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사람의 첫째 되는 의무이며 최상의 책임입니다.
히브리서11장6절을 보면,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것보다 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9)고 말씀하셨습니다.또한 믿음은 참사랑을 꽃피울 수 있는 뿌리입니다.
믿음은 뿌리요 사랑은 열매입니다.
언제나 있어야 하는 것 세 가지 가운데 첫째가 믿음입니다(고전·13:13, 살전1:3, 골1:3-4) 믿음 없이는 참된 사랑이 있을 수 없습니다.
물론 이기적인 사랑은 믿음 없이도 있을 수 있지만,자기를 잊어버리는 완전한 사랑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속에만 있습니다.다음으로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특징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회개한 사람들이고 회심(回心)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회개한 자 혹은 회심한 자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또 그리스도인에게는 소망이 있으며,하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는 모습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을 소망하는 자 혹은 사랑하는 자라고 하지 않습니다.
기도 하는자,찬송 하는자, 라고 부르지도 않습니다.그리스도인을 "믿는 자"라고 부릅니다.
믿음이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하박국2장4절에 “ 오직 믿음으로 살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믿음으로 모든 사물을 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세계를 봅니다. 믿는 사람은 불가능한 것을 믿습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것, 그런 것을 믿습니다. 죄인이 구원받았다는 것,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되었다는 것,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엄청난 사실을 믿습니다. 또한 상상할 수도 없는 불가능한 일을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같은 믿음이 있을지라도 표현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진정한 믿음의 소유자라고 할 수 없습니다. 마음에 담고 있는 믿음을 정확하고 분명하게 표현해야 합니다.
믿기는 믿는데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믿고 있는가 라는 질문에 그냥 막연한 답을 하기보다는 우리가 믿고 있는 믿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믿음이 무엇인지 또한 우리가 믿음을 갖고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라합이라는 여인이 나옵니다. 2장 1절을 보면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여호수아는 두사람의 정탐꾼을 여리고 성으로 보내게 됩니다.
이 두사람은 여리고 성에 들어가 라합이라 불리는 기생의 집에 들어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라합에게 정탐꾼이 들어왔다는 것이 곧 발각되고 말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왕은 직접 라합에게 기별하여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합니다. 하지만 라합은 이미 그 사람들을 지붕 위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겨 놓고 그들에게 거짓 정보를 알려주었습니다. 자기는 그들이 누군지 잘 몰랐었다고 말하고, 이미 그들은 도피했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혹시 얼른 따라가면 잡을 수 있을지 모르니 한번 추적해보라고 하였습니다.
민족을 배반하는 행위는 죽음에 해당하는 무서운 죄악입니다. 자기 뿐 아니라 온 가족의 생명이 걸려있는 위험한 짓이었습니다.
여기서 기생 라합을 위대하게 만든 것은 믿음입니다.
신앙의 힘은 무섭습니다. 신앙은 신분을 초월하고, 과거를 초월하며 환경을 초월하는 능력입니다.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서는 기생 라합을 믿음의 조상들의 명단에 포함시킬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과 함께 라합의 믿음을 나란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와 야고보서에서 라합을 소개할 때마다 그 앞에 기생이라는 말을 넣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은 신분을 초월해서 믿음의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가장 소중하게 보는 것이 믿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산 라합에게 그녀와 그녀의 온 가족이 구원받는 상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기생 라합의 가장 큰 영광은 그녀의 이름이 예수님의 족보에 등장한다는 사실입니다(마1:5).
신앙의 힘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믿음의 능력은 크고 위대한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은 어떻게 표현되고 있습니까? 일주일에 한 번 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것, 그 것이 우리 신앙 표현의 전부입니까? 정말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까?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면 어떻게 그 믿음을 표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호수아는 순종으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였습니다. 현실에 최선을 다하는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라합은 적은 지식을 가지고도 하나님을 크게 믿는 행동으로 자신의 믿음을 표현하였습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단하는 행동으로 표현하였습니다. 그리고 그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1.라합은 사역자를 돕는 신앙으로 믿음을 표현하였습니다.
라합이 행한 일은 주의 사자를 영접하고 잘 대접한 것입니다. 라합이 한 일은 지극히 조그마한 일이지만 그의 행함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에 아주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한 것입니다. 그가 잘 대접한 사자로 말미암아 하나님은 그가 약속했던 그의 백성을 가나안에 들어오게 한 것입니다. 그의 작은 행함으로 하나님은 엄청난 역사를 이루셨는데 그것은 요단 물을 가르고 여리고성을 함락시킴으로 그의 백성을 안전하게 가나안에 입성 시킨 것입니다.
요단 물을 건넌다는 일,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도저히 상상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요단을 건너야 하고 여리고 성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정말로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요단을 건너고 여리고를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하나님이 하신 일이지만 누구를 통해서 했는가?
라합의 믿음의 행위 그의 행함이 있는 믿음, 정탐꾼을 영접하고 평안히 보내게 함으로써 가능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 주의 사자를 어떻게 도왔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주의 사자를 육적으로 대접하였습니다.(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2:1)
주의 사자는 정탐하기 위해서 물질적인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을 준비하다가는 그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특별한 섭리로 라합이라는 믿음이 있는 기생의 집으로 인도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빌립보를 개척할 때도 바울을 누구의 집으로 인도하였습니까? 루디아의 집으로 인도하였습니다. 엘리사가 굶어 죽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누구에게 보냈습니까? 사르밧 과부에게 보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전도여행 보낼 때 옷 두벌도 가지지 말고 전대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복의 근원으로 부르셨습니다(창12:1-3).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되므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즉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들을 대접하며 사는 사람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부름 받은 아브라함이 영적으로 성숙해진 후에 행한 두 가지 유명한 일이 나옵니다. 하나는 22장에서 하나님에 대한 바른 대접입니다. 독자 이삭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대접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숙함으로 가기 전의 아브라함은 18장에서 나그네를 대접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는 남을 대접하는데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을 대접하는데 누구보다도 성숙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영적으로 아브라함의 후손입니다. 우리가 추구할 삶이 대접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대접하고 이웃을 정성껏 대접하는 것은 우리들의 삶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일꾼을 육적으로 풍성하게 잘 대접하는 것은 대접하는 본인에게 중요한 것입니다. 왜? 주의 사자를 잘 대접하면 할수록 주의 사자를 사랑하게 되고 주의 사자를 사랑하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매우 깊이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를 배나 존경할 자로 생각하라 고 하였습니다. 여러분이 주의 사자에게 귀한 것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둘째, 주의 사자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였습니다. (2-7)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 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 인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알지 못하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에게 미치리라 하였으나 실상은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그 사람들은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따라갔고 그 따르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2-7)
라합이 그들을 창에서 줄로 달아 내리우니 그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하였음이라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따르는 사람들이 너희를 만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 사흘을 숨었다가 따르는 자 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 길을 갈지니라(15-16)
라합의 믿음의 행위는 주의 사자를 큰 위험에서 보호한 것입니다. 그의 재치로 삼대에 숨기고 왕의 사자를 적당히 거짓말로 따돌리고 안전하게 성 밖으로 그들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행함이 있는 믿음이란 주의 일을 하는 사자로 하여금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특별히 보호한 것입니다. 그것은 자기에게는 생명의 위험이 있지만 그것을 감수하며 사자를 보호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오늘 날에도 주의 사자는 원수에게 노출 되어 있습니다. 사단은 주의 종의 약점을 물고 늘어집니다. 어떻게든지 주의 종으로 하여금 낙심하게 합니다. 사단은 주의 종을 낙심케 함으로 쾌재를 부릅니다. 주의 사자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셋째, 말씀으로 격려하였습니다. (8-11)
삼대 밑에 숨어 있는 정탐꾼들의 입장을 생각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여리고 왕이 보낸 사자의 말발굽 소리를 들으며 숨어 있는 그들의 가슴이 얼마나 놀랬을 것입니까가? 간이 콩알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때 라합이 올라가서 격려하는 말을 하였습니다.
“두 사람이 눕기 전에 라합이 지붕에 올라가서 그들에게 이르러 말하되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백성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나니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이라 우리가 듣자 곧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상천하지에 하나님이시니라.(8-11)
얼마나 믿음 있는 격려인가? 오늘날에도 주의 일꾼들이 주의 일을 하면서 이런 두려움에 빠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이럴 때 믿음 있는 성도의 격려가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모릅니다.
영국의 어떤 목사가 너무나 이 직무가 무겁고 깊은 실패감에 빠져 더 이상 목회를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사표를 써서 사무실로 가는 도중에 길가에서 나이든 두 권사님을 만났습니다. 그 권사님들이 목사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용기를 얻고 돌아와 목회에 큰 성공을 했습니다.
믿음으로 목사를 격려하는 것은 능력 있는 목사를 만드는 비결입니다. 믿고 기도하며 우리 목사님을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목사로 키워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꿈 꾼대로 기도한 대로 이루어 질것입니다.
2. 라합은 아주 작은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최고로 신뢰하는 믿음을 표현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1절을 보면 “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 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하였습니다. 기생 라합이 정탐꾼을 영접한 그 행위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 에 정탐꾼을 영접하는 결단을 내린 것입니다. 이 일은 보통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탐꾼을 숨긴 사실이 탄로 나면 자기의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동족들로부터 버림을 당할 것입니다. 그런 위험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과감한 결단을 한 것은 그녀 속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는 야고보서 2장에 나오는 말씀인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떻게 행동으로 나타났는지 를 증언하고 그 다음으로 라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25절을 보면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를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면서 26절 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고 말씀하였습니다. 즉 믿음을 모험적인 행동으로 나타낸 사람의 예로 라합을 말하고 있습니다.
라합이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과 위험에도 불구하고 그 정탐꾼을 숨겨주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너무 안일한 가운데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에 도전이 없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지금도 모슬렘이 국교를 이루고 있는 중동지역을 방문해 보면 그곳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갖는다는 것이 얼마나 희생을 필요로 하는 삶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라합이 어떻게 이런 믿음을 갖게 되었습니까?
여호수아2장 10절을 보면 “이는 너희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너희 앞에서 홍해 물을 마르게 하신 일과 너희가 요단 저 편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 시혼과 옥에게 행한 일 곧 그들을 전멸시킨 일을 우리가 들었음 이라” 하였습니다.
라합은 본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떠돌아다니는 소문에서 하나님에 대한 말을 우연히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사용하고 계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행진시키고 계시다. 그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다 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라합은 우주의 창조이신 한 분,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통해서 어떻게 역사하고 계신지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하나님을 믿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말 라합은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환경이나 조건이 아주 어려운 때였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들려온 소식을 통해서 라합은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 소식 속에서 하나님이 그에게 계시되었고, 그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자마자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는 결단을 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하나님에 관한 많은 증거와 증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얼마나 다릅니까?
모든 것을 다 알고서야 믿겠다는 분이 있습니다. 얼마나 더 알고야 믿겠습니까? 이 세상에 사 는 동안 다 알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하나님과 인생과 우주에 대해 정확하고 절대적인 대 답을 얻었기 때문에 믿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가 전혀 알 지 못하게 해 놓으시고 그저 맹목적으로 믿음을 강요하시는 분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최소한의 계시를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한 줄기의 빛을 주십니다. 그 한 줄 기의 빛이 나에게 던져졌을 때 그것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로 알고, 아직도 모르는 것이 지만 그 계시의 빛줄기를 붙들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실존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어떤 언덕 위에 신앙에 관해 방황하는 사람 하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며, 인생은 무엇인가? 아무리 더듬어 찾아도 그 하나님 을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계속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 어느 날 한 줄기의 빛이 다가오기 시작합니다. 그 빛이 언덕 위에 있던 이 사람에게 그가 걸어야 할 길을 보여 줍니다. 한 줄기 빛으로 인해서 그 길을 발견한 순간, 그는 아직도 모르는 것이 많이 있지만 자기에게 다 가온 한 줄기의 빛을 보고, 알지 못해서 방황하던 그 언덕에서부터 그 길을 향해서 자기의 몸을 던지듯 뛰어 내립니다. 그리고 그는 이 믿음의 결단이 참된 신앙의 경험 속에 들어가게 하는 것 이어야 한다고 설명하였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알고 싶어하는 것을 다 응답해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 님을 믿으면서도 아직 그 하나님께 의문을 품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빛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내게 다가오기 시작하는 한 줄기의 빛을 가지 고 하나님을 알고 믿는 삶 속에 뛰어들어야 합니다.
사실, 라합은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하나님께 대하여 조금 알면서도 하나님을 믿는 삶 속에 들어갔던 라합에 비해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알고, 하나님을 경험한 많은 이웃들의 증언을 통해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결단하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라합은 어떤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고서라도 하나님 편에서 삶을 살기로 결단했습니다.
라합의 이 놀라운 믿음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듭니다.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만한 일입니다. 만일 중동의 국가들처럼 예수를 믿으면 세금을 더 내야하고, 직장에서 승진할 기회를 잃게 되고, 때로는 직장에서 쫓겨나게 된다면, 혹시 내가 자영업을 해도 장소의 제한을 받고, 여러 가지 어 려움이 계속된다면 그래도 하나님을 믿으시겠습니까?
라합과 같은 이런 시험이 주어진다고 해도 이 신앙의 결단을 지키는 삶 속에서 제자의 값을 지불하고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단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히브리서 11장을 믿음의 장이라고 하는데 흥미로운 것은 믿음의 인물들을 열거하면서 여호수아의 이름이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믿음으로 이삭은 이라고 하면서 믿음으로 여호수아는 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라합은 이라는 기록이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라합이 보여준 신앙의 결단은 여호수아를 능가하는 것이었습니다. 인생의 그늘진 곳에서 살고 있던 라합이라는 여인이 우리를 부끄럽게 할 정도로 참된 믿음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믿음도 라합 같은 상황이 닥친다 하여도 믿음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은 우리의 삶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성경은 믿음과 삶에 대해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2:17)”,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3:18)”.
아무리 좋은 건강 비법이 있어도 그것을 실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길이 있어도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내게는 관계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지식이 있어야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지만, 지식만 갖고는 신앙이 온전할 수 없는 것입니다. 행동으로 옮겨져야 하고, 삶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