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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7:15-27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4|조회수1 목록 댓글 0

어느 목사님이 산상수훈의 결론은 ‘열매’와 ‘행함’이라고 쓴 글을 읽었습니다. 마태복음 5장에서 7장까지 ‘열매를 맺는다’는 표현은 7번, ‘행하다’라는 표현은 5번 나온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꽃을 보고 우리를 평가하지 않고 열매로 평가하신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 좋은 열매를 맺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 나쁜 열매와 좋은 열매

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거짓 선지자들은 양의 옷을 입고 나오지만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가 들어 있다고 주님이 말씀합니다. 이단이나 사이비가 겉으로는 더 경건한 체하며 마치 자신이 그리스도가 되는 것처럼 가장합니다. 그런데 이단에 한 번 빠져들면 노략질 당하게 됩니다. 거짓선지자는 자기의 유익을 위해 지어낸 말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양들을 사랑하고 양들을 생명으로 인도하기 보다는 자기의 욕망을 채우고 자신의 이득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조선총독부 제 3대 총독 사이토 마코토가 1919년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 폭탄을 던져 죽이려 했던 사람이 강우규라는 당시 65세의 노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총독은 죽음을 면했고 얼마 후에 강우규열사는 친일 경찰 김태석에게 체포되었습니다. 그때 강우규열사는 “네 이놈 너는 민족도 조국도 없느냐!”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이렇게 조국의 독립보다 자신의 사사로운 이익을 앞세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해방이 된 이후에도 친일파인 김태석은 승승장구하여 용산경찰서장을 하다가 반민특위에 의해 1949년 체포되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강우규열사를 체포한 사실을 극구부인하면서 “그런 훌륭한 양반을 내가 어찌 취조했겠습니까?”라고 해서 실소와 분노를 자아냈다고 합니다. 이렇게 자기의 사욕을 위해 나쁜 열매를 맺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기 이득을 위해 수시로 변하며 이런 사람은 겉과 속이 다릅니다.

 

 

16.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딸 수 없습니다. 또한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지 못합니다. 가시나무와 엉겅퀴는 하나님을 떠나 이스라엘의 상태를 비유합니다. 사사기에 보면 요담의 우화가 나옵니다. 나무의 왕들을 뽑으려고 하는데, 열매가 있는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감람나무는 주인을 기쁘게 하는 열매를 맺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에 왕이 되는 것을 거절합니다. 그러나 열매가 없는 가시나무는 자기가 왕노릇하려고 합니다. 좋은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다고 하십니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는 그 사람의 행실을 보고 알 수 있습니다. 농부가 밭에 알곡을 심어놓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면 심지도 않은 가라지도 자랍니다. 겉으로 보았을 때는 비슷해서 잘 구분이 안됩니다. 나중에 추수 때에 알곡은 모아서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모아서 태우게 됩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진다(마7:19)고 하십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맺는 아름다운 열매는 천국의 창고에 쌓이게 됩니다. 그러나 농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나쁜 열매만을 맺은 사람은 지옥에서 불심판을 받아 영원한 저주 가운데 떨어지게 됩니다.

 

 

20.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그 열매로 나무를 알게 됩니다.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 열매가 감람나무에서 감람열매가 맺힐 때 농부는 기뻐합니다. 포도나무에서 먹음직스러운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달릴 때 산딸기나무에서 빨간 딸기가 많이 열릴 때에 농부는 기뻐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 속에서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얼마나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위해, 주님의 뜻을 따라 헌신하고 있습니까? 지금 나의 삶은 주님을 위하는 삶입니까? 아니면 나만을 위한 삶입니까? 우리의 삶이 얼마나 예수님의 요구에 부합하고 있습니까? 예배드리는 것, 기도하는 것, 전도하는 것, 봉사하는 것, 이웃을 사랑하는 것, 자신이 맡은 일에 충성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 등 주님을 위한 열매가 풍성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중심의 삶, 오직 예수의 삶이 되도록 훈련 되어야 합니다.

 

 

좋은 열매는 헌신과 희생의 결과로 맺어집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며 넓고 편한 길로만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좋은 열매를 기대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자신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주님께서 보실 때는 나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2. 내 뜻대로 행하는 자 주님 뜻대로 행하는 자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주님을 입술로 부르는 것과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천국은 자기의 뜻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을 따라 사는 사람들에게 열려집니다. 성도는 자기를 앞세우는 사람이 아닙니다. 항상 주님을 앞세우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이익이나 영광보다 주님의 영광을 먼저 생각합니다. 육신의 이익보다 영적인 축복을 우선합니다. 아버지의 뜻이 중요합니다. 아무리 열심히 봉사하고 기도해도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신앙은 내 뜻대로 사는 것을 포기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살기를 훈련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국 입대 훈련소입니다.

 

 

이스라엘의 사울왕이 그런 사람입니다. 분명히 사울왕은 아주 좋은 양과 소를 잡아서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겉으로 볼 때는 정말, 대단한 역사였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왕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 얼마나 성대하게 드렸겠습니까? 많은 군인들과 백성들이 우러러보는 가운데 화려하게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울왕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고 자기의 뜻대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자기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을 화나게 했습니다. 왜 입니까?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자기 마음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들려지는 아버지의 뜻은 전리품을 다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는 명목으로 좋은 것들을 살려 두었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봉사하고 충성해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의 생각이 앞서면 사울왕처럼 버림받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생각이나 경험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종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진심어린 순종이란 하나님이 명하신 것에 조건을 달지 않고 지체 없이 무엇이든 행하는 것입니다.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즉각적인 순종은 평생 성경에 대해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깨닫게 해 줍니다. 몰라서 문제가 아닙니다.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체질화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늘 말씀을 암송하고 묵상해야 합니다.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주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에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줄 확신하고 갔는데, 주님께서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는 판정을 하신다면 얼마나 황당하고 기가 막힐 일이겠습니까? 이런 사람은 자기가 주님을 위해 많은 것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공로로 당연히 구원받을 것을 확신한 것입니다. 그러나 천국은 자기의 공로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한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주님의 영광보다는 자기의 영광을 앞세우고 자기의 이름을 내기 위해서 열심을 냈던 사람들에게는 ‘나는 너를 모른다.’라고 하는 냉엄한 주님의 판결을 받게 됩니다. 똑같이 열심히 충성을 해도 한 사람은 자기의 영광을 추구했고 한 사람은 겸손히 주님의 영광을 드러낸 것이 차이입니다.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교회를 다녀도 아직도 자기의 욕심, 자기의 의지가 주님의 뜻보다 더 우선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주님의 뜻을 물어야 합니다. 내 생각을 내려놓고 주님의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문제가 되고, 삶속에서 문제가 되는 대부분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의 뜻대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안 죽어서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페르시아의 고대 시인 바르타는 이런 내용의 시를 썼습니다.

“수십 년 된 느티나무 한 그루가 목수에 의해 잘려나가 쓰러져 있다. 그런데 여전히 그 가지들은 푸른빛을 띠며 싱싱하다.”

이 나무는 밑이 잘려졌기 때문에 얼마 안 있으면 말라지게 됩니다. 그런데도 말라져 죽을 줄 모르고 그 푸름을 자랑한다면 얼마나 어리석겠습니까? 하나님 떠난 인간의 모습이 이렇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부귀영화를 자랑하고 한껏 뽐내며 산다고 할지라도, 얼마 후에 말라지고 시들어질 인생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적으로 중병에 걸려 있거나 죽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오실 날이 가까웠다고 선포해야 합니다. 천국이 가까웠다고 회개하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옛날 어떤 사람이 자기의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여름철 휴가를 즐기기 위해서 스위스를 방문했습니다. 그 사람은 사랑하는 딸과 함께 어느 알프스 산봉우리를 오르게 되었습니다. 거의 다 올라갔을 때 딸이 그만 실족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 그 아버지가 얼마나 충격을 받았겠습니까? 고통 속에서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 사람은 돈을 많이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돈이 그에게 아무런 위로를 주지 못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도 지위가 대단히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높은 지위도 그에게는 아무런 힘과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그가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고 있을 때에 그에게 참된 위로가 되고 그에게 새 힘을 공급해 주신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었습니다. 지위와 돈으로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사랑이 무엇인지 깊이 깨달았습니다. 그는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고맙고 놀라워서 사랑하는 딸이 떨어진 그곳에 하얀 대리석으로 십자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라고 하는 글귀를 적었습니다.

 

 

3. 모래 위에 지은 집 반석 위에 지은 집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다고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반석은 넓고 펀펀하게 된 큰 돌로 ‘안전하고 견고함’을 뜻합니다. 즉 말씀대로 행하는 삶이 가장 안전하고 견고한 삶입니다. 팔레스타인에는 산악지역이 많아서인지 성경에는 반석(바위)에 관한 내용이 많이 나오는데, 대개는 힘, 확고부동, 안전한 장소를 상징하는 말로 쓰였습니다. 그래서 반석은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상징하는 용어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신 32:4; 삼상 2:2; 삼하 22:32; 시 18:2; 28:1; 61:2; 71:3; 합 1:12).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사람은 반석이 되시는 하나님의 터 위에 집을 짓는 사람과 같다는 것입니다.

 

 

스웨덴의 2선 국회의원 사무실에 직원이 없는 것을 보았습니다. 70세가 넘은 국회의원이 소박한 사무실에 손님을 맞고 자신이 커피를 타서 대접했습니다. 참으로 겸손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러한 자세로 국민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는 삶이 열매 맺는 삶입니다. 남들보다 높아지고 더 좋은 것을 누리고 그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사람은 쭉정이라고 보면 됩니다. 참으로 실력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겸손히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은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무너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들이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듣고 잊어버리라고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실천할 때에 축복의 열매가 맺어집니다.

 

 

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어떤 사람은 반석위에 집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모래 위에 지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다 같은 집이고 별로 불편함을 모릅니다. 그러나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 때에 구별이 됩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지 않지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무너지고 맙니다. 여기서 반석은 예수님이시고 모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집이 예수님 중심이 될 때에 영생의 복이 됩니다. 하늘에서 면류관을 받게 되고 무너지지 않는 영원한 집을 주님께서 예비하십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집이 자기중심이 될 때에 허무하게 사라져 갑니다. 말씀을 듣고 행치 않는 사람들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세상 뉴스나 세상의 말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아 실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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