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성도 된 우리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만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인생의 본분이며 행복이며 복입니다.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섬김이 중요합니다.
마태복음22장37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신앙생활은 마음공부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귀중하게 보시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신명기8장2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사야29장13절에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하나님뿐 아니라 우리 사람들도 마음을 아주 귀중하게 여깁니다. 우리 사람들 사이에서도 마음이 떠난 사람은 친구도 아니고 애인도 아니고 부부도 아닙니다. 마음이 떠난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부모도 아니고 자녀도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떠난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교회에게서 마음이 떠난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성도가 아닙니다. 마음이 가까운 사이가 친구이고 애인입니다. 마음이 가까운 사이가 진정한 의미에서 부부이고 부모이고 자녀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에게 마음이 가까운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교회에게 마음이 가까운 사람이 성도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지 말고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여 무슨 선을 행하든지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알고 충성하며 헌신하며 봉사하는 우리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을 향하여야 합니다.(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마음을 모은다는 것은 무엇을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사람은 바라보는 것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기에 무엇을 바라보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잘 되는 옆 사람을 바라보되, 자신을 비참하게 보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과 상황만 바라보게 되면 실망할 일들이 많습니다.
사실 바라본다는 말은 그냥 쳐다보는 것과 다릅니다.
나와는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나 사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듯 쳐다보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말을 전하거나 무엇을 보여줄 때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기 위해 ‘주목하세요’ 하는 것처럼 ‘시선을 집중 한다’ ‘주목 한다’는 말입니다.
마태복음6장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가르치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 나라에 둘 수 있는 길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소중한 것에 마음도 둔다는 것을 아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향하는 것, 이것을 ‘관심(觀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몸이 있는 자리보다 마음이 있는 자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또한 바라보는 것은 어떤 것을 향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본문 1절에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눈이라는 것은 우리들의 마음에 영향을 끼치는 가장 소중한 기관입니다. 만일 눈으로 나쁜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은 악하여지도록 되어 있고, 더러운 것을 보면 그 사람의 마음은 더러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더럽고 악한 마음은 놀랍게도 그의 눈으로 더럽고 악한 것들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므로 눈과 마음은 서로 연결된 상태에서 더욱 악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그 와중에 그 사람의 성품은 마귀를 닮아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눈은 선한 것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선한 것을 볼 때 그 마음 역시 선하여집니다. 마음이 선해지면 그 마음은 계속 선하고 거룩하고 깨끗한 것을 보고 싶어 합니다. 그러면서 눈과 마음이 연결되어 더욱 선한 영향을 주고받습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는 성도는 풍랑 많은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는 변화무쌍한 세상에서 초연합니다. 그는 성난 파도를 바라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세상 연락에 마음 빼앗기고 있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소망이 되시고 기쁨이 되시는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눈을 들어 주를 바라보면 말씀을 들을 수가 있습니다. 우리의 귀를 보면. 참으로 신기합니다. 눈이 가는 곳을 향하여 귀가 열려있습니다. 왼쪽을 바라보면 왼쪽에서 나는 소리를 듣게 되어 있고, 오른쪽을 바라보면 오른쪽에서 나는 소리를 듣습니다. 뒤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면 뒤를 돌아서 바라볼 때에 그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어거스틴이 어느 날 밤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기도하다가 잠이 들었습니다. 그는 꿈결에 사랑하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어거스틴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의 아들아, 너는 나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어거스틴이 대답했습니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만을 원합니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간절히 갈망하는 마음 안에서 가장 영광을 받으십니다. 올바르고 도덕적으로 의롭게 살아왔지만 하나님을 향해 깨뜨려지지 않은 마음보다는 죄 가운데 살아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 대해서 상하고 깨뜨려진 마음 안에서 하나님은 더 큰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사람들의 위대한 업적을 향하여 시선을 두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그 모든 일들을 가능하게 하였던 그 사람의 마음에 눈길을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본문2절에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이것은 내 눈을 나의 주인 되신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들을 순종하려는 준비된 마음 자세를 뜻하며, 또한 전능하시고 무한한 은혜를 베풀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손이 나를 보호하고 공급하고 지켜주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성도 된 우리는 영의 눈을 들어 우러러 하나님을 바라 보아야합니다. 구원을 받은 성도는 신령한 꿈을 가진 사람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오늘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인해 어렵고 힘든 때를 그냥 걱정과 불안으로 보내거나, 허송세월로 무기력하게 보내거나, 그냥 의기소침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지금이야말로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입니다. 내 마음이 ‘이기적인 일들’을 추구하고 있지 않았는지, 내 마음이 무가치한 일들을 좇고 있지 않았는지, 자신의 삶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너무 쫓기면서 살아왔습니다. 지금껏 이렇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새롭게 설정해야 할 때입니다. 성도 된 우리들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에서 오는 평안과 담대함으로 세상을 이기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마음 모으기를 힘써 믿음의 사람으로 남은 시간들을 최선을 다해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2.확신이 있어야 합니다.(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하나님의 일은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바울처럼 자신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서 부름 받았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로마서8장30절에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여기서 “또한 부르시고”가 소명입니다. 부르심에는 일반적인 부르심과 특별한 부르심이 있습니다. 수고한자를 부르심은 일반적인 것이며(마 11:28), 특별한 부르심은 직분을 주심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임과 특별한 부르심까지 받았습니다. 이것이 복입니다.
그리고 부르신 후에 칭의 의 복 을 주십니다.
“또한 의롭다 하시고”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하게 하신 복입니다. 칭의란 믿음으로만 가능합니다. 돈, 지식, 직위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칭의 끝은 “영화롭게”입니다.
영광이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일과 다스림에 참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사 부르시고 의롭게 하신 것은 놀라운 복입니다.
디모데후서3장14절에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하였습니다. 말씀이 말한 예수님! 말씀이 말한 확신으로 힘차게 거침없이 나서면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소명의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도 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하나는 구원을 위해서 부르십니다. 이 부르심에 예! 하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구원을 얻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명자로 부르십니다. 구원받은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하나님을 위해 살도록 사명자로 부르십니다.
그 사명은 각기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목사로, 선교사로, 교사로, 찬양자로, 어떤 사람은 섬기고 봉사하는 일로, 구제하는 일로, 어떤 사람은 위로하는 일로 부르십니다.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사명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누구나 다 사명을 받았습니다.
그 어떤 일을 위해 부름을 받았던지 그 사명을 다 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창세기12장에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부르심을 받고, 본토 친척 아버지 고향을 떠나 갈 바를 알지 못하고도 길을 떠났습니다. 출애굽기3장에서도 애굽에서 신음하는 이스라엘을 위해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마가복음1장에는 갈릴리 해변에서 고기를 잡던 베드로와 그 형제를 불러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셨습니다.‘하나님의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습니다.(롬11:29)
하나님의 부르심의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부르심의 방법 보다는 부르심에 대한 깨달음과 확신입니다. 그럴 때라야 우리는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어떤 부르심을 입었습니까? 지금 하고 있는 일이나 내가 생각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훌륭한 요리사가 되고 싶은데, 복음 전도자로 부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이것 만 하겠다, 혹은 그것은 못한다는 것은 교만한 것입니다. 항상 여러 길이 있음을 인정하고, 길을 열어두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좋아하고,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실까? 를 생각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만을 위한 잘못된 열심은 모두를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 열심은 모두를 살릴 수 있습니다.
소명은 결코 높은 자리와 많은 재산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직분에 충실하고 있을 때 부르셨습니다. 그릇이 크기와 종류가 다르듯, 사람도 저마다 쓰임새가 다릅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목적은 단 한 가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입니다.
성도 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디모데후서1장9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는 우리의 행위대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불렀다고 하였습니다.
본문4절에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바울은 거짓 사도들이 내세우는 추천장보다 더욱 신뢰하고 확산할 수 있는 새 언약의 사도로서 추천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이 자신의 사도직에 관한 가장 확실한 천거서라고 주장하면서 그 확신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고 선언 합니다.[호크마 주석]
즉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받은 부르심에 대한 확신적 선언입니다.
성도 된 우리도 구원받음과 소명자로서 부르심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 합당한 삶을 위해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3.스스로 만족하지 않아야 합니다.(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의 소원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지 가운데 가장 강력한 의지가 행복에 대한 의지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면서 행복을 느끼게 되는 근본적인 상태는 만족입니다. 만족이 있으면 행복하고 불만이 있으면 불행해집니다.
그러므로 행복은 어떤 외적인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만들어 내는 감정입니다. 만족이란 마음에 흡족한 상태로서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하게 느끼는 감정입니다.
만족하게 사시기를 바랍니다. 만족하게 살면 행복합니다.
성공한 사람, 많이 가진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 아니라 만족하게 사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역사상 많은 철학자들과 도를 닦는 자, 지혜자들이 욕심을 버리고 만족하게 살 것을 주장하며 가르쳐 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도를 닦고 욕심을 비우려고 해도 타락한 사람의 본성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은 만족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원래 사람을 창조 하실 때는 완벽하게 만족한 상태였습니다. 그러나 범죄 한 이후로 사람은 공허해지고 불완전해지고 비교하게 되고 불만하게 되고 존재적으로 만족할 능력을 상실해 버렸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자신이 만족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이 처한 환경을 탓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환경을 탓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만족은 무엇을 추구하고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있는 것들을 추구하고 사랑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의 행동이 그 사람만의 독특한 삶의 향기가 됩니다.
물론 이 향기는 냄새로 맡을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의 삶에서 느낄 수 있는 향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구는 착하다” 또는 “선한 사람이다”, “악한 사람이다.”, “부지런하다”, “게으르다”, “타고난 일꾼이다”, “눈치꾼이다” 등등. 이러한 인생의 향취는 그 사람의 삶의 만족도에 따라 달라집니다. 만족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표징은 행복감과 기쁨과 감사입니다. 이처럼 만족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향취가 사람을 감동하게 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100% 만족하며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부족하고 저것이 있는 사람은 이것이 부족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많이 있어도 늘 부족하다는 생각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늘 가난한 마음으로 불만족스럽게 살아가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은 있는 것도 다 빼앗기고 맙니다.
성도 된 우리의 진정한 행복은 성적순도 아니고, 소유의 많음에 있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두신 행복의 문은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에 만족하는 것과 감사와 순종입니다.
왜냐하면, 주어진 삶에 만족하는 것이나 감사나 순종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의 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에게 풍성하게 주어집니다.
빌립보서4장6-8절에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우리가 진정으로 만족한 인생을 살 수 있으려면, 나의 나 된 것을 다 버리고 빈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물론, 물질과 건강의 복도 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들과는 비할 수 없을 정도로 귀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님을 믿는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거저 공짜로 베풀어주시는 사랑입니다.
사실 이 세상사람 아무도 만족을 찾지 못합니다.
도대체 인생이란 그 자체로서는 만족을 느끼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만족이란 하나님께 속한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 나라 건설에 두고, 자기의 일체를 하나님께 맡기고 사는 사람은, 바울과 같은 ‘만족함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것이 하루하루 고역이 아니라 살맛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못해, 어쩔 수 없어서 힘들어하며 괴로워하며 사는 삶이 아니라 정말 행복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본문5절에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우리 인생의 만족은 끝이 없습니다. 그것은 곧 욕심 때문입니다. 아무리 스스로 만족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만족이 아닙니다. 곧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사실을 믿으며 하나님께 마음을 모으시기를 힘쓰시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을 향하여야 합니다.(4)
2.확신이 있어야 합니다.(4)
3.스스로 만족하지 않아야 합니다.(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