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4]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세상은 이기적인 삶을 부추깁니다.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영광은 생각하지도 않고 개인의 이익만 챙기려 드는 이런 자기중심, 이기주의로 살기 때문에 하나님과는 상관없이 살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어떤 일하는 사람 되기 원하기 전에 순수한 마음부터 가지라. 깨끗한 양심을 가지라. 청결한 마음을 가지라. 욕심을 버리라. 탐심은 우상이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당한 사람들을 돌아보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결한 경건이고, 정결한 마음 갖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실 사람의 뜻은 오류가 많습니다. 그래서 공평성이 없습니다. 언제나 자기 위주입니다. 이기적입니다.
남을 이해하기보다는 자기 이익만 챙기는 이기주의, 그것이 고통을 가져옵니다.
대개 사람들에게는 선하고 바르게 살고 싶은 양심이 있는가하면 또 한편으로는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남을 짓밟고 올라서려는 악에 기우는 심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내부에서는 첨예한 갈등이 빚어지곤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양면성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소인은 반드시 이득을 얻으려 하지만, 군자는 의를 얻으려 합니다. 얻으려 한다는 점은 같으나, 그 기대하는 바가 서로 다릅니다.
믿음이 없으면 그냥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하고 이기적인 마음으로만 살아갑니다.
하나님은 성도 된 우리들에게 지혜를 얻으라고 요구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총과 사랑을 얻는 것이요,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 그분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불필요한 것 같지만 유익을 주는 것들이 많습니다.
본문4절에 “소가 없으면 구유는 깨끗하려니와 소의 힘으로 얻는 것이 많으니라.”
“이것은 우경(牛耕) 사회를 배경으로 하여 지혜를 가르치는 말씀으로 사람이 어떤 유익을 얻고자 한다면 그에 따른 희생과 어려움을 감수해야 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즉 노동에 대한 바른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 법칙에 따라 게으름을 극복하며 근면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부요하게 된다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만은 분명합니다.“[옥스포드 원어사전]
성도 된 우리는 무엇을 쉽게 얻으려는 습성을 버리고 수고하여 얻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기주의를 탈피하고 더불어 사는 공동체 속에서 남을 위해서 헌신하고 희생하며 하나님이 보실 때나 사람이 볼 때나 후회 없이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뿐더러 또한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기쁨을 서로 줄 수 있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며 더 많은 것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1.자기 집을 세우는 일(1)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집을 세우는 일은 보통일이 아닙니다. 물론 집으로 표현되는 가정도 세우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무엇을 세운다는 것 준비과정도 필요하고 자재도 필요하며 공력도 필요합니다. 건강한 가정을 세우는 일도 많은 것들이 필요합니다.
사람들은 모두가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을 꿈꿉니다.
행복한 가정이란 가장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남편의 성실한 땀이 있고 현모양처가 있는 가정, 집안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와 거실에서는 마주앉아 즐겁고 기쁜 대화를 주고받는 가족들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건강한 가정이란 가족 모두가 육신적으로 건강할 뿐 아니라 가정의 목표하는바와 생각까지가 이웃과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러한 가정 속에 있는 노부모는 자녀들의 즐거운 일상을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짓게 됩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흔들리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들은 이기적이고 배타적이 되어 삭막하기 그지없습니다. 오늘 우리의 가정들은 경쟁사회에서 이겨야 산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전략기지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여 이기적인 음모집단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한 집안이 잘 되려면 며누리가 잘 들어와야 한다는 우리나라 이야기가 있습니다.
여인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워주는 말입니다.
본문1절에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미련한 여인은 자기 손으로 그것을 허느니라”
이는 세상에 여자가 많이 있지만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세우는 여인이요, 다른 하나는 허무는 여인입니다. 건설적인 여인과 파괴적인 여인이 있다는 말입니다.
건설적인 여인을 지혜로운 여인이라고 부릅니다. 반면에 파괴적인 여인은 미련한 여인이라 부릅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자기 집을 세우되”
여기서 '세우다'에 쓰인 히브리어는 '바네타'(buildets)입니다. 기본적인 의미는 집을 비롯한 기타 건축물 따위를 '짓다', '건설하다'입니다.
이것이 상징적으로 쓰일 때는 '자녀를 낳아 대를 잇게 하다'(창16:2;30:3;신 25 . 9)를 뜻하기도 합니다.
또한 '집'(베타흐)이란 말도 거주지로서의 집과 더불어 가족이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집을 세운다는 말은 경제력과 더불어 그 구성원 개개인의 번성을 의미합니다.
가정에서 아내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내가 어떻게 행동하느냐에 따라 그 가정이 세워지기도 하고 무너지기도 합니다. 즉 한 가정의흥망이 여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지혜로운 여인은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식구들을 잘 보살피는 것은 물론 가계를 풍성하게 하여 그 집을 더욱 번영하게 하고 가문을 명예롭게 일으키지만 미련한 여인은 부도덕하고 게으르게 행하여 가정에 도덕적, 물질적인 파탄을 초래합니다.
잠언31장에서 남편을 귀한 존재로 인정해주는 여인을 현숙한 여인, 지혜로운 여인이라고 합니다. 인정해 줌이 좋은 남편을 만들고 아내를 만들고, 자녀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교회공동체 안에서도 인정에 인색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나도 무시를 당합니다. 그러나 서로가 좋은 점, 착한 점, 훌륭한 점을 찾아서 인정을 해 줄 때, 기쁨이 있고 새로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지혜롭다는 것은 나 자신이 우선하는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방에게 힘이 되는 것이며 하나님이 우선하는 모든 행위들입니다.
우리 성도는 세상에서 살 때에도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 하라고 하셨습니다. 악에는 어린아이가 되고 의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는 장성한 어른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태만히 하지 아니하고 민첩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책망이 없을 수는 없지만 기왕이면 책망대신에 칭찬 듣는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더욱 아름다운 일입니다. 미련한 자는 책망을 하여도 듣지 아니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눈길만 주어도 깨닫습니다.
자기 집을 세우는 일은 갖가지 힘들고 어렵고 귀찮아하기 싫은 일들이 많습니다.
한 가정에서 여인의 수고와 희생이 없이는 가정이 올바르게 세워질 수 없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희생과 어려움을 감수하여 자기 집과 교회를 잘 세워지게 하여서 많은 것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2.정직하게 행하는 일(2)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오늘 세상은 정직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거짓과 기만과 술수가 판을 치고 있어 거짓과 기만과 술수를 행하는 자들이 득세하고 있습니다.
사실 한국교회는 한때 인구 4명 중 1명이 교인이라는 사실을 자랑하였습니다. 교회 십자가를 성처럼 높이 세우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숫자와 건물이, 막대한 재정과 행사가 이 사회를 변화시키지 못했습니다. 빛이 되지 못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능력을 상실한 교회가 되었습니다. 맛을 잃은 교회가 되어 세상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있습니다.
신뢰를 잃은 교회, 사기 치고 거짓말을 일삼는 그리스도인과 목회자,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교회와 그리스도인은 결코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영향을 줄 수도 없습니다. 기도 소리는 큰데 삶은 여전히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말씀은 넘쳐나는데 제자로서의 삶은 빈곤합니다. 교회 안에는 하나님이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데 교회 밖에서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우리들의 이기적인 욕심과 탐심이 교회를 시장바닥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역대상29장17절에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마음을 감찰하시고 정직을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내가 정직한 마음으로 이 모든 것을 즐거이 드렸사오며 이제 내가 또 여기 있는 주의 백성이 주께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오니 심히 기쁘도소이다.”
하나님께서도 정직한 자에게는 죄를 묻지 않으십니다. 정직으로 자기 죄를 고백하거나, 정직으로 자신의 형편을 아뢰거나, 정직으로 하나님 앞에 나가면 하나님은 정직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기뻐하십니다. 때로는 거짓이 세상에서 앞서가는 것 같고, 정직을 누르는 것 같지만, 최후의 승리자는 정직한 자입니다.
열왕기상15장5절에 “이는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고 자기에게 명령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
다윗은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여호와 보시기에"가 중요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표준으로 살았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보기에"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 표준으로 사는 것을 정직이라고 합니다.
진실을 잃어버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정직함을 잃어버리면 낭패입니다. 그것을 잊지 말아야 됩니다. 죽고 사는 것보다 진실함이 그 위에 있고 충성된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어디까지가 정직인지가 분명하지가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를 수도 있다고 하는 생각들을 마음에 감추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벌써 표준이 흐릿해진 것이요, 흑과 백을 구별할 수가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성도 된 우리는 여기에 따라가면 안 됩니다. 우리의 표준은 하나님이 정해주신 율법의 표준입니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 그것이 무엇인지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므로 거짓을 우리는 미워합니다. 거짓을 거부합니다. 우리는 참과 거짓을 뒤섞어 놓고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분명히 거짓은 배격하고 참을 따라 가려고 하는 자세를 가집니다. 설혹 그렇게 하다가 우리가 바보스럽게 보여도, 손해를 보아도, 진실과 거짓을 혼돈하면서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이런 도덕적인 우위를 유지하겠다고 하는 강한 의지가 있을 때 비로소 이 세상에서 소금이 될 수 있고, 빛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을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십계명에도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적잖은 거짓말을 하며 삽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에 빛이 되지 못하고 맛 잃은 소금노릇을 하는 실정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겨우 열 두명 이었습니다. 그 열두명이 전 세계 구석구석에 복음이 전파되도록 다리를 놓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도 된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각각 자기 업무에 정직하게 수고할 때 이것은 가장 훌룡한 신앙의 행위요,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에게 주어진 일을 충성되이 잘 감당하게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을 더욱더 드러납니다. 일터에서 직장에서 그리스도인인 된 사실에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성실하게 일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직장에서 공개된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앞장서서 정직하며 근면하게 살아감으로 세상의 본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모범이 되어서 ‘옳으면 옳다‘, ‘아니면 아니다‘라는 영향을 끼치는 교회와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정직한 자는 자기의 욕망을 조종하지만 정직하지 않은 자는 욕망에 조종된다.” 는 말을 누군가가 하였습니다.
성도 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아 그 뜻을 성취하기 위해서 열심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해서 정직하게 그 길을 가면 평탄한 길을 걸어갑니다.
불의와 부정을 따라가게 되면 가시밭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중대한 잘못을 하고 있습니다. 부정과 부패를 해야 잘 살수 있고 희망에 도달할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직하게 살면 손해가 난다. 부장부패로 살면 잘 살 수 있다'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부정과 부패의 길은 험한 가시밭길입니다. 정직한 길만이 오직 우리의 삶에 평탄한 길입니다. 이 부정적인 길이 바로 파탄의 길이요, 정직의 길이 평탄의 길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 희망을 달성하고 나갈 때 정직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정직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외하여도 패역하게 행하는 자는 여호와를 경멸하느니라.”
정직하게 행하는 사람의 전형적인 특징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입니다.
정직하게 살아가려면 손해 보는 일도 허다합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살아가기 위해 힘쓰면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3.자기를 보전하는 일(3)
“미련한 자는 교만하여 입으로 매를 자청하고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삶속에서 언어생활은 중요합니다.
말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을 들어보아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알 수 있을 뿐 만 아니라 말로 그 사람의 신앙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말은 그 사람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인구(人口)조사, 호구(戶口)조사라든가, 또는 식구(食口)라고 할 때 구는 입 구(口)자를 쓰고 있는데 입 구(口)자는 단순히 '입' 만을 뜻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 사람 전체를 말합니다. 성도들의 언어생활도 그 사람의 전체를 다 대표하고 있습니다.
특히 말은 자신의 심중을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입니다. 말이란 속성상 한번 내뱉으면 상대에게 전달된 내용만 남고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한번 뱉은 말은 돌아오지도 않고, 주워 담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혀를 잘 사용해야 합니다.
아고보서3장6절에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불씨가 남아있는 담배꽁초 하나가 거대한 숲 전체를 태워버리는 것처럼 말 한 마디가 이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는 뜻입니다.
‘혀가 곧 불이요’라는 뜻은 혀에서 발설하는 악한 말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 불처럼 온 세상을 파멸시킨다는 뜻입니다. 핵폭탄 하나가 터지면 상당한 반경까지 화염에 뒤덮이고 모든 것이 파괴되듯이 악한 말 한 마디도 온 세상을 지옥불로 불붙게 만듭니다.
‘불의의 세계’란 관계가 파괴된 세계를 뜻합니다. 즉 혼돈과 무질서의 세계를 뜻하는데 말 한 마디가 그런 세상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른다는 뜻은 인생의 전 과정을 파멸로 이끈다는 뜻인데 불의한 말 한 마디가 우리의 인격과 삶 전체를 엉망으로 만다는 뜻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은 후에 그의 말이 소멸하는 불처럼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 하나님과의 관계까지 파괴했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 전체를 불의의 세계로 만들었습니다.
야고보서3장1절에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말이 지니고 있는 위험성을 말하고 있으며 누구든지 지도자의 자리에 있는 사람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이 많으면 실수도 많고, 또한 자신이 말해 놓고 지키지 못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책임을 져야 할 일이 많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1장19절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이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면 실생활에서 공평하고도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람이 바르게 행하는 것이며(미가 6:8), 사람의 성내는 것과 변덕스러움과 고집은 하나님의 원하심을 이루어 드리지 못합니다. 오직 조용하고 온유한 마음만이 경건을 낳습니다. 한국 사람들의 큰 약점은 쉽게 분 낸다는 것입니다. 조금만 참고 감정을 죽이고 합리적인 길을 찾으면 얼마든지 좋은 길을 찾을 수 있을 텐데 감정이 앞서 싸우다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는 것이 그리스도의 성품을 따르는 바른 자세입니다. 이런 자세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로운 삶을 살아가게 합니다.
공자는 신중치 못한 말의 실수로 자기의 허물을 인정하고 제자들에게 “오늘 내가 큰 실수를 했구나! 앞으로 너희들은 삼사일언(三思一言)하여라” 하였습니다. 신중치 못한 말이나 행동은 남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비수(匕首)가 되기도 합니다.
잠언10장19절에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하기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입술”을 NIV 성경에서는 “혀”로 번역하였습니다.
혀를 적절하게 제어할 수 있는 것은 충동조절 능력과 관련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심리적인 수준이 미숙할 때에는 언어생활에서 실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할 말과 하지 말아야 할 말을 구별해서 하고 조절해야 대인관계에서 실수를 덜 하며 상처를 덜 입힐 수 있습니다.
실수를 두려워해서 아예 말을 하지 않으려는 이들도 있는데 이것은 극단적인 방법입니다. 적절한 수준에서 말을 해야 대인관계를 건강하게 할 수 있습니다. 말을 너무 많이 하면 불필요한 말이나 상처 주는 말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말을 너무 아끼고 침묵하면 상대방과 친밀감을 유지하기 어렵고 의사소통의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성도들은 우리의 삶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의 언어생활이 아름다워야 합니다. 언어생활이 아름다워야 한다고 하니, 모든 말을 미사여구를 사용하려고 애를 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의 말이 진실하고 정직하고 깨끗하여야 합니다. 세상에는 같은 사상을 표현하는데도 수많은 말들이 있고, 선택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이 넓은 것을 봅니다.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사랑하고 소유하고, 우리의 사는 시대가 좋은 날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우리의 언어생활이 순화되어야 합니다.
“지혜로운 자의 입술은 자기를 보전하느니라.”
입을 지키고 나면 자기 분열을 막을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입을 관리할 수 있습니다.
지혜가 있는 사람은 입술을 잘 다스려 남에게 유익을 주는 말만 하고 꼭 필요한 말만 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손해 주는 말은 하지 말고 입술을 잘 보존하여 은혜로운 말만 하여 복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 있는 자가 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유익한 말을 하여 많은 유익을 얻으시기를 바랍니다.
1.자기 집을 세우는 일(1)
2.정직하게 행하는 일(2)
3.자기를 보전하는 일(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