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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깊이 만나라(출25:8-9)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하나님은 사람이 과히 근접할 수 없는 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만나주시는데 하나님의 방법대로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만남의 역사입니다. 하나님은 만남을 통해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어떤 만남보다도 더 중요한 만남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만났던 사람들은 모두가 변화되고,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쓰임 받았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는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은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 생활 가운데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선택사양이 아닙니다.

예배는 무한히 초월해 계시는 능력의 하나님, 그러면서 동시에 목자의 우리에 있는 양들을 돌보듯이 사랑으로 보살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말은 하나님을 만나고 그와 교제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에 예배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에게만 드립니다. 예배의 의미는 땅에 엎드려 하나님의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을 우러러 봅니다.

 

그 외에 하나님의 모습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말씀을 읽음으로 하나님을 보고 말씀을 들음으로 만나고 말씀을 행동함으로 그에게 순종합니다.

예배는 우리의 상식을 따르거나 사회의 통념을 따르지 않습니다. 신앙은 오로지 계시를 따릅니다. 예배는 이 신앙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행위입니다.

 

본문8절에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장소, 거룩한 장소. 그 곳은 잠재적인 성소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성소에서 사람과 만나고 거기서 은혜를 베푸십니다. 오늘날 하나님의 몸 된 교회에서의 예배를 통해 그의 백성을 만나 주십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의 전 인격에 만족과 기쁨을 주십니다. 삶이 만신창이 나고 인격이 모나고 결핍되어 있을 때 이를 올바로 세울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을 참으로 예배 할 때 야 가능해 집니다. 참된 예배가 있을 때 우리는 전인격적으로 풍성히 채우시는 주님의 은혜를 체험합니다.

 

성도 된 우리는 하나님께 예배를 통해 헌신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닫게 되고, 그 뜻을 따라 하나님의 일에 봉사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또 어떻게 살았는지를 늘 점검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은 성소를 통한 교훈입니다.

 

1.하나님을 위하여 지어야 합니다.(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하나님은 친히 광야의 백성들과 거하시기 위해 성소를 만들라고 하셨습니다. 성소는 장식용이 아닙니다. 성소는 종교 의식을 치르는 단순한 집회 장소가 아닙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하시기 위해 만든 하나님의 집입니다.

 

성소는 ‘성막’, 혹은 ‘회막’, 그리고 ‘증거막’이라고 불리어졌으며, 솔로몬 시대에는 예루살렘 성전이 세워짐으로써 ‘성전’으로 변천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가지는 기능은 단 한 가지, 곧 하나님께서 그곳에 임재하시는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에 와서 예배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만나는 거룩한 만남과 사랑의 사귐의 장소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는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최고의 낙입니다.

 

다윗은 평생에 하고자 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지어드리는 것입니다(삼하 7:2).물론 그 일은 그의 아들 솔로몬에 의하여서 이루어졌습니다만 다윗은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성전에서 예배드리는 일을 위해서 성가대를 조직하였습니다(대상25:).시편을 정리하여서 예배드리도록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백성에게 성막을 통해 허락하신 감동은 어떤 물건이나 기술에 대한 감동이 아니라, 예배에 대한 감동이고 거룩함에 대한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성막을 통해 주신 메시지는 건물이나 기구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예배의 본질에 있습니다.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성막의 전체적인 디자인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기구들 그리고 그것을 만들어 세우는 과정들이 자세히 나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바로 예배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성막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단지 건물을 세우는 내용이라면 성경에 기록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성막은 예배의 본질을 보여줍니다. 성막의 핵심은 예배이며 또한 예배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만남입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없다면 그래서 거짓 예배입니다.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삭을 바치는 마음으로 간절하게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이 만나주시게 되었습니다.

 

예배가 하나님과의 만남이라면, 그 만남이 이루어지는 장소는 오늘의 교회입니다. 선택받은 사람들이 선택받은 장소로 모여드는 곳이 교회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이 자기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특별한 의미를 두면서 생긴 이름입니다.

 

다른 어떤 이름을 붙여도 상관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람이 만난다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이 본문에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내가 그들 가운데 머물 수 있도록, 그들에게 내가 머물 성소를 지으라고 하여라."(출 25:8)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나를 만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모든 예배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오직 누가 보든지 말든지, 혹은 누가 칭찬하든지 비난하든지 전혀 개의치 말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의 것인 성경과 주일과 십일조와 직책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자가 되므로 하나님에게 인정받아 영육 간에 은혜와 복을 받는 자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좋은 머리와 기술을 하나님을 위하여 쓸 때 지혜로운 사람이 됩니다. 브살렐과 오홀리압이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와 총명을 하나님의 성막을 짓는데 다 쏟아 부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그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하셨습니다. 즉 "네가 지금 전을 건축하니" (왕상6:1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열심히 봉사하는 자들에겐 반드시 하나님의 눈이 그들을 향하십니다. "나는 너의 일을 아나니, 너의 선한 일을 알고 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만일 율법을 따라 행하고 순종함으로써 참고 견디며 하나님의 일을 지켜 참되이 예배하면, 하나님의 살아 계신 자비가 그와 그의 나라(" 나는 나의 말을 너에게 지키리라")에게 나타날 것이라는 것을 확약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은 이전처럼 나의 백성으로 인정될 것이요, 나는 그들과 함께 거하며, 그들을 버리지 않으리라.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심으로 자신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 자에게는 더 큰 복으로 채워주시나, 자신의 것을 아까워하며 바치지 않는 자에게는 오히려 있는 것마저 거두어 가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자신의 가진 것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모두 바치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에게 있는 모든 것의 원 소유주는 하나님이심을 늘 명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 성소는 하나님을 위하여 지어야 합니다.

매일매일 성소에서 예배를 드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깊이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이 알려 주신대로 지어야 합니다.(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구약은 그리스도에 대한 상징이요 희미한 그림자이며 예고편이지만, 신약은 그 예고대로 이루어진 분명한 사실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 다를 뿐이지, 신구약은 동일한 그리스도에 관한 책,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알려주는 책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에 대한 예언들 중에서 성막보다 더 분명한 예언은 없습니다. 성막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분과 그 사역에 대하여, 얼마나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예언하는지 놀랄 수밖에 없을 정도입니다.

 

성막은 회막, 증거막 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거룩한 천막이라는 뜻에서 성막, 하나님과 만난다는 의미에서 회막, 거기서 하나님이 말씀해 주셨다는 의미에서 증거막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그 성막의 양식과 재료와 규격과 등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동식 텐트인 회막은 나중에 고정식 건물인 성전으로 바뀌었고, 그 성전은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완성되었는데, 성막, 혹은 성전은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 혹은 방법을 상징하였습니다.

 

그런데 죄인을 하나님께 인도하러 오신 예수님이 우리를 찾아오심으로 더 이상 성전이 필요 없게 되었고, 예수님 자신이 참 성전이 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만에 다시 일으키리라.” 라고 하신 것은 자신이 참 성전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본문9절에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대로 지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것대로 지어야 아무리 훌륭한 모세라도 자기 마음대로 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대로 지어야 합니다. 우리도 우리 뜻대로 살면 아무 의미 없습니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성경 66권에 나온 대로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사역을 예표하는 성막을 건축함에 있어서, 사람의 생각과 판단을 완전히 배제시키신 것은, 바로 그 구원 사역이 그 누구의 간섭이나 참여도 배제된 완전한 하나님의 단독 사역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오직 하나님께서 홀로 이루신 단독 사역입니다.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스스로 선택하여 하나님을 믿기로 결정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게 되었다고 생각하기가 쉽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대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에게만 베푸시는 하나님의 단독 사역입니다.

 

성막의 식양과 기물들이 하나님의 명하심대로 지어져야 함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성막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성막의 모든 식양을 가르쳤습니다(출2:40). 또한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한 그대로 지을 것을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그러므로 성막을 짓는 일은 하나님의 명하심대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확장도 우리의 방법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하심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우리의 생각과 판단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은 오직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생각과 판단대로 신앙생활을 한다면 그것은 결코 바른 신앙생활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신 분으로 만홀히 여김을 받으실 수 없는 바 자기 백성에게 당신을 섬기는 방법까지 세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은 바로 그러한 하나님의 계시를 기록한 책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성경을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부지런히 배워야 할 이유가 있습니다. [옥스포드 원어사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늘 가까이 하여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모세에게는 남이 따를 수 없을 만한 순종심이 있었습니다.

성막 건축에 따르는 재료를 모으는 일이나 건축의 식양을 하나님 말씀 그대로 순종한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일은 그 일을 수용할 만한 믿음이 있어야 하고 그 믿음을 실천해야 하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계획에 잘 적응하는 믿음의 소유자였으며 그 일을 실천하기에 충분한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일생은 실로 순종의 일생이었습니다.

철저하게 자기의 뜻을 굽히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따랐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아는 것 만이 아니라 순종하는 과정을 통하여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고 약속된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입니다. 순종 없는 생활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성도 된 우리들은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녀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절대적인 사랑의 역사를 베풀지 아니하셨더라면, 죄인의 낙인을 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하나님을 본받고 그 말씀에 순종할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사실 복이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아주 가깝게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바로 하나님의 은총은 임합니다.

 

순종이란 미루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인 성소는 하나님이 말씀하신대로 지어져야 합니다.

성도 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을 실천하며 하나님을 깊이 만나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성소는 이스라엘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사는 동안 하나님의 모세에게 지으라고 명령한 하나님의 집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40년 광야 생활 중에 그들이 유진할 때든지, 아니면 그들이 광야를 이동할 때든지 항상 그들 가운데 함께 하셨는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리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시며 보호하신 사실을 성경은 수없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를 더듬어 보면, 그들의 흥망성쇠는 결국 그들이 얼마만큼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았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진정으로 섬기는 삶을 살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되게 되었음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것을 볼 때,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에서 성전이 가지는 역할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사람은 원래부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어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지음 받았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죄가 들어 옴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아가야 할 인생이 자신을 위해서만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택함 받은 성도들은 사람의 본래의 본분으로 되돌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죄 있는 모습 그대로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우리를 듣지 않으시고" 상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다리가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흘리신 십자가의 다리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1장12절에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하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삶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들입니다.

 

역대상16장1절에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에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니라.”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며 하나님의 법을 상징하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이 모이는 장소가 필요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자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자들의 수고로 말씀을 듣고 지켜서 복을 받는 일들이 교회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법궤를 중심하는 것은 하나님 중심을 말하고 그의 말씀을 중심하는 것을 말하며 그로 인하여 성도들끼리 사랑을 중심하여 하나님 섬기는 것을 말하며 그로 인하여 성도들끼리 사랑을 중심하여 하나님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최대의 수단이요 방법입니다. 예배는 사람의 욕구불만을 충족시키는 수단이 아니고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드리는 거룩한 예식입니다.

 

오늘날에 있어서 성전의 의미가 있습니다. 

신약은 우리 몸이 성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고전3:16) 특히 우리 성도들이 세상에 대해 하나님의 임재를 보여주는 성전이 되어야 하기에 거룩함을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는 비유대교적인 상황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문화는 성경적이 아니라 세상적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들을 당연한 듯이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과 삶에 대한 계획마저도 세상의 가치 기준에 따라 세우고 추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으로서 우리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삶을 재건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 삶의 주인은 하나님이심을 인식하고 하나님의 주인 되심이 우리 삶을 통해서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다윗은 임종을 맞이하여 그 아들 솔로몬에게 하는 유언 속에서 다윗은 이렇게 말합니다.

 

열왕기상2장1-3절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의 아들 솔로몬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이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왕으로서 백성을 잘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섬기는 것을 가르칩니다.

바로 이 길이 그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길이요, 또한 잘못되지 않은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또한 다윗은 “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도다.”(삼하7:2) 말하면서 성전을 지으려고 했고, 시편의 신앙고백에서도 하나님는 나의 목자라고 고백하며, “주의 궁정에서 한 날이 다른 곳에서 천 날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거함보다 내 하나님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라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다윗은 언제나 하나님 중심으로,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 사람입니다.

 

또한 “여호와 하나님이여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참 신이 없음이니이다.”(삼하 7:22) 라고 고백하면서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아간 사람입니다.

 

세상에서 삶의 평가는 지식과 덕망과 경력등 여러 관점에서 볼 수 있겠지만 믿음의 세계에서 성도의 가장 값진 삶은 자기의 전부를 주님께 드리는 헌신의 삶입니다.

 

헌신이란 종래는 내 자신을 위해서 살아오던 것을 이제는 하나님 중심생활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내 생애에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변화 중에서 가장 위대한 변화입니다.

 

하나님께 헌신의 삶을 사는 이유는 바로 나 자신이 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하였기 때문입니다

 

성결하면 성령님이 충만하게 되며 또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자기중심에서 하나님 중심으로 봉사하게 됩니다(고전 6:19­20).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중심으로 살아 왔던 것처럼 오늘 성도 된 우리도 하나님 중심으로 헌신하여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을 위하여 지어야 합니다.(8)

2.하나님이 알려 주신대로 지어야 합니다.(9)

3.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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