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는 네 가지 필요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육체적인 필요라고 합니다. 배가 고프면 먹어야 하고 졸리면 자야 되고 몸이 아프면 치료하는 일입니다. 두 번째는 정서적인 필요라고 합니다. 건강한 사람들이 자살하는 경우는 정서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마음의 문제는 육체적인 건강과 상관없이 찾아옵니다. 세 번째는 사회적 필요라고 합니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같이 만나고 공동체를 형성하며 부대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이 세 번째 필요까지 충족이 잘 되었어도 마지막 영적인 필요가 충족되지 않으면 안됩니다. 사람에게는 하나님을 만날 때에만이 채워지는 빈공간이 있습니다. 이것은 돈이나 명예, 세상적인 쾌락으로도 채워지지 않습니다. 이 영적인 필요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드릴 때에 채워집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사람들이 육체적인 필요에만 집중하고 그것이 충족되면 행복할 것이라고 하는 데 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 잠깐 있다가 썩어져서 없어질 것에 집착해서 중요한 다른 욕구들을 소홀히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육체가 잘 되기 위해 얼마나 애를 쓰고 있는지 모릅니다. 텔레비전에 보면 몸에 좋은 음식, 몸에 좋은 약, 살 빼는 운동기구 등 몸에 좋다는 것을 선전 하느라고 난리입니다. 육신의 건강을 위해 운동도 하고 좋은 음식도 해서 먹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는 것은 육체의 건강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육체의 건강은 영혼이 잘 되는데서 부터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되기 위해서도 돈도 쓰고 시간도 내야 합니다. 육체가 잘 되는 데는 많은 투자를 하면서도 영혼이 잘 되는 데는 힘쓰지 않는 것이 이 시대 사람들의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명문 여자대학에 돈과 권력에 의지해서 부정하게 딸을 집어넣어서 육신적으로는 화려하게 되었는데, 정작 그 딸과 자신의 마음은 병들어 있고 정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영적으로 보면 사탄의 하수인 노릇을 한 것입니다. 육신의 욕구만을 위한 어리석은 삶을 사는 불쌍한 인생들이 이 세상에 너무 많습니다. 육체도 잘 되어야하지만 먼저 영혼이 잘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육체, 평안한 삶은 영혼의 건강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의 마음, 우리의 생각이 영혼의 지배를 받습니다. 내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의 지배를 받느냐, 아니면 어둠의 영의 지배를 받느냐가 내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결정하게 됩니다.
우리는 육신을 위해 최소한 밥 먹는데 하루에 1시간 정도 투자합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 되는데도 하루에 1시간은 투자해야 합니다. 세상을 찾아다니면서 자신의 허전한 마음을 채우려고 해도 온전히 채울 수 없습니다. 술을 의지할 때는 기분이 좋은 것 같으나 깨고 나면 더 허무해집니다. 그리고 점집을 찾아가서 어떤 문제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기를 기대하나 실제로는 점을 치는 사람도 귀신에 붙들려서 힘들어합니다. 며칠 전, 아내가 경주새중앙교회 근방에서 예수전도단 훈련을 전도 나갔다가 철학관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철학관에 있는 분과 한참을 이야기 하는데, 그분이 하는 말이 자기 가족들은 다 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답니다. 이것은 자신은 비정상적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는 말이 자신은 정신병자라고 했답니다. 그러면 정신병자를 찾아가서 묻는 사람도 정신병자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해답, 인생의 설명서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기쁨, 열정, 행복, 사랑, 감사가 생깁니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
하나님 앞에 나올 때에 마음도 기쁘고 영도 즐거워집니다. 마음과 영이 행복해질 때에 우리의 육신도 안전하게 살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렇게 열심히 위하는 육신만 잘된다고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은 눈에 보이는 육신이 다가 아니라 영혼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모든 것이 기쁨과 안전함으로 충만해 있음을 묘사하기위해 마음이 기쁘고 영도 즐거워하며 육체도 안전히 살리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혼육이 잘되는 전인적인 건강이 있어야 합니다.
2. 내가 여호와께 아뢰되 주는 나의 주님이시오니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나의 주님’은 히브리어로 '아도나이'이며 이는 '주인'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은 나는 주인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다윗이 이러한 고백을 하게 된 데는 특별히 배경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다윗은 그 주위의 우상을 섬기는 자로부터 여호와 이외에 다른 신을 섬기라는 유혹의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이 우상을 섬기는 자는 여호와를 모르는 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분명 여호와를 알면서도 다른 신을 섬기는 혼합주의자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러한 유혹을 뿌리치고 그의 견고한 신앙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난 주 오후 예배 나눔 시간에 나온 이야기입니다. 어떤 교회 안수집사님과 권사님이 고3 아들이 있었는데, 대학진학 문제 때문에 점집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점쟁이가 아들을 좋은 대학 가게 하려면 교회에 나가지 말아야 한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그분들은 1년 동안 교회를 안 나가기로 했답니다. 우상의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허약한 성도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담대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주 밖에는 나의 복이 없다 하였나이다” 육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정말로 중요한 영적인 필요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우선순위가 바뀌어서는 안됩니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합니다. 그러면 이 모든 것이 채워지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요삼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영혼이 잘 된 수준만큼 범사(환경의 축복)가 잘 되고 강건(건강의 축복)하게 됩니다. 범사는 환경의 축복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어떤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게 됩니다. 고난이 변하여 축복이 되게 합니다. 요셉이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감으로 보디발의 집이 번성하였고, 감옥에서도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애굽의 총리가 되는 길이 열렸습니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있을 때에, 7년 대흉년을 잘 극복하게 되었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이렇게 범사가 잘 되고 당연히 강건해지는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네 영혼이 잘 됨같이는 복된 상태가 계속되는 것입니다. 잠깐만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혼이 잘 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교회가 되고 우리 성도님들이 되어야 합니다. 육체만을 위해서 사는 사람은 바보입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좋아도 운전수가 없으면 앙꼬 없는 찐빵입니다. 우리의 겉 사람을 아무리 잘 꾸며도 속사람이 온전하지 못하면 그 인생은 황폐하게 됩니다.
11.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생명의 길'이란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길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이 땅에서 불과 몇 십 년을 살다가 죽는 짧은 생명을 가리켜 '생명의 길'이라고 표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궁극적인구원, 곧 부활을 내다보았습니다. 또한 ‘영원한 즐거움’은 세상에서 잠시 잠깐 맛보는 그런 즐거움과는 전혀 다릅니다. 천사들의 나팔소리 울려 퍼지며 부활하게 될 때에 얻을 즐거움을 말합니다.
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땅에있는 성도'란 하나님과 언약 관계에 있는 자, 또는 하나님께 충성하는 자를 의미합니다(Kidner, Kraus). 그리고 여기서 '존귀한 자'란 이 세상의 권세나 영화를 누리는 자가 아니라 신령한 세계에서 영광과 존귀를 차지하는 자를 말합니다(Delitzsch).
지난 금요일 밤에 돌아가신 정상조성도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계속 두 손을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두 손을 들고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들의 모습을 보셨을 것입니다. 입관예배 드리러 갔을 때에 동생분이 하는 말씀이 형님 시신이 부들부들하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을 높이는 사람은 존귀한 자가 되어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것이 생명의 길이며 영원한 즐거움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여호와께서 자신의 모든 것이 되신다는 다윗의 신앙 고백입니다. 다윗을 잘 되게 하고 존귀하게 만들어 주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믿고 그 말씀에 의지하여 살았습니다. 그것이 다윗이 위대하게 되는 비결이었습니다.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라는 말씀은 주어진 기업과 잔을 다른 사람들이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지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득과 재산을 지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것, 영혼이 잘 되게 하는 것이 형통하게 되는 길입니다. 내 재산을 지키시는 분, 내 건강을 지키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내과 전문의 샘병원 원장이신 박상은의사가 써 놓은 글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우리 한 사람을 구성하는 세포가 무려 60조개나 된다고 합니다. 그 많은 세포가 색깔도 다르고 모양도 다르다고 합니다. 우리가 암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살기 위해서는 우리 몸안에 있는 세포가 얼마나 소중한 줄 알아야 한다고 합니다. 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 있는데, 『사랑받는 세포는 암을 이긴다』라고 합니다. 우리 몸의 세포가 자기가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면 목숨을 걸고 암세포와 싸운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포의 기본이 되는 유전자가 말씀으로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컴퓨터는 아무리 복잡해도 0과 1의 숫자가 조합을 이루는 이진법의 원리를 통해 정보를 만든다고 합니다. 그처럼 우리 인간의 유전자도 A, T, G, C라고 하는 네 가지 글자를 통해 형성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 네 글자는 아데닌(A), 티민(T), 구아닌(G), 사이토신(C)으로, 수많은 유전자 정보도 이 네 가지 글자의 집합체라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창조의 근원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몸과 영혼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 받을 때 우리 몸을 구성하는 유전자들이 즐거워하며 행복하게 됩니다. 우리 몸의 세포들이 정상적인 활동을 하게 됩니다.
6.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아름다운 곳'이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땅 자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모신 그의 삶이 행복한 것이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시기 때문에 그의 기업이 실로 아름다운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모시고 살아가야 영혼이 건강하고 삶이 형통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사는 것이 행복의 비결입니다. 육체적인 성공, 즉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직위를 얻고 하는 것으로는 육체인 필요만 채웁니다. 그것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배드리고, 찬양과 기도를 통해서 은혜를 받으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되며 강건해지는 전인적인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우리의 영을 통해서 느끼게 되면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어 가게 됩니다. 진정한 기쁨과 행복은 육체적인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하나님의 은혜를 충만하게 받을 때에 얻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항상 소유하고 다니는 것이 스마트폰입니다. 어디를 가든지 무엇을 하든지 스마트폰을 열렬히 사랑하고 충성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스마트폰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나 세상의 정보와 소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밧데리가 다 되면 세상과의 연결이 끊어집니다. 그러면 즉시 밧데리를 갈아주던지 충전을 시켜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스마트폰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께 더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과 소통이 잘 되고 있는지 혹시 우리 안에서 있는 성령의 밧데리가 소진되지 않았는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혹시 성령의 밧데리가 소진되었다면 기도와 말씀묵상, 찬양과 예배를 통해서 다시 충전시켜야 합니다. 우리 안에 성령의 충만함이 임하여 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해지는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나의 오른쪽에 계시므로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라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 가운데 항상 임재하여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주목해야할 중요한 것은 '항상'이란 표현입니다. 이 말은 다윗이 고난 가운데 있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즉, 그는 평안할 때뿐 아니라 고난 받을 때에도 하나님에 대해 변치 않는 신앙을 유지할 것이라는 신앙 고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Rawlinson, Calvin).
이러한 다윗의 고백이 오늘 우리 성도님들의 신앙고백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항상 내 앞에 계신다는 확신, 그분이 나의 오른쪽에서 나를 보호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세상의 풍파나 시험, 유혹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은혜로 충만하게 될 때에,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의 유전자, 우리의 영혼이 충만하게 채워질 때에 항상 기뻐하는 인생, 범사에 감사하는 성도가 될 것입니다.
9. 이러므로 나의 마음이 기쁘고 나의 영도 즐거워하며 내 육체도 안전히 살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