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만족하게 삽시다.(고후3:4-5)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 사람들은 누구나 다 ‘만족’을 얻기 원합니다.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만족함이 거기에 없다면, 큰 고역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만족함이 있다면, 그 어떤 어려운 일이라 할지라도 다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이 만족이란 것은 결코 쉽게 얻어질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로 여기에 우리 인생의 고민이 있고 괴로움이 있습니다.

 

만족한다는 것은 부족함이 없을 때 생깁니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배부르면 만족합니다무엇을 가지려는 사람은 가지려는 것을 소유했을 때 만족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것으로 만족을 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사람이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을 다 가진다고 하더라도 만족하지 못할 것이다. ” 라 하였습니다.

 

오늘의 많은 성도들이 만족결핍증을 앓고 있습니다. 끝없는 육신의 욕망으로 “아직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면서 세상에 많은 것을 쌓으려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만족을 모르는 성도들이 ‘자신의 삶은 욕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단지 최소한의 행복을 위한 필요’라고, 아니면 ‘많이 모아서 하나님의 일에 쓸 것’이라고 항변합니다.

 

쉬운 번역 성경 히브리서135절에 돈이 여러분의 삶을 다스리지 않도록 하십시오가진 것에 만족하시기 바랍니다하나님께서는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않겠다내가 결코 너를 잊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이 소유했든지어디를 가든지무엇을 하든지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진정한 만족을 얻을 수 없습니다여행가구엄청난 기회결혼그리고 많은 자녀들은 확실히 우리를 신나게 하는 행복의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그러나 진정한 기쁨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외적인 상황과는 전혀 무관한 내적 확신에 근거합니다.

모든 것에 앞서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지 않는다면우리는 결코 지속적인 만족을 누릴 수 없습니다.

 

오늘의 세상은 불만투성이입니다. 그러나 성도 된 우리들은 그 속에서도 자족하며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늘 만족과 감사, 찬송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넓혀 가야 합니다.

 

사실 우리의 만족은 이 세상의 것에 의해 좌우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인생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며 섬길 때 옵니다.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이 나를 눈동자와 같이 늘 보호해 주신다는 확신을 가질 때 옵니다. 또한 우리의 만족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할 때 옵니다.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처럼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만족하는” 신앙으로 만족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확신을 가져야 합니다.(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무슨 일이든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용어 사전에는 확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확실히 믿음. 굳게 믿고 의심치 않음. 충만한 믿음(고후1:15). 이런 확신은 언약과 그 언약을 주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 기초할 때(롬4:20-21), 그리고 성령의 증거와 가르침으로 가능합니다(요일4:13; 5:8-10).

 

신앙은 확신하는 지식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되 확실하게 아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확신입니다. 확신이란 확실히 믿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 없으면 우리 신앙은 매우 불안합니다.

 

확신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일반적인 삶에서도 필요합니다.

 

영국이 인도를 지배할 때였습니다.

 

무저항으로 항거하던 간디가 무저항을 외치며 평화 행진 단을 조직하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생명을 건 간디가 맨 앞에 섰습니다. 영국 라디오 방송 기자가 다가와서 같이 걸으며 물었습니다.

 

“당신의 노력은 사실상 1% 성공률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렇게 고생스러운 행진을 하십니까?”

 

간디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반드시 성공의 날이 올 것입니다. 진리가 우리 편입니다. 진리가 졌다는 역사를 보았나요? 나는 우리가 승리할 것을 확신합니다.”

드디어 인도는 영국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확신은 원자폭탄보다 무서운 무기입니다.

 

확신 있는 행동은 보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긍정적 효과를 줍니다. 한 사람의 확신 있는 삶의 태도는 때로 많은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감을 주고 희망을 갖게 하고 죽어가는 사람도 살려냅니다. 그래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확신 있게 살아가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나 한사람의 확신 있는 삶의 모습은 알게 모르게 많은 사람들의 삶에 희망을 주고 감동을 주고 생각하게 하는 효과를 주게 됩니다. 확신은 그만큼 중요하게 긍정적으로 전염시킵니다.

 

그런데 의심은 확신의 가장 큰 적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잠재력을 제한합니다. 그것은 망설임을 초래합니다. 의심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최선을 놓치게 만듭니다.

 

본문4절에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고린도후서4장은 바울이 여타 12사도처럼 예수님 생전의 제자가 아니며 또한 그들로부터 직, 간접의 추천서도 갖고 있지 않으므로 그의 사도 직분과 사도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고린도교회 내의 일부 성도들의 부당한 주장에 대한 바울의 해명을 보도하고 있습니다.

 

분문4절에서 바울은 당시 자신을 공격하던 고린도 교회 내의 거짓 사도들이 내세우는 추천서보다 더욱 확실하고 영구적인 추천서를 지녔다는 그러한 확신을 지녔다는 것입니다.

 

“당시 고린도 성도 중에는 바울의 사도성과 진실성을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고린도후서에서는 바울의 사도성에 대한 변호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막상 우리가 이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아마도 맥이 쭉 풀릴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어떻게 고백합니까? “우리는 확신이 있다!”라고 말합니다.

어떤 확신입니까? 사도로서 부름 받았다는 확신,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또 하나님 앞에서 이 부르심을 따라 살아야 한다는 확신, 바로 그것입니다.

 

그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이해시킵니다. 그렇습니다. 바울이 사람의 됨됨이가 좋아서 비난하는 자들에게 편지를 보내고 계속 교제한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그들이 터무니없는 비난을 해도, 그에게 있는 이 확신이 그를 물러서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옥스포드]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곧 나의 삶을 하나님의 부르심과 연결시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우연히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셨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 이런 확신과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적어도 바울에게는 자신에 대해서 이런 믿음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믿음이 자신에게 찾아오는 위기를 극복하는 비결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확신을 가지는 것은 중요합니다.

 

무슨 일이든 확신이 없으면 자신감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족하지도 않습니다.

 

바울이 확신을 가지고 사명을 감당하였던 것처럼 우리도 확신을 가지고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며 만족하게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스스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성도 된 우리는 만족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 만족하지 말아야 한다고 하십니다.

 

우리는 무슨 일이든지 스스로 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사람은 스스로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만물의 세계 속에서 분명히 사람의 우수성이 부각되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너무 약하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지혜로운 것 같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조차 통제하지 못하는 약함이 있습니다. 이성적이고 정의로운 것 같지만 온갖 부정과 부패를 저지르기도 합니다.

 

사람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사소한 것에도 마음을 다칠 수 있고 쉽게 깨져 버리는 질그릇 같은 존재입니다. 나이가 들었다 해도 마음은 어린아이 같이 연약합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대단한 것 같지만 무능력합니다. 노력한 만큼 성과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낙심하기 쉽습니다.

 

성도들에게 찾아오는 죄악은 자신이 무능력 때문에 옵니다.

 

사탄의 유혹에 빠지는 것도 무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도 무능력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섬기지 못하는 것도 무능력 때문입니다.

 

사람의 원초적 무능력, 죄인의 욕망과 한계를 망각하고 “불가능이란 없다!”고 계속 큰 소리 치다가 큰 코 다칠 날이 닥칠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두 길이 있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길이 있고, 스스로 할 수 없는 길이 있습니다. 사람뿐만 아닙니다. 만유에게 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만유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일과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정해 주셨습니다. 이것은 그 누구도 바꿀 수가 없습니다.

 

바울은 이와 같은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에 게는 스스로 어떤 것을 이룰 수 있는 능력이 없었습니다. 지식,은혜,신의,능률, 어느 면을 보더라도 혹 자신의 사역을 잘 감당 하였지만,이것은 그 자신 속에 있는 그 무엇 흑 그에게 속한 그 무엇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핸드릭슨 주석]

 

전도서8장8절에 “바람을 주장하여 바람을 움직이게 할 사람도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사람도 없으며 전쟁할 때를 모면할 사람도 없으니 악이 그의 주민들을 건져낼 수는 없느니라.”

 

여기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람을 주장할 수 없고, 죽는 날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전쟁이 덮쳐오면 모면할 자가 없고 재난의 날에 피할 자가 없습니다. 악한 일을 하고 살아날 길도 없습니다. 악에게 넘겨진 자들을 악이 구해 내지도 못합니다.

 

인생은 누군가에 이끌려서 이 세상에 와서 누군가의 기운에 이끌려 살다가 누군가의 손에 이끌려 그 정하시는 곳으로 가게 됩니다. 누군가의 주장에 의해서만 되어져 가는 것, 이것이 인생입니다.

 

사람은 죽음의 날을 연기시킬 수 없습니다. 모든 권세를 지닌 왕이라도 자기 신하들 중의 가장 고귀한 자의 수명을 연장시킬 수는 없습니다. 의사도 약사도 죽음을 막을 수 없습니다. 우리의 날들은 정해져 있어서 지정된 시각이 닥쳐오면 누구도 죽음의 일격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누구도 자기 목숨을 마음대로 하지 못합니다. 누구도 꺼져가는 자기 숨결을 붙잡지 못합니다. 누구도 자기 죽을 날을 마음대로 주장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사람의 한계를 아는 것은 누구보다도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요즈음 같은 사회 분위기에서 “나는 할 수 있다”라는 말을 강조해도 시원찮을 판에 “나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을 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나는 할 수 있다”는 말이 패기 있고 멋진 말처럼 보이고, 또 때로 어느 정도까지는 괜찮아 보이는 성과를 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기까지일 뿐입니다.

 

나에게 대단한 능력이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바로 함정입니다. 내가 용쓴다고 해서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내 뜻대로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굳이 “나는 할 수 있다”는 외치고 싶다면, “그리스도 안에서(in Christ)”라는 단서를 붙여야 합니다(빌4:13).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을 이루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우리들은 다만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도구와 통로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9장20절에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대해서 말 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라고 부르시면 피하려 하지 말고 가야 합니다. 그러나 죽음을 앞에 두고 적극적으로 맞이하지 못하고 끌려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피하고 피하다가 결국에는 파도에 휩쓸러 가듯 어쩌지 못하고 끌려갑니다.

 

이러한 일이 인생의 한계입니다. 그러므로 만족할 수 있는 일이 생길 때도 스스로 만족하지 말고 하나님 안에서 만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오늘 ‘만족하게 삽시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그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다고 본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58장11절에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 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만족케 하십니다.

 

즉, 흡족하게 하게 하시고, 부족함을 채우사 차고 넘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만족케 하시니 우리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를 만족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풍성한 샘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돈의 인도나, 권력의 인도나, 쾌락의 인도가 아닙니다. 그것들의 인도를 받으면 물 댄 동산 같지 못합니다. 오늘날 언론을 통해 그것에 뿌리를 내리고 산 사람들의 비극적인 모습을 얼마나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좋은 것과 풍요와 부요함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샘물 같은 하나님은 은혜를 받고,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풍성함을 잃지 않고 나그네에게 넉넉한 물을 제공하여 무성한 나무를 만들어 풍요로운 과실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받되 일시적인 인도가 아니라 항상 인도를 받습니다. 골짜기에서도, 정상에서도, 초장에서도, 돌밭에서도 인생의 어떤 상황에서도 인도를 받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에 풍성하십니다.

 

그런데 사실 인생은 불만과 부족함의 연속입니다. 재물이 부족하고 건강이 부족하며 지식과 지혜가 부족합니다. 명예가 부족하고 권력이 부족하며 사랑이 부족합니다. 그 외에도 온갖 부족함 투성이 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빈곤감을 느끼고 행복감을 갖지 못하는 이유는 절대적인 물질의 부족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다른 사람과의 비교에서 오는 상대적인 빈곤감일 뿐입니다. 그래서 남들보다 좀 더 갖겠다는, 지금보다 좀 더 소유하겠다는 탐심, 욕심 때문에 만족감을 갖고 살지 못합니다.

 

빌립보서4장19절에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가정에서 부모가 자기 자녀의 필요를 살핍니다. 자녀는 요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상황을 살피고 있는 것은 부모입니다. 부모는 자녀가 자기의 필요를 보지 못할 때 조차도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 어떤 부모보다 더 잘 보살핍니다. 그 분은 우리의 아버지이시기에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채우시리라고 확실한 어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바울은 어떤 방식으로 하나님이 채우실 것인지는 알지 못합니다. 우리도 그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일상적인 방법으로 채우시기도 합니다. 건강해서 직장 다니고 일해서 먹고살 수 있는 것들을 채워 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손으로 옵니다. 때로는 우리가 비 일상적이라고 말하는 기적적인 방법으로 채우시기도 합니다. 조지 뮬러의 일기를 읽어보시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놀랍게 역사 하시는 방법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주시기 위해서 때로는 거둬 가시기도 하십니다.

 

우리는 살면서 하나님의 방법을 조금은 모두들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채우시기 전에 비우시지만 결국 채우시며 또한 넘치도록 채우십니다. 그것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성도 된 우리는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면 만족할 수 없지만 하나님을 보고 예수님을 보면 만족합니다.

 

역대상29장14절에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

다윗은 사람이 바라보고 기대하는 모든 복들이 다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들이 앞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려면 이것이 꼭 필요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하나님이 대단한 하나님이셔야 합니다. 강함과 권능과 영광과 성취가 하나님께 있고, 어떤 적도 물리치고 어떤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승리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위엄도, 주권도, 부귀영화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몸도, 건강도, 시간도, 가정도, 재주와 은사도, 물질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진정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확신해야 합니다.

 

성경은 재산을 모으고 생계를 꾸리는 능력까지도 하나님께로 말미암는다고 말합니다(신8:18). 우리의 모든 소유가 빌려온 것임을 이해하게 되면 세상 물질에 대한 애착도 놓을 수 있고, 날마다 받는 은혜에 깊이 감사하여 열린 마음과 열린 손으로 거리낌 없이 나누며 살 수 있습니다.

이같은 사실을 알고 실천하는 성도는 만족하게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는다는 것을 믿고 있는 것으로 만족하고 나누어줌으로 만족하시기를 바랍니다.

 

1.확신을 가져야 합니다.(4)

2.스스로 만족하지 말아야 합니다.(5)

3.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5)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