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형수가 있었습니다. 2005년 16살 소년 사형수는 총살형을 당하기 위해 교도소 공터에 세워졌습니다. 총살형을 집행하기 위해 집행관들이 소총을 들고 일렬로 섰습니다. 그런데 사형이 집행되기 직전에 기적적으로 사형중지 명령이 떨어지고 살아날 수 있었습니다. 이 소년은 이름이 ‘하페즈’였습니다.
나중에 어떻게 사형이 중지되었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국제앰네스티(국제사면위원회)가 예멘 대통령에게 그 소년의 사형 집행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해서 아슬아슬하게 생명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죽었다가 산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과 같이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을 위하여 살기로 다짐했습니다.
올해로 29세가 된 하페즈는 이제 변호사가 되어, 예멘에서 사형수로 복역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돕고 있습니다. 그의 인생이 사형수에서 사형수를 돕는 변호사로 바뀐 것입니다.
사형수 소년처럼, 우리도 죄값으로 십자가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집행되기 전에 주님의 은혜로 다시 살았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대신해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1.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우리가 죽어야 할 십자가에 주님이 대신 죽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은 것입니다. 이 사실을 진심으로 믿는 성도라면, 이제는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주님께서 사시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자기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로 결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서 먼저가 되셔야 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이 내 인생의 우선적인 가치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우선되는 것이 내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삶입니다.
옛날에 거대한 군함 한 척이 그 위용을 자랑하며 밤바다를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군함의 선장인 해군 대령은 캄캄한 바다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멀리서 희미한 불빛을 보였습니다. 위험을 직감한 군함의 선장은 자기 배의 신호수에게 희미한 불빛을 향하여 "당신의 진로를 남쪽으로 10도 돌리시오"라고 메시지를 보내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러자 신속하게 저쪽에서 답신이 왔습니다.
"당신의 진로를 북쪽으로 10도 돌리십시오."
군함의 선장인 해군대령은 자신의 메시지가 무시되었다고 생각하고 화를 냈습니다. 그래서 두 번째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당신의 진로를 남쪽으로 10도 돌리시오. 나는 이 군함의 지휘관 대령이란 말이오."
다시 저쪽에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당신의 진로를 북쪽으로 10도 돌리십시오. 나는 3등 항해사입니다."
즉시 그 대령은 세 번째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이 두렵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진로를 남쪽으로 10도 돌리시오. 이 배는 군함이란 말이오.”
그러자 곧 응답이 왔습니다.
"당신의 진로를 북쪽으로 10도 돌리십시오. 나는 등대지기 3등 항해사란 말입니다."
위험의 순간에 선장인 해군 대령은 자기중심적인 생각 때문에 큰 불행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어리석은 대령처럼 인생의 바다를 항해하면서, 자기의 생각이 너무 옳다 믿기 때문에 하나님의 인도를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하고 고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라고 말씀합니다. 자기가 주인 되어 사는 인생의 결말은 사망이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목적이 멸망에 들어가기 위한 연습이라면 얼마나 억울한 일입니까? 사망을 위하여 온갖 욕심과 죄악에 빠져 어리석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와 심판을 알지 못한 채 오직 눈에 보이는 육신의 것에 집착하여 불행하게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2.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갈2:20.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연주자 집사님이 연주하면서 꼭 전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는 연주할 때 주로 3가지 악기를 사용합니다. 첫 번째 연주할 때는 은으로 만든 플루트죠, 다음은 세계에서 2대밖에 없는 금으로 만든 플루트, 마지막은 흔한 나무 재질로 된 휘슬(피리일종)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는 값싼 휘슬이었다고 합니다. 돈으로 따지면 첫 번째, 알토 플루트는 2000만원, 두 번째 금으로 만든 플루트는 억대, 마지막 휘슬은 1만5000원 정도로 어디서든 구입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악기가 아니라 '누구 손에 붙들린 악기인가'라는 것이라고 합니다. 연주자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듯 주님께서 우리 인생을 연주하시면 상상을 초월하는 소리가 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연약한 우리 인생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놀라운 일들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연주하시면 우리 인생이 달라집니다. 참으로 내 인생을 주님의 손에 맡기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목숨을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 내 인생의 운전대를 맡기시기 바랍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면 휘슬의 연주처럼, 내 인생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교회, 우리가 사는 삶의 현장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가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우리 안에 예수님께서 사시는 것입니다. 내 힘과 지혜를 믿고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은혜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 것도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날마다 기도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게 계신 주님께 맡기고 담대하게 나가게 됩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믿고 거듭나면 더 이상 자신을 의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먹고 사는 문제, 즉 육신의 욕구를 채우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살지 않습니다.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에 목마르지 않습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나를 알아주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을 믿으면 언제나 평안합니다. 주님이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주인이신 예수님은 만왕의 왕이시며 전능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갈2:20.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제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서 희생하신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란 말의 어원은 인도의 산스크리스트어 'behid'라고 합니다. 그 뜻은 ‘합하여 매다’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예수님과 합하여 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 이제 예수님과 묶여 있는 것입니다. 즉 인격적으로 하나된 것입니다. 이제부터 예수님과 함께 사시기 바랍니다. 이제부터 내가 잘못해서 욕 얻어먹으면 주님도 욕 얻어 잡수십니다. 내가 혈기 부리고 원망하고 불평하면, 나와 묶여 사시는 주님이 나의 혈기, 원망과 불평을 그대로 뒤집어쓰십니다. 즉 우리의 원망과 불평은 주님에게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우리가 칭찬 받으면 주님도 기뻐하십니다. 우리끼리 화목하며 주님이 우리 안에서 환하게 웃으십니다.
3. 옛 자아가 날마다 죽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31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
우리의 인생의 길이 광야와 같습니다. 이런 광야의 삶에서는 끊임없이 자신이 죽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내가 살아나면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죽습니다. 바울처럼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걱정과 염려도 하나님께 맡기고 기도해야 합니다. 고집과 욕심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내가 죽어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내 고집이나 교만함이 죽어야 진정으로 내가 잘 되는 길이 열립니다.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고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 박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육신의 욕망, 내 교만한 자아가 죽어야 그리스도 안에서 부활의 새생명을 얻습니다.
F. J. 휘걸 선교사는 바울이 말한 죽어야 할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기라(롬6:11)고 말씀합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된 것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했습니다. 탐욕과 거짓과 허영 등 정욕을 가진 세상의 영은 자아라고 하는 괴물에서 나온다고 합니다. 셋째, 그리스도 안에서 나뉘는 마음에서 죽어야 합니다. 바울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막힌 담이 십자가에서 허물어졌다고 했습니다. 내가 죽어야 화목하게 됩니다. 다툼과 분열이 있는 것은 자신의 자아가 죽지 못해서입니다. 사탄은 사람과 사람, 지역과 지역, 나라와 나라 간에 담을 쌓고 분열하게 합니다.
자신도 모르게 많은 사람들은 마귀에게 억압받는 노예가 되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사탄의 거짓말을 경청하며 귀신의 교훈에 따른다고 합니다. 정신분석학에 나오는 개념으로 ‘집합무의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누구나 이 집합무의식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것은 무시무시한 부정적인 기운으로 가득차 있다고 합니다. 인류의 역사를 100%으로 보면 전쟁이 없었던 시기는 고작 8%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의 집합무의식 속에는 누군가를 살해하고 또 누군가에게 죽임당한 조상들의 기억들로 가득 차 있다는 것입니다. 두려움, 불안, 불신, 고통, 슬픔, 좌절, 죽음, 다툼 등 부정적인 집합무의식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집합무의식이 지배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육신의 욕심을 따르는 옛사람과 집단무의식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못 박아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을 때에 우리 육신의 자아와 부정적인 집단무의식도 함께 죽었습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나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는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지시기 위한 주님의 사랑이었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예멘의 소년은 자신의 욕망을 위하여 살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삶을 고난당하는 사형수들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죽었다가 산 우리도 자신의 욕망을 따라 살지 말고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주님처럼 사랑의 가치를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주인노릇하지 않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주님을 본받아 살겠다고 다짐하시기 바랍니다. 주님을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주님의 종임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되어야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나의 삶의 가치가 주님이 아니라 돈이나 자신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나는 무엇을 위하여, 누구의 뜻대로 사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자신의 욕심을 죽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이 내 안에서 주인 되시게 해야 합니다. 언제나, 먼저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육신의 자아가 나를 주장하려고 할 때마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죽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는 육신의 자아를 거부한다.”라고 선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