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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성한 생활(골 3:12-17)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사람마다 추구하는 것이 있다면 풍성한 삶일 것입니다.


본문 골로새서3장16절에 “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여기 '풍성하다'의 원어는 명사, 형용사, 동사 합해서 약 63회 가까이 성경에 기록되고 있으며 이와 유사한 말까지 합하면 더 많습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쓰인 말은 헬라어 '푸루시오스'인데 "부한, 부요한, 풍성한"(눅14:12, 약1:10, 딤전6:17)을 의미하며, 마태복음 19장 23-24절, 27장 57절에는 부자라고 기록하고 있고, 골로새서 3장 16절에는 풍부하게, 풍성히, 후회, 넉넉하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로 많이 사용한 말은 헬라어 '푸루테오'인데 "부요하다, 부요하게 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부자가 되다, 치부하다"는 내가 노력해서 부자가 된다는 뜻이 강하게 내포되어 있습니다(눅12:21, 롬10:12, 고전4:8, 계3:17, 고후8:9).


세 번째는 헬라어 '푸루티조'인데 이는 "부요하게 하다, 풍요롭다"(고전1:5, 고후6:10, 고후9:11), 부요하다는 의미입니다.


네 번째는 헬라어 '푸루토스'인데 재산, 재리(마13:22, 막4:19), 풍성한 삶(롬2:4, 고후8:2), 풍성한 것(골1:27 = 부요, 골2:2 = 재물, 히11:26, 계5:12, 계18:17)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복을 우리에게 주셨으며 성경 말씀 안에는 무려 32,500가지의 복의 약속이 들어있습니다.
풍성함은 우리들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농사를 짓는 농부에게는 가을에 풍성한 열매가 맺기를 바라고 있으며 사업하는 사업가들에게는 연말 정산 때 매출 결산이 많아지기를 원할 것입니다.
또한 직장인들도 연봉이 많아지기를 매년 기대할 것입니다.
하나님 역시 성도들에게 풍성하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부족하거나 가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 모두에게 모든 일에 부요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과 은혜를 베푸심에 풍요로우십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롬 10:12)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3) 하였습니다.


부요하신 하나님, 풍요로우신 하나님은 여러분들이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이 피곤하고 곤고할지라도 낙심하지 않고 더 나은 내일을 바라보며 풍요롭게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많이 가졌다고 풍성한 삶은 아닌 줄 믿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풍성함은 많이 소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고 기뻐하며 감사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풍성함입니다. 가난과 환란의 현실을 뛰어넘어 진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을 소유하고 사는 사람이 진짜 풍성한 복을 받은 것입니다.


【비누공장을 운영하던 한 중년 남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회사가 경영난을 겪을 때도 십일조는 철저히 드렸습니다. 한번은 직원이 비누 만드는 기계를 너무 오래 가동시키는 바람에 물에 둥둥 뜨는 `엉터리 비누'가 생산 되었습니다.직원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사장은 비누를 들고 묵상에 잠겼습니다.그 때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목욕탕에서는 물에 뜨는 비누가 훨씬 좋다.이 상품을 그대로 판매하자” 사장은 이 비누의 이름을 `아이보리'(Ivory·상아)라고 지어 시장에 내 놓았습니다.이 비누는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고 그는 거부가 되었습니다.이 사람의 이름은 할레이 프록터.미국 신시내티에 있는 프록터 갬블비누회사의 설립자입니다】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항상 감사할 일이 생깁니다.불평하는 사람에게는 불평할 일만 생깁니다.


그러므로 어려운 환경만 바라보고 불평하지 말고 감사를 잃지 않음으로 풍성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감사와 긍정에 익숙한 삶은 풍성한 삶을 시작하는 출발점입니다. 이것이 안 되면 결코 풍성한 삶을 맛볼 수가 없습니다.


풍성한 삶은 은혜 받은 감격 속에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삶속에서 어떤 환경에서든지 감사가 넘쳤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2장7절에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물질을 풍족하게 소유했다고 해서 모두가 복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기쁨과 감사는 보다 더 귀한 복입니다. 우리는 돈 없음을 한탄하고, 배우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만, 사실은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이 더 부끄러운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감사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제일의 재산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감사와 긍정에 더더욱 익숙한 삶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성도의 삶에 있어서 어떠한 것에 풍성해야 할 것인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는 믿음과 사랑의 교제가 풍성해야 합니다(16)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면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사람은 세상을 혼자서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모두 한 곳에 모여서 서로 대화하고, 교류하고, 서로 돕고 의지하면서 살아가도록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외딴 섬에서 혼자 살아가기를 원치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모두 이웃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웃과 함께 살아가는 데는 몇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일반 사람들에게는 일반적인 의무가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보다 더 특별한 의무가 주어져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교제가 풍성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믿는 사람들이 서로 이끌어주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붙잡아 주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서로 웃으며 이웃하면서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마음들이 갈기갈기 찢겨진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보면 사람들이 갈등이 많고, 불화가 많고, 감정이 많은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마 이것은 이 시대의 특징일 것입니다.


사회를 보아도, 정치계를 보아도, 어떤 모임에 가 봐도, 심지어는 교회들을 찾아가 보아도 거기에는 모두 불화가 있고, 갈등이 있고, 상한 마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집집마다 가보면 정상적인 가정이 드물 정도로 마음들이 상한 채로 살아가고 있는 가정들이 많습니다.


오늘 이 시대는 모두들 긴장을 하고 살다 보니까 신경들이 모두 날카로워져서 서로 화합을 하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두들 위로를 받고 싶어 하고, 도움을 받고 싶어 하지 먼저 위로하고 인내 하려고를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시대에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협동하는 생활입니다. 그리고 화평을 만들고 평화를 조성하는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갈등이 많은 곳에 위로를 심고, 분쟁이 많은 곳에 평화를 조성하고, 불화가 많은 곳에 안정을 조성하는 지혜 있는 사람들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일본에서 실험한 내용입니다. 밥을 해서 2개의 병에 각각 담은 후에 한 병을 향하여 오고 가면서 [고맙습니다]라고 말하고 다른 한 병을 향하여는 ‘못된 놈 망할 놈’하면서 차별을 했습니다. 초등학교 학생이 한 달 동안 매일 병 앞을 지날 때마다 그렇게 했는데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고맙습니다’는 소리를 들은 밥은 발효가 되어서 누룩처럼 향기가 났고 ‘망할 놈’ 소리를 들은 밥은 새까맣게 부패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수백 가정이 실험을 했는데 똑 같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 특이한 실험을 한 가정이 있었는데 그 집은 병 한 개를 더 만들어 아무 말도 안하고 쳐다보지도 않고 내버려두고 무시했습니다. 그런데 그 밥은 ‘망할 놈’ 소리를 들은 밥보다 더 빨리 썩어 버렸습니다. 】


믿음의 말은 사람을 살립니다.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세상에서는 상처를 받더라도 교회 안에서는 치유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교회는 경쟁하는 곳이 아니고 서로 붙잡아 주고 서로 격려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다른 사람 위에 올라서기 위해 다투는 곳이 아니고 서로 이해하고 권면하는 곳입니다.


2.위로 향하는 감사와 찬양이 풍성해야 합니다.(16)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16)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감사하면서 산다는 것입니다.


감사는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너무나 만족하여 기쁨으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기쁨이 넘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눈물로 드리는 감사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눈물을 흘리며 드리는 감사입니다. 고민과 근심과 괴로움 속에서도, 몸이 아프고 어려운 가운데서도 그 동안 주님이 내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생각하며 눈물로 감사하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이는 기쁨으로 드리는 감사보다 더 위대한 감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한 병원에서 혀 암환자를 수술하기 위해 암세포가 퍼진 혀의 일부분을 절단해야 했습니다. 이 환자는 수술을 하게 되면 이후로부터 말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의사는 수술에 들어가기 전에 환자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때 이 환자는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감사합니다”라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의 감사는 남과 비교하여 자신의 처지가 더 낫다고 생각할 때 감사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럴 때 문제가 되는 것은 나보다 훨씬 잘된 사람과 비교하다 보면 감사는커녕 도리어 원망불평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 이전보다 지금의 형편이 매우 좋아졌을 때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까지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습니다. 누구나 가난하게 살았기 때문에 그때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저절로 감사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지금의 형편이 좋아진 사람은 감사하게 되지만 이와 반대로 지금의 형편이 더 어려워졌다면 감사가 잘 나오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과 비교하여 하게 되는 감사는 일시적인 감사가 되기 쉽습니다.


또 원하는 것이 충족되었을 때 감사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먹고 싶을 때 먹었기 때문에, 사고 싶은 것을 샀기 때문에, 가고 싶은 곳에 갔기 때문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런 조건적인 감사는 그때뿐입니다. 시간이 지나가면 감사하는 마음도 없어집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의 감사는 영원한 감사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감사의 이유가 많겠지만 그 중에서도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들이 죄사함을 받고 구속함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이 또한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더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이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로마서 8장28절의 말씀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은 억울하지만 지금은 고생이 되고, 지금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지만, 이로 인해 나에게 더 큰 축복을 주실 것이라고 하는 믿음으로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의학전문지에 기고된 전문의사의 글이 있습니다. 같은 조건에서 같은 치료를 했는데 치료가 빠른 사람과 치료가 늦은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치료가 현저하게 빠른 사람들은 긍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의사를 신뢰하는 사람, 병원의 지시를 잘 따르는 사람, 신앙을 가진 사람, 매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반면에 치료가 잘 안되는 사람들은 부정적인 사람, 의사를 무시하고 지시를 잘 안 따르는 사람, 신앙이 없는 사람, 원망과 불평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


감사는 환경과 조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신앙적으로 성숙한 사람만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똑같은 음식을 먹어도 감사함으로 먹으면 영양이 되지만, 불평불만으로 먹으면 독이 됩니다. 화가 났을 때 밥 먹으면 소화가 안 됩니다. 신생아들도 성질이 대단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아이들이 젖을 빨면서 분내면 설사합니다.


우리의 가정도 감사함으로 들어가면 천국이지만, 감사함이 없으면 지옥과 같습니다(시편100:4).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시100:4)


우리의 일터에서도 감사함으로 일하면 능률이 오르지만, 불평과 원망으로 일하면 힘 만 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봉사도 감사함으로 하면 기쁨이 되고 은혜가 되지만, 마지못해서 억지로 하는 봉사는 서로에게 원망만 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감사를 앞세워 해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먼저 마음으로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5절에서 "감사하는 자가 되라" 는 말씀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라" 그런 뜻입니다.


오늘날 현대인이 상실한 감정 가운데 하나가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1장21절에 보면 범죄 한 사간의 마음 상태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범죄 한 사람은 감사할 줄 모릅니다. 그 마음에 감사를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입술로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6절 말씀에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감사함을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되 입술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주님을 찬양할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불평을 말하는 것보다 축복을 헤아리는데 더 많은 시간을 갖고...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감사의 찬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삶의 모습들은 더 많은 감사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또한 물질로 감사해야 합니다.


본문 17절 말씀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하였습니다.
잠언 3장9-10절에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주가 넘치리라" 고 하였습니다.
출애굽기 23장19절에서는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 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물질로도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물질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목숨 다음으로 귀히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귀히 여기는 물질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물질을 드리면 우리의 마음도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21절 말씀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대개의 경우, 물질을 안드리는 사람보다는 드리는 사람이... 마음과 정성을 다하게 되고 신앙이 성장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제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시간들이 즐어듭니다.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위로 향하는 감사와 찬양이 풍성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믿음의 행함이 풍성해야 합니다(17)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주 예수 이름으로 하고”


말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많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은 참으로 드뭅니다. 참 믿음은 행함이 있는 믿음입니다.


야고보서2장18절에는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고 합니다.
우리의 행함이 우리의 믿음을 보이는 증거가 됩니다. 아무리 믿음이 깊어도 행함이 없으면 그 사람에게서 믿음을 볼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로 인정받았습니다(창 15장). 그러나 아브라함의 믿음의 진수는 이삭을 드림으로 보여줍니다(창 22장). 아브라함이 이삭을 드리는 그의 행함은 그의 큰 믿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사무엘상 18장15절에 “사울이 다윗이 크게 지혜롭게 행함을 보고 그를 두려워하였으나”라고 합니다. 다윗이 행하기 전에는 사울이 그의 지혜를 알 수 없습니다. 다윗은 행함으로 자신의 지혜를 보였습니다.


다윗은 행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이전에 다윗이 골리앗을 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골리앗에게 담대히 나아가면서 다윗이 말합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이 말은 그의 믿음입니다.


그리고 그는 말만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물맷돌을 가지고 골리앗에게 나아가 그를 넘어뜨렸습니다. 그의 행동 그 자체가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행동으로 하나님께 대한 그의 믿음을 보인 것입니다. 그는 행동하는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마태복음 5장16절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행동으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 보여줄 것은 착한 행실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행위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선행은 값비싼 향유보다 존귀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탈무드에는 “향유는 부자만이 살 수 있는 것이지만 선행은 가난한 자나 부자나 누구나 다 할 수 있다”고 합니다.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연로한 분이나 젊은 자나,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 선행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보일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이란 신조의 총합도, 처세술도 아니며 특정사고 방식도 아닙니다. 믿음은 생활방식이며 실제적인 삶을 통해서만 올바르게 구현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행동하는 사람 간디는 말했습니다. “신념이 행동으로 바뀌지 않는다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세상은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행함으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4)


하나님의 말씀이 풍성히 거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사람이고 예수님의 사람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행하는 사람에게는 예수님의 향기가 피어납니다. 하나님은 부자입니다. 부요하시고 풍요롭습니다. 주의 말씀과 은혜가 풍요로운 사람은 생각과 말이 풍요롭고 삶이 풍요롭습니다. 없어도 넉넉하고 부족해도 부요합니다.


참으로 신앙생활에서 믿음대로 행함은 참 중요한 덕목입니다. 그래서 신앙인은 세상에서 행함이 수반되어야 합니다. 이 행함이 부족할 때 세상으로부터 도전을 받습니다. 그런데 이 행함은 구원받는 일에 필수적인 요건은 아닙니다. 행함은 믿음의 결과일 뿐입니다. 땅에 한 알의 밀알을 땅에 심으면 싹이 돋아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얼마 있으면 그 새싹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립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일입니다.


그렇듯이 내가 믿음을 가지게 되면 자연적으로 열매가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그 열매가 바로 행함의 열매입니다. 믿음을 가지게 되면 사람으로 하여금 반드시 내적으로, 삶으로, 생각으로, 뜻으로 변화를 이루게 되어 있습니다. 그 변화 이후에는 반드시 변화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열매가 곧 행함입니다. 그래서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야고보서에서 야고보는 행함을 강조했고 로마서에서 바울은 믿음을 강조했습니다. 그렇다고 이 성경이 서로 상충되는 것은 아닙니다. 야고보는 행함이 없음을 개탄하고 행함을 강조한 것이고 바울은 믿음이 있으면 행함은 자연스럽게 열매로서 나타날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죽은 씨를 심으면 절대로 싹이나 열매가 맺히질 않습니다. 반드시 살아있는 씨를 심어야 싹도 나오고 열매도 맺히게 됩니다.


우리의 믿음이 정말 살아있다면 그리고 내속에 진정한 성령의 감화가 주어져 있다면 내 삶 속에서 변화를 이루고 감격이 주어지고 행함이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그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에게 자꾸만 헌신하고 봉사하고 행하라고 강조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습니다. 내가 살아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냥 있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인가 하고 싶고 베풀고 나누고 무엇인가 도와주고 싶습니다. 이렇게 행함은 믿음의 열매로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행함이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1.다른 사람에게로 향하는 믿음과 사랑의 교제가 풍성해야 합니다(16)
2.위로 향하는 감사와 찬양이 풍성해야 합니다.(16)
3.안에서 밖으로 향하는 믿음의 행함이 풍성해야 합니다(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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