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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사야42:1-9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4|조회수2 목록 댓글 0

요즘 인기리에 방영되는 드라마 ‘닥터스’의 여 주인공 박신혜가 아프리카 가나에 이어 필리핀 마닐라에 신혜센터를 건립해서 어린이를 돕는 사역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 홍보대사로 활동 중인 박신혜는 2011년 아프리카 가나에서 결연아동 아반네를 처음 만나 이후에 빈곤국가 아이들의 교육적, 정서적 지원을 위한 별빛천사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2013년 12월 가나에 ‘신혜센터’를 1호를 완공했습니다. 1000여명의 가나 지역 아동이 도서관과 놀이터, 기초프로그램 운영 등으로 수혜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필리핀 마닐라에 2호 신혜센터가 건립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또한 박신혜는 기아대책이 운영하는 지역아동센터 행복한홈스쿨을 통해 국내 아동들의 방과후 학습을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렇게 인기 있는 탈렌트가 자신을 낮추고 겸손히 섬김의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길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주님은 성도들이 삶속에서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낮은 곳에서 작은 일부터 시작됩니다.

 

 

1. 세상에 정의를 베풀 것입니다.

1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하나님께서 붙드는 종,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 하나님이 택한 사람을 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택한 사람을 보고 배워야 합니다. 여기에서 나오는 종은 당시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에서 해방시킬 페르시아왕 고레스입니다. 하나님께서 고레스를 통해서 바벨론 땅에서 고통 받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여 내실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나 고레스는 그리스도의 예표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붙드는 종,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 하나님의 택한 사람은 예수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실 때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가 그를 기뻐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3:17). 예수님을 세상에 정의를 베풀 왕으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이스라엘에 왔을 때 어떤 유대인이 물었습니다. "대왕께서는 우리가 가진 금과 은이 갖고 싶지 않으신지요?"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이 "나는 금과 같은 보화는 많이 가지고 있소, 그런 것은 조금도 탐나지 않소. 다만 당신들의 전통과 정의가 어떤 것인지 알고 싶을 뿐이오."라고 말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그곳에 머물고 있는 동안에 두 명의 사나이가 어떤 일을 상담하기 위하여 랍비를 찾아갔습니다. 내용인즉 사람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넝마더미를 샀는데, 그 넝마 속에서 많은 금화가 발견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넝마를 판 사람에게, "나는 넝마를 산 것이지 금화까지 산 것은 아니요. 그러니 이 금화는 마땅히 당신 것이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넝마를 판 사람은 그것을 산 사람에게 "나는 당신에게 넝마더미 전부를 판 것이니, 그 속에 들어 있는 것도 모두 당신 것이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랍비는 한참을 생각하고 나서 판정을 내렸습니다.

"당신들에게는 각기 딸과 아들이 있으니, 그 두 사람을 서로 결혼시킨 후, 그 금화를 그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옳은 사리일 것이오." 우리 같으면 ‘어떻게 처리하셨을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는 랍비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대왕님, 당신의 나라에서는 이런 경우 어떤 판결을 내리십니까?"

그러자 알렉산더 대왕은 아주 간단하게 답하였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두 사람을 함께 죽이고 금화는 내가 갖소. 이것이 내가 알고 있는 정의요."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세상에서의 정의는 힘입니다. 힘 있는 사람이 약한 자들을 착취하는 것이 법이요 정의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정의는 사랑이요 섬김입니다. 참으로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이 정의가 되는 그런 세상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먼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서부터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부터 십자가가 정의가 되는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세상에 정의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놀라운 말씀입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만 선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기들만 구원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면 이방 사람, 세상 사람들에게도 정의를 베풀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유대인들만이 아니라 이방 사람들에게도 구원의 길을 열어주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로 심판 받아야하는 이방인들에게 죄사함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지은 죄값을 대신 치르시고 이 땅에 정의가 실현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여기서 정의는 히브리어로 ‘미쉐파트’로 ‘다스리다’, ‘통치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가 미치게 하여 선한 사회가 되게 할 것을 말씀합니다. 정의로운 세상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믿을 때에 이루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을 본받아 서로 사랑하며 섬기고 살아갈 때에 가능합니다.

 

 

2. 연약한 자의 소망이 되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여기 '갈대'는 늪이나 습기가 많은 지대에서 서식하는 연약한 줄기 따위를 의미하는데, '상한 갈대'란 바람 때문에 그 연약한 줄기가 상처를 입지만 꺾이거나 뽑히지는 않는 갈대를 말합니다. 본문은 마치 상한 갈대와 같이 연약하고 결점 투성이인 인생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은혜로써 강하게 세워주시는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말합니다.

 

 

지난 7월 14일 <KBS 스페셜>에서는 '버려지는 아이들 베이비 박스, 60일의 기록'이라는 주제로 서울 관악구에 있는 주사랑공동체교회가 운영하는 베이비 박스의 60일 동안의 이야기를 담아냈습니다. 이 베이비 박스는 가로 70cm 높이 60cm 깊이 45cm의 작은 공간이었습니다. 이 작은 상자에 이틀에 한 번꼴로 아이들이 버려지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상자가 열리면 주사랑공동체교회 안에 종이 울리게 되어 있습니다. 그 종이 울리면 바로 뛰어나가서 버려진 아이를 데려온다고 합니다. 다행히 아이 엄마를 만나면 같이 데리고 들어오지만, 그렇지 못하면 쪽지 한 장과 함께 버려진 아이를 길러야 한다고 합니다. 주님은 낳자마자 버려진 아이들에게도 소망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십니다. 이 세상은 강하고 능력 있는 사람만 좋아합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은 소외당합니다. 회사에 들어가려고 하던지, 공무원이 되려고 해도 실력이 있어야 합니다. 실력 없는 사람, 아픈 사람들은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상하게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들보다 소외되고 약한 사람들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으니 낙심하지 말고 소망을 갖으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 영광은 잠깐이니 거기에 너무 억매이지 말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를 소망하며 용기를 갖으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을, 평범한 사람들을 불러서 위대한 사람들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습니다.

 

 

삿6: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났습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을 큰 용사라고 부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믿으면 용사가 됩니다. 어떤 시험이나 문제도 이기는 그리스도의 군사가 되는 것입니다.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수 있는 사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택하심이었습니다. 당시에 기드온보다 더 유능하고 힘센 장수도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소심하고 약한 기드온을 택했습니다.

기드온의 가문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가장 약했습니다. 또한 기드온은 자기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선발 기준이 세상과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은 제일 유능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우선해서 선발하는데, 하나님의 선발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삿6:16).”

세상에서의 승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인생의 승패도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니”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은 연약한 자의 소망이 되십니다.

 

 

3. 세상의 언약과 빛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에 전해오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한 맹인이 등불을 켜들고 밤길을 나섰습니다. 자신은 비록 불빛을 보지 못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도 자신이 들고 있는 등불의 빛을 보고 부딪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한참을 가는데 어떤 사람과 그만 "탁!" 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맹인은 화를 내었습니다. "당신은 눈도 없소? 나는 맹인이라 앞을 못보지만 당신은 내가 들고 있는 이 등불도 보지 못하시오?" 그러나 부딪친 사람이 맹인이 손에 등불을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말했습니다. "자네가 들고 있는 등불은 이미 꺼졌네."

등불을 들고는 있지만 이미 꺼진 줄 모르고 들고 다닌 것입니다. 꺼진 것을 모르고사니까 세상이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빛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6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하나님께서 불러 세운 하나님의 종은 백성들의 언약을 굳게 해 줄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약속, 즉 언약의 말씀을 믿고 확신하게 합니다. 그 말씀이 능력이며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언약의 말씀을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삶의 가치관으로 여기며 사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 믿음 있는 삶입니다. 그것이 이 땅에서 잘되고 형통하는 길입니다. 그 언약을 붙들고 살아갈 때에 성도들의 삶이 세상에서 빛을 발하게 됩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시119:105)”라고 말씀합니다.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칠흑 같이 어두운 밤에 길을 간다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무섭고 불편하겠습니까?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가는 밤길이라면 더 불안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길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왜 사는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그런데 그 인생의 길을 확실하게 알려주신 분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세상의 빛이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느 철도사업가가 임종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는 수많은 종업원을 거느린 거대한 철도왕국을 이룩했고, 수천만 달러의 돈을 번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죽음을 눈앞에 둔 이 사업가는 아들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아들아, 너는 지금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실패자의 손을 잡고 있구나!"

그러자 아들이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아버지, 아버지는 실패자가 아닙니다. 아버지는 위대한 철도왕국을 건설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을 고용하였으며, 수천만 달러를 벌어들이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에 말했습니다.

"결코 그렇지 않다. 그런 일을 하는 동안에 나는 예수님을 멀리 떠나 있었다. 예수님을 떠난 나는 이미 실패자임에 틀림없다."

(최형락 신부 엮음, "종교 교육 예화 2권")

 

 

예수님을 믿기 전과 후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이것은 유정란과 무정란의 차이와 같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 같은 계란이지만 그 속을 보면 생명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납니다. 이처럼, 사람들의 겉모습만 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렇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부활의 생명이 있어서 천국에 가게 됩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나중에 심판을 받아 지옥에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세상의 부귀나 명예, 쾌락이나 즐거움을 분토 같이 버리고 그리스도를 얻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대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본받아 살지 않고 소돔과 고모라 시대의 사람들처럼 세상에 부귀나 쾌락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에 도취되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있습니다. 영원한 지옥의 심판이 있다는 것을 농담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코 후회할 날이 올 것입니다. 이 세상의 영광이나 즐거움은 금방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심판날이 임하고 자신의 죄값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빌립보서3:7-8)”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고전4:13)”라고 했습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서 새롭게 된 이후에 바울의 인생은 오직 예수님을 위한 삶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세상의 모든 즐거움과 유익된 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만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위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인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길이 좁고 험한 길이라도 주님을 따라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힘들어도 어려워도 그 길이 천국으로 통하며,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길이 됩니다. 성도는 롯의 길, 소돔의 길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길, 가나안의 길을 가야 합니다.

 

 

미가6:8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게 행하는 것이 아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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