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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를 온전히 드립시다.(출애굽기8:20-32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4|조회수2 목록 댓글 0

‘예배(worship)’라는 용어는 앵글로색슨어인 worth-ship을 줄인 말입니다. 이 말은 ‘가치를 어떠한 대상에게 돌린다’는 뜻입니다. 예배는 ‘최상의 존재에게 표하는 경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즉 최상의 존재에게 존경, 경의, 찬양,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계4:11; 계5:12).

구약에서 예배의 의미는 ‘아바드(abad)’가 사용되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일한다(work), 노동한다(labor), 섬긴다(serve) 등의 뜻이 있습니다. 이 말은 ‘성전에서 봉사’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삼하15:8). 그리고 ‘샤하아’라는 단어인데, 이 말은 ‘굴복한다’ 또는 ‘자신을 엎드린다’는 뜻으로 숭배, 순종, 봉사의 종교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에서 예배의 의미로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된 낱말은 ‘프로스쿠네오(proskuneo)’입니다. 이 말의 뜻은 ‘손에 키스하다’, ‘무릎을 꿇다’, ‘허리를 굽힌다’는 뜻으로 예배자가 자신의 몸을 꿇어 엎드리는 외부적인 행위뿐만 아니라 겸손과 사랑과 존경을 드려야 하는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함을 가리킵니다(마18:26/ 마2:2,11/ 마14:33/ 요4:20-24). 그 다음은 ‘라트레이아’인데, 그 의미는 종으로서 상전만을 섬겨야 할 신분을 나타냅니다. 그래서 이 말은 흔히 service 또는 worship으로 번역이 됩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레이투르기아’인데, 이 말은 노동(ergon)과 백성(laos)이라는 단어의 합성어입니다. 즉 예배는 하나님을 위하여 인간들이 하는 노동 내지는 봉사라고 하는 의미를 가집니다.

 

 

오늘 우리 시대는 너무나 혼란하고 악해져 가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마음은 황폐화 되어가고 공동체는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뉴스에서는 부정적인 소식들을 쏟아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불안하게 합니다.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의 영성과 인격을 온전히 회복해 줄 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메마른 땅에 단비가 내리시듯이 메말라서 굳어진 사람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 주어 부드럽게 해 줄 것이 참된 예배입니다.

 

 

1. 애굽의 문화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방해합니다.

2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바로 앞에 서라 그가 물 있는 곳으로 나오리니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 백성을 보내라 그러면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니라

세상 가운데서는 온전히 하나님을 섬길 수 없었습니다. 특별히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앞에 나가서 제단을 쌓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심한 노동으로 생활이 힘들고 어려웠습니다.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러내어 온전한 예배를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모세를 바로에게 보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길 것이라고 했습니다. 애굽의 문화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우상문화였습니다. 오늘 이 시대도 세상의 문화는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의 타락한 문화는 재물이나 쾌락을 통해 유혹하기도 하고, 때로는 일이나 공부 등을 해야 한다는 이유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막고 있습니다. 세상이 잘 살아 질수록, 돈 중심의 사회가 될수록 점점 더 예배를 드리기가 힘들어진 시대가 됩니다.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지난해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학생들 일부가 학교 안에서 기도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오전 7시30분이 되면 빈 교실에 모였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매일 함께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선생님이 “앞으로는 교실에서 기도하지 마라.” 라고 했습니다. 아침에 교실 청소를 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학생들은 갑자기 기도할 공간을 잃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은 샤워실로 갔습니다. 바닥엔 딱딱한 타일이 깔려있었고, 샤워기와 거울이 벽면을 빙 두르고 있었습니다. 바닥에 물이 흥건히 젖어 있던 적도 있었습니다. 학생들은 거기에 책상과 의자를 갖다놓고 기도했습니다.

이렇게 학교 안에서 모여 기도하자 함께 기도하고 싶어 하는 학생들이 찾아왔습니다. 학생들은 손목에 ‘우리는 학교에서도 크리스천입니다’라고 적힌 팔찌를 차고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그렇게 한 명 두 명 인원이 늘더니 1년쯤 지나자 9명의 학생들이 샤워실에서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국민일보 이용상 기자>

 

 

지금 우리 사회는 애굽의 문화, 즉 세상의 문화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방해가 심각한 시대에 더욱 힘써야 할 것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본래 세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세상 문화는 귀신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그 배후에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네가 내 백성을 보내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네 신하와 네 백성과 네 집들에 파리 떼를 보내리니 애굽 사람의 집집에 파리 떼가 가득할 것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하는 나라에는 여러 가지 재앙이 임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거주하는 곳에는 파리 떼가 오지 않았습니다. 재앙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고자 하실 때는 아무리 애굽의 왕이라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 일이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며 심한 노동에 붙들려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사 그 일에서 해방시키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이 광야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막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 드린다고 나가면 성을 쌓는 일이 엄청난 차질이 있기 때문에 반대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선포한 대로 애굽 온 땅에 파리 떼가 들끓게 했습니다. 파리재앙이 애굽지역 온 땅에 임한 것입니다. 온 애굽 땅이 파리 때문에 황폐화되었습니다. 애굽에 재앙이 임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2. 애굽에서 나와야 온전한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25.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이르되 너희는 가서 이 땅에서 너희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라

파리 재앙으로 인하여 애굽 전체가 황폐화 된 것을 본 바로는 모세를 불러서 이스라엘이 제사를 드리는 것을 허락하였습니다. 엄청난 재앙 때문에 하는 수 없이 허락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애굽 나라 안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는 그렇게 하는 것은 힘들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을 애굽 사람들이 싫어하기 때문에 잘못하다가는 돌에 맞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세를 보내서 애굽 왕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십니다. 풀어주지 않으려고 하는 바로와 이스라엘을 해방시키려고 하는 하나님과의 싸움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난 주 목요일 치과 치료를 받기 위해 부산에 갔다가 자갈치시장 곰장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서빙 하는 아줌마에게 전도를 하려고 하는데, 자신은 교회에 다녔던 집사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에 못 다닌다고 했습니다. 대전에서 살다가 언니가 운영하는 식당 일을 도와주러 3개월 전에 부산에 왔는데, 일이 너무 바빠서 교회에 나가서 예배드릴 시간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생각하기를 너무 장사가 잘 돼서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영적으로는 손해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에게 핸드폰 번호를 적어주게 해서 말씀을 보내준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아나가서 예배드리는 것을 잊어버리도록 장사가 잘 되는 것도 문제입니다. 이것은 신앙보다 일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재물의 유혹이나 시험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 성도님들의 마음에는 주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하는 참된 믿음으로 충만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세상의 유혹,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아무리 환경이 바뀌고 형편이 어려워도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를 잊어버리지 않아야 합니다. 예배가 우선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섬기는 예배가 우선적으로 자리 잡아야 합니다. 그것이 내 영혼이 사는 길이며 삶이 풍성해지는 비결입니다.

 

 

27. 우리가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되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하려 하나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흘길쯤 광야로 들어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리는 예배는 애굽의 타락한 문화 가운데서 벗어나서 드려야 합니다. 3일 정도 광야로 걸어 나가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광야를 지나서 시내산에 이르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최상의 존재에게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드려야 합니다. 예배는 희생제사입니다. 우리의 몸, 재물, 시간을 드려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적당히, 애굽에서 드리는 제사가 되면 안됩니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러 나올 때에는 세상의 문화, 생각, 일이나 공부 등은 일단은 내려놓고 나와야 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순간에도 은혜 받는 데에 집중하지 못하고 세상의 일들 때문에 염려하고 있다면 하나님께 열납되는 예배가 되지 못합니다.

 

 

바로는 모세의 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애굽 땅에 들끓고 있는 파리떼 때문에 더 이상 주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는 ‘너무 멀리 가지는 말라’라고 합니다. 즉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자신의 종에서 풀어 줄 마음이 없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는 사람들을 종으로 부리려고 합니다. 재물이나 권세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노예로 삼으려고 합니다. 물론 세상의 권세 배후에는 악한 영이 역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 즉 성령의 은혜가 아니고는 그러한 속박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무엇이 사람들이 하나님 나오는 것을 방해하고 붙들고 있습니까? 재물(일), 쾌락, 공부, 문제 등을 가지고 우리를 얽어매서 하나님께 나가지 못하게 시험합니다.

 

 

29. 모세가 이르되 내가 왕을 떠나가서 여호와께 간구하리니 내일이면 파리 떼가 바로와 바로의 신하와 바로의 백성을 떠나려니와 바로는 이 백성을 보내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일에 다시 거짓을 행하지 마소서 하고

광야에 가서 제사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을 받은 모세가 왕을 떠나서 하나님께 파리 떼를 떠나게 해 달라고 기도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일을 방해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방해하면 더 큰 재앙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세상의 권세, 마귀의 권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쉽게 예배드리게 하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붙들고 종살이 시키는 백성을 쉽게 놓아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구원의 역사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3. 구원의 목적은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하게 하신 것은 종살이가 불쌍해서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 시키신 이유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즉 하나님께 온전한 예배를 드리도록 하려고 모세를 애굽에서 보내서 그들을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즉 예배가 중요합니다. 종의 신분에서 해방되게 하신 것은 마귀의 종으로 마귀를 섬기는 동안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수가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마귀의 자녀의 신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으로 예배하고 섬기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출3:18. 그들이 네 말을 들으리니 너는 그들의 장로들과 함께 애굽 왕에게 이르기를 히브리 사람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임하셨은즉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려 하오니 사흘길쯤 광야로 가도록 허락하소서 하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신 목적은 사흘길 쯤 광야로 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의 이유는 하나님께 온전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섬길 때에 그들에게 지혜와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강조한 것이 하나님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들을 선택해서 구원하시고 복을 내려주시는 하나님,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주관하시는 세상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말고 예배하라고 하십니다.

 

 

오늘의 시대는 급변화 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어 가고 있는 이때에, 우리의 예배에 필요한 것이 생명력입니다. 역동적인 예배가 드려져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우리 찬양대도 일찍 예배에 참여해서 함께 찬양하며 예배를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역동적인 예배, 은혜로운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영과 인간의 영이 만나는 시간입니다. 찬양과 기도를 통해서, 말씀을 들을 때에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의 영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현대는 감동의 시대라고 합니다. 감동의 시대는 감동을 주어야 사람들이 움직이고 변화되는 시대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는 예배를 드릴 때에는 졸고, 딴 생각하다가 거룩하지 않는 곳에서 감동을 더 잘 받는 것입니다. 예배에서는 감동을 받지 못하고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연속극은 사모하며 기다려지면서도,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간은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예배의 감격에 빠져야 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우리의 가슴에 벅찬 감동이 밀려와야 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임하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그분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예배는 우리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입니다. 신학자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은 인간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중대하고, 가장 시급하며, 가장 영광스러운 행위이다” 라고 예배를 말했습니다.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우리의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이 예배 시간에 하나님을 만나고, 우리의 영혼이 풍성해지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지혜와 복을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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