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분모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막상 행복한 사람을 찾아보면 별로 많지 않습니다.
하버드대학 연구진이 20년간 4700명을 대상으로 관찰해 본 결과 친구가 행복한 생각을 하면 자기도 따라서 행복해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즉 행복한 생각을 하는 사람과 가까이 하면 나도 행복해지고, 불행한 생각을 하는 사람을 가까이 하면 나도 불행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은 우리 몸까지 변화시킨다고 합니다. 행복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그 몸도 건강해진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행복을 선택합니다. 행복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결코 불행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행복한 생각을 하는 사람은 자신의 행복과 더불어 다른 사람들까지 행복해지도록 좋은 영향을 끼칩니다.
헤르만 헷세라는 시인은 사람의 행복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하였습니다.
“인생에 주어지는 의무는 다른 아무 것도 없다 네 그저 행복 하라는 한 가지 의무 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 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서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 깊은 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 이라 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헷세는 이 시에서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은 사랑하는 능력이 있을 때 행복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능력이 있다면 사람은 보리죽을 먹든, 누더기 옷을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있는 한 사람은 행복을 누릴 수 있다고 노래하였습니다.
헷세의 말처럼 우리 사람은 분명히 무엇인가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도깨비방망이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갑자기 하루아침에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손에 쥘 수는 없습니다. 물론 생각지 않은 행운 이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리는 땀과 수고를 당연한 것으로 알고 불평하지 말 고 우리의 삶 속에서 땀 흘려 일해야 합니다. 돈을 버는 것이 복이 아니라 최선을 다해서 일한 것이 복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희망과 현재의 삶을 즐겁고 윤택하게 하는 비결을 일러줍니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행복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고 그 통로가 예수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전혀 알 수 없고 느낄 수 없는 신비로운 행복의 조건들을 알고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마 13:11).
성경을 통해 일러주는 행복의 비결을 배워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불의와 거짓을 말하지 않아야 합니다.(1-4)
[1] 욥이 또 풍자하여 이르되 [2] 나의 정당함을 물리치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의 사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3] (나의 호흡이 아직 내 속에 완전히 있고 하나님의 숨결이 아직도 내 코에 있느니라) [4]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역사상 어느 시대나 불의와 거짓이 난무하였습니다. 오늘날은 불의와 거짓이 판을 치는 시대입니다.
욥기12장6절에 “강도의 장막은 형통하고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는 평안하니 하나님이 그의 손에 후히 주심이니라.”
죄와 불법이 기승을 부리는 이 세상에서는 악한 자들이 형통하고 대신 의인들이 고난 받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난해한 현실은 우리가 가까이서 목도하는 자연의 세계에서도 넉넉히 발견할 수 있는 현상들입니다. 즉 성질이 사납고 고약한 강한 짐승이 성질이 유순하고 그저 부드럽기만 한 약한 짐승을 잡아먹는 것처럼 불의한 일이 매일 자연계에서 발생합니다.
이런 현상은 모든 피조 세계의 대표자인 인류가 하나님의 법을 거역하고 범죄함으로써 그 이후부터 모든 피조 세계에 만연되어버린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실로 사람의 죄악이 이처럼 사람 세계는 물론이거니와 온 자연 세계에 고통을 제공하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 결과 진리가 오히려 훼방을 받고 외면을 당하기 일쑤입니다. 비진리가 승승장구합니다. 정직과 공의와 공법이 웃음거리가 됩니다. 불의와 불법이 활개를 치며 득세합니다. 큰 소리 치는 자가 이깁니다.
죄를 행하고도 뻔뻔한 사람들, 오히려 범죄를 행하고도 자기 합리화의 연극을 하며 죄를 자랑하는 추한 인간성의 비극을 우리는 얼마든지 볼 수 있습니다. 군대에서, 학교에서, 동네에서 등 사회생활에서 일어납니다.
이런 불의한 일을 그리스도인은 단호하게 거부해야 합니다.
이것은 용기와 신앙이 필요합니다. 잘못하면 불이익과 억울함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거부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렵지만 어느 기간이 지나면 다른 사람도 인정해줍니다.
불의함을 거부할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불의에 타협하게 되면 점점 큰 불의함의 압력이 가해지기 때문입니다.
또한 불의한 이익으로 얻은 것은 결국 나를 파멸시킵니다.
마태복음5장6절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라고 하는 것은 늘 의를 추구하며 사는 인생을 말합니다.
율곡선생은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언제나 의를 행하라. 죄 없는 사람 하나를 죽여서 천하를 얻는다 하더라도 그 길을 가지말라!”
의롭게 살려고 할 때 삶은 단순하여 지고 강하고 힘이 있어집니다.
불의한 사람은 유치하게 됩니다. 가끔은 거짓말을 해야 하고 그 거짓말을 위하여 또 다른 거짓말을 해야 되는 피곤의 연속 속에 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바르고 정직히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세상 사람들과 같이 죄와 거짓으로 점철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정직과 진실입니다. 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잠12:22)
불의와 거짓을 기뻐하지 않는 곳이 교회입니다. 물론 교회는 사랑하고 용서가 있는 곳입니다. 불의를 범한 당사자가 회개하고 용서를 구한다면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받아줘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 불의를 지속하고 있다면 거룩한 교회는 그에 합당한 징계를 내려야 합니다.
본문4절에 “결코 내 입술이 불의를 말하지 아니하며 내 혀가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리라.”
이 말은 지금까지 욥 자신이 했던 말이 결코 거짓이 아니었음을 말한 것인 동시에 그 친구들이 무슨 말로 자신을 공격한다고 해도 자신이 결백하다는 주장을 꺾을 의사가 없음을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즉 욥은 자기의 불의함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는 친구들과 조금도 타협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죄를 완전하게 다루는데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때 우리는 계속적으로 내적인 혼란과 불안 속에서 살게 됩니다.
성도 된 우리는 항상 우리 자신 안 에 있는 거짓과 외적인 거짓과의 타협을 버리고 진리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진실을 견지(堅持)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 동안 불의와 거짓을 말하지 않으려고 애씀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온전함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5)
“나는 결코 너희를 옳다 하지 아니하겠고 내가 죽기 전에는 나의 온전함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온전(穩全)’이란 헬라어 원문에서는 “텔레이오스”라는 단어를 사용했는데, 영어로는 perfect 또는 complete 로 번역하며, ‘완전한’, ‘성년의’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즉 ‘흠이 없고 잘못됨이 없는 완전한 인격’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사람은 누구나 흠이 있습니다. 온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이 너무 완벽하면 재미가 없다고 합니다. 너무 맑은 물에서는 물고기가 살지 못 한다고도 합니다. 부부 가운데도 어느 한 쪽이 완벽주의자인 경우에는 결국 부부싸움을 크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온전함을 요구하십니다. 완벽한 사람을 요구하십니다. 성경에는 그래서 ‘행실이 온전한 자’, ‘행위가 온전한 자’, ‘온전한 제사’ 등의 낱말들이 있습니다.
성결교는 `중생 성결 신유 재림'의 `사중복음'을 핵심교리로 합니다. 온전한 거듭남을 통해 죄성을 벗고 성령님으로 세례를 받으며 그리스도 안에서의 치유를 믿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기다립니다.
베드로전서5장10절에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여기에서 ‘온전케 한다’라는 말은 ‘의롭게 행동한다, 완성한다, 원상태로 회복된다, 찢어진 그물을 깁는 것과 같이 상처 나고 부족한 것을 바로잡아 완전케 한다’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원상태로 회복되어야 됩니다. 하나님은 은혜를 통해 성도의 상처를 치료하고, 구부러진 것을 펴주며, 연약한 것을 굳고 강하게 하여 견고히 세워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온전이란 완전무결을 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인이 온전하게 되는 것은 사랑 즉 이웃을 내몸 같이 사랑하는 과정 속에서 가능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온전이란 사랑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마태복음5장48절에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이 세상에는 모든 물건의 모델이 있습니다. 표준이 있습니다. 성도의 삶의 모델은 하나님 이십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닮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이기에 당연히 닮아야 합니다. 그러면 여기에 온전 하라는 뜻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세상에 내놓을 때 부끄럽지 않고 거룩한 성도로써 하나님의 자녀로써 합당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1장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말씀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혹은 신적 능력으로 새 사람을 만들어서 의와 진리로 거룩해짐을 의미합니다.
성경이 말씀 하는 대로 하나님 아버지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우리도 거룩해진다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의 온전하심 따라 우리도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온전한 사람의 표준은 그리스도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 그리스도의 인격, 그리스도의 생활을 본받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람은 모두가 불완전하고 미숙한 죄인입니다. 온전한 신앙인이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교회는 죄인들을 오라고 부르시지만 천국에는 온전한 사람들만 들어오라고 부르십니다. 천국에는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자들을 위해서 예비된 거룩한 나라입니다.
천국을 새 하늘, 새 땅이라고 말한 것은 천국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사람들만 들어가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사모하는 성도, 천국을 목표하는 성도는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흠도 없고 점도 없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후서3장13-14절에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하였습니다.
성도 된 우리가 온전한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행복한 삶을 사는 비결입니다.
3.공의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공의’(righteousness)는 히브리어로 ‘미쉬파트’인데 재판 용어입니다. 재판장이 모든 사람을 공정하게 판결하는 것을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한 영화의 이야기입니다.
한 갱단의 두목 아들과 다른 젊은이가 싸움을 하는데 총을 쏴서 한 명이 죽는 총싸움이었습니다. 갱단 두목이, 하나 둘 셋을 세서 열 발자국 걸어간 다음에 돌아서서 쏴야 하는데 공평하게 하지 않고 약속을 어기면 먼저 그 사람을 쏜다고 주의를 주었습니다.
두 사람이 양 방향으로 걸어가다가 열 발자국 째 돌아서서 쏴야 하는데 두목의 아들이 아홉 발자국 가서는 돌아서서 쏘려고 할 때에 두목이 보고 있다가 자기 아들을 먼저 쏴서 죽이는 것입니다.
비록 갱단 두목이기는 해도 공정하게 판단해서 바르지 못하게 행동하는 자기 아들을 가차없이 사살하는 것을 보면서 공의가 이런 것임을 보았습니다.
미가서6장8절에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여기서 정의를 개역성경에는 공의로 번역하였습니다.
우주의 기초는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공의로 우주를 다스리십니다. 나라의 기초도 역시 공의입니다. 이 공의가 무너지면 나라가 흔들립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공의가 계속 흔들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 우리 성도들의 할 일은 우리의 각자 위치에서 공의를 행하는 것입니다. 공의를 실현하며 사는 것이 나라 사랑의 방법입니다.
창세기 18장에 보면 소돔 고무라 성이 패망하기 전에 천사를 아브라함 집에 보내어 아브라함과 천사가 대화하는데 소돔성에 의인 10명만 찾아도 멸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보면 나라가 망하고 흥하는 것은 유능한 정치인, 경제인, 과학자보다 공의를 행하는 의인이 많아야 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리스도인들이 전도하여 예수님을 믿게 함으로써 죄인을 의인으로 만들어 나라 지키는 원인자가 되게 해야 합니다.
잠언서 기자는 “의는 나라로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들을 욕되게 하느니라”(잠14:34)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일컫습니다.
이사야30장18절에 “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일어나시리니 이는 너희를 긍휼히 여기려 하심이라 대저 여호와는 정의의 하나님이심이라 그를 기다리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공정하게 행할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근거 없는 말로 남에게 손해를 주거나, 거짓 증언을 하거나, 악을 행하는 다수의 편에 동참하거나, 다수가 부당한 증언을 하는데 따라가거나, 송사에서 가난한 사람이라고 두둔한다거나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공정하지 못한 증언 때문에 억울하게 옥살이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살인죄를 뒤집어 쓴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억울한 사람이 많은 사회는 불의한 사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판관들에게 공정한 판결을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출애굽기23장6-8절에 “[6] 너는 가난한 자의 송사라고 정의를 굽게 하지 말며 [7] 거짓 일을 멀리 하며 무죄한 자와 의로운 자를 죽이지 말라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8]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 한 복판에서 살 때 정직하고 정의롭게 살기를 바라십니다. 옳고 바르게살기를 바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공의는 권세를 가진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그렇지 않는 사람에게는 막무가내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같은 마음으로, 같은 인격을 가진 사람으로, 같은 권리를 가진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며, 특히 연약하고 잘 알지 못하며 자기가 지금 손해를 보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차근차근히 설명해서라도 자기의 몫을 가지도록 배려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변을 훑어보면 성실하게 사는, 법 없이도 살아갈 만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영악하고 교만한 사람들이 이런 사람들을 유혹하여 가진 것을 잃게 만드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는 나의 앞에 하나님이 눈을 뜨고서 나의 행동을 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가 보지 않아도, 누가 지적하지 않아도 정직하게, 성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약한 자가 우리 옆에 있으면, 우리는 그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의 손해를 감수하면서라도 그들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할 때에 우리는 믿음이 있으며, 동시에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누리며 살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질서와 법이 강물이 흐르듯 행해져야 합니다. 오늘날 시대를 역행하고 불법을 저지르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시며 심판하십니다.
본문6절에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여기서 욥은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볼 때 하등의 도덕적 가책을 느끼지 않으며 또한 하나님의 공의로운 법정 앞에서도 결백을 판결 받을 자신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입니다.(욥23:11).
성도 된 우리는 비록 지금 의인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너무나 힘들고 외롭고 힘들지라도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여야 합니다.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1.불의와 거짓을 말하는 않아야 합니다.(1-4)
2.온전함을 버리지 않아야 합니다.(5)
3.공의를 굳게 잡아야 합니다.(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