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삼성병원 원목이신 김정숙목사님이 겪은 한 여기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대학을 나와 유학을 떠났고 미국에서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600대 1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아나운서와 기자로 3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볐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갔습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린 정동로 잘되는 것도 좋은 것이 아닙니다.
미 국영방송 기자생활 3년째 되던 해인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취재차 한국에 왔던 그녀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진단 결과 위암 말기였습니다.
32세의 젊은 나이. 그녀는 혼돈과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명예와 돈, 사랑이 모두 물거품이 됐습니다. 병원에서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가 너무 부러웠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서서히 예수님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건강을 다시 찾으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자 "하나님 성전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우리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600:1의 경쟁을 통해 아나운서가 되어 유명해진 것이나 병원에서 화장실 청소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새사람으로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순절 기간을 맞아서 우리는 철저하게 십자가의 의미를 깨닫고 죄악의 습관을 가진 옛 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새 사람으로 살아야겠습니다.
1. 옛 사람이 죽지 않아서 원망과 불평이 나옵니다.
민수기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였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라고 불평했습니다. 하나님은 살게 하시는데, 이스라엘은 자꾸 죽는다고 합니다. 물도 주고 고기도 주고, 만나를 주어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늘 부족하다 힘들다고 불평합니다.
항상 원망하고 범사에 불평하며 기도는 죽어라고 하기 싫어하는 백성들을 보고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습니다. 탐욕으로 가득한 백성들에게 불뱀을 보내서 물게 하셨습니다. 원망하는 인생은 잘 되지 않습니다. 불평하는 인생은 실패합니다. 광야의 길은 험하고 힘든 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십니다.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문제를 바라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았으면 원망하지 않았을 것이고 불뱀에게 물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한 한방병원을 찾아오는 환자 중에 한겨울에도 가슴에서 열이 나고 물만 먹어도 체하는 주부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공부 잘하고 말 잘 듣던 중학생 아들이 180도 변한 것 때문에 속앓이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들이 의사가 됐으면 하는 욕심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적표를 받고는 마음을 다 내려놨다고 합니다. 그런데 의사는 못 돼도 성적이 최소한 중간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니 걱정이 쌓여서 화병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주부는 아들이 1~2등 하길 바라면 부모의 욕심이지만, 남들 다 하는 중간 정도만 바라면 욕심이 아니란 입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은 마음도 다 비웠는데, 아들이 그 ‘최소한’조차 못하니 자신의 화병이 낫질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엄마는 쫓아다니며 잔소리를 하고, 아이는 지긋지긋하다며 PC방으로 도망쳤습니다. 결국 심하게 압박하는 부모에게 아이가 욕까지 하는 패륜적 상황이 연출됐습니다. 부모의 지나친 기대가 원망이 되어 자녀뿐만 아니라 자신까지 힘들어진 것입니다. 이 가정의 문제는 모든 것의 기준이 공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보다 참된 신앙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존중이 여기는 인격을 갖춘 사람을 만들기에 힘써야 했습니다. 이 가정의 문제는 옛 사람이 죽지 못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0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그들과 같이 원망하지 말라
원망과 불평은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기 때문에 나옵니다. 자기의 성질과 고집이 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 맡기고 기도하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우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보면 나오는 것이 불평이요 스트레스만 쌓여갑니다.
옛말에 "안되면 조상 탓, 잘되면 내 탓"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일이 뭔가 잘 안 될 것 같으면 곧바로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탓합니다. 이러한 원망은 아담 때부터 있었습니다(창3:12). 원망은 습관이며, 명백한 책임회피입니다. 그리고 원망의 말은 바로 바로 자신을 향해 쏘는 화살입니다.
옛날에 작전을 아주 잘 세우는 한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장군이 세우는 작전은 늘 화창한 날에만 승리할 수 있는 작전이었습니다. 그 날도 화창한 날이었습니다. 병사들은 싸우기 전부터 승리를 확신하면서 즐거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비가 오는 바람에 그만 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러자 장군은 하늘을 욕하면서 일제히 하늘을 향해 활을 쏘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결국, 그 화살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이렇듯 다른 사람을 원망하는 것은 자신을 욕하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범사에 감가하지 못하고 원망과 불평의 습관이 몸에 밴 것은 옛 사람이 죽지 않아서입니다. 탐욕의 우상, 자기라고 하는 우상에 빠진 결과입니다.
2.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민수기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십자가와 나』라는 책에서 읽은 것입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장대에 왜 놋뱀을 매달았는지에 대해서 설명했는데, 요한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 대화를 하던 중에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장대에 달린 놋뱀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것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더 생각할 것이 그 놋뱀이 우리의 옛 자아도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즉 십자가에서 주님만 못박혀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옛 사람까지 죽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장대에 장미꽃이나 백합꽃 같은 보기 좋은 것을 달게 해서 쳐다보게 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징그러운 뱀으로 한 것은 우리의 옛 사람이 바로 그런 상태라는 것입니다. 우리 타락한 옛 사람, 자기 욕심에 빠져 범죄한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죽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되었다고 합니다. 우리의 타락한 옛 사람을 주님이 달리신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예수님만 십자가 못 박지 말고 나의 옛사람, 탐욕에 물든 나의 자아도 함께 못 박아야 합니다.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세례를 받는 결단의 순간에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죽어서 장사되었다는 것입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 죄에서 정결함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의식입니다. 우리의 옛사람, 우리의 자아가 죽고 이제는 예수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사는 것은 우리 육신의 욕망대로 사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과 연합한 새생명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의 옛사람은 죽고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의 옛 사람이 십자가에서 예수님과 함께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직도 옛 사람, 육신의 욕망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들포도 나무 가지를 잘라다가 참포도 나무에 젖붙임을 하면, 그 순간부터 그 가지는 참포도 나무의 뿌리와 줄기에서 영양을 공급 받아서 참포도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참포도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젖붙임을 했는데 아직도 들포도 열매를 맺고 있다면 그것은 젖붙임이 안 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세례를 받고 옛 사람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참 포도나무 되신 예수님에게 젖붙임바 된 거룩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옛 자아, 타락한 본성은 억제되고 주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면서도 그리스도에게 젖붙임바 되지 못하고 아직도 들포도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에게 젖붙임바 되었으면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가게 됩니다. 십자가의 능력이 내 안에서 역사하게 됩니다. 주님을 흉내나 내는 가짜가 아니라 온전히 주님과 하나 되어 뼛속까지 주님의 은혜로 충만한 진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야 합니다.
3.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합니다.
솔맨(Sallman)이라고 하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결혼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중병에 걸렸습니다. 의사가 말해줍니다.
“당신은 임파선 결핵을 앓고 있소. 앞으로 3개월밖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
그의 부인은 유명한 가수로 임신 중이었습니다. 아내에게도 미안하거니와 앞으로 태어날 아이를 생각할 때에도 죄스러웠습니다. 그가 몹시 괴로워하고 있을 때, 아내가 그를 위로합니다.
“3개월밖에 못산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3개월을 허락해 주셨다고 생각하며 감사해요. 아무도 원망하지 말아요. 3개월이 시간이 있지 않습니까? 천금같은 그 기간을 가장 아름답게 만들어요. 그러면서 오로지 3개월이나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해요.”
두 사람은 기뻐하며 감사하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병은 씻은 듯이 나았습니다. 주님의 은혜로 새로운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인생입니다. 이제부터는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갈 것입니다. 바로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고 예수님과 함께 거듭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산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와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인생입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의 주인이 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제 바울 자신은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의 옛사람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습니다.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2:20)라고 고백합니다. 이제는 자기의 욕망이나 생각대로 살지 않고 자신 안에 계시는 예수님의 뜻대로 산다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러한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믿음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다니면서 아직도 자기의 욕망이나 생각에 붙들려서 사는 사람은 진정한 믿음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입니다. 거듭남의 은혜를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죄에 대하여 죽은 자로 여겨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각오와 결단이 있는 사람이 진정으로 거듭난 성도인 것입니다. 우리는 죽고 주님이 우리 안에 주인 되어 사셔야 합니다.
중국선교사 허드슨 테일러가 자신의 누님에게 보낸 편지에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잘 표현해 주었습니다.
오, 내 사랑하는 누님, 부활하시고 높아지신 구세주와 하나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는 것의 의미를 깨달은 것에 감사합니다. 그리스도는 부하고 나는 가난할 수 있습니까? 내 오른손은 부요한데 내 왼손은 가난할 수 있습니까?
가장 즐거운 부분은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 됨이 가져다주는 ‘안식’입니다. 나는 이제 어떤 일에 대해서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가장 편안한 자리에서 나에게 은혜를 주시고 가장 어려운 곳에서도 그의 은혜는 족합니다. 내가 내 하인에게 가장 저렴한 물건을 사오라고 하든지 가장 값비싼 물건을 사오라고 하든지 간에 하인의 입장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나는 전보다 나아진 게 없습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을지 모르겠지만 어느 의미에서 나는 그걸 원치도 않고 애를 쓰지도 않습니다. 다만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 다시 살아 승천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사십니다.
남자들은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만큼 생생하게 체험한 사건이기 때문에 어느 때나 기억나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군대를 갔다 오지 않은 사람에게는 별로 재미없습니다.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에게 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되면 안됩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이야기가 돼서도 안됩니다. 십자가 사건이 내 사건이 되어야 합니다. 나의 옛 자아가 십자가에서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되는 은혜를 체험해야 합니다. 내가 죽고 예수님이 내 안에 사는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고 거듭난 성도로 주님과 함께 사시는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