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 선지자가 활동하던 이스라엘 사회의 문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제단은 무너지고 오히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것이 득세했습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모르고 이방신을 더 숭배했다는 것입니다.
1. 거룩한 제단이 무너져 있었습니다.
30. ○엘리야가 모든 백성을 향하여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라 백성이 다 그에게 가까이 가매 그가 무너진 여호와의 제단을 수축하되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 올라가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할 때에 먼저 한 일이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다시 쌓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무너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살기에 바빠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도 잊어버렸습니다. 아니면 땅에서 잘되게 해 준다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느라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은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오직했으면 엘리야선지자가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선지자는 나만 홀로 남았으나 바알의 선지자는 사백오십 명이로다(왕상18:22)” 외쳤겠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의 문제는 하나님과 소통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제단에 나와서 예배드리지도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가치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탐욕적이고 세속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이미 마귀의 가치가 점령하고 있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고 탐욕적인 마음들이 가득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엘리야선지자는 갈멜산에 올랐고 바알선지자들과의 영적 결투를 신청하고 아합왕을 비롯한 백성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보기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보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것이 훨씬 매력적인 것으로 보였습니다. 당시 혼합주의 신앙에 빠져 있던 수많은 백성들이 이 멋진 대결을 보기 위해 구름떼처럼 갈멜산 경기장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은근히 자신들의 세속적인 가치관을 지지하는 바알선지자들이 이기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엘리야선지자는 백성들이 보는 현장에서 이스라엘 12지파의 수효를 따라 돌 열두 개를 취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제단을 쌓았습니다.
오늘 이 시간,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속에 혹시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제단이 무너졌는지, 아니면 혼합주의에 빠졌는지, 우리의 속사람을 점검하시는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분명히 이스라엘 백성들의 머릿속에는 하나님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 가치는 바알과 아세라의 것을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의 유행을 따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무엇이 점령하고 있습니까? 맘몬과 성공이라고 하는 세상의 가치입니까? 영원하신 하나님의 말씀,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가치입니까? 우리의 마음의 제단이 허물어져 있다면 이 시간 다시 세우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두 가지 법칙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는 중력법칙으로 자기중심으로 끌어 모으는 것이라고 합니다. 돈도 모으고 명예도 모아서 자꾸 올라가고 그 지위를 이용해서 사람들을 좌지우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윗선하고 연결되면 최씨 아줌마처럼 행동을 합니다. 그런데 세상은 다 가진다고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두 번째는 은혜의 법칙인데 많이 가지고 높아지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누어 주고 낮아지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의 법칙의 주인공은 예수님이십니다. 세상은 나누어 줄 때 바뀌는 것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손해 보고 낮아지면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십니다. 우리의 삶이 손해 보고 예수님을 중심으로 살아갈 때에 중력의 법칙을 이길 수 있습니다<김영길총장>. 그러나 은혜의 법칙을 따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거룩한 불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을 붙들고 간절하게 기도해서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이 시대가 문제가 많은 것은 우리의 삶이 세속의 가치의 영향을 받아 중력의 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세속적인 가치를 뒤집었습니다.
32. 그가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그 돌로 제단을 쌓고 제단을 돌아가며 곡식 종자 두 세아를 둘 만한 도랑을 만들고
엘리야와 바알 선지자 450명이 대결하는 경기 규칙은 제단에 놓인 제물에 하늘에서 불이 내리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단에 쌓아 둔 나무 위에 송아지를 올려놓고 그것을 태우게 하는데 사람이 불을 붙이면 안되었습니다. 누가 먼저 할 것인가 순서를 정할 때에도 다수결로 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혼자이니 나중에 하기로 하고 숫자가 많은 바알 선지자들이 먼저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숫자 많으면 힘이 있습니다. 본래 주인공은 나중에 나타납니다. 먼저 하게 된 바알선지자들은 아침부터 주문을 외우고 주술을 베풀었는데 점심때가 되도록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러자 엘리야 선지자가 그들을 조롱하며 말했습니다.
“바알은 신이니까, 더 크게 불러보아라. 깊은 사색에 빠져 계신지도 모르지. 외출 중인지 아니면 여행 중인지 혹은 잠이 드셨는지도 모르니 어서 깨워보아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큰 소리로 부르고 그들의 규례를 따라 피가 흐르기까지 칼과 창으로 그들의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미친 듯이 떠들어도 아무런 기척이 없었습니다. 그렇게 저녁때까지 이르렀으나 불은 내려오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다른 때 같으면 신비한 일들이 일어나고 희한한 기적들이 나타났는데, 그 날에는 그들이 믿는 신들이 아무런 반응이 없었습니다. 간절히 기도할 때 어둠의 세력이 결박되고 쫓겨 갑니다.
33. 또 나무를 벌이고 송아지의 각을 떠서 나무 위에 놓고 이르되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부으라 하고
송아지를 제물로 준비해서 제단위에 나무를 벌려놓고 그 위에 각을 떠나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통 넷에 물을 채워다가 번제물과 나무 위에 붓게 하였습니다. 이상하지 않습니까? 불이 붙게 하려면 잘 말려야 합니다. 그런데 엘리야의 방법은 거기다가 물을 붓게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방법은 우리 생각과 다를 때가 있습니다. 당시 대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바알과 아세라의 가치, 즉 세속적인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 가치는 제물에 물을 부으면 안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엘리야 선지자는 그 세상의 법칙을 뒤집었습니다.
약 30년 전에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를 합격 했던 어떤 분의 이야기입니다. 클라리넷을 하는 아가씨와 선을 보고 그 집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음악을 하는 집안이라서 분위가 좋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그 집은 이층 양옥집에 넓은 마당이 있는 대저택이었습니다. 집안에는 고급가구들과 넓은 소파가 놓여 있었고 골프채와 가방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집에서 굉장히 삭막함을 느꼈다고 합니다. 화려한 사치품들은 많았는데, 집안에 책 한권 보이지 않더랍니다. 그 집의 겉은 잘 꾸며져 있었는데, 가족들의 마음은 풍성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답니다. 요즘 말로하면 겉은 금수저인데 그 마음은 흙수저였습니다. 겉은 화려한데, 그 마음은 삭막했던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가치는 바벨탑의 가치라고 생각됩니다.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고 경쟁하고 더 높이 올라가려고 합니다. 그것이 성공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때로는 불법을 저지르기도 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부정과 부패, 다툼과 분열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갈수록 세상이 혼탁해지면서 사랑이 식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낮아지라고 하십니다.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고 하십니다. 그것이 행복이고 성공이라고 합니다. 불을 붙여야 하는 제단에 물을 부으라고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인간생각에는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고 손해 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34. 또 이르되 다시 그리하라 하여 다시 그리하니 또 이르되 세 번째로 그리하라 하여 세 번째로 그리하니
엘리야 선지자는 제단 주변에 판 도랑에 물이 가득차서 넘치도록 세 번씩이나 물을 길어다가 붓게 하였습니다. 제단 주변에 판 도랑에 물이 철철 넘쳐흘러서 주변을 적셨습니다. 그곳에 놓여진 제물과 나무들이 축축하게 젖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불을 피워 붙이려고 해도 어렵게 된 것입니다. 사람의 상식이나 능력으로는 불을 붙이기가 힘들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주님의 역사는 역설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의 능력은 물이 부어지는 곳, 손해보고 낮아진 곳에서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3. 거룩한 불이 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인간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저녁 소제 드릴 때에 엘리야 선지자가 새롭게 수축한 하나님의 제단에 나아가서 기도하였습니다. 수많은 백성들이 엘리야가 불을 내리게 할 수 있는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참으로 중요하고 긴장된 순간이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중에서 하나님이신 것과 내가 주의 종인 것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오늘 알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가 세 가지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이 주의 종인 것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고 셋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 모든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을 알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안 믿었으면 엘리야 선지자가 이렇게 기도했겠습니까! 하나님을 믿기 싫어하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37.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야 선지자는 간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가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간절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알 때 백성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자 하나님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람의 능력과 생각을 초월한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백성들 앞에 나타내신 것입니다.
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하니
그 놀라운 광경을 본 백성들이 땅에 엎드렸습니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라고 외쳤습니다.
갈멜산 경기의 승자가 엘리야가 된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을 혼란하게 하는 마귀의 가치인 맘몬의 유혹에 넘어가면 안되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은 너무 오염되어 있고, 혼합주의에 물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치,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합니다. 많이 가져야 하고, 높은 자리에 올라야 행복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행복은 기도하고 복음을 전파할 때,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릴 때, 자신을 것을 내려놓고 낮아질 때, 가진 것을 나누어 줄 때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가치로 교회와 세상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의 가치, 십자가의 가치로 보시는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에 아골 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고 싶어지고, 편하고 안락한 곳만이 아니라 낮고 천한 곳에도 주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에베소서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오늘 우리 시대의 문제는 수많은 사람들이 술을 의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하루에 약 600만명이 맥주와 소주를 1800만병 소비하고 1년에 70억병을 소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은 술이 아니라 거룩하신 주의 성령으로 충만함을 얻어야 합니다.
성령충만함을 받기 위해서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참으로 지금은 우리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할 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의 마음에 거룩한 제단이 세워져야 합니다. 먼저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충만함을 받아 새로워져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마귀적이고 세속적인 가치관에서 벗어나 거룩한 하나님의 가치, 진리의 말씀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거짓된 속임수인 세상의 가치, 소유로 만족하려고 하는 탐욕적이고 마귀적인 생각에서 벗어나서 참으로 주님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가장 낮은 곳으로 오셔서 세상의 문제와 죄악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의 가치를 마음에 품어야 합니다. 그 고귀한 사랑의 마음과 삶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것이 이 세상을 거룩하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비결입니다. 이것은 저 멀리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우리 자신부터, 우리의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거룩한 제단을 수축하고 간절하게 기도하심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주님의 모습을 본받아야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야 합니다.
사도행전2:3-4절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 그들이 다 성령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