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행복이란 사전적 정의는 “생활에서 기쁨과 만족감을 느껴 흐뭇한 상태.”라 합니다.
성도 된 우리는 다른 행복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구원받은 것보다 더 좋고 행복한 것 없습니다. 신앙의 결국은 구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택함을 받아서 구원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 안에 기쁨과 즐거움이 흘러넘치게 됩니다. 구원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즐거워집니다. 예배가 기쁘고 봉사가 힘들지 않습니다. 구원의 즐거움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하박국3장18절에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박국 선지자가 기뻐하는 이유는 구원을 허락하신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통하여 우리에게 근원적인 기쁨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즐거움을 찾아가 보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에는 진정한 즐거움과 기쁨이 없습니다.
솔로몬이 전도서를 통하여 우리에게 이미 충분히 알려주었습니다. 세상의 즐거움은 한 순간이고 오래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복을 누리면 근원적이고 영원한 기쁨을 누립니다.
구원의 복은 영생의 복입니다. 한없는 복입니다. 영원히 멸망치 않고 사는 영생의 복입니다(요 3:16).
사람이 행복하지 않고는 기뻐할 수 없습니다. 구원은 행복한 일입니다. 구원의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은 기쁨의 사도이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기뻐하였고 성도들에게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시편73편28절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 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살아갈 때에, 만족이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오는 행복은 잠시 머물겠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영원합니다. 세상에서 없어질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고 그것에 집착하다 보면, 영원하고 진짜인 행복이 멀어집니다. 과거의 행복에 묻히지도 말고, 내 것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오지 않은 행복을 기다리지도 말고, 지금 주어진 은혜에 감사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참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1.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입니다.(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 하나님의 자녀된 것, 의인된 것, 성도된 것, 천국시민된 것, 영생을 얻은 것, 이것들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자랑할 것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사람이 자기 죄 때문에 지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 아니하고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의롭게 되고 하늘나라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도 우리의 행위나 무슨 공로 때문이 아니라 철두철미하게 믿음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여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천국에 들어갑니다.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습니다.
성경에는 아브라함 언약, 모세언약, 다윗언약, 등 많은 언약이 있지만,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입니다. 그것은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3장14-15절에 “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지혜는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그 어느 누구에게나 골고루 주어지는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람 그 어떤 공로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2장8-9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우리의 의로움이나, 노력이나, 어떤 자격에 의한 것이 아닙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 이 세상 어떤 기관이나 단체에서 받은 선물보다 가장 가치 있고 권위 있는 선물이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장 값진 선물이고, 가장 자랑스러운 선물입니다.
우리가 받은 이 구원의 선물은 비록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것이고, 다른 어떤 기관이나 누구에게서도 받을 수 없는 귀한 선물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서만 받을 수 있습니다.(행 8:20)
로마서5장21절에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라”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죄는 사망 안에서 왕 노릇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죄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것은 우리는 사망에서 벗어나서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5장8절에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빛입니다. 어두움은 무지와 부도덕을 가리킵니다. 음행, 온갖 더러운 것, 탐욕, 단정치 못함, 어리석은 말, 상스러운 농담, 불결 등에 속했지만 이제는 주님 안에서 빛입니다.
우리들은 빛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므로 빛 안에 들어왔을 뿐만 아니라, 빛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14).
어두움과 반대로, 빛은 지식과 도덕성을 말합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거룩과 의, 선과 진실로 단장되었고 오직 도덕적 삶을 추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빛의 자녀처럼 행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으로 구원 얻은 자,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옴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사는 자입니다.
믿는 모든 자들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 자신의 선하심과 긍휼하심과 은혜를 드러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선물하시고, 그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았습니다.
구원받은 것은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 안에 들어오셨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내 안에서 살고 있으면 예수님이 들어오실 수가 없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습니다. 죽었다는 말은 내려놓았다는 말보다 훨씬 더 결단을 요구합니다. 버린다는 말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자기는 없어져야 합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것을 최고의 행복을 알고 구원받은 자녀로서 행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2.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10)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누구와 함께 사는 것은 행복과 불행이 달려 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잘 만나야 하고 아내는 남편을 잘 만나야 합니다. 사치와 허영이 심한 아내를 만난 남편은 행복 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술주정뱅이가 심한 남편을 만난 아내는 행복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누구를 만나 함께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욥기서1장21절에 “이르되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사람은 누구도 혼자 태어나 혼자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동안은 누구도 누군가와 끊임없이 함께 어울리고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기에 사람의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이 땅에 살면서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말하고 누구와 함께 하는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삶의 성패를 좌우할 뿐 아니라 영원한 세계 죽음 저 편까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잘나고 못난 것이 행복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며 그 사람이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이기주의시대입니다. 나 혼자 살아갑니다. 남이 나를 아는 것을 귀찮아합니다. 나도 남에 대해서 알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닙니다. 바로 무관심입니다. 현대의 특징이 무관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함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시편133편1절에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사람은 서로 돕고 사는 관계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가난하게 살았지만 이웃 간에 사랑이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농경문화에서는 혼자서는 살 수 없기에 서로 도와주며 살았습니다. 모내기, 밭갈이 등 힘든 일은 서로 돌아가면서 일을 해주고 어느 한 집에서 잔치를 하면 동네 사람들이 함께 도와주고 만약 어떤 집에서 불이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소방관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과 함께 하는 것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더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귀한 복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복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우리의 모든 것에서 모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성도 된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는 것은 결코 우리의 일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보여주기 위해서 태어났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우리는 인생의 본질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왜 사는지, 왜 슬픈 일들이 일어나고, 괴로운 일들이 끊이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평생을 근심과 걱정 속에서 헤매고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심으로 인생의 본질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삶이 어렵다고 느껴질 때마다 내 마음에 나도 모르게 분노가 일어나고 또 짜증이 나고 한숨이 나고 원망이 불평이 일어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은 복 있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인생은 아무리 어려워도 즐거움이 있고 기쁨이 있고 역전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이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유명한 복음 전도자인 존 길모아 목사님이 마을을 지나다가 좌판을 벌이고 물건을 팔고 있는 노인을 만났습니다. 전도하려고 말을 건넵니다. "안녕하세요? 요즘 장사는 잘 되시는지요?" "예, 그럭저럭 잘 됩니다." "예수를 믿으십니까?" "물론 믿지요. 예수 믿고 구원받는다는 것은 정말 위대한 일인 것 같습니다." 그때 길모어 목사님이 다시 말했습니다. "예수 믿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 있습니다." 노인은 놀라면서 "예수 믿는 것보다 더 위대한 일이 무엇입니까?" "예, 그것은 나를 구원해 주신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누구와 동행하느냐는 것은 중대한 문제입니다.
그러나 더욱 더 중요한 문제는 죽음을 넘어 영원히 동행할 대상자를 만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하여야 합니다. 인생길을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걸어가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8장 20절에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세상 끝날 까지 예수님이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사람들이 떠나고 환경의 어려움이 다가오고 문제가 생겨도 우리 예수님은 절대로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매일 매일 언제든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어려움에 처했을 때나 즐거운 일이 있을 때나 예수님은 떠나지 않으시고 함께 하시며 우리를 붙들어 주시고 의의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승리의 삶을 사는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직장도 그리스도와 함께, 가정도 그리스도와 함께, 교회 생활도 그리스도와 함께, 사회생활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며 그래서 우리의 삶 전체가 다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어 있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죄인 인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살게 된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대신하여 죽었으며 또 그것을 우리가 시인하고 고백하기 때문입니다.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3,서로를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11-14)
[11]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13]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14]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성도의 생활은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먼저 덕을 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덕이란 사람 삶에 나타나는 모든 종류의 바람직한 인격과 그 인격의 발현으로 나타난 결과를 뜻합니다. 그리고 덕은 사람다운 사람으로서 마땅히 갖추어야할 인격적 특성입니다
소설 삼국지는 중요한 몇 사람의 중심인물이 있습니다. 유비, 관우, 장비, 조조, 제갈공명 등입니다. 관우나 장비와 같은 사람은 용감한 사람으로 이러한 사람을 용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제갈공명이나 조조와 같은 머리를 잘 쓰는 사람을 지장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유비와 같이 모든 사람을 덕으로 잘 다스리는 사람을 덕장이라고 합니다.
‘용장이 지장을 못 이기고, 지장이 덕장을 못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 뱃심으로 이끄는 용장과 머리로 이끄는 지장과 가슴으로 이끄는 덕장 가운데 덕장이 제일이라는 말입니다.
근대사에서 역사적 리더들 중 히틀러나 스탈린은 용과 지를 가지고 있어도 덕이 없었기에 역사의 반역자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위기의 시대에는 덕장이 더욱 필요합니다. 각박하고 황량한 이 세상을 다스리는 사람은 권력의 힘을 사용하는 용장도 아니요, 머리를 잘 사용하여 사람을 현혹하는 지장도 아닙니다. 오직 덕으로서 다스릴 덕장이 필요합니다.
‘법보다 덕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법으로 따지고, 치리하고, 벌을 주기만 한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덕이 있는 리더가 어떤 리더보다 힘이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 안에서는 더더욱 덕이 있는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율법만 있으면 덕이 없어집니다. 율법만 있으면 죄를 짓게 하고, 죽게 하고, 멸망하게 합니다. 바울이 로마서 7장에서 고민하던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덕이 없으면 메말라지고, 비판하고, 규정하고, 정죄하고 결국은 죽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의를 주장하는 성도도 필요하고, 이성적인 성도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사랑과 온유함을 겸비한 덕 있는 성도들이 많이 있어야 은혜로운 교회가 되고 사랑이 넘치는 행복한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롬 15당2절에서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고 덕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투기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대해 시기심을 내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시기하지 않습니다.
덕을 세우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즐거워하고 저들의 행복이 증가하기를 원합니다.
덕이 있는 한 사람이 존재함으로 인하여 온 나라를 훈훈하게 하였습니다. 덕이 있는 한 사람이 가정에 존재함으로 인하여 온 가정이 훈훈하게 됩니다. 덕이 있는 한 사람이 교회에 존재함으로 인하여 온 교회가 훈훈하게 됩니다.
다음은 너희끼리 화목하라 하십니다.
세상을 살면서 어디를 가나 문제가 없는 데가 없고, 어느 곳에서나 갈등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남북이 서로 대치하고 있으며 한 나라 안에서도 여야가 서로 대립하고 있고, 직장에 가면 노사가 싸우고, 집에 가면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불화하고, 남편과 아내가 싸우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서로 싸우고 있습니다. 세상이 화목치 못한 모습들이 많습니다.
본문 13절에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
이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그들의 영적인 지도자들을 최대한 존경하고 순종할 것을 권면한 것입니다. 그들이 존경할 대상은 장로, 혹은 감독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존경하고 귀히 여겨야 할 이유는 그들의 직책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 즉 그들의 봉사와 수고 때문이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에 입각한 것입니다(롬 12:18, 14:19). 하나님과 화목하고 형제들과 화목하며 원수들과 화목 한다면 이는 크나 큰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수를 맺고 살면 불안하고 답답한 삶이 되지만 모두 용서하고 화목하게 살면 이는 천국과 같은 생활을 합니다.
잠언17장1절에 “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일용한 양식만 있고도 온 식구가 화목하게 산다면 그 가정이야말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러나 저택에 최신 시설을 갖추고 없는 것 없이 호화로이 생활을 한다고 할지라도 화목하지 못하고 그저 이런 일 저런 일로 번번이 싸우고 다툰다면 가정이 아니라 지옥입니다.
옛말에도 “가화 만사성”이라고 하였습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만사가 잘됩니다. 그러나 가정이 불화 하면 만사가 불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화목을 이루어 가정도 화평하게 되고 사회도 화평하게 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하십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참기 힘든 일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참기 힘든 일을 참으면 자기를 이기는 것이고 큰 그릇으로 쓰임을 받습니다.
자기를 이기지 못하고는 남을 이길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애쓰는 경우를 보게 되는데 분명히 기억할 것은 자기를 이겨야 남을 이길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오래 참고 용납할 것에 대하여 강하게 권면하였습니다.(엡 4:2;골 1:11;3:12).
분문에서는 오래 참는 것이 화를 잘 내는 것과 반대가 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 말은 일관되게 참는 것,사람들을 상당히 참아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고 또 참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 에서도 사람들을 대하여 오래 참아야 합니다. [프리처스 설교성경]
덕을 세우며 화목하고 오래 참아 서로를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되는 것이 행복을 누리는 길입니다.
1.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입니다.(9)
2.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심입니다.(10)
3,서로를 위해 필요한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