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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막9:38-42)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40]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세상 일 에는 중요한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 인생은 자신의 삶에 보다 더 중요하고 좋은 쪽으로 선택하고 자신의 삶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자신의 삶을 위해 결단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칼로 베듯이 선택이나 결단이 날카로운 사람도 있고, 도대체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도록 두루 뭉실하고 우유부단한 사람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택이나 결단의 기준이 자신의 경험이나 가치관에 두는 사람도 있고, 오로지 부를 축적하는데 기준을 두는 사람도 있고, 명예나 권세에 기준을 두는 사람, 일에 기준을 두는 사람, 그리고 신앙에 기준을 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살아가면서 정말 중요한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중요한 것을 잊고 사소하거나 변두리의 것을 더 중요한 것처럼 여기며 살 때가 많아 있습니다.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돈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돈 버는 것에만 목적을 두고 물불 가리지 않고 일하는 경우가 참으로 많습니다. 마음의 부자로 살기보다는 재물의 부자로 살고 싶은 욕망이 훨씬 더 강합니다.

 

외모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다 아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것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얼굴과 몸매를 관리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열정과 돈을 투자합니다.

 

건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명입니다. 그러나 생명의 풍요와 건강한 생명으로 사는 것보다는 육체적인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 더 많은 노력을 합니다.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몇 시간씩 투자해서 운동을 하고, 식사량을 조절하면서도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기 위해서는 투자하지도 않고 별로 관심도 없습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우선순위를 정해 사는 것은 중요합니다.

 

노를 젓는 것보다 묶인 로프를 푸는 것이 먼저 이듯이 먼저 해 야 할 일이 있고 나중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당장의 필요를 따라 움직이게 되면 급한 일들을 먼저 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굉장히 바쁘게 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들은 놓치고 실속 없이 삽니다. 급한 일보다 더 중요한 일들을 먼저 하는 사람은 속도가 느린 것 같고 답답해 보이지만 중요한 일들을 놓치지 않고 결국 승리하는 인생을 삽니다.

 

웹스터 사전에서는 ‘우선순위’란 ‘절박함, 중요함, 가치 따위에 근거하여 우선하는 순서’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우선순위를 두고 살고 있습니까? 돈입니까? 건강입니까? 아니면 신앙생활입니까? 우리들의 생활을 보면 자기가 어떤 것을 우선순위에 놓고 살아가고 있는가를 한 눈에 알 수 있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어떠한 환경에 처해도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힘든 형편 처지가 되어도 하나님 앞에 믿음이 변함없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을 알고 신앙생활해가시기를 바랍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교훈 받도록 합니다.

 

1.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38)

 

“요한이 예수께 여짜오되 선생님 우리를 따르지 않는 어떤 자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를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우리는 마음이 넓은 사람을 큰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 통이 크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넓은 것입니다.

 

아무리 인물이 좋고 공부를 많이 했어도 속이 좁으면 작은 사람입니다. 시어머니가 큰마음을 가져야 며느리가 살기가 편하지 사소한 일로 삐딱하면 가정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남편이 넓은 마음을 가져야지 사소한 일로 오해하고 삐지기나 하면 아내가 살기가 힘듭니다.

 

마음의 크기는 잴 수 있는 단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유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마음이 좁은 사람을 밴댕이 속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성질이 얼마나 급한지 갑판에 올라오자마자 기절해 죽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좁은 마음과 옳지 못한 생각의 배경은 '이기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거나 이웃의 입장에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지 자기 이익을 최우선으로 하고 사는 사람은 넓은 마음과 올바른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잠언4장23절에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마음은 생명의 근원입니다. 넓은 마음을 가질 때 무한한 생명력이 나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넓히고 이해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서로의 차이를 인정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작은 이견(異見) 앞에서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면 지혜가 생기고, 그런 마음으로 반대자도 품에 안으면 리더십을 얻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져야 됩니다.

 

열왕기상4장29절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지만 그것 가지고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바닷가에 모래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얼마나 넓은 마음을 주셨으면 바닷가에 모래같이 하셨다고 했을까요? 우리도 이와 같이 넓은 마음이 있어야 됩니다.

 

본문에서 갈릴리 지역을 지나면서 제자들은 어떤 한 사람을 만납니다. 그가 제자들의 눈에 띈 것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그가 자신들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었다는 점에 마음이 몹시 불쾌했습니다. 이에 그들은 그가 더 이상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 쫓아내는 일을 못하게 막았습니다.

 

사실 주님은 유대인들의 구원만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주님은 모든 민족의 구원을 원하십니다. 주님이 성전에 들어가셔서 성전을 성결하게 하시면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실 그 말은 유대인들을 화나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은 성전에 들어올 수 없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들에게는 감히 이방인들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의 공격을 받았던 이유 중에 하나가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는 거짓말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성전에는 이방인들에게 주는 경고문이 적혀 있었다고 합니다. 이방인이 성전에 들어오면 죽어도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은 온 세상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이방인들에게 좁아져있었습니다.

우리 주님은 유대인의 구원만을 위해서 이 땅에 오시지 않았습니다.

 

모든 민족들이 구원을 받기 원하십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보면 하늘의 예배가 나옵니다.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은 유대인들 가운데 144,000명도 있었지만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찬양을 합니다. 우리 주님은 유대인의 경계를 넘어서 모든 민족이 구원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넓은 마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 무슨 일을 할 때도 좁은 마음으로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넉넉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영광도 생각하고 이웃의 유익도 생각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때로 우리는 고난을 통해서 순수해질 수가 있습니다. 때 묻었던 마음들, 거짓된 것들, 교만했던 것들, 이런 것들을 마치 욥이 말하는 것처럼 불속에 집어넣어서 정금같이 나오게 하는 것처럼 우리의 신앙을 순수하게 해줍니다. 더 귀한 것은 연약한 나를 강하게 훈련해서 그리스도의 강한 용사가 되게 하십니다. 고통을 두려하지 않고 담대히 우리는 나아갈 수 있도록 용기 있게 만들어주십니다.

 

나에게 넓은 마음을 주십니다. 옛날에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것들을 훈련을 통해서 이해하게 되고 용서하게 되고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관계성을 넓혀 가는 그런 사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하는 일이 단순히 밥 벌어먹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 일이 나에게 고통이 됩니다. 좀 더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자기 일에 대한 보람과 긍지를 갖고 일을 해야 합니다. 똑같은 일을 하면서도 그 사람의 마음가짐에 따라서 가치가 달라지고 의미가 달라지기도 합니다.

이처럼 세상 일 에도 마음을 넓히는 것은 중요합니다.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마음을 넓히는 것입니다.

 

특별히 복음 전하는 사명을 받은 우리들은 편협한 마음이나 배타적인 자세를 버리고 넓은 마음으로 불신자들을 향하여 복음을 전하시기를 바랍니다.

 

2.금하지 않아야 합니다.(39-40)

 

“예수께서 이르시되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

 

요한이 어떤 마을로 복음 전하러 가던 중에, 많은 사람이 웅성거리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왜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를 보았습니다. 이때 귀신들린 한 소년이, 땅 위에 구르면서 소리 지르고, 자기 몸을 뜯고 있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으로부터 받은 권세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이 미처 손을 쓰기 전, 낯선 사람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감히 당신이 어떻게 우리 예수님의 이름을 쓸 수 있소. 당신은 예수님으로부터 아무런 권세도 받지 못한 사람이니, 그 이름을 사용하지 마시오”라고 했다고 주님께 보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금하지 말라, 내 이름을 의탁하여 능한 일을 행하고, 즉시로 나를 비방할 자가 없느니라,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자는, 우리를 위하는 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당파적인 태도를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선별된, 선택된 몇몇 사람들이나 특정한 민족을 위해 세상에 오신 분이 아닙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독점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같이 교제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성경말씀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탄과 싸우는데 우리와 일치한다면 그 사람이 일부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더라도 그들과 손을 잡을 줄 알아야 하고 서로 돌아보아야 합니다.

 

요한은 자칭‘예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제자’라고 할 정도였는데, 그런 그가, 축사행위를 독단적으로 금하였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요한이 그렇게 했다면, 다른 제자들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전형적인 배타주의입니다. 내 성과는 인정받아야 하고, 남이 하는 일은 무시해야 하는 저급한 우월주의입니다. 요즘 시대에도 특정 단체나, 집단을 통하지 않으면 인정할 수 없다는 배타주의는 어느 곳에서나 만연해 있습니다. 개교회주의가 심화되면서 교회도 예외는 아닙니다.

 

정말 믿음이 좋을 것 같은 요한이 왜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벌였겠습니까? 요한은, 다른 사람이 귀신을 내 쫓는 것을, ‘주의 이름으로’했다고 보고 했는데,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행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차이가 무엇입니까?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을 단순히 부르는 행위로 본 것이고, 예수님은, 귀신을 쫓은 그 사람이 믿음의 권위로 자신의 이름을 사용했다고 하신 것입니다. 요한은, 제자들만이 주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특권을 누려야 함을 당연하게 여겼고, 만약 귀신을 쫓아내려면 누구든지 자신들의 그룹에 들어와서 해야 한다는 오만한 발상을 한 것입니다.

 

사실 무슨 일이든지 내가 기준이 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남을 이해할 수 없고, 마음을 넓힐 수 없고, 자기 집착에 빠져 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좋으면 좋고 내가 나쁘면 나쁜 것이라는 자기중심적인 삶으로 살아가면 절대 화목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많은 원수를 만들어 불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마음에 맞지 않아도 얼마든지 옳을 수 있고 좋을 수 있습니다.

나를 따르지 않아도 얼마든지 주의 일을 하는 주님의 귀한 일꾼일 수 있습니다.

 

우리 성도가 아니어도 주님의 귀한 일꾼일 수 있고 나와 생각이 달라도 얼마든지 주님께 사랑받는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넓은 마음을 가져야 하고 내 중심이 아니라 주님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 중심으로 살아갈 때 화목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믿음의 근본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을 행하는 것에 찬성할 수 없습니다. 말년에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의 행동을 지지하는 행위에 대하여 강경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행하는 것과 똑같이 행하면서도 신학적인 문제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 마음을 용서하고 관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가 속한 종파만이 오직 진실한 교회라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위험스러운 일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우리들과 꼭 같지 않다고 하여 성결교이든 장로교이든 침례교이든, 감리교이든, 루터교이든, 오순절 계통이든, 성공회이든 배척할 정당한 근거는 없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극도로 분열되어가고 있습니다. 교계가 점점 분열되어가는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주된 이유는 포용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빌 4:5)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원수로 생각지 말고 주의 일에 협력하는 자로 생각해야 합니다. 특별히 타종교인도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그들을 원수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한 형제자매가 되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끼리는 편 가르기를 하지 말고 서로 격려하고 마음과 힘을 모아야 합니다. 은사와 사명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것 때문에 분쟁하지 말고 협력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복음을 위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 것이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3.물 한 그릇이라도 주어야 합니다.(41-42)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성도된 우리는 하나님께 값없이 구원을 받은 존재입니다. 성도가 하나님께 구원을 받고 은총을 얻은 것은 잘나고 완전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추악함에도 불구하고, 결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용서해주시고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이것을 생각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웃에 사랑을 베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정한 행복과 기쁨은 소유에 있지 않고 나누어주는데 있습니다. 나누어주는 삶이 오히려 복되고 의미 있는 삶입니다.

 

사실 생각지도 않았는데 가끔 다른 사람에게 흐뭇한 대접을 받으면,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습니다.

 

‘대접’(待接)은 ‘예를 갖추어 대우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고급 식당에서 식사하고 싶어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좋은 재료로 만든 음식과 분위기 좋은 인테리어도 좋지만 자신을 귀족처럼 대접해주는 최고의 서비스가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41-42절에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면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여기서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면 반드시 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의 뜻은 예수님의 사역에 간접적으로 참여한 경우일지라도 상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사역에 동참하는 것은 직접적으로 하던지 간접적으로 하던지, 양으로 하던지 음으로 하던지 관계없이 참여하기만 하면 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너그러우심입니다.

 

물 한 그릇이라도 주는 행위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상과 연결되는 현장이 바로 작은 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행위가 실천되는 일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일상은 한자상으로 ‘반복되는 바쁜 삶에서 사람으로서 행할 도를 행하는 것’이라는 특이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사람으로 마땅히 행할 것’이 세속과 분리된 종교적 영역이 아니라 ‘매일의 반복되는 삶의 현장’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도 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바로 ‘냉수 한 그릇’ 대접하는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냉수 한 그릇'을 제공하는 것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가진 것이 없어도, 또 남을 도와줄 만한 그 어떤 힘이나 건강이 없어도 ‘냉수 한 그릇을 대접하는 일은’ 누구나가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엇인가 가지고 있어야만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생각은 틀린 생각입니다. 내게 있는 것을 주면 됩니다.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단 하나! 그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그를 보고서 긍휼히 여기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면 됩니다.

 

사실 흘러가는 냇물을 그대로 두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예수님 때문에 예수님을 위해서 물 한 그릇을 떠 주면 그것까지도 상 주셔서 다 갚아주시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짜가 하나도 없습니다. 행한 대로 다 값아 주십니다. 주님을 위해서 땀 흘리고 봉사하고, 드리면 찬물 한 그릇까지라도 상급으로 다 바꾸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마태복음25장40절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하시고”

 

섬김은 우리가 항상 만나고 보는 사람들에게 실천해야 합니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늘 만나는 사람들을 사랑의 마음으로 섬기시기 바랍니다. 그중에서 특별히 힘없고 약한 사람들을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말 한 마디라도 따뜻하게 하고 물 한 그릇이라도 정성으로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섬김의 삶입니다. 섬김은 여기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성도 된 우리가 중요하게 여겨할 것은 남을 섬기고 대접하는 일, 약한 자에게 물 한 그릇을 주는 일입니다.

 

1.넓은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38)

2.금하지 않아야 합니다.(39-40)

3.물 한 그릇이라도 주어야 합니다.(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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