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울타리 2005년 2월호에 실린 이인복교수님의 글입니다.
미리 예고했던 나환자촌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환자 중의 최고령자인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 교수님은 영혼과 육신이 함께 병들어 있을 나환자 할아버지를 어떻게 위로해 드릴 수 있을 것인가 하고 내심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생각은 다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나환자 할아버지의 얼굴에는 기쁨과 행복의 표정이 아지랑이처럼 피어나고 있었고, 처연한 내색이나 열등감의 그림자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나환자 할아버지의 말씀이 이 교수님의 가슴을 예리한 양심의 칼끝으로 찔렀다고 합니다.
"당신이 비록 대학교수이며 문학박사라고 할지라도 당신이야말로 참으로 가엾은 사람이며 또 무식한 사람입니다. 내가 왜 나환자가 되었고 당신이 왜 건강한 대학교수가 되었는지를 당신은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
"반대로 나는 손발이 모두 토막 나간 나환자이지만 당신보다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왜 대학교수가 되었고 내가 왜 나환자가 되었는지를 나는 확실히 알기 때문입니다."
"......"
"나는 당신에게 내 교수직과 박사학위를 양보하였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평생 짊어졌어야 할 나병과 수고와 고통을 내가 대신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적어도, 우리 온 겨레와 온 인류가 생명의 창조주 하나님 앞에 항상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염원하면서,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늘 기쁘고 평화롭고 행복합니다."
- 이인복 / 낮은 울타리 2005년 2월 호 중에서-
오늘 말씀에는 나병환자의 삶을 통한 교훈입니다. 평생을 불치의 병에 걸려 시달리던 그들이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새롭게 되는 것을 만나게 됩니다.
1. 고난 중에도 주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습니다. 예수님은 갈릴리와 사마리아 사이로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가시다가 예수님이 중간에 한 곳을 들렸는데, 그곳은 나환자촌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나환자들이 사는 곳은 사람들이 가기를 꺼려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마을을 방문하셨습니다.
본문 12절 “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그 마을에서 나환자 10명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병환자이기에 가까이 가지는 못하고 멀리서 주님과 마주대했습니다. 주님을 더 가까이 하고 싶어도 그들의 병 때문에 접근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물론 주님은 그들이 가까이 오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들 스스로 나병의 무거운 중압감에 눌려서 살아간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그들이 주님을 찾아 나온 것이 축복입니다. 제가 생각하기로 그 마을은 나환자촌이기 때문에 더 많은 나환자들이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러 나온 사람들은 열 명 뿐이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만 나왔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마을에 찾아오셔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기적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있는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그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가난한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면 부유해지는 은혜를 받습니다. 몸이 아프신 분이 예수님을 만나면 치료되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라도 예수님을 만나면 그 인생이 새로워집니다.
오늘 이렇게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서 예배드리는 여러분은 꼭 예수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주님, 성령으로 임재하시는 예수님을 만나서 인생의 문제를 해결 받고 삶이 새로워지는 은혜를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13. 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그들은 나병이라고 하는 중대한 병,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불행으로 몰아간 무거운 짐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왔습니다. 그 문제는 어느 누구도 해결해 줄 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주님을 찾아와서 소리를 높였습니다. 애절한 목소리로 주님께 외친 것입니다.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른 말이 필요 없었습니다. 자신들의 형편과 처지가 너무 힘들다고 주님께 하소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문제가 무엇이라고 할지라도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11:28).”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무거운 짐을 주님께 의탁해야 합니다. 그것이 삶의 무거운 짐, 고난의 시험을 이기고 승리하는 길입니다.
며칠 전 ‘불안장애’로 방송인 정형돈씨가 모든 프로그램에서 하차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성공적으로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자신은 불안장애로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겉으로는 멀쩡한 것 같지만, 내면적인 고통으로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우리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을 만나야 하는 영적인 나병환자인지도 모릅니다. 주님을 만나서 위로 받고 치료를 받아야 할 존재들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은혜를 체험하고 축복된 삶을 살게 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성령으로 이 땅을 방문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이 시간도 우리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찾아오신 예수님을 반갑게 맞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임하게 하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오셨는데 그냥 가시게 하면 안 됩니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고 그분과 함께 기적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2.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본문 14절 “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나병환자 열 명이 말씀에 순종하여 가다가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기적을 체험합니다. 그들이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라고 하신 말씀을 믿고 가다가 깨끗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사울왕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린 받은 것은 사무엘선지자를 통하여 전해 진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말렉족속이 가진 것을 진멸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울왕은 욕심 때문에 좋은 것들을 남겼습니다. 그리고 핑계대기를 좋은 것들로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 남겼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무엘선지자는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삼상15:22)”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사울왕을 버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다윗을 택하여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습니다. 믿음이 좋다는 것은 말씀에 순종을 잘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기 욕심대로 행동하지 않고 힘들고 어려워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사는 것입니다. 제가 목회를 하면서 제일 감사한 것은 목회자를 믿고 따라주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아도 목사가 기도하고 결정하면 협력하고 따르는 성도들이 제 마음을 기쁘게 했습니다. 그래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한 것입니다. 예배를 잘 드리는 것 같은데, 말씀에 불순종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성도는 목회자를 힘들게 하는 사람입니다. 참된 믿음은 목회자의 권위를 인정해주고 그 말에 순종하는 겸손함을 보여주는 성도에게 있습니다. 그런 분이 참으로 훌륭한 분입니다.
오늘 해병대 장병들이 함께 나와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군대는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습니다. 자기의 마음에 들지 않아도 상관이 명령하면 따라야 합니다. 그래야 군의 질서가 유지되는 것입니다. 오천교회 목사님이 군목출신인데, 하시는 말씀이 자신이 아는 한 계급이 높은 군인 집사님이 하는 말이 마음에 와 닿았다고 합니다. 군대에서는 자신의 명령대로 부하들이 움직이는 것처럼, 교회에서는 목사님이 전문가이니까, 목사님의 말씀대로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군에 관련된 일은 전문가일지라도 교회에서 하는 목회는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목사님의 목회의 지시대로 순종하는 것이 잘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도 말씀에 순종 잘 하는 성도입니다. 헌금 많이 하는 것보다, 교회에서 어떤 큰 업적을 남기는 큰일을 하는 것보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성경 말씀, 언약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사람을 통해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일하십니다. 아무리 능력 있고 잘난 사람이라도 자신의 고집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쓰임 받지 못합니다. 조금 부족해도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을 들어서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내 뜻이나 욕심을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의 유행이나 자신의 욕심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믿음입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을 세상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는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삶의 푯대로 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나병환자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의 욕심이나 자랑거리는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나병으로 인하여 낮아질 대로 낮아졌습니다. 내 세울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오직 주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만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에게 가다가 나병이 깨끗함을 받는 기적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3. 주님의 은혜에 감사했습니다.
직장에서 퇴임을 한 분이 오피스텔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경험한 일이라고 합니다. 이사 나간 지 1년 정도 되는 집을 정리하다가 선반 안에 있는 그릇 밑에서 현금 50만원과 통장 몇 개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먼저 살던 사람을 수소문해서 통화가 되었습니다.
전화를 받은 전에 살던 사람은
“어이쿠! 감사합니다. 제가 꼭 사례를 하겠습니다.”
관리인 아저씨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서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 전에 살던 사람이 찾아와서 현금과 통장을 받아가면서 하는 말이
“이 통장을 다시 내려면 부산까지 가야하는데....”
그 말 한마디 남기고 가 버렸답니다.
그런데 당연히 주인을 찾아 돌려주어야 하는 것은 맞지만, 왠지 모르게 돌려주고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음료수 한 박스라도 들고 와서 감사하다고 해야 하지 않습니까? 감사할 줄 모르는 뻔뻔한 태도가 선한 일을 한 사람을 낙심시킨 것입니다.
15.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0명의 나환자들이 깨끗함을 받았으니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평생의 한이 풀리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순종했더니, 그 중한 병이 나았습니다. 그렇다고 하면 제일 먼저 누가 생각나겠습니까? 당연이 예수님이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9명은 문제가 해결되자 예수님을 잊어버렸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니까, 주님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모두들 제 갈 길로 가기 바빴습니다. 한 명만이 예수님을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만 예수님을 찾아와서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알고 진심으로 감사한 것입니다. 그 사람은 유대인들이 무시하는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그 사람을 보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9명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감사하지 못한 이유는 예수님보다 병 낫는 것을 더 중요시 여겼기 때문입니다. 상황이 힘들고 어려우면 예수님을 찾아오고 형편이 좋아져서 예수님의 도움이 필요 없으면 잊어버리는 그런 믿음이 되서는 안되겠습니다. 진심으로 주님께 감사하는 신앙인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해서 찾아오는 믿음의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19.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주님께 돌아와서 감사한 사마리아 사람에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주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돌아와서 감사한 사마리아 사람만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믿음 있는 사람, 구원 받는 백성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