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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고 행하자(왕상22:1-9절)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5|조회수1 목록 댓글 0

허드슨 테일러는 유명한 중국선교사입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어떻게 일생을 그 힘든 선교사로 보낼 수 있었습니까? 그리고 행복한 비결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제 헌신과 행복의 비결은 하루를 어떻게 시작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연주자는 음악회가 시작되기 전 악기를 조율합니다. 음악회가 끝난 뒤 조율한다면 어리석은 사람이겠지요.

저는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의 뜻과 맞추는 일부터 합니다. 그러면 인생이 보람되지요.

허드슨 테일러는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기도로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조율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하나님을 기억하며 사는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우리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먼저 기도하는 성도의 삶이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1.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남쪽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북쪽 이스라엘의 왕을 찾아왔습니다.

그 때, 북쪽 이스라엘 아합왕이 여호사밧왕에게 물었습니다.

“우리와 함께 가서 길르앗 라못에 있는 아람의 군대와 싸우지 않겠습니까?”

여호사밧왕이 대답했습니다.

“왕과 함께 가겠습니다. 내 군대와 말들은 당신의 군대와 말들과 마찬가지입니다.”이 두 왕은 서로 사돈지간입니다.

 

왕상22: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소서

여기서 여호사밧왕이 잘 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 왕 아합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떠하진 물어 보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길르앗이 이스라엘에게서 중요한 지역이고, 과거에는 이스라엘의 영토였다가 지금은 빼앗긴 땅이기 때문에 되찾아야 하는 것은 맞지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 보고 하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이치에 맞고 옳은 생각이어어도 먼저 기도 해 보는 우리들이 되어야겠습니다.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고 먼저 물어보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사는 증거입니다. 불신자들은 중요한 일을 할 때 항상 점쟁이 찾아가서 물어봅니다. 그런데 우리 성도들은 무슨 일을 할 때 하나님께 물어봅니까? 물어보시기 바랍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라고 믿으시면, “아버지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할 때는 일단은 내 뜻을 좀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을 구하시고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기도 할 때 내 뜻, 내 욕망, 내 목표를 세워 놓고 하나님께 이루어 달라고 떼를 쓰지 말고, 진정으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먼저 물으시기 바랍니다.

 

2. 자기 욕심대로 하면 망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아합왕이 선지자 사백 명 가량을 모으고 물었습니다. 이 때 아합은 자기의 계획, 자기의 뜻을 세워놓고 선지자들에게 묻고 있습니다. 그것은 길르앗 라못을 치러 올라가는 것입니다. 자기의 뜻을 위해서 선지자들을 부른 것입니다. 지금 현재, 보통 우리의 믿음이 이 수준입니다. 기도를 하는 목적이 자기의 뜻을 구합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만 업그레이드 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신앙도 업그레이드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도 수준이 높아져야 합니다.

 

“길르앗 라못에 있는 아람의 군대와 싸우러 나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기다리는 것이 좋겠소?”

이렇게 묻고 있지만, 올라가서 싸우라고 해야 한다고 은근히 압력을 행사하는 질문입니다. 선지자들이 대답했습니다.

“싸우러 가십시오. 주께서 그들을 왕의 손에 넘겨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어떻게 사백 명이 다 똑같은 대답을 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기도 해서 하나님의 뜻을 신중히 물어본 것 갖지도 않습니다. 왕이 길르앗 라못을 치려고 하는데, 선지자들에게 묻는다고 소문이 나자 왕의 뜻대로 예언해 주려고 한 것입니다. 이들은 아부형 선지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왕에게 잘 보이는 것을 원했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기도 안 하는 믿음 없는 거짓선지자, 눈에 보이는 육신의 욕망의 빠져서 영적인 능력을 상실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아합의 뜻대로 사백명의 선지자의 예언대로 하면 어떻게 됩니까? 망합니다. 아합왕이 죽습니다. 그런데 욕심에 빠지면 그것이 망하는 길인 줄 모릅니다. 한치 앞을 모르는 것입니다. 뻔히 안되는 것이 보이는데, 거짓 영에 붙들리면, 마귀에게 붙잡히면 그것이 망하는 길인지 모릅니다. 마귀는 달콤하게 유혹합니다. 자기 말을들으면 부자가 된다고 하고 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멀리하고 그 길로 따라가면 망하게 됩니다.

 

왕상22:35. 이 날에 전쟁이 맹렬하였으므로 왕이 병거 가운데에 붙들려 서서 아람 사람을 막다가 저녁에 이르러 죽었는데 상처의 피가 흘러 병거 바닥에 고였더라

 

3. 이상하면 다시 물어 보아야 합니다.

사백 명 선지자들의 대답이 너무 똑 같으니까 남쪽나라 여호사밧왕이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꼭 짠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여호와께 여쭤 볼 다른 선지자는 없습니까?”

이스라엘의 왕이 대답했습니다.

“여호와의 뜻을 여쭤 볼 다른 선지자가 있기는 합니다. 그는 이믈라의 아들 미가야인데, 나는 그를 미워합니다. 그는 한 번도 나에게 좋은 예언을 해 준 적이 없습니다. 그는 언제나 나쁜 말만 합니다.”

여호사밧 왕이 말했습니다.

“왕이여,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그래서 미가야 선지자를 데리러 사람을 보냈습니다. 그를 데리러 심부름을 갔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은 한결같이 왕이 이길 것이라고 말하고 있소. 당신도 같은 말을 하시오. 왕에게 좋은 말을 해 주시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다른 선지자들은 왕에게 좋은 말을 했던 것입니다.

 

왕상22:14. 미가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하고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거짓선지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해서는 안 됩니다. 받은 그대로 전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이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인간적인 생각에서 마음대로 바꾸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합니다.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저같이 마음 약한 목사들이 거짓선지자가 되기 쉽습니다. 왜냐하면 사람 눈치 보느라고 계시 받은 대로 이야기 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잘못 말하면 상처 받으면 어떨까! 걱정하고, 교회에 안 나오면 어쩌지 염려하느라고 그 사람에게 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유리한 말, 좋은 말을 듣기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들도 그 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만 골라 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말씀을 가감없이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잘못된 것은 회개하고 고치라고 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겸손하라고 하시고, 불화하는 사람들은 화해하라고 하시며, 욕심이 가득한 사람들은 가진 것을 나누라고 하십니다.

 

4. 잘못으로 어려움이 오면 즉시 기도해야 합니다.

왕하3: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열왕기하 3장에 3개국 연합군이 모압을 치러 나갔습니다. 세 나라 군대가 연합하여 가면 금방 이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자신이 있으니까 기도도 안 하고 나갑니다. 그런데 형통하고 자신 있을수록 교만하지 않고 겸손하도록 더 기도해야 합니다. 그들은 모압 나라를 단단히 혼내 주자고 했을 것입니다. 이런 것을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 먼저 마신다고 합니다. 아직 이기지도 않았으면서 금방 이길 것처럼 의기양양 나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군대는 어려움에 빠졌습니다. 그 원정길은 상당히 먼 길이었습니다. 더군다나 모압땅은 상당히 메마른 땅이었습니다. 그들이 칠 일 동안, 행군하던 중에 군인들과 짐승들이 마실 물이 다 떨어졌습니다. 이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오던 길을 돌아기지도 못하는 것은 물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모압 땅은 우리나라와 다릅니다. 우리나라는 좋은 나라입니다. 어디든지 마실 물을 구할 수 있습니다. 샘물도 많습니다. 아니면 강물도 있고 시냇물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압평지는 가도 가도 바위투성이요 사막과 같은 곳입니다. 물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왕하3:10.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하니

이런 것을 억지 부린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물어보지도 않고 자기 마음대로 나가놓고 어려움을 겪으니까, 하나님을 탓합니다. 언제 하나님께서 싸우러 가라고 했습니까? 자기 뜻대로 행동을 했으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믿음이 좋은 여호사밧왕이 물었습니다.

“혹시 여기에 여호와의 선지자는 없습니까? 선지자가 있으면 그를 통해서 여호와의 뜻을 여쭈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여호사밧왕도 이번에는 자신들의 군대의 힘만 믿고 미처 기도하지 못한 것이 이런 재앙에 빠진 원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이 대답했습니다.

“엘리야를 섬겼던 그의 제자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에 있습니다.”

여호사밧왕이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를 통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엘리사를 만나러 갔습니다.

 

세 왕 중에 믿음 있는 왕이 있다는 것이 복이었습니다. 기도도 해 본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여호사밧왕은 기도하는 왕이었습니다. 어려울 때에 선지자를 찾는 왕이었습니다. 위기가 닥치면 믿음 없는 사람은 원망합니다. 남의 탓을 합니다. 그러나 믿음 있는 사람은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지만, 유다의 왕 여호사밧만 여기에 없었어도 나는 왕을 쳐다보지도 않았고 왕에게 관심을 두지도 않았을 것이오. 거문고를 타는 사람을 데려오시오.”

거문고를 타는 사람이 거문고를 타자, 여호와께서 엘리사에게 능력을 주셨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을 분위기를 조성해야 합니다.

 

엘리사가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골짜기에 도랑을 여러 개 파라고 말씀하셨소.”

 

왕하3: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이튿날 아침, 모압 사람들이 일찍 일어나 보니 해가 물 위를 비추고 있었는데, 건너편 물이 피처럼 붉게 보였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말했습니다.

“이것은 피다! 왕들이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서로 죽인 것이 틀림없다. 모압 사람들이여, 가자! 물건들을 빼앗으러 가자!”

이것도 은혜입니다. 아침 햇살이 물에 비치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 원정군이 자기들끼리 싸워서 피가 고여 있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습니다. 가보지도 않고 마음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무기도 안 가지고 방심한 상태로 이스라엘 진영으로 왔습니다.

 

일석이조의 효과를 냈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목마름도 해결하고 적군이 착하게 해서 무기도 없이 올라오게 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구원하심을 체험하게 하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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