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로 이주해서 살았던 한국계 러시아인들을 ‘카레이스키’ 즉 고려인이라고 합니다. 중앙아시아로 강제위주 되었던 고려인들이 고국을 찾아 귀향해서 고려인 마을을 형성하고 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고려인들은 한국에 온 뒤부터 자신이 ‘아기’가 된 기분이 든다고들 합니다. 조선족과 달리 한국말을 못하니 불이익을 당해도 항변할 수 없고, 몸이 아파도 병원조차 혼자 못 찾아간다고 합니다. 그 고려인 중의 젊은 부부가 자신들의 아이가 태어난 것을 기뻐하며, 이 아이는 한국에서 태어났으니까, 진짜 한국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자신들은 같은 한민족이어도 외국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이방인 취급을 받지만, 그 아이만은 고국에서 이방인 취급 받지 않고 잘 자라주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이 짠해졌습니다.
인생이 나그네임을 처절하게 체험한 사람들이 고려인들입니다. 고려인은 1863년 구한말 폭정과 가난을 피해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로 이주해 마을을 이룬 한인들의 후손입니다. 그러다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중앙아시아에서 황무지를 옥토로 만들며 정착했는데, 소련이 무너지면서 나라가 나뉘고 경제적으로 힘들어지면서 또 다시 이주하는 삶을 살고 있다고 합니다. 아직도 고려인들의 유랑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나그네 인생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향 땅을 그리워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면 생각나는 곳이 고향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우리가 그리워해야 할 영원한 고향은 이 땅이 아니라 저 하늘에 있습니다.
1. 하늘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은 부모와 형제를 떠나 나그네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야곱을 광야로 내 모셨습니다. 그래서 물질이나 자신의 꾀를 의지하던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으로 바꾸고자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우상과 왕의 권세에 의지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광야로 인도하셔서 나그네 길을 가게 하셨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백성으로 훈련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나그네의 마음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이 세상은 나그네 길이라는 것을 깨닫기를 바라십니다. 잠깐 있다가 돌아갈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야곱은 500킬로나 떨어져 있는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하란이라는 곳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그는 뜨거운 태양빛이 작렬하는 사막을 걸어갑니다. 하루 종일 걸어가는데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해가 지고 날이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유숙하려고 한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누웠습니다. 춥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생각들로 인하여 뒤척이다가 잠에 떨어졌을 것입니다.
12. 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
그런데 희한한 꿈을 꾸게 됩니다. 하늘까지 닿은 사닥다리가 꿈에 보였습니다. 편안하고 아쉬울 것이 없던 때에는 보이지 않던, 신비한 꿈을 꾼 것입니다. 짐승들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깊은 밤에 홀로 광야에서 돌베개하고 자려고 하면, 저절로 기도가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간절하게 기도하고 자니까, 신비한 꿈을 꾸게 되고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야곱이 꿈에서 본 것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사닥다리로 하늘 꼭대기까지 닿았다고 했습니다. 피곤과 외로움에 지쳐서 곤히 잠든 야곱의 꿈에 하늘로 연결된 사다리가 보인 것입니다. 땅만 보고 살아오던 야곱에게 하늘로 이어지는 길이 있다는 사실이 깨달아진 것입니다. 이것은 이 땅과 하늘을 연결하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연결하는 사닥다리가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꼭 발견해야 하는 것이 하늘나라로 연결되는 길이 있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길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것은 이 세상의 고통과 죽음을 이기고 영생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닥다리 타고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을 받고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기 위하여 내려오고 또 성도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드리는 감사와 찬송과 기도와 제물을 받아가지고 하나님 앞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야곱이 꿈에 본 사닥다리는 지금도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이 사닥다리는 육신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만이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 하며, 이 세상을 돌아다니고 모든 일을 하나님께 고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천사들이 우리를 돕고 있는 것을 깨닫고 사시는 은혜가 임하시기 바랍니다. 바로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자리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은혜의 자리요 기도와 찬송을 통해서 하늘문이 열리는 자리가 되시기 바랍니다.
2. 약속의 말씀을 붙들어야 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은 야곱에게 자기를 계시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라고 그 이름을 알려주십니다. 너의 조부 아브라함과 너의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조상대대로 우리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야곱이 만난 하나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4.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그 밤에 나타나신 하나님이 야곱의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동서남북에 편만할 것이라고 축복하여 주셨습니다. 아직 장가도 가지 않는 야곱에게 그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많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야곱의 현실은 장가도 못 간 처지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장가도 못간 노총각인 야곱이 하나님의 말씀을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자 그의 앞길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단번에 결혼문제, 취직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의 외삼촌인 라반의 집에서 장가도 가고 목축도 하게 되어 부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의 어려움을 이기게 하며, 대대로 이어지는 축복의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대를 이어서 자기의 것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이 언약을 받을 때의 현실은 쉽지 않는 형편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믿음을 요구하였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인데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붙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15.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 약속은 가장 중요한 약속입니다. 임마누엘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은 야곱과 함께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어디로 가든지 지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반드시 다시 이 땅으로 인도하시며, 이것을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얼마나 든든한 약속의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믿을 때에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염려가 사라집니다. 마음에 평안함이 찾아들고, 우리의 삶의 복된 인생이 됩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아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기에 믿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해야 합니다.
16.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꿈속의 사닥다리 계시를 받고서야 야곱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게 됩니다. 한마디로 신비한 체험을 한 것입니다. 미지근한 신앙이 꿈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정신이 번쩍 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그곳에서 확실히 체험한 것입니다. 머릿속으로나 습관적으로 믿던 하나님을 체험적으로 확실하게 알게 된 것입니다.
17. 이에 두려워하여 이르되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 하고
야곱은 이제야 하나님의 존재를 실감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것입니다. 야곱이 부모의 그늘에서 안주할 때에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도망자 신세가 되어, 낯선 곳에서 돌베개하고 자던 처량한 밤에 그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 고난의 밤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찾은 것입니다. 이런 것을 통해서 고난이 유익이 됨을 보게 됩니다. 외롭게 힘든 광야의 길에서 야곱은 하나님을 만난 것입니다.
조선시대 숙종 임금 때, 한양에서 일찍 남편을 여의고 두 아들을 키우고 있는 한 어머니가 있었습니다. 생계가 곤란해 남의 집 바느질을 하면서도 알뜰하게 돈을 장만해 아들 학성 형제를 가르쳤습니다. 하루는 비가 내렸는데 빗방울이 떨어지는 곳에서 금속성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상히 여기며 주위를 파보니 큰 가마니에 은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깜짝 놀란 학성 어머니는 한참 생각하다가 그것을 전보다 더 단단히 묻었습니다.
이 일이 있은 후 학성 어머니는 오빠에게 그 집을 속히 팔아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그마한 집을 새로 구입해 전과 다름없이 삯바느질로 생계를 이어 가며 두 아들을 가르친 결과 학성 형제는 훌륭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어느 해 학성 어머니는 오빠를 초대하고 두 아들을 불러 옛날 집에서 은가마니를 묻고 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깜짝 놀라 이유를 묻는 오빠에게 학성 어머니는
“아무런 수고 없이 큰 재물을 얻으면 반드시 뜻하지 않은 재앙이 있을 것입니다. 어릴 때 의식(衣食)이 편하면 학업에 힘쓰지 아니할 것이고, 궁한 것을 알고 고생을 해보아야만 사는 것이 귀하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오빠와 두 아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고 두 아들은 무수한 고생 가운데서도 진실하고 아름답게 산 자기 어머니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더욱 훌륭하게 살았다고 합니다.
편하고 형통한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광야의 고통이 우리에게 유익되며, 하나님을 만나게 합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만난 야곱은 일찍이 일어나 제단을 쌓았습니다. 자기가 베개 했던 돌을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그전에는 세상일에 바빠서 새벽제단을 쌓지 못했던 야곱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는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고 있습니다. 광야의 여정과 같은 우리 인생의 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만남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4. 먼저 신앙을 위하여 걱정해야 합니다.
20. 야곱이 서원하여 이르되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하나님께서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야곱과 함께 하시며 어디로 가든지 지키며 반드시 돌아오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믿음이 연약하여 그곳에서 서원기도를 하는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위하여 염려하여 서원합니다. 사람들이 가장 크게 걱정하는 것이 먹을 것과 입을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고민합니다. 특별히 요즘에는 취직 문제, 또는 경제 문제로 인해 걱정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먹을 것 입을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그분의 은혜와 능력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여우 한 마리가 포도원 옆에 서서, 어떻게든지 그 속에 들어가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울타리가 있어 기어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여우는 사흘 동안 단식하여 몸을 홀쭉하게 만들어, 간신히 울타리 틈을 비집고 포도원에 들어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포도원에 들어간 여우는 맛있는 포도를 실컷 먹은 다음 포도원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이제는 배가 불러 울타리의 틈을 빠져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다시 사흘 동안 단식하여 몸을 홀쭉하게 만들어 겨우 빠져나올 수가 있었습니다. 이때 여우가 말하기를,
"결국 뱃속은 들어갈 때나 나갈 때나 똑같구나!"
인생도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빈손들과 왔다가 빈손들과 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오늘 우리의 고민은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이어야 합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라고 하는 것보다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고민해야 합니다. 부자 되는 것, 성공하는 것보다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을 위하여 염려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우리 기독교가 욕먹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하고 경건한 삶을 살지 못하며, 윤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아 살기 보다는 탐욕과 위선에 빠진 지도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믿음과 은혜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자신의 허물과 죄에 대해서 너무 관대해져서 윤리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오히려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받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믿음과 행함이 같이 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 사도는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인생들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 인생들에게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합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육체의 욕심을 위하여 살다가 그 영혼이 지옥불에 떨어져 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곳이 아니라 잠깐 살다가 떠나가는 나그네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착각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처럼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행복은 욕심을 내려놓을 때에 찾아옵니다.
우리가 돌아갈 본향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 땅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지만, 여기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언젠가 하나님이 부르시면 반드시 돌아가야 합니다. 그 돌아갈 고향, 영원한 가나안 땅인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살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