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어떻게 살아가느냐는 중요합니다.
사람이 무엇인가를 이루어 나가려면 그것을 이루어 나갈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있어야 잘 할 수 있고, 힘이 있어야 잘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사람들로 믿음으로 살고, 말씀대로 살고, 행복하게 살려면 역시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은 능력입니다.
우리 앞에 어떤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다가오던 그 일들을 잘 이겨 나가고, 감당해 나가는데도 역시 힘이 있어야 합니다. 힘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어떤 일이든 잘 해 나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는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도 있습니다.
벌들이 꿀을 만들 때 항상 예쁘고 향기 나는 꽃에서만 꿀을 채취하는 것은 아닙니다. 양봉하시는 분들의 말을 들어보면 대부분 꽃에서 꿀을 채취해 오지만 어느 벌은 시궁창에서, 재래식 화장실에서, 죽은 동물 시체에서 채취해 오는 성분이 있는데 그것들이 모여서 꿀이 된다는 것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있고 기쁘고 감사한 일들이 모여서 인생이 됩니다.
우리들이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이 열등감, 컴플렉스(Inferiority Complex)에 빠지게 되면, 유능한 사람도 무능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에게 좀 모자라는 열등이 문제가 아니라, 열등하다는 생각이 더 문제입니다. 나는 뛰어난 것도 없고, 가진 것도 없다는 생각은 ,자기를 폐인 만들기에 충분합니다.
성도 된 우리들은 열등의식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나는 무능하지만 우리와 함께 하신 하나님은 무능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우리는 능력 있는 유능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지 않으면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습니다.
돈의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나의 힘으로 사는 것도 아니고 하나님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을 섬기며 그 하나님을 의지하며 그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실로 우리 마음속에 의심, 염려, 근심, 걱정이 있는 동안 능력 있게 살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근심하고 있는 제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면 근심하지 아니하고 능력 있게 삽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은 그날그날 받으셔야 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을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가며 광야에서 지낼 때 하나님은 그들에게 만나를 주셨습니다. 매일 매일 주셨습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그날 먹을 것을 그날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날마다 주시는 일용할 양식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능력도 매일 매일 받으셔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 밀어닥치는 환란을 이겨 능력 있게 살아갑니다.
능력 있개 사는 길은
1.유력한 사람을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6-7)
“[6] 유력하다는 이들 중에 (본래 어떤 이들이든지 내게 상관이 없으며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저 유력한 이들은 내게 의무를 더하여 준 것이 없고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
대개의 사람들은 어려움을 만나면 무엇인가를 의지하려 합니다.
나는 아무것도 의지하는 것 없이 산다’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어려움을 만나면 사람을 의지하기도 하며 막연히 알지도 못하는 우상을 찾아 섬기며 의지합니다.
하지만 우리들의 인생길은 세상의 어떤 귀인이나 권력자나 결정하는 것도 아니고, 사주팔자나 운명론이 우리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더욱이 죽음이후의 영생의 문제는 더욱 그렇습니다.
세상의 사주팔자나 운명론에서는 툭하면 ‘귀인’을 강조합니다(‘동쪽으로 가면 귀인을 만난다’는 식의 말들). 그러나 성경은 귀인이나 권력자나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아무리 그들이 힘이 있다 해도 호흡이 끊어지면 그날로 그들의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소멸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사람들의 도움을 받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들을 의지하는 것이 잘못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의지할 때에는 항상 한계가 있음을 감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사람을 의지합니다. 자기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잘 관리했다가 자신이 필요한 때 동원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입니다. 성도들에게서도 비슷한 모습이 보일 때가 많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마음이 커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합니다. 그렇게 세상 사람들과 같은 방법으로 살아가다 보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사람을 의지하는 자의 결국은 실망과 좌절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아야 할 것은 그들은 진정 도움의 근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힘이 없는 자, 능력이 없는 자를 의지하고 사는 것은 불안하기 짝이 없고 평안이 없습니다.
혹 나에게 어려움이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찾는다면 그는 사람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물질로 해결하려고 합니까? 물질이 그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권력을 끌어들여 해결하려고 합니까? 그의 우상은 권력입니다. 무슨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데, 그의 명예나 권위를 내세우려고 합니까? 그에게 있어서 그의 명예나 이름이 우상이 되고 있습니다.
육신의 건강이나 해박한 지식이나 풍부한 경험도 믿을 것이 없습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제왕이라고 해도 그가 죽으면 한 평의 땅에 누워야 합니다. 한 시대를 풍미하던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사람도 죽으면 당일로 다 소멸합니다. 한 시대를 떠들썩하게 만든 위대한 정치가라고 하여도 그가 죽으면 그의 생각들이 다 소멸합니다.
다윗도 한 사람이 힘이 되는 줄 알고 사람을 바라보았고, 사람이 도움이 되는 줄 알고, 사람을 의지해보았지만, 사람들은 아니었습니다.
아침에 좋게 말하던 사람이 또 저녁이 되면 전혀 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어제는 정말 친절하게 대하던 사람이었는데, 오늘 만나보니 달라졌습니다. 내일이 되면 원수로 대할 것만 같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심중에라도 하나님을 의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내 실력을 의지하고 사람을 의지하고 재물을 의지하는 것도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사람의 도움이나 받고, 사람을 의지하고 유력한 사람이 무어라고 한마디 하면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능력 있는 사람이 되고, 인내하면서 두려움 없이 하나님만을 소망 삼고 살아야 합니다.
성도 된 우리들이 능력 있게 살아가는 길은 유력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함께 해야 합니다.(8-9)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성도 된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함께 하는 것은 능력 있게 사는 길입니다.
전도서4장9절에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그들이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어느 마을에서 가장 무거운 썰매를 끌 수 있는 건강한 말을 뽑는 대회가 열렸습니다. 그 대회에서 1 등을 한 말은 2,0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었습니다. 그리고 2등을 한 말은 1,8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었습니다.
이 두 말의 주인들은 만약 두 말이 힘을 합하면 얼마만큼의 무게를 끌 수 있을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두 말이 함께 썰매를 끌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5,500kg이나 되는 썰매를 끌 수가 있었습니다.
때때로 우리는 자신만이 그 일을 할 수 있다는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과 나누어 함께 하기를 거부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는 혼자서 끙끙거리면서 일을 합니다. 그러나 그 방법은 참으로 비능률적인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더불어서 일하기를 권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우리의 짐은 가벼워지며, 우리는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전도서4장11-12절에 “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우리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서로 합치고 모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는 말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일은 협력이 필요합니다. 신앙 공동체도 서로가 선한 협력자가 될 때 서로가 유익하고 건전한 생활을 영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기도하고 아론과 훌은 그 기도의 손이 내려오지 않게 붙들어 올렸을 때 그 전쟁을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사도가 된 것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되었고, 그의 전한 복음은 사도들로부터 듣거나 배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계시로 받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자신이 다른 사도들보다 특별한 사도라거나 자신의 복음이 다른 사도들의 복음과 다르거나 우월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신의 소명과 이방인에게 전할 복음 메시지의 확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혼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곁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직분을 맡기시는 일을 하십니다.
베드로에게는 유대인의 사도직분을 바울에게는 이방인의 사도직분을 맡기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교회 안에서도 직분을 맡기시므로 열심 으로 그 직분을 잘 감당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은 능력을 주십니다. 맡은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십니다. 작은 일 맡은 자에게는 작은 능력, 큰일 맡은 자에게는 큰 능력을, 각종 일의 종류에 따라서도 그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의 사람에겐 하나님의 능력을 주시므로 담대함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바울은 베드로의 사역을 인정할 뿐 아니라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 그리고 바나바의 사역을 존중해주었습니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인 복음 전파를 위해 우리는 더불어 손을 잡아야 됩니다.
아무리 재능이 탁월한 사람이라도 혼자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영적인 연결고리가 되어야 됩니다. 복음화의 과업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성도들이 함께 감당해야 합니다.
본문 9절에서 교제의 악수는 강력한 복음 전파를 위한 악수로 만남에 대한 복, 상호 인정, 용납을 의미합니다.
베드로, 야고보, 요한은 사도 중에 대표성을 가졌지만 그 마음의 울타리를 뛰어 넘어서 자신들은 유대인을 위한 사도이고 사도바울은 이방인을 위한 사도임을 알고 서로 교제의 굳은 약속을 하였습니다.
나 자신의 만족을 위한 예배와 봉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과 교회 본질의 회복을 위해 연합하여 거룩한 연결이 이루어져야 됩니다.
오늘 우리도 서로 서로 인정해 주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이해하고 인정해 주는 사랑이 필요한 것입니다.
내가 빨강색을 좋아한다고 다른 색깔을 미워하거나 배척해서는 안 됩니다. 나에게 장점과 단점이 있듯이 그 사람에게도 장점과 단점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수용하고 이해하고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 길 에도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일에 독불장군은 없습니다. 함께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함께 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삶이 행복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아름다운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성도 된 우리들이 능력 있게 살아가는 길은 함께 하는 것입니다.
3.힘써 행해야 합니다.(10)
“다만 우리에게 가난한 자들을 기억하도록 부탁하였으니 이것은 나도 본래부터 힘써 행하여 왔노라
부슨 일을 하든지 대충해서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가져올 수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힘써 행해야 합니다.
교회의 역할은 여러 가지입니다.
사랑과 섬김, 예배와 훈련, 교제와 친교, 새 가족 양육과 전도, 지도자 양육 등등이 있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예수님을 보여 주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세상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행동을 통하여 예수님을 드러내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 있는 교회의 역할입니다. 예수님의 몸인 교회는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이미 생명을 다한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에서 우리를 안타깝게 하는 소식들은 바로 맛 잃은 소금들의 이야기입니다.
교회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가 세상에 있는 이유는 세상을 위해서입니다. 세상이 하나님을 알게 하고, 세상이 하나님을 믿게 하고, 그래서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세상이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인도하고, 세상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고 충만하게 되도록 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요즈음 변화의 속도가 워낙 빨라서 전자제품 같은 것은 가장 새것이고 좋은 것 같은 데 몇 개월 안 있어서 금방 구 모델이 되어 버리고 중고품이 됩니다.
사람도 태어나서 성장하지만 곧 늙습니다. 50대가 되면 기억력이 아주 퇴보하고, 60대가 되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노쇠함이 급속도로 옵니다.
하지만 자기 몸을 잘 관리하고 훈련하는 사람은 60이 넘어도 배가 나오지 않고, 체중도 늘지 않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은 청년 때보다는 장년 때가 더 낫고, 장년 때보다는 노년 때가 더 풍성하고 빛이 납니다. 평범하게 살면 미래보다 현재가 더 좋지만, 열심히 사는 사람은 미래가 현재보다 더 좋습니다. 열심히 사는 사람의 미래는 점점 더 좋아집니다.
성도 된 우리는 불신 이웃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고 성도다운 삶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저들은 우리를 보면서 “과연,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우리와 달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하셨습니다.
성도들은 불화와 다툼이 있는 곳에 들어가서 화해의 분위기를 만들어낼 사명이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믿지 않는 가족이나 동료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다르다는 말을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선한 일에 힘쓸 때 전도의 문이 열립니다.
경험에 의하면, 예수님을 믿는 가족이나 친척 가운데 본이 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전도의 문이 막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불신 이웃들 가운데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유를 자기들 집안의 평판이 좋지 않는 기독교인 아무개 때문이라고 핑계 대기를 좋아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 믿는 아무개가 어떻기 때문에 믿을 생각이 없다”는 식입니다.
성도들이 신앙 때문에 불신 가족이나 친지로부터 비난을 듣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신앙 외의 일로 비난을 들어서는 안 됩니다.
본문에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사랑의 빚을 부탁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루살렘의 가난한 자들을 도와 탈라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부탁을 거절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이 지나도록 애를 써서 예루살렘 교회 돕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롬 15:22-27; 고전 16:1-12;고후 8:1-15).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주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없다고 사도 요한은 말합니다.(요일 3:17).
그러기에 성도들은 바울이 그랬듯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나누어 줌의 제사를 드리는 삶을 살아서 일상생활 속에서 산 믿음을 가지고 있음을 증거 해야 합니다.(히 13:16; 약 2:15, 16) [카리스 주석]
에베소서2장10절에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디도서2장14절에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렇습니다. 교회는 서로 사랑하고 선을 행하는 그런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이것을 제대로만 수행한다면 진실로 달라집니다. 또 이 사회가 밝아집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는 이러한 모습을 통해서 칭찬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는 자들은 서로를 살피고 돌아보는 것이 마땅합니다. 특히 성도 중에 어떤 시험에 빠져 있는지를 돌아보고 관심을 갖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다면 형제나 이웃에게 사랑과 선행을 베풀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는 방법입니다(딛2:10).
로마서12장13절에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성도의 쓸 것을 공급’하려면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느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나누는 것을 물질에만 국한 시키지 말아야 합니다.
물질이 필요한 사람은 물질로 돕지만 돌봄이 필요한 사람은 보살핌으로 돕고 격려가 필요한 사람에게 용기를 주며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같이 울어주고 기도가 필요한 사람은 기도로 도와야 합니다. 이것이 필요를 따라 나누며 돕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렇게 사는 것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보다 못한 이웃을 구제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바라고 계십니다. 구제는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일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선한 삶을 삽니다.
선한 삶으로의 전환이 곧 그의 믿음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선한 삶은 구원받음의 ‘증거’입니다. "믿음이 그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믿음은 선행을 동반하며 그 선행이 믿음을 온전케 합니다.
성도 된 우리는 하나님이 길을 여시고 뜻을 깨우쳐 주시면 힘써서 행동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때 여호와 이레가 준비되고, 자존감 넘치고, 당당한 행복 가득한 성도의 삶, 즐겁고 기쁘게 사는 성도의 삶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성도 된 우리들이 능력 있게 살아가는 길은 힘써 행하는 것입니다.
1.유력한 사람을 의지하지 않아야 합니다.(6-7)
2.함께 해야 합니다.(8-9)
3.힘써 행해야 합니다.(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