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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열매가 있습니까?(마21:18-22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4|조회수2 목록 댓글 0

한동대 교수가 된 이지선씨의 이야기입니다. 2000년 7월 이화여대 유아교육과 4학년이었을 때 귀가하다가 음주운전자가 낸 7중 추돌사고로 전신의 55%에 3도 화상을 입었습니다. 이후 30여 차례의 고통스러운 수술과 재활치료를 하는 과정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 <지선아 사랑해>를 출간기도 했습니다.

그는 2004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스턴대에서 재활상담 석사(2008년), 컬럼비아대에서 사회복지 석사(2010년) 학위를 각각 취득한 데 이어 지난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사회복지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올해 한동대학교 교수가 되었습니다. 비록 그녀의 겉모습은 옛날의 모습을 회복할 수 없었지만 그녀의 마음과 삶의 열매는 더 풍성해져 많은 사람들에게 삶의 용기를 심어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이 시장하셨습니다.

18. ○이른 아침에 성으로 들어오실 때에 시장하신지라

우리는 여기서 예수님의 인성을 보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셨습니다. 너무 일찍 나오다가 보니 아침도 못 드셨고 배가 고프셨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처럼 배고프셨고 피곤함도 느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전능하신 분이 배고프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오병이어 기적과 같은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을까요? 그러면 주님은 굶주리지 않아도 됩니다. 그런데 주님은 철저하게 우리와 똑같은 연약한 인생의 길을 가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위해 빵을 만드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사탄이 40일을 금식기도 하고 굶주리신 예수님을 시험할 때에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을 위해 능력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철저하게 낮아지셔서 우리들과 똑같이 인간의 수준에서 삶의 고통을 받아들이셨습니다. 배고프고 가난한 자의 길을 가셨습니다.

 

 

진리는 배부를 때보다 배가 고플 때에 더 깊이 깨달아집니다. 천국은 가난한 자가 더 간절히 소망합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깨닫는 사람, 자신의 죄인됨을 아는 사람이 십자가의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때로는 배고프고 힘든 것이 주님을 만나거나 더 깊이 알아가는 성숙한 성도가 되게 하는 축복이 되기도 합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배고프거나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돌봐야 합니다. 그것이 주님께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겨주는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지극히 작은 사람에게 한 것이 곧 주님께 한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바로 옆에 있는 우리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하는 것이 주님께 하는 것입니다. 함께 살고 있는 가족이나 마을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며 존경하는 것이 주님께 잘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배고픈 나그네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부자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2. 예수님이 열매를 찾으셨습니다.

19. 길 가에서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그리로 가사 잎사귀 밖에 아무 것도 찾지 못하시고 ~

배부른 사람에게는 길거리에 있는 무화과 열매가 별로 귀중하지 않습니다. 먹을 많고 부유한 사람은 한 끼 식사가 얼마나 소중한지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처럼 가난하고 배고픈 사람에게는 길거리의 무화과 열매는 소중한 것입니다. 주님은 시장하여 오시기 때문에 우리가 드리는 열매를 잘 잡수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시장하여도 잎사귀는 잡수실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 지역의 무화과나무는 1년에 5번 열매를 맺습니다. 그 첫 번째 열매는 ‘파게’라고 부르고 나중에 열매들은 ‘테에나’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첫 열매인 ‘파게’는 예수님께서 유월절 명절을 맞아서 예루살렘에 오셨을 쯤에 열린다고 합니다. 이 파게는 나중에 열리는 ‘테에나’에 비해 맛과 영양가가 떨어지기 때문에 상품가치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인은 상품가치가 없는 파게를 따내는 수고를 해야 하는데, 그 일을 대신해 주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들이었다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 파게를 따 먹음으로 좋고, 농장의 주인들은 파게를 따 줌으로 나중에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있어서 서로 좋았습니다. 주님은 아침을 먹지 못해서 상품가치가 없는 길거리의 무화과 열매로 배를 채우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없어서 그날 아침은 굶어야 하셨습니다.

 

 

무화과나무의 역할은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무화과나무라고 하면 그 시기에는 파게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그네나 가난한 사람들이 따 먹을 수 있게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는 잎은 무성한데, 있어야 할 열매는 없었습니다. 첫 열매는 하나님의 것이며 가난한 사람들이 따 먹어야 했습니다. 잎이 무성하다고 열매가 많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나 세리들처럼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자신의 공로나 업적을 내세우는 무성한 잎과 같은 사람들이 아니라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주 예수님을 의지하는 믿음의 사람들을 원하십니다. 진정한 열매는 주님께 붙어 있을 때에 맺게 됩니다. 예수님을 떠난 사람들의 업적이나 공로는 시들어질 무화과 잎입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멋지게 보이는 세상의 영광도 십자가의 은혜를 받지 못하면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처럼 금방 시들어지게 됩니다.

 

 

선악과 열매를 따 먹은 아담과 하와가 부끄러워서 무화과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아 가렸습니다(창3:7). 그러나 그것은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합니다. 무화과 잎은 금방 시들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지어서 입혀 주었습니다. 잠깐 있다가 시들어져 없어질 것에 우리의 소망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님의 피로 맺은 영원한 언약을 믿고 시들지 않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막11: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예수님께서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습니다. 아침 일찍 식사도 못하시고 나오셔서 시장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더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성도들의 행위에 대한 심판을 보여 주시는 경고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는 행함이 없는 신자와 같습니다. 주님에게 대접할 것이 없는 무화과나무는 그 자체가 벌써 저주 아닌 저주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잎사귀 외에 아무것도 없는지라” 잎사귀는 외형적 모든 조건은 갖춘 것입니다. 외식은 자기를 속일 수 있으나 주님은 못 속입니다. 멀리서 보니 근사하나 가까이 와서 보니 형편없었다는 것입니다.

 

 

3. 열매가 없으면 저주를 받습니다.

19. ~ 나무에게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마른지라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예수님께서 19절에 보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가 열매를 맺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후로는 예수님께서 열매를 요구하시지 않겠다는 말입니다.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 민족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렘8:13). 이 나무가 잎사귀는 무성했으나 정작 열매는 소유하지 못했던 것처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종교의식과 겉모양은 화려했으나 참된 신앙의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것은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가 저주를 받아 말라버린 것처럼 이스라엘도 로마에 의해 망국의 아픔을 겪어야 했습니다.

 

 

20. 제자들이 보고 이상히 여겨 이르되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주님께서 저주하시니 무화과나무가 말랐다고 했습니다. 잎이 무성한 무화과나무인지라 사람들이 볼 때 그 웅장함에 매료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주님께서 필요로 하는 열매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우리가 이런 잎만 무성한 나무가 아닌지 반성해 보아야 합니다. 겉으로는 볼 때는 신실한 성도인데, 주님께서 원하는 삶이 아니라 자기의 이익만으로 위해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뜻, 아버지의 뜻은 모르고 육신의 욕망, 세상의 욕망만을 추구하며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칭찬 받기를 좋아하면서 정작 하나님으로부터는 버림받고 있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8: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세상을 따라 간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입니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을 것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다는 것입니다.

농부가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고 망대를 세웠습니다. 술틀을 파고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는데 먹지 못할 들포도를 맺혔습니다(사5:2). 온갖 정성으로 가꾼 농부에게 큰 실망을 안긴 것입니다. 여기서 농부는 하나님이시고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며 그 기뻐하는 나무는 유다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주인 되신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채, 육신의 욕망에 눈이 어두워서 바벨탑을 쌓으면서 살아가면 포도나무와 무화과 잎이 말라지고 열매가 없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신론 철학자 니체는 본래 독실한 기독교 배경인데 "내가 예수를 믿을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이유는 그들의 생활에서 기쁨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고 비판하였습니다. 슈바이처 박사는 현대 크리스천을 이렇게 비유하였습니다. "아프리카에는 물 없는 강이 많다. 모래 언덕 사이로 겨우 명맥을 유지하며 흘러가는 강물을 보면 강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민망할 만큼 초라하고 비참하다. 오늘날 크리스천들도 물 없는 강처럼 억지로 흘러가는 신앙생활, 메마른 정신, 형식과 전통만 겨우 유지하는 교회를 많이 본다."

 

 

4. 주님을 위한 열매가 필요합니다.

주님께서 필요하시다고 할 때에 그것을 내 줄 수 있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가 있어야 합니다. 잎은 무성한데 열매가 없으면 쓸모없는 무화과나무가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셨을 때, 그것을 즉시 내 줄 수 있는 준비된 신앙, 열매가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준비된 신앙인이었습니다. 나그네 세 사람으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 그가 사는 동네를 지나가실 때에 즉시 나가서 엎드려 절하고 자기 집으로 모셨습니다. 그리고 정성으로 음식을 준비해서 대접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자기 조카 롯의 가족들을 멸망에서 구원할 수 있었고 사라는 90세에 아들을 낳는 기적을 맛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그네의 모습으로 나타나셨을 때, 정성으로 대접하는 사랑의 열매를 내놓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필요하다고 하실 때, 주님께서 내가 가진 것을 쓰시자고 하실 때에 드리는 사람이 복 있는 성도입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벳바게에 이르렀을 때 제자들에게 맞은편 마을로 가서 나귀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거든 풀어서 끌고 오게 하셨습니다. 누가 무슨 말을 하거든 ‘주가 쓰시겠다’라고 하면 즉시 보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막11:2-3). 주님을 향한 이런 순종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맺어야 할 가장 중요한 3가지 열매가 있습니다.

먼저 인격의 열매입니다. 이것을 성령의 열매라고도 부르는데 성령께서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고 하나님 사랑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고 예수님을 오래 믿었는데도 그 인격에 변화가 없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23절은 성령의 9가지 열매를 소개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여기에 성령의 열매는 9가지가 나오지만 헬라어 원문에 보면 열매라는 단어가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이것은 9가지 열매들이 모두 예수님의 인격(성품)이라는 한 가지 열매를 지향하는 것임을 시사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예수님의 성품, 즉 성령의 열매를 맺기에 힘써야 합니다. 마음이 온유하고 부드러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하나님의 사랑, 이웃 사랑의 따뜻한 마음이 잉태되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우리 입술로 찬송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성경은 분명 우리의 입술에 열매가 있다고 말합니다.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그 열매를 먹으리라”(잠18:21)고 하였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입술의 열매를 창조하시는 분이십니다(사57:19). 그런데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입술의 열매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찬송과 감사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의 입술로 열매를 맺게 해야 합니다. 입술의 열매는 마음에 있는 것이 나옵니다. 마음이 옥토인 사람은 입술을 통해서 선한 말이 나옵니다. 우리의 입술이 찬양과 감사의 입술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이 말하는 중요한 열매는 바로 재생산의 열매입니다. 과일 나무가 딱 한 번만 과일을 내고 그 다음부터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여기서 재생산이란 전도와 양육의 열매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실 때 마지막 지상 명령이 무엇이었습니까? “너 혼자만 예수님을 믿어선 안된다는 것”입니다. 가서 모든 족속으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마28:19). 성도의 사명은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예수님의 증인되는 것입니다. 복음전도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이 땅에서의 성공만을 위하여 살아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영원한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이 분명히 있다는 것을 믿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영생의 축복과 하늘의 상급이 있다는 사실을 믿고 살아갈 때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며 열매 맺는 은혜의 삶을 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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