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이 인공지능(AL)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보다 육체적 능력이 뛰어난 동물은 많았습니다. 하지만 두뇌를 쓰는 데서 인류를 넘어서는 존재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간 지성에 대한 굳은 믿음을 깬 역사적 사건이 지난달 서울에서 일어났습니다. 인터넷 기업 구글의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AlphaGo)'가 프로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의 다섯 차례 대국에서 4승 1패로 압승을 거둔 것입니다. 인간이 만든 게임 중 가장 복잡한 바둑은 인공지능이 넘볼 수 없는 영역이었습니다. 이 알파고가 만들어진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습니다. 그런데 돌도 지나지 않은 인공지능 알파고는 5000년 인간 바둑의 역사를 넘어섰습니다. 이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는 엄청납니다. 이런 발전 속도라면 우리의 모습과 지능까지도 닮은 로봇이 등장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입니다. 우리 자신과 같은 사람을 얼마든지 복제 해 낼 수 있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충분히 부활시킬 수 있는 분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우리의 부활은 결코 믿을 수 없는 꿈과 같은 이야기가 아니라 확실하게 다가오는 실제적인 사건이 될 것입니다.
1. 처음에는 제자들도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12제자들은 3년이나 따라다니면서 주님께로부터 말씀을 듣고 배웠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 기적들을 목격하였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주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자 고향인 갈릴리로 돌아가서 다시 고기잡이를 하였습니다. 3년이나 보고 배운 것이 한 순간에 헛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예수님의 죽음을 끝까지 지켜보며 애곡했던 여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도 예수님의 부활은 믿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시체에 바르기 위한 향유를 가지고 새벽에 주님의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부활을 믿었더라면 시체에 바를 기름이 무슨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이 여인들은 죽은 예수, 무덤에 누워 있는 예수를 만나러 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인들은 무덤 앞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죽은 줄만 알았던 주님이 살아나셨던 것입니다. 너무나 기뻐서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인들이 전한 주님의 부활 소식을 믿지 않았습니다.
엠마오가 고향인 두 제자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에 고향마을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낯선 나그네가 나타나서 그들과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이 부활하신 주님이셨는데, 그들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을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의 믿음 없음을 책망하시면서 모든 성경을 자세히 풀어 예수님 자신의 부활에 관한 것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그런데도 그 두 사람은 부활하신 주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고향 마을에 도착해서 함께 식사할 때에 떡을 가지고 축사하시면서 그들에게 나누어 주실 때에야 그들의 눈이 밝아져서 주님이심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주님은 사라지고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 두 제자는 즉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을 자신들이 만났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역시 열한 제자가 그들이 전한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도 믿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제자들도 처음에는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한 것입니다.
마가복음 16:14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사 그들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가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셔서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셨습니다. 부활을 목격한 증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는 사실이 예수님을 화나게 한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막16:11절에서 “그들은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제자들에게 말했지만 제자들은 “듣고도 믿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또한 막16:13절에는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예수님의 부활을 전하였지만 “역시 믿지 아니하였다”라고 말씀합니다.
2. 고린도 교인들 중에도 부활을 믿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고전15:35. ○누가 묻기를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 하리니
고린도 교인들 중에는 “죽은 자들이 어떻게 다시 살아나며 어떠한 몸으로 오느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열심히 말씀을 가르쳤는데도 부활에 대해서 의심하는 성도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성도들을 향해서 바울이 대답을 했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또 네가 뿌리는 것은 장래의 형체를 뿌리는 것이 아니요 다만 밀이나 다른 것의 알맹이 뿐이로되 하나님이 그 뜻대로 그에게 형체를 주시되 각 종자에게 그 형체를 주시느니라”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전혀 다른 새로운 싹으로 돋아나듯이 우리의 부활도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육체가 죽어 땅에 묻혀 썩어지지만 그것은 참 생명을 얻게 하는 새로운 부활체를 기대할 수 있는 죽음입니다. 요즘 봄철이라서 곳곳에 꽃이 피어나고 새싹들이 돋아나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인간도 새로운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육의 몸은 썩어지지만 신령한 몸은 썩지 않습니다. 육의 몸은 죄의 종노릇해서 추하지만 신령한 몸은 광채가 나는 영광스러운 몸입니다. 육의 몸은 병들기도 하고 약하지만 신령한 몸은 완전하고 강한 몸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의 몸으로 계실 때는 약하여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으셨지만,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에는 전혀 다른 새로운 몸이 되셨습니다.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제자들도 몰라 봤을 정도였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시공간을 초월하신 능력자가 되셨습니다.
당시 고린도에는 헬라인들이 대다수 살고 있었고 그들은 헬라의 전통적인 철학 사상에 젖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플라톤의 영향을 받아 영혼불멸을 믿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의 부활을 믿지 않은 것입니다. 영혼은 불멸하지만 육신은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고린도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자신들이 나중에 부활할 것에 대해서는 믿지 못했습니다. 부활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활이 없는 복음은 공허한 것이며 그런 믿음은 사상누각인 것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부활을 믿지 못하고 오직 현세에만 관심을 두고 살았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고린도 교인들에게 부활의 확신을 심어주고자 했습니다.
사람들이 부활을 믿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을 이성으로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이성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이 수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도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냥 받아들여야 할 사실입니다. 부활신앙은 이성으로 판단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만 해도 그렇습니다. 자신이 태어나는 것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을 믿음으로 자신의 출생에 대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3. 예수님은 성경대로 부활하셨습니다.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사도 바울이 자신이 받은 부활의 복음을 고린도교인들에게 전하였습니다. 그 내용은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사도행전에 2장에 보면 시편 16편 말씀을 인용하여 예수님의 부활이 성경대로 되었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행2:27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치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시16:10절).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고 주의 거룩한 자, 즉 그리스도를 썩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시편 16편의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시고 3일 만에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를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이 일에 바울은 자신이 확실한 증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성경에서 약속한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즉 우연히 일어난 일이 아니라 이미 성경이 예언했던 것이 성취된 것이기 때문에 확실하게 신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부활을 다시 살아난 자기 몸을 가지고 증명하시기보다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성경을 이루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경험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에 의존해야 함을 주님께서 몸소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체험이나 다른 어떤 것으로 증거 하지 말고 성경 말씀을 온전히 믿고 성경에 근거하여 증거 해야 합니다.
4. 수많은 부활의 증인들이 있습니다.
5-6.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수많은 증인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증인들이 예수님의 부활의 확실성을 증명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보면 먼저 게바, 즉 베드로에게 보이시고 열 두 제자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은 말씀하시던 대로 확실하게 부활하셨음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부활신앙으로 굳건히 서게 하고자 했습니다. 부활의 증인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은 복음의 핵심입니다.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습니다. 오백 명이나 되는 남자들이 그것도 일시에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으니 얼마나 확실한 것입니까! 여기서 말하는 500여 형제는 초대교회의 유력한 지도자들입니다. 그리고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한 자 같은 바울 자신에게도 보여주셨다고 고백합니다.
만약에 부활이 실제로 일어났던 사건이 아니라, 사람이 지어낸 거짓말이라면 513명 이상의 사람들이 거짓말쟁이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여자들의 증거 사례가 다 생략되었습니다. 여자들의 증거사례가 생략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통계 자료에 유아와 여자의 수는 포함하지 않았던 관례에 의해서입니다. 둘째, 여자 증인을 빼놓아도 부활의 진실성을 변호할 수 있는 증인의 수가 충분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부활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요즘 극장에서 상영하고 있는 케빈 레이놀즈 감독의 '부활'이라는 영화가 있는데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메시지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가 되는 것은 부활 신앙이 인생을 걸 만한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될 때라고 합니다. 모든 것을 버린다 해도 결코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때, 바로 그때 부활은 삶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에게 진심으로 예수님의 부활이 믿어지시기 바랍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능력, 부활의 소망이 진심으로 믿어지시므로 삶에서 희망과 기적이 나타나시기를 소망합니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말하기를 “죽고 다시 산다는 도리를 알기까지 너는 아무래도 처량한 나그네이다”라고 했습니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 이 땅의 삶으로 마무리 되고 부활이 없다면, 참으로 처량한 존재가 될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을 통해서 죽음과 부활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밤에 잠을 자는 것은 죽음을 연습하는 것이고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부활의 기쁨을 미리 경험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죽음을 잠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잠이란 깨어남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죽음은 영원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정해진 시간, 곧 부활의 아침까지 모든 사람이 잠자는 것을 말합니다. 나중에 주님 재림하실 때에 잠자는 자들이 천사장의 나팔소리를 듣고 다시 살아날 것입니다. 그때 부활하여 영광스러운 하늘의 혼인잔치에 참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생할 것입니다.
행2:24.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하나님께서 주님을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으셨습니다. 사망권세를 깨트리시고 예수님이 살아나셨습니다. 이 부활의 소식은 우리에게 큰 기쁨이요 축복된 소식입니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충격을 경험하였고 용기가 불끈 솟아올랐습니다. 가슴이 뜨거워지고 삶의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지금까지 거듭난 성도들은 온갖 핍박과 고난 중에서도 이 부활의 복음을 증거 했습니다. 부활의 복음을 믿는 사람들은 어떤 고난과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분명히 다시 살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저 하늘에서 영생할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부활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님들 한 분 한 분이 부활의 복음을 확실하게 전하는 증인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