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을 의지하는 삶(시편63:1-11절)
점프개미가 있다고 합니다. 이 개미 종족은 여왕개미가 사망하면 일개미 중 한 마리를 여왕개미로 추대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이상한 현상이 일어난다고 합니다. 조그만 일개미의 몸이 여왕개미처럼 커지고 수명도 열 배 이상 늘어난다고 합니다. 그 추대된 일개미는 자신이 여왕개미라는 확신을 갖게 되어서 유전자조차도 바꿔버린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보배가 되신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확신이 충만해지면 우리 인생은 점프하게 됩니다. 놀라운 변화와 발전을 가져옵니다.
오늘 본문 시편 63편은 다윗왕이 유다 광야에 있을 때 지은 시입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키자 급하게 도망하느라고 맨발로 도망을 갑니다. 얼마나 급했으면 신발도 못 신고 도망쳤겠습니까? 다윗은 '감람산 길로 올라갈 때에 부끄러워서 그의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도망을 갑니다.'(삼하 15:30) 겨우 아들의 반란의 손길을 피해 도피한 곳이 유다 광야입니다. 그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다윗왕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고백한 내용입니다. 다윗왕이 훌륭한 것은 인간적인 작전을 세우기 전에 먼저 기도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다윗의 네 가지 고백을 통해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네 가지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1.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
고난의 순간에 다윗의 위대한 고백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라고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자식에게 쫓겨나서 광야에서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배신한 아들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그 힘들고 어려운 광야의 피난살이에서 간절히 주님을 찾습니다.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다윗은 그 유대광야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습니다. 여기 ‘간절히 찾다’, ‘갈망하다’, ‘앙모하다’는 단어들에서 다윗의 하나님을 향한 사랑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보고 싶은지 간절히 찾아 헤매고 갈급해하고 몹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위로와 용기와 희망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라고 탄식합니다. 사도바울은 재물이나 학식, 종교적인 열심과 권세 등으로 자신의 갈급함을 해결 해 보려고 애썼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으로는 참된 만족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 인생의 해답을 예수님을 만남으로 얻었습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죽기 이틀 전 "우리 모두는 거지다. 그것은 사실이다"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는 나약한 인생일 수밖에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렇습니다. 실제로 우리의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잠깐 맡겨주신 것입니다. 이 세상을 떠날 때 모든 것을 반환하고 빈손으로 떠납니다.
2.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2.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이와 같이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 광야에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거룩한 성소에서도 주님을 사모하여 바라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성소(קדשׁ, 코데쉬)는 하나님이 임재한 장소로서 그의 영광이 있는 곳입니다(왕상8:10-11, 대하5:13-14). 외롭고 힘든 광야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을 찾을 때에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그 광야가 바로 성소가 된 것입니다. 여기 ‘본다’(חזה, 하자)는 단어는 환상이나 계시 등 영적인 것을 바라보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의 임재의 모습이 있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사모한다는 말입니다.
그 유대 광야에서 “내가 주의 권능과 영광을 보기 위하여 성소에서 주를 바라보았나이다.”라고 고백한 다윗처럼, 주님의 영광을 소망해야겠습니다. 주님을 볼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리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 마음에 뜨거운 성령의 감동이 임하시기 바랍니다.
서울 삼성병원 원목이신 김정숙목사님이 겪은 한 여기자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어린 시절부터 교회에 열심히 다녔고 고등학교 때는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대학을 나와 유학을 떠났고 미국에서 성공가도를 달렸습니다. 600대 1이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 아나운서와 기자로 3년 동안 세계 곳곳을 누볐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져 갔습니다.
미 국영방송 기자생활 3년째 되던 해인 2005년 부산에서 열린 APEC 취재차 한국에 왔던 그녀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병원을 찾았습니다. 진단 결과 위암 말기였습니다.
32세의 젊은 나이. 그녀는 혼돈과 두려움에 휩싸였습니다. 명예와 돈, 사랑이 모두 물거품이 됐습니다. 병원에서 걸레를 들고 청소를 하는 아주머니가 너무 부러웠답니다. 그러면서 그녀는 서서히 예수님의 형상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건강을 다시 찾으면 무엇을 하고 싶냐고 묻자 "하나님 성전에서 화장실 청소를 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녀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하고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이 은혜요 축복입니다. 건강할 때는 자신만을 위하여 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몸이 아프고 나니 하나님이 생각났습니다. 우리들은 아프기 전에, 일이 잘 될 때, 오늘의 삶속에서 하나님이 생각나시기 바랍니다. 늘 주님을 바라보는 삶이되시기 바랍니다.
3.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7.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내가 주의 날개 그늘에서 즐겁게 부르리이다
다윗이 아들에게 쫓겨서 도망칠 때에 하나님께서 도움이 되셨습니다. 후새라고 하는 지혜로운 사람을 붙여서 아들 압살롬 편에 있던 아도니야의 전략을 물리치게 도우셨습니다. 만약 아도니야의 전략대로 압살롬이 작전을 폈더라면 다윗왕과 그 신하들은 유대광야에서 전멸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전쟁에서 위기에 몰렸을 때에, 삶의 곤고한 처지에 놓일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고 지원하고 돕는 자가 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주십니다.
세상에서의 승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인생의 승패도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 있습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세상의 어떤 다른 것으로 위로를 받으려고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찾으시기 바랍니다. 사람도 재물도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지 못합니다. 국가나 가족들도 영원히 우리 인생의 보호자가 되지 못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며 도우심입니다. 하나님만이 영원한 우리의 동반자이시며, 보호자요 구원자가 되십니다.
4.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리이다.
8. 나의 영혼이 주를 가까이 따르니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거니와
여기 ‘따른다’(דבק, 다바크)는 단어는 ‘착 달라붙다’(to cleave), '추종하다‘(to adhere), '찰싹 들러붙다’(to stick fast)는 뜻으로 자기 인생은 주님의 뒤를 바싹 따라다니겠다는 말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성도로서 주님의 뒤를 바싹 따르는 생활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을 멀찍이 따르다 보면 시험에 빠지고 사탄으로 그 중간에 파고들게 하는 위험이 있는 것입니다(마26:58). 주님을 가까이 따르는 생활을 해야 그의 사상, 그의 목적, 그의 인격, 그의 행실을 배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고 더욱 깊이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의 푯대가 주님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우리는 주님의 정신, 주님의 삶의 모습을 본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가 우리의 정신과 삶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가치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크게 미치도록 힘써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오른손이 우리를 붙들어주실 것입니다. 다윗은 그러한 체험을 수도 없이 많이 했습니다. 우리에게도 돌이켜 보면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이 기억나는 일들이 많으실 것입니다. 4절에 “나의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나의 손을 들리이다.”라고 고백한 다윗처럼, 우리 성도님들도 평생에 주를 가까이하며 주의 이름으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