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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만든 사람(창44:1-3)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3]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우리나라 고유명절인 설날을 이틀 앞두고 있습니다. 명절은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날입니다.

 

설날은 건전한 가정문화를 만들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건강한 가정문화는 부모와 자녀관계를 성숙시켜 자녀들의 올바른 가치관 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신앙적인 문제로 대립하지 말고 명절기간동안 가족들을 사랑으로 극진히 섬기고, 겸손한 모습으로 가족들을 섬기면 가족들은 기독교인들 가운데 계신 예수님을 를 보게 될 것입니다. 신앙은 말로 표현되기 보다 섬김을 통해 행동으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명절은 무엇보다도 가족과 형제간에 좋은 우애를 다지는 기회입니다.

 

성도 된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은 집의 크기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큰 집이 아니라 작은 집이라도 사랑이 충만한 가정이 위대한 가정입니다.

 

사랑이 가득한 집에서 자란 사람들은 조금 부족해도 위축되지 않으며, 그 어떤 어려움과 아픔도 함께 이겨나갈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본문은 요셉을 통해 사랑을 만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요셉은 어려서부터 부모의 편애에 의해 사랑을 독차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형들의 시기를 받아 애굽의 상인에 팔려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 종으로 들어가 신임을 얻게 되나 억울한 누명을 통해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왕 바로의 풍년과 흉년에 대한 꿈을 해석 하면서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와 형제들이 사는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 그의 형제들이 애굽에 곡식을 사러 오나 형들이 자신에게 행한 해악을 용서하여 주고 고센 땅에 정착케 하고 돌보아 주었습니다.

 

요셉은 가정에 대한 책임을 잘 감당했습니다.

요셉은 고국의 아버지를 모시고 와서 극진히 모시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형제들의 가족 모두를 애굽으로 이주시켜 기근이 다 지날 때까지 가족 전체의 살림살이를 보살펴 주게 됩니다. 22년 전 형들이 자신에게 행한 해악들을 다 잊어버리고 형제들에 대한 사랑을 베풀고 있습니다. 또한 아내와 자식들에 대해서도 요셉은 참으로 성실한 가장이었습니다.

 

가정이 건강해야 육신도 정신도 건강할 수 있습니다. 가정이 평안해야 신앙생활도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에 덕이 됩니다.

 

이번 명절 기간에 사랑을 만들어 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사랑은 용서입니다.(1-2)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요셉이 했던 가장 위대한 일은 자기를 죽이려고 했던 형들을 용서한 것입니다. 용서 그것은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인생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용서할 수 있다면 인생을 완성한 사람입니다.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완전한 성숙에 이른 사람입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더욱 많은 친절을 베풀고 그들의 곡식 자루를 채워 주며 돈도 되돌려 주었습니다.

 

사실 용서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제일 어려운 일은 원수 를 용서하는 일입니다.

 

우리의 생명을 내 자녀의 생명을 빼앗아 가며, 우리 재산에 어떤 막대한 지장 을 주고 손해를 끼친 사람들, 그리고 나를 비방하고 해치며 욕하는 사람들을 우리가 용서하는 것이 정말 어렵습니다. 또한 믿는 성도들로서 제일 어려운 일을 그렇게 지적하고 있었습니다. ‘교인이 되 어서 제일 어려운 일은 무엇이냐?’ 잘 살면서도 기도하고 복을 받았는데도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죄 를 회개하며, 주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미국의 유명한 심리학자인 아키발드 디 하트는 “용서란 나를 해친 사람에게 내가 원수 갚

을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원수를 갚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음에도 그 권리를 포기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용서를 받으므로 감격과 기쁨을 체험할 뿐 아니라 용서를 베풀면서 더욱 더 큰 감격과 기쁨을 체험하게 됩니다. 남에게 용서를 베풀 때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즐거워집니다. 기쁘고 즐거워집니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용서에 인색한 사람은 마음이 굳게 닫혀 있습니다. 기쁨이 없습니다. 용서에 인색한 사람은 복을 받지를 못합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교회와 사회만이 아니라 개인의 건강에도 참으로 좋습니다. 남을 원망하면, 혈압과 심장 박동이 오릅니다. 울화를 품으면, 스트레스가 더 심해지고, 불쾌감도 급속히 증가합니다. 울화를 품는 것은 장기적인 질환을 일으킵니다. 하지만 용서는 몸의 스트레스를 제거해 주고, 육체적으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치유해 줍니다.

 

요셉은 놀라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조건이나 반응을 따라 형들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고 파멸시키려 했지만 요셉은 형들을 본질부터 사랑하였습니다.

그 사랑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태도를 보고 사랑하시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태도나 반응과 상관없이 그분은 사랑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찾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나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내가 죄인이었을 때도 나를 사랑하셨고 내가 불순종했을 때도 이미 먼저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특징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변덕을 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식언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그가 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십니다.

 

사랑의 특징은 기다림입니다. 사랑에 반응을 보이지 않을 때 기다립니다. 사랑은 포기할 수 없습니다.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은 그 사람이 깨닫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내 사랑을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참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기다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판판하지 않습니다. 포기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형들을 사랑했습니다. 자기 인생을 죽음으로 몰고 갔던 형들이었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사랑했습니다.

 

성도된 우리는 항상 넉넉한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용납하고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를 용납해주시고 우리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치명적인 실수를 많이 합니다.

 

그래도 용서받은 우리가 타인의 실수를 용서하지 않는다면 바른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자녀의 신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것을 우리가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백 번, 만 번이라도 형제의 죄를 용서하고도 남을 수 있는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기 때문에. 마음 속 깊은 곳으로부터 참된 용서가 가능합니다.

 

사실 진정한 용서는 보답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어떠한 물질적인 보답으로 회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으로 용서하는 자에게는 자존심을 떨쳐버리고 무조건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자기 마음이 편해지기 위해서라도 망각하기도 하고 관용을 베풀 수 있는 용기와 여유가 가슴속에 가득해야 합니다.

 

명절은 가족이 함께 모이는 날이며 가정의 소중함을 알게 하는 날임을 다시 한 번 명심하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이란 상처를 주고, 받으면서 사랑과 용서를 배우는 곳입니다. 영적인 가정인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가정은 용서가 넉넉한 가정입니다. 가정이 서로를 향한 비난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런 가정은 세상을 따뜻하게 할 수 없습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좋은 교회는 용서가 넉넉한 교회입니다.

 

사랑은 용서입니다. 용서를 통하여 사랑을 만들어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사랑은 베품입니다.(1-2)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사랑은 실천입니다.

 

야고보서2장16절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누구나 말은 잘합니다.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그러나 말은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내가 헌신하고 섬겨야 복이 되고 격려가 됩니다.

 

참된 신앙의 모습은 말보다 행동으로 실천하고 헌신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사랑이 있으면 친절한 행위는 반드시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사랑하면 사랑하는 사람의 필요가 보입니다. 그 사람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볼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말해서 일상적인 삶에서 사랑하는 행위가 전혀 나타나지 않으면 신앙이 없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습니다.

 

신앙은 있다는 주장에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믿음이 있음을 보여주는 행동으로 나아가야 의미가 있습니다. ‘불쌍한 마음이 들었다’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돕고 싶었다”고 말하는 것은 실상은 돕지 않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돕고 싶은 충동을 하나님께서 하셨으나 순종하기를 거역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노라.” 면서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그에게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그 믿음은 아주 가식적(假飾的) 믿음입니다.

 

그들의 말은 전혀 가치가 없는 거짓이며 행위와는 전혀 무관한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 있노라 신앙 고백을 하면서도 마음 내키는대로 살아서 행함이 전혀 없다면 구원에 있어서 유익된 것이 아닙니다. ‘산 믿음’은 행함을 통해 자신과 더불어 남에게 유익이 되어야 합니다.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거기다 대고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이 세 마디 말은 그 사람에게 위로와 유익함이 되지 못하는 전혀 가치가 없는 공허한 말입니다.

 

헐벗고 굶주린 자에게 아무런 실제적인 도움을 주지 않고 ‘네가 알아서 스스로 평안히 하고, 더웁게 하고, 배부르게 하라’라고 위로하는 것은 오히려 남에게 깊은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는 죄악입니다. 충분히 도와줄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와 주지 않고 스스로 믿음이 있노라 하고 떠벌리는 것은 위선에 불과합니다.

 

요한일서3장18절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거짓이 아닌 사람은 표현이 있는 사람입니다. 표현이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혀로만 하는 염불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마음과 손과 발을 통하여 표현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 표현이 없는 사랑은 거짓된 사랑입니다.

 

요셉은 사랑을 실천한 사람입니다.

 

용서할 수 없었던 형제들이었지만 용서하였고 말로만 아닌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본문1절에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요셉이 얼마나 그의 부친과 형제들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 즉, 요셉은 돈의 액수대로 양식을 달아서 실은 것이 아니라 자루에 실을 수 있는 한 최대한 많이 싣도록 명하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비록 자신의 신분을 밝힐 수는 없었지만 자식 된 도리 , 형 제 된 도리를 다하려 고 애쓰는 요셉의 친절하고 후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그랜드 주석]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가족을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다 한 것입니다.

 

필요를 알고 필요를 채워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리고 채움이 베품입니다.

 

요셉이 흉년들어 애굽을 찾아 온 형제들에게 필요한 양식을 자루에 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운것처럼 있는 것으로 채워주는 것이 베품의 사랑입니다.

 

참된 사랑의 실천은 먼저 자신을 열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랑의 출발은 자신을 열고 공개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을 닫아 버리고 사는 사람들에게는 이웃의 아픔과 신음소리가 들리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세계 안에만 갇혀 살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베푸는 것은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살아 있을 때만이 가능합니다.

때를 놓치면 베품의 기회가 다시는 오지 않을 수도 있고 또한 베품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베품은 용서입니다. 베품을 통하여 사랑을 만들어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사랑은 배려입니다.(3)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사랑하면 배려가 풍부해집니다.

 

배려는 남을 생각하고 그의 입장에 서서 그를 이해하며 그에게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배려, 그것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말로만 하는 사랑, 상대방의 생각이나 감정이나 의사는 고려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하는 사랑, 그래서 남을 불편하게 하고 부담스럽게 하며 불쾌하게 만드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라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하도록 지음을 받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상대방을 배려한다는 것은 상대방을 편안하게 해 주기 위해서 자신의 편안함을 조금 희생하고, 상대방보다 자신이 조금 더 수고하는 것입니다.

 

사실 가족이나 친구들보다도 모르는 사람들을 배려 한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습니다.

잘못된 배려가 상대에게 오히려 부담이 되거나 상처를 줄 수 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 내 입장에서가 아니라 상대의 입장에서 충분히 생각해보고 나서 행하도록 해야 합니다.

 

내가 누구에게 무엇을 해 주었다고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해 또는 인정받기 위해 생색을 낸다거나 자랑하려는 마음으로 행하는 것은 진정한 배려가 되지 못합니다.

 

참된 사랑이 없이는 남을 배려하기 어렵습니다.

 

한편 배려야 말로 사람관계를 원만하고 매끄럽게 이끌어 주는 윤활유라고 합니다.

사려가 깊은 사람은 그만큼 매사에 신중하고 주위 사람들 에게 신뢰를 주기 때문에 사회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습니다.

 

한상복 씨가 쓴 ‘배려’는 글 가운데 ‘배려는 받기 전에 주는 것이며 사소하지만 위대한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한 예화를 들려줍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밤에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 한 손에는 등불을 들고 갑니다.

그와 마주친 사람이 비웃듯이 묻습니다.

“당신은 정말 어리석군요. 앞을 보지도 못하면서 등불을 왜 들고 다니십니까?”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나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서지요.

이 등불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자기 이기심을 넘어서는 비결은 바로 다른 사람을 향한 따뜻한 배려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느 때 보다도 가장 어려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너무나 세상이 살벌하고, 생존경쟁이 치열한 세상에서 우리는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나타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기주의’(利己主義), 또는 ‘자기중심적 삶’ 입니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配慮)를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도 자기입장에서 자기중심적으로 말을 합니다. 한 마디 말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말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행동하는 것도 다 자기중심으로 하지 남을 배려하는 행동을 하지를 않습니다. 모든 것이 다 내 중심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 가운데 문제가 있습니다. 경건의 모습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딤후3:5). 즉 교회는 다니는데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전히 자기중심적인 이기적인 삶에 매여 있을 때가 많습니다.

 

요셉은 가족에 대한 배려가 있는 사람입니다.

 

본문3절에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분명 원수로 생각할 수 있고 미워할 수도 있던 형제들을 따듯한 환대를 해주었을 뿐 아니라 따뜻한 배려로 그들을 보내 주었습니다.

 

그들은 먼 길을 가야 했기 때문에 아침 일찍 출발하도록 하였습니다. 그들은 애굽 총리의 환대와 시므온의 석방, 그리고 많은 곡식을 살 수 있었으므로 기쁜 마음을 가지고 출발했을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계획에 의해 요셉은 형제들을 극한 상황에까지 몰고 갈 마지막 시험으로 자신의 특별한 은잔을 베냐민의 자루에다 집어넣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형제들이 베냐민을 위해 함께 책임을 지지 않으려 할 때, 즉 베냐민의 죄가 드러나 혼자 돌아오게 될 경우 그들 역시 도둑으로 몰아 책임을 지게 하려고 세운 전략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형들이 베냐민과 같이 행동하게 될 경우 에는 이 시험을 치를 필요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가족 화합을 위한 요셉의 계획된 배려입니다.

 

이 시대의 진정한 경쟁력은 바로 배려입니다. 배려는 사람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가장 위대한 힘입니다. 자신을 배려하고, 남을 배려하고, 공동체를 배려하는 하는 자가 진정한 인생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천국의 삶을 이 땅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내 곁에 나의 배려가 필요한 사람은 누구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그를 향해 배려의 마음으로 다가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의 마음으로 감싸주시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그를 세워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속에 주님의 진정한 위로가 있고, 기쁨이 있고, 감사가 있고, 행복이 있습니다.

 

배려는 사랑입니다. 배려를 통하여 사랑을 만들어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사랑은 용서입니다.(1-2)

2.사랑은 베품입니다.(1-2)

3.사랑은 배려입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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