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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은 반응입니다.(행5:11-16)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11]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12]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람은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믿고 자기를 믿고 친구를 믿고 지식과 자기 실력을 믿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음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갑니다.

 

믿음에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구원의 믿음과 생활의 믿음입니다.

 

구원의 믿음은 강하고 약한 것이 없습니다. 구원의 믿음에는 잘 믿고 못 믿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구원의 믿음은 있든지 없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감사함으로 받았다면 영원히 나의 것입니다. 구원은 결국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믿는다는 것과 받아들인다는 것은 같은 것입니다.

 

요한복음1장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영접하는 자와 믿는 자가 같은 것입니다. 영접한 자는 곧 믿는 자입니다.

 

내가 받아들였는가 안 받아들였는가 하는 차이 뿐이지 잘 믿는다, 못 믿는다가 아닙니다. 강한 가 약한가가 아닙니다. 구원은 영생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생활의 믿음은 구원의 믿음이 있는 사람이 그때부터 매일매일 구원받은 사람으로서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하나님을 의존해서 사는 삶을 말합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날마다 힘 있게 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존하면서 살다 보니까 힘이 없고 낙심되고 걱정과 염려 속에서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위로 말미암아 생겨나는 하나님의 생명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을 이야기 할 때마다 우리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를 보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서 행하시는 하나님의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사람 변화시키는 것은 분명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예배드리면서, 말씀을 들으시면서, 딴 생각하시고, 주무시는 분들 계십니다. 옆에서 지켜 보시는 분들은 안타까워 하시는데 염려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순간에 역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어 그 안에서 힘을 얻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리 도덕군자라 하여도, 아무리 신학적 논리적으로 완벽한 사람도, 실제로 믿음에서 힘을 얻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사실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사람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힘을 얻고 있다면, 그가 믿음의 사람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자리가 참 힘듭니다. 그렇지만 우리 모두가 믿음으로 반응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기도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영적인 힘을 덧입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은혜에 반응하는 것입니다.

 

1.모이는 것입니다.(11-12)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초대교회에서는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표적과 기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본문은 초대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데, 특히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그 주변 지역까지 서서히 확산되어 가는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표적이란 헬라어로 세메이온 입니다. 이 말의 뜻은 기적을 통해서 능력을 행하시는 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기적이 지니는 의미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낸다는 것입니다.

 

기사란 헬라어로 테라스 입니다. 이 말의 뜻은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놀란다는 것에 초점을 맞춥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어 사람들의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 준비를 이루게 한다는 것입니다.

 

기적은 단순히 기적으로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표적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믿음 가운데 굳게 서게 하는 기사가 되어야 합니다.

 

사도들이 기적을 행한 이유, 하나님께서 특별히 초대교회에 이 기적을 많이 베푸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특징은 사도들의 활동입니다. 사도는 초대 교회에만 존재했던 특수한 직책입니다. “사도”(ajpovstolo")라는 말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전권대사, 혹은 대리자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도는 예수님의 대리자들입니다. 예수님께 보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이 직접 임명하고,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임무는 세상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고, 성경을 기록하고, 바른 교리를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사도들에게는 특별한 기적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는 신약 성경이 다 기록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어떤 교훈에 대한 진정성을 증명할 길이 없었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주신 말씀을 전하는지? 아니면 이단과 같은 거짓 도리를 전하는지? 참 사도와 거짓 사도를 구별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에게 참 사도의 표식으로 특별한 기적의 능력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도들의 기적은 아무도 흉내 낼 수 없었습니다. 오직 사도들만이 행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5장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들은 바나바가 교회에 헌신한 일로 인하여 많은 성도들이 그를 존경하게 되자 자신들도 명예욕에 따라 하나님께 서원하고 그 서원한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순간 땅을 팔 때까지는 몰랐는데 현금을 손에 쥐고 보니까 욕심이 생겨 땅을 판 돈 중에서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에게 주었습니다.

 

베드로가 그 사실을 알고 책망하자 아나니아의 영혼이 떠나 죽었고, 조금 후에 삽비라도 똑같은 저주가 임하여 두 부부는 한날에 죽고 말았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시체로 젊은이들의 손에 매여 나가는 것을 본 사람들은 큰 충격을 받습니다. 두려움과 떨림이 엄습합니다. 그것을 본 믿는 자들이 솔로몬의 행각에 모여들기 시작합니다. 가짜는 모두 떠나가고 진짜 그리스도인들이 모여듭니다. 가짜는 더 이상 함께 할 없습니다. 성령님을 속이고 살았던 자들은 가슴이 섬뜩하였습니다.

 

솔로몬 행각은 외전으로서 일백육십이개의 큰 기둥으로 된 건물입니다. 아주 큰 집입니다. 이런 집에 모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이곳에 모여들었다는 것은 유대교의 핍박을 피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도들 뿐 아니라 일반 신도들도 못지않게 당당했습니다.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모여 마음을 같이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같은 분을 섬기고 예배하며 그 안에서 같이 교제하기 때문에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친한 경우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대부분 학연, 지연, 혈연, 또는 나이에 따라 그룹으로 만납니다. 그런 데서도 친하게 지낼 수는 있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가족 같은 사랑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에 따라 만나는 그룹들입니다. 그런데 우리 안에 계신 분이 같은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마음을 같이 하여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 이후에 많은 기적들이 일어났는데, 성도들은 더 영적인 목마름과 갈증을 가지고 더 함께 모여서 더 같이 예배하기에 힘썼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는데, 믿는 사람들이 마음을 같이 해서 더 모이기를 기뻐했고, 더 함께 나아갔고, 더 예배했고, 더 교제하였습니다.

 

믿음은 반응입니다.

 

성도 된 우리도 어려운 때 일수록 영적인 목마름과 갈증을 가지고 더 함께 모여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2.주께 나와야 합니다.(13-14)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초대교회의 표적과 기사는 복음이 증거 되기 위한 방편이었습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습니다. 사도들이야말로 진정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들이라는 증거로 표적과 기사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말씀하시거나 주장하시고자 할 때 한 표적과 기사를 보이셔서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이나 언약이 분명하다는 것을 알려주십니다.

 

당시 베드로와 사도들이 병을 고치니까 증거가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큰 무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 그럼 병 고쳤는데 나와야지!" 즉 병 고쳤다고 다 믿었던 것이 아닙니다. 예루살렘에는 여전히 믿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예수님이 수많은 병자를 고쳤는데도, 그것을 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교회가 더욱 크게 부흥되어 갔습니다. 병 고침을 받고자 나온 것이 아니요, 물질의 복을 받고자 나온 것도 아닙니다. 순수하게 그리스도의 은혜를 받고자 나온 무리가 많아졌다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오순절에 이미 3천명이 회개했고, 그 후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았을 때, 5천명이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남녀의 큰 무리가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진정한 교회의 부흥은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는 성도들의 수가 늘 확산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예수님께로 돌아오는 역사를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의 가장 큰 사명은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통해서 또 다른 예수님의 자녀가 탄생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이것을 재생산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쉽게 전도하여 열매를 맺음이 날마다 있는 교회입니다.

 

본문 14절에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이 말씀이 우리를 소망하게 합니다. 교회는 세상을 향해 가서 그곳에 속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을 찾아 구원하는 일을 감당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아갈 때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악한 영들과의 전쟁이 일어납니다.(엡6;12)

 

교회가 세상을 향해 나가 승리의 외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세상사람들을 찾아서 구원해 내야 합니다.

 

이러한 힘은 우리의 예배와 전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께 예배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갖고 세상을 향해 나가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을 향해 전해야 합니다. 전도하는 사람이 많아야 날마다 주님 앞에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교회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예수님은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눅19:10)고 하셨습니다.

 

마태복음11장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고 예수님은 약속하셨습니다. 단순히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사야55장7절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사람이 어려워지게 된 원인은 딱 하나 하나님 앞에 버림받았다는 것입니다.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떠났다라는 것입니다. 회개하고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면 살고 하나님을 떠나면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곳에 불행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22장17절에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단순히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려고 오라고 하십니다. 목마르고 주린 자들의 갈증과 주림을 해소해 주시려고 오라고 부르십니다. 나아가 영생을 주시고 사랑해 주시려고 오라고 하십니다. 특히 어둠의 권세에 눌리고 얽매여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을 당하며 불행한 사람들을 풀어주시고 자유케 해 주시려고 예수님께로 오라고 부르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 앞에 나오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가 예수님을 믿는 것이 내 인생의 짐을 하나 더하는 것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짐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사실입니다. 종교가 짐일 수 있습니다. (마 23:4)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저마다 가슴 깊이 상처를 묻어두고 날마다 절망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영혼들을 부르시고 예수님의 피 묻은 손으로 어루만져서 고쳐 주시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실을 믿고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 바로 그가 우리 모든 질병과 질고와 상처를 고치시며 우리로 기뻐 뛰게 하시는 예수님의 치유의 손길을 경험하고 찬송할 것입니다(합3:19).

 

우리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던지 예수님 앞에 나오고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의 응답이 있다면 다 해결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에 기간 동안 예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어떤 문제를 가지고 있던지 해결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살아계시고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지금도 응답하십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예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사실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께로 나아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시오, 주님이신 것 믿고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은 반응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 은혜 받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3.바라야 합니다.(15-16)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습니다.(히11:1)

 

실상이란 말은 희랍어로 ‘휘포스타시스’ 인데 ‘아래로부터 받혀준다’ 라는 뜻입니다. 건물의 기초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기초입니다. 믿음은 희망의 기초입니다. 바랄 수 없는 중에서 믿음을 통하여 바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육안으로 바라보든 마음으로 영안으로 바라보든 믿음은 바라봄의 실상입니다. 바라보는 대상은 믿음을 통해 실제로 이루어집니다. 인생에서 성공하기 원한다면 성공한 자신의 모습을 그려서 바라보고, 병이 낫기를 원하면 병 낫고 건강하게 된 자기의 모습을 마음에 그려놓고 항상 바라보고 마음속에 자기의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진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야 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마음속에 그려놓고 바라보고 기도하고 감사할 때 하나님 성령님께서 역사하여 주십니다.

 

믿음은 바라봄의 실상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눈이나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든 혹은 영의 눈으로 바라보든 우리가 바라보는 대상은 믿음을 통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바라는 것이 이루어진 증거가 있기 때문에 그대로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본문에서 먼저 믿는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을 거리로 메고 나가서 침상이나 깔 자리에 눕혀 놓고 베드로가 지나갈 때에 그 그림자라도 그들 가운데 누구에게 덮이기를 바랐습니다.

 

그것은 베드로의 그림자만이라고 병든 자에게 덮이면 나음을 얻을 것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지 않고서야 어찌 사람들을 데리고 올 수 없었습니다.

 

저들에게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베드로를 통해서 치료의 역사가 나타날 것으로 그들은 믿었습니다. 단지 마음으로만 믿은 것이 아니라 아픈 사람들을 데리고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그들이 데려온 사람들이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랬더니 이제는 예루살렘 근방의 여러 동네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병든 사람들과 악한 귀신에게 시달리는 사람들을 데리고 모여들었는데, 그들 역시 모두 고침을 받았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희망이라 합니다. 우리 인생에서 희망은 너무 중요합니다. 단테의 『신곡』‘지옥편’에 보면 지옥 문입구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곳을 통과하는 자는 모든 희망을 버려라” 지옥은 달리 지옥이 아닙니다. 희망이 없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리스 신화의 판도라의 상자 이야기도 희망의 중요성을 일깨워 줍니다. 판도라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최초의 여자입니다. 이 여자에게 신들이 하나의 상자를 주었는데 이 안에는 사람을 괴롭히는 온갖 저주들이 다 들어가 있었습니다. 신들은 이 상자를 주면서 절대 열어보면 안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호기심이 강했던 판도라는 상자를 열게 되었고 결국 그 안에 들어 있던 모든 저주와 재앙이 다 빠져 나갑니다. 급하게 상자를 닫았는데 판도라는 딱 한 가지만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아닌 ‘희망’이었습니다. 인간사에 여러 저주와 어려움과 여러 환난이 있지만 사람은 이 ‘희망’이 있기에 살아갑니다.

 

표적과 기사와 이적 그리고 기적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입니다.

 

그것을 주시든 아니 주시든 그것은 우리가 항변할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적을 주셨습니다. 구원의 은혜, 그 큰 기적 속에서도 하나님을 발견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은혜에 감격하지 않고 값없이 주신 구원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들에게 그 어떤 기적이 일어난다 해도, 그것은 마치 바닷물을 마시면 더 갈증이 이는 것처럼 사람의 인격과 삶을 혼란케 할 것이고 영적인 사람의 감각을 보이는 현상에 집착하게 하여 영적 기갈에 들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 주신 생수를 마다하고 기적의 달콤한 청량음료에 매료되면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적은 우리 신앙의 유익을 위해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실 기적을 바라보면 우리가 오히려 더 크게 실족합니다. 예수님을 바라보면 그때부터 놀라운 기적의 삶을 살게 됩니다. 꿈과 같은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세상을 보면, 참으로 낙심되고 실망스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세상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도 우리를 실망시키는 일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때, 우리는 다른 사람을 보고 실망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많이 맺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지적하다가 나 자신이 쭉정이가 된다면, 그보다 더 창피스럽고 부끄러운 일이 없습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을 바라보면서 흉을 보거나 비난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만이라도 예수님을 열심히 바라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기대하고 바라시는 좋은 열매를, 다른 사람 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 많이 맺을 수가 있습니다.

 

신앙이란 우리의 시선을 예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안을 열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바라본다’는 말의 뜻입니다. 이 말은 원어 ‘야할’(Yahal)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야할’이라는 말은 “소망과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더 깊이 들어가 보면, 이 말은 그 어원에는 ‘쇠약해지다’, ‘지치다’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니까 바라본다는 것은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는 것인데, 그 기다림이 오래 지속되고, 그래서 기다리다 지치고 쇠약해지기까지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라보는 일은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저 한 번 바라보는 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닙니다. 기다리되 기다리다 지쳐서 포기할 정도로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일입니다. 기다리다 몸이 쇠약해져 더 기다리고 싶어도 기다릴 수 없을 정도로 오랜 기다림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바라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고통을 받고 있던 병자들이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나아 왔을 때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성도 된 우리도 세상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반응입니다.

 

사람 바라보지 말고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때에도 예수님만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1.모이는 것입니다.(11-12)

2.주께 나와야 합니다.(13-14)

3.바라야 합니다.(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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