그렇듯이 아무리 바빠도 말씀 보고 기도하는 것을 빼먹지 마시기 바랍니다. 바쁘기 때문에 우리 일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나 혼자 하는 것보다 주님이 도와주실 때 훨씬 든든하고 잘 됩니다. 세상의 뉴스는 우리 마음을 혼란케 하고 화나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은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소망을 줍니다. 우리를 지혜롭게 하고 옥토와 같이 부드러운 마음이 되게 합니다. 날마다 말씀 보고 묵상하며 그것을 붙들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4.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해야 합니다.
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여기서 구름은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말씀합니다. 주님의 재림 때에 살아있는 성도들은 공중으로 끌어올려져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영원히 함께 있을 것입니다.
대림절 절기에 우리 성도님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고대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나팔소리가 울려 퍼질 때 천사들이 내 이름을 불러서 주님과 함께 영광스러운 하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될 그날을 고대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재림신앙이 확실하다면 우리는 결코 세상의 쾌락이나 부귀에 집착하지 않을 것입니다. 더 좋은 하늘의 영광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하나님을 잘 섬기다가 임종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운명의 자리에 자녀들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그때 그 집사님이 “저기 계신 두 분은 누구냐?” 자꾸 식구들에게 물었습니다. 가족들이 그 집사님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까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집사님은 거기에 두 사람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때에 가족들은 그 집사님을 천국으로 안내 하려고 온 천사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집사님의 말씀을 들은 가족들은 기쁘고 감사했답니다. 천사들이 와서 부모님 곁에 지켜 서 있다가 천국으로 안내 해 주신다는 것을 믿으니 너무나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감사와 기쁨 가운데 장례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계시록22: 12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주님이 오셔서 줄 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주님이 속히 오시는데, 사람들이 일한대로 갚아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삶이 나만을 위한 삶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 땅의 삶은 모든 것을 우리에게 맡겨 주신 하나님을 위한 삶이라는 것을 깊이 인식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 하늘의 상급을 받는 삶이 될 것이며, 주님 앞에서 칭찬받게 될 것입니다.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마지막 나팔소리 날 때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된다는 것입니다.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그때 살아있는 자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하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게 됩니다.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죽을 몸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영광이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생명이 있는 사람들에게 놀라운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