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오늘은 우리교회가 시작 된지 21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세상을 위해서 교회는 존재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구제가 아닙니다. 착하게 사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그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 구원! 곧 전도입니다.
진정한 교회는 항상 하나님 중심으로 그 말씀 진리만을 증거하며 그리스도의 구원을 선포하여 영혼 구원을 위하여 전심전력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항상 시대적 조류에 초연히 서서 진리를 파수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 경청하는 성도들이 성령님의 감동으로 자신의 죄와 불의를 뉘우쳐 회개함으로 개개인의 심령이 변화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바른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어느 때보다 교회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변화의 전환점에 와 있습니다. 기존의 틀이 아닌 새로운 틀로 교회를 이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작은 교회는 존재하기 어렵습니다. 큰 교회도 어려워 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코로나19 이후, 많은 교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신종 단어가 생겼습니다. 오프라인 교회, 온라인 교회, 오프라인 예배, 온라인 예배, 오프라인 설교,온라인 설교, 오프라인 교인, 온라인 교인 등 경험하지 않았던 일입니다.
이러한 결과 이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경계선이 없습니다. 교인도 내 교인 네 교인 구분이 사라졌습니다. 그렇다면 변화를 꾀한 교회만이 버틸 수 있습니다.
변화된 시대에 버틸 수 있는 무기를 가져야 합니다.
버티는 것이 중요합니다. 버텨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버티겠다고 해서 버텨지지 않습니다. 살아남겠다고 해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이유는 외부 상황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나라 교회들이 교회다운 모습을 많이 보여주지 못하였습니다.
이 모든 것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동안 실추된 교회의 모습을 회복해야 합니다. 교회다운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사실 무엇 무엇답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무엇 무엇답다는 것은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학생답다는 것은 열심히 배우는 학생의 본분에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교회답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교회의 존재목적에 충실하다는 것입니다. 무엇 무엇답다는 것은 또한 정해진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교회다움을 만들어가는 우리 대민성결교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는 교회(20-21)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교회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능력이 임해야 합니다.
많은 현대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길은 우리의 것과 전혀 다릅니다. 모든 가능성을 그 분께로만 향해 완전히 열어 놓으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려 들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로선 알 수 없으니 무엇이든 구하시면 됩니다. 그러면 차츰 하나님의 뜻이 희미한데서 조금씩 명료해지고 결국에는 완전한 영광의 광채를 발견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는 도전 정신을 발휘합니다. 무한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시간과 공간의 벽도 거뜬히 넘어서는 신비를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세기의 전도자 바울은 그리스도 복음을 위하여 아시아와 유럽을 누비면서 온갖 박해와 시련을 겪었지만 지치지 않는 힘을 과시하였습니다. 로마 옥중에서 죽음의 날이 임박해오는 그 시간에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고 하며 불굴의 도전정신을 발휘하였습니다(빌 4:13).
그는 평생 동안 쌓아놓은 실적이 있음에도 아직은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하며 목표를 향하여 더욱 매진한다고 하였습니다(빌3:12)
하나님의 은혜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라고 하셨습니다.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합니다.
하나님의 힘은 강력합니다. 전능하신 창조주 여호와를 당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엄청난 놀라운 능력을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에게 주셨습니다. 그 힘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같이 능력 있게 살아갑니다.
에베소서1장19절에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람들은 돈의 힘을 알기에 돈을 그토록 사랑하고 성도는 하나님의 힘을 알기에 하나님을 그토록 사랑하는 것입니다.
시편18편1절에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세상의 모든 힘은 사람을 파괴하는 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은 사람을 살리는 힘입니다. 그 능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안에서 나타나셨습니다.
그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셨습니다.
본문20절에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역사(役事)하여 그분의 부활과 승천과 하나님 오른편에 앉으심으로 나타났습니다.
능력의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의 표현입니다. 죽음은 인류 역사 수천 년 동안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권세처럼 보였고, 인생의 절망들 가운데서 가장 강력한 절망처럼 보였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가장 큰 절망을 단번에 정복한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의 사건이었습니다.
20절에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이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그의 실존이 사라져 버렸다거나 모른다거나, 없어져 버렸다거나 그의 사건이 끝나 버렸다는 사실이 아님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도 살아 계신 구주요 왕이심을 보여 주는 뜻입니다.
영국의 요한 웨슬레는 1000명밖에 살고 있지 않은 조그만 시골 동네 엡워스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는 천연두를 앓아서 얼굴이 얽었고 폐결핵에 걸려서 몸이 매우 허약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전 세계를 복음화 하는 영적인 지도자가 된 까닭은 위로부터 영적인 힘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어떤 방법에 따라 우리를 훈련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리스도인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께 그때그때 복종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우리로 그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게 하시며, 우리 상황에 적용하여 이 상황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것이 주님의 뜻에 일치하는 것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시며, 순종할 수 있는 힘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볼 때 비로서 진정한 하나님의 능력의 실체가 우리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가지려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한계 상황을 바라보지 말고 그리스도안에서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2.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교회(22)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살아있는 사람이나 동물은 다 머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머리는 몸의 여러 부분들 즉 지체들을 다스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설립자가 되시고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십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다스시리는 교회라야 바른 교회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교회라야 교회다운 교회입니다.
성도 된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마음을 품고 서로 공동체를 이루어 가는 것이 교회의 속성입니다. 만일 같은 공동체가 머리이신 예수님과 같은 생각을 하지 않고 산다면, 그것은 분열이요, 장애자요, 정신 분열자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님 한 분 뿐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머리가 어느 특정한 목사일 수 없고 장로일 수 없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오직 예수님 한 분뿐이라는 사실을 우리 모두 알아야 하겠습니다.
머리는 사령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몸이 머리의 지시를 따르듯이 교회도 항상 예수님을 사령관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지시를 받고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머리가 되시는 예수님께 모든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더구나 교회는 그의 몸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는 예수님의 몸이라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은 오늘날도 교회를 통해 구원사역을 행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예수님의 지시를 받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 행할 때, 신앙생활도 풍성하고 예수님과의 관계도 깊어집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도 개개인이 예수님과 깊이 있는 교제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내가 무엇하기를 원하시는지, 내가 어떻게 하기 원하시는지 나를 향한 예수님의 뜻을 알아야합니다.
우리 신앙과 행실의 유일한 기준인 '성경 말씀'을 청종하며 순종하는 신행일치의 삶을 하나님 앞에 보여 드려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서 교회라는 공동체를 통하여 우리 모두는 바로 이 교회의 머리 되신 주님과 교통하는 신앙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미가서5장4절에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교회의 머리되신 주님은 그의 백성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해 주시되 아주 적극적으로 공급해 주십니다. 그는 아무것도 하는 일 없이 보좌에 앉아 계시거나 괜히 홀을 들고 계시지 않습니다.
그는 서서 먹이십니다. 여기서 “먹인다”는 뜻의 히브리어 원어는 헬라어에도 그와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목자로서 양을 친다, 목자로서 해야 할 모든 일을 다한다는 뜻입니다. 즉 양을 먹일 뿐 아니라 양을 인도하고, 지켜 주며, 보존해 주고, 회복시켜 주며 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 안에서 서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에게 와 있는 이 복음의 권세와 능력을 힘입어 하늘 시민의 도리를 다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교회의 머리시며 왕 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자신의 생명까지 드리는 기쁨과 감사로 매일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시는 부름의 상을 바라보며, 그리스도 예수의 영광의 몸을 입을 때까지, 땅의 일과 지금까지 행한 일을 잊어버리고 날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본받아 그의 죽으심과 부활에 참예하는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 외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고 사는 것 외에 우리에게 생명과 구원은 없음을 알고 날마다 우리의 본 되신 그리스도를 본받는 신실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시대나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면서 쇠퇴하게 되는 근본 원인은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을 무시하고 성령님을 따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이 땅위에 대, 중, 소 교회를 세우시거나 남겨 두시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단지 분류를 위한 편의상의 호칭 방식일 따름입니다.
모든 교회는 이미 그 자체와 존재로서 우주에서 가장 소중합니다. 비록 지상교회와 각 지역에 있는 교회들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때론 연약함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질시를 당하기도 하지만 그 뿌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나라에 닿아 있기에, 또한 그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며 모든 교회의 지체들은 주님의 지체이기에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질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참으로 기독교는 생명이 풍성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목적은 양으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케 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이시요, 예수님은 생명이시니 교회도 생명이 있습니다.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있으면 예수님과 같이 죽어도 영생합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산 사람이 되어야 하겠으며 믿는 사람이 모인 교회는 산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다움을 가지려 하면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있어서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온전히 따라가시기를 바랍니다.
3.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 있는 교회(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
교회는 교회다워야 한다는 것은 성도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위대하고 신령합니다. 그러나 이 교회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면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모습을 잃고 악한 영이 지배하는 장소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본절에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이 세상의 만물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곧 이 땅에 정의와 평화를 심고 하나님의 창조세계가 하나님을 노래하며 영광을 돌리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교회는 깨어 주님의 뜻을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 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가지신 모든 것을 주님의 몸 된 교회에 충만하게 부으셨습니다. 지혜와 능력과 존귀와 부와 영광과 권세, 우리는 원하는 모든 것을 교회를 통해 받습니다.
교회는 모든 복의 근원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 복을 받습니다. 이것이 원칙입니다. 어떤 분은 먼저 내 가정이 잘되어야 교회가 잘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충만을 세상으로 흘러 보내는 파이프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교회를 통해서 가정에 ㅃㅃㅃ뽁을 주시고 지역사회와 그 나라를 잘 되게 하십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를 재발견해야 합니다. 교회는 우리가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크고 놀랍습니다.
우리교회의 권세는 생명을 주는 하나님의 권세를 가졌습니다. 만물이 충만하려면 교회가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만물위에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충만하시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충만은 사랑하는 신부와 함께하는 신랑,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있는 포도나무, 온전한 인격체를 지닌 몸의 머리입니다.
이렇게 해서 교회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충만 입니다. 충만케 하는 생명력이 여기에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충만케 하는 역사가 교회를 통하여 확장되어가고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우리들이 지체의 역할을 잘하는 것이 예수님을 충만케 하는 일이요. 만물을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국가가 잘되고 사회가 잘되고 가정이 잘되려면 성도가 교회에서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최고 통치자로 모시고 그 말씀에 절대로 순종하는 교회가 바람직한 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 외에는 어떤 사람의 권위도, 어떤 형태의 권력도 배격하는 교회입니다. 사람의 잡음이 교회의 회중을 움직이고, 불평과 원망의 소리가 교회에 오염되기 시작할 때! 그곳은 더 이상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며,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가 바로 서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그 사명을 감당할 때, 예수 그리스도의 뜻이 실현되어 이 땅에 충만하게 역사하실 것이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 세상이 부조화와 무질서와 혼란으로 가득 차게 된다면, 그것은 교회가 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보아도 무방합니다.
교회는 이 세상이 사랑과 평화로 이루어진 세상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활동하시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의 손이고, 발이고, 입 입니다.
비록 오늘날 한국교회가 사회적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많은 교계 지도자들이 일탈행위를 일삼고 있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이 땅에서 교회의 역할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교회가 죽으면 나라도 죽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다시 서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내 마음에 가득히 예수님을 모셔드려 우리 속에 교회가 거하고 그 교회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들로 가득 차야 합니다. 즉 내 몸에서 찬송이 충만해야 합니다. 기도가 충만해야 합니다. 봉사가 충만해야합니다. 감사가 충만하고 성령이 충만해야 합니다.
즉 우리 몸속에 예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온 천지에 충만할 때 그 충만함의 충만이 가득할 때 충만한 은혜의 성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 예수님의 사랑이 교회 안에 가득하고, 예수님 자신이 교회를 가득 채우시고 교회를 충만하게 하셔서, 교회에는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동시에 예수님은 당신의 몸인 교회를 통해서, 당신이 충만하게 만드신 그 교회를 통해서 이 세상 역시 충만하게 채우십니다.
바로 여기서 교회의 역할, 교회의 사명이 드러납니다. 그것은 바로 세상을 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인 것처럼 교회는 그로 충만함입니다. 여기에서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는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교회는 예수님으로 충만한 사람들입니다.
‘충만’은 가득 채워진 것을 가리킵니다. 충만은 가득 차서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몸인 교회 안에 충만하신 분이십니다. 교회는 예수님으로 가득 차 예수님이 흘러서 넘쳐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어디를 찔러도 붉은 피가 나옵니다. 바늘로 찔러도 피가 나오지 않으며 몸이 굳은 것입니다. 많이 체하면 바늘로 따도 피가 나지 않습니다. 굳은 몸을 풀어야 합니다.
교회가 예수님으로 충만한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전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것입니다. ‘교육’은 예수님의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봉사’는 예수님의 향기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하는 일은 그 어떤 일이라도 예수님과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과 관련이 없는 일은 잘한다면 그것은 암 세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예수님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님으로 충만한 교회가 되어서 교회의 교회다움이 있기를 바랍니다.
1.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는 교회(20-21)
2.그리스도를 머리로 삼는 교회(22)
3.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이 있는 교회(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