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레옹이 유럽의 모든 나라들을 정복하고 세계를 지배하려다 워털루 전쟁에 참패하고 헬레나 섬에서 유배생활을 하고 있을 때 한 기자가 찾아와서 물었다고 합니다.
“폐하! 일생을 돌아보실 때 가장 행복한 순간이 언제였습니까?”
그러자 나폴레옹은 조용히 눈을 감고 과거를 회상하다가 잠시 후 입을 열었습니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던 어느 날 철모를 벗고 교회에 가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눈물을 흘리며 예배를 드리던 때라고 대답했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드리는 이 예배는 우리의 마음과 정성이 담겨서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1. 자기 방식대로 드리는 예배
예배를 자기 생각과 형편에 따라 변질시켜서는 안 됩니다. 예배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요구하는 방식대로 드려야 합니다. 예배를 잘못 드려서 질책을 받거나 죽게 된 사람들이 성경에 나옵니다.
레위기 10장에 보면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을 담아 하나님 앞에 분향하다가 불이 나와서 타서 죽게 되었습니다. 분향은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향을 피우는 것입니다(민 16:35; 왕하 12:3). 그런데 이때 피는 향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만든 것을 사용해야 했습니다. 그것은 소합향과 나감향과 풍자향의 향품에 유향(乳香)을 섞어서 만들었습니다(출 30:34). 여기에 소금을 쳐서 성결하게 했으며, 곱게 찧어서 법궤 앞에 두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 만든 향은 지극히 거룩한 것이었으며 오직 하나님만을 위해 만들어야 했습니다. 사람이 그 냄새를 맡기 위해 향을 만드는 자가 있다면 백성들 중에서 끊쳐질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출 30:34-37). 아마도 나답과 아비후는 이 방법대로 만든 향을 피우지 않은 것 같습니다. 자기 편리한대로 다른 불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분향하다가 죽은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하지 않고 자기 좋은 대로 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에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내 형편이나 사정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실 하나님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다윗왕이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고 바알레유다(기럇여야림)에 있는 하나님의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드리고자 했습니다. 그날에 삼만 명의 군사들이 호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법궤를 새 수레에 싣고 그동안 법궤를 관리하고 있던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그의 두 아들 웃사와 아효가 수레를 몰았습니다. 그날에 여러 가지 악기를 가진 관현악단이 함께 하며 연주하였습니다. 참으로 장엄한 행렬이 법궤를 따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소들이 날 뛰어서 법궤가 떨어질 것 같으니까 웃사가 하나님의 법궤를 붙들었다가 죽었습니다. 분명히 웃사는 하나님의 법궤가 수레에서 떨어져 부서질까봐서 선한 마음으로 붙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진노하셔서 그를 쳐서 죽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웃사가 잘못한 것은 자기방식대로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제사장 외에는 만지면 안 되었습니다. 또한 반드시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옮겨야 했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다윗왕과 백성들이 자기들이 편리한 방식대로 새 수레에 실어 옮기다가 웃사가 죽게 된 것입니다(삼하6:1-9절). 다윗왕이 화려하고 웅장한 방법으로 법궤를 옮기려고 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군대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선임이 후임에게 초코파이를 한 박스 사 오게 했습니다. 후임은 PX(Post Exchange)에 가서 둘러보니 초코파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더 비싸고 맛이 좋은 몽셀통통이 있었습니다. 저도 어제 몽셀통통을 먹어봤는데, 맛이 좋았습니다. 후임은 선임을 생각하는 마음에 돈을 조금 더 주고 몽셀통통을 한 박스를 사서 선임에게 갔습니다.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그 후임은 그날에 선임이 보는데서 몽셀통통을 질리도록 먹었답니다. 왜냐하면 선임이 사 오라고 한 것은 초코파이었지 몽셀통통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군대에서 선임이 시킨 일도 그대로 해야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도 아무리 하나님을 생각해서 한다고 할지라도 내 마음대로 하면 안 됩니다. 중요한 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드려야 합니다. 즉 내 형편과 사정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인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을 위한 것입니다. 그분의 뜻에 따라 그분에게 영광을 돌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2. 잘못된 태도로 드리는 예배
창4: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마음의 태도가 옳지 못하면 그 예배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지 못합니다. 최초의 인간 아담의 큰아들 가인이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하나님께 드렸는데, 그의 제물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이 몹시 분하여 얼굴색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가 드리는 제사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해서 상당히 기분 나빠한 것입니다.
이렇게 가인의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자기를 위해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할 때에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내가 이렇게 정성으로 제사를 드리고 열심히 봉사했는데 왜 하나님은 내게 잘 해 주지 않느냐고 항변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대로 이루어주지 않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가인은 잘못된 마음으로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고 자기의 이익을 우선해서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막7:6절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우리는 말로만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입은 거룩한데 그 행실은 욕심이 가득하다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는 겉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와서 제사를 잘 드렸는데, 그들의 마음과 삶은 하나님에게서 떠나 있었습니다.
대전에 성심당이라는 빵집이 있는데, 이 점포는 철저하게 사랑으로 일하게 한다고 합니다. 진급, 호봉인상 등에 있어서 얼마나 사랑의 정신으로 일하느냐에 따라 평가한다고 합니다. 일 잘 하는 것보다 얼마나 사랑하며 사느냐에 더 비중을 둔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 사랑이 축복으로 연결되었다고 합니다. 사랑과 정성으로 빵을 만드니까, 맛도 좋아지고 좋은 소문이 났습니다. 그래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지역 브랜드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하나님도 진실한 사랑을 가지고 예배드리고 봉사하는 것을 중요하게 보십니다.
오늘 이 성전에서 드리는 예배가 하나님께 영광이 되시기 바랍니다. 자기중심, 자기영광이 아니라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그분에게 영광이 되는 예배가 되시기 바랍니다.
3. 손이 깨끗함으로 드리는 예배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하나님의 산에 오르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냐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려서 그 예배가 열납되는 복을 받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손이 깨끗해야 합니다. 손이 깨끗하다는 것은 행실이 바르다는 것입니다. 손은 인간의 의지를 수행하는 가장 중요한 기관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행위가 중요합니다. 어떤 행동을 보이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영광이 될 수도 있고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도 있습니다. 요즘에 얼마나 많은 교회나 성도들이 행실이 바르지 못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때가 많습니까? 욕심 때문에, 자기중심적이어서 덕이 되지 못하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우리의 행실이 온전하고 바르게 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옛날에는 교회에 다닌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된 삶을 산다는 보증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선하고 진실하다’라는 의식을 가졌습니다. 비록 자신들은 잘못 살아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거룩하고 경건한 생활을 해 줄 것을 기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그런 인식이 바뀌어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더 이기적이고 싸움 잘 하고 욕심도 많다’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이 드는데, 어떻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오죽하면 기독교가 아니라 개독교라는 말이 생겼겠습니까!
한국건축문화대상과 대한민국문화예술상을 수상한 우리나라의 대표건축가인 승효상씨에 대한 글이 국민일보에 실렸습니다. 이분은 자신을 “독실한 신자는 아니지만 확실한 신자”라고 소개했습니다. 어린 시절 그에게 교회는 놀이터였고, 대학 진학을 앞두고는 신학을 하려고도 했답니다. 그가 교회에 대해서 짤막하게 말한 내용이 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어떤 공동체보다 경건해야 합니다. 속되지 않아야 해요.”
참으로 그런 것 같습니다. 세상 사람은 욕심이 가득하여 탐욕에 빠져 가도, 세상 사람은 술 취하고 쾌락을 추구하며 죄악에 빠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성도는 경건해야 합니다. 세상의 문화, 세상의 욕망에 휩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의 문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예수님을 본받아 살기보다는 세상유행, 세상방법을 더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그 죄악 된 길,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탐욕의 길, 결국에는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된 길인데도 그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끌려가는 교회와 성도의 삶이 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예배를 통해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받고 새로워지지 못하게 때문입니다. 손이 깨끗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어야 합니다.
4. 마음이 청결함으로 드리는 예배
4.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다음으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예배를 드려서 그 예배가 열납되는 복을 받는 사람은마음이 청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마음에서 모든 행위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고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한 사람의 예배를 받으십니다. 마음이 청결한 사람을 좋아하십니다. 하나님은 마음이 청결하고 손이 깨끗한 사람, 헛된 욕심에 빠지지 않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그런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세상을 아름답게 합니다. 향기 나는 삶을 살아갑니다.
창4: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아벨이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첫 것으로 드렸다는 것은 먼저 하나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우선시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습니다. 그의 마음이 순수하고 청결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일 점심시간에 장미자전도사님이 방울토마토 한 개를 가져와서 제게 주었습니다. 구 사택 마당에 심겨진 방울토마토 한 개가 익어 있어서 따 먹으려고 하는데, 첫 열매이기 때문에 목사님 먼저 드리자고 가져 온 것입니다. 두 개 익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나님께서 한 개만 익게 해서 전도사님을 시험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먼저 드리려고 하는 자세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도 첫 것을 먼저 목회자에게 가져다주신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선해서 생각하는 아벨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요4:23절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여기서 영은 우리의 영을 말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영에 우리의 영이 반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네 마음과 영혼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은 예배가 진정으로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의미로 말씀하셨습니다. 바른말을 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진심으로 하는 말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이 없는 찬양은 찬양이 아닙니다. 그것은 가치 없는 것이고 하나님에 대한 모욕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의 말이 아니라 우리 마음의 태도를 보십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라고 말씀하셨습니다.(릭 웨렌-목적이 이끄는 삶)
어느 찬양 모임에서 한 자매가 기뻐하며 손뼉 치며 두 손을 높이 들고 찬양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사람마다 “저 자매는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기에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찬양을 드리는 것일까?”라고 생각하며 그 자매를 바라보았습니다.
얼마 후에 늦게 들어온 한 중년여자 성도가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더니 마친 그 자매 옆에 한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을 보고는 살짝 웃으며 공손하게 부탁을 했습니다. “저. 들어가게 조금만 비켜 주시겠습니까?” 그때 손을 들고 기쁜 모습으로 찬양을 하던 그 자매는 방해받는 것이 불쾌하다는 표정으로 짜증스럽게 “어휴”하고선 아주머니를 못 본채 하고선 계속 찬양만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주머니는 당황한 표정을 짓다가 다른 곳으로 자리를 찾아 갔습니다.
이 자매는 찬양할 때의 모습은 천사인데, 다른 사람에게 하는 행동은 악마의 모습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위선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마음이 없는 예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솔직함과 진정한 사랑을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완벽하게 예배드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정성이 없는 예배를 드려서는 안 됩니다.
예배를 드리는 목적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배는 우리 인간의 감정을 충족시키거나 도덕성을 계발하는 것도 아니며, 사귐이나 교육이 목적이 돼서도 안 됩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칼뱅은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이라고 했습니다.
시편24:5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