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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점 강성하여 가니라(대상11:4-10)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4] 다윗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예루살렘 곧 여부스에 이르니 여부스 땅의 주민들이 거기에 거주하였더라 [5] 여부스 원주민이 다윗에게 이르기를 네가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나 다윗이 시온 산 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6] 다윗이 이르되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지휘관으로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우두머리가 되었고 [7] 다윗이 그 산성에 살았으므로 무리가 다윗 성이라 불렀으며 [8]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두루 성을 쌓았고 그 성의 나머지는 요압이 중수하였더라 [9]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10]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는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짐승들의 생활에는 약육강식이 있습니다.

이 땅에는 약육강식의 원리가 작용합니다. 사자가 어린양을 할큅니다. 이 땅에서는 약한 자는 짓밟힙니다.

 

간단히 말하면 약한 것은 강한 것의 밥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가혹한 생존경쟁 세계에서 약한 자나 약한 민족이 강한 자나 강한 민족의 지배를 받고 종속되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남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강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약자가 되어 눈물을 흘려봤자 약자에 대한 동정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섬기는 일종의 '약육강식'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입니다

 

강성(强盛)이란 힘차고 왕성(旺盛)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강성하기를 원합니다.

 

사람은 무슨 일이든지 강해야 합니다. 강하지 않으면 어려움을 만났을 때 헤쳐 나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상에 보면 점점 강성해 지는 사람이 있고 점점 약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점점 강성해지는 가정이 있고 점점 약해지는 가정이 있습니다. 점점 강성해지는 사업이 있고 점점 약해지는 사업이 있습니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법칙을 따르지만 우리는 정의의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편에 선 자들에게 승리를 가져다주시는 분입니다

 

본문9절에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사람에게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에덴동산도 하나님이 떠나시면 저주와 죽음, 멸망, 죄악의 가시밭이 됩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기업이나 국가에 있어서 최고의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다윗도 점점 강성하여 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이 함께할 수 있도록 하여 점점 강성해지시기를 바랍니다.

 

1,부하들의 협력이 있었습니다.(6)

 

“다윗이 이르되 먼저 여부스 사람을 치는 자는 우두머리와 지휘관으로 삼으리라 하였더니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먼저 올라갔으므로 우두머리가 되었고”

 

다윗의 번영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한 가지 간과할 수 없는 것이 그의 수하에 있던 부하들의 충성입니다. 영웅 주위에 영웅들이 모이듯 다윗에게는 수많은 용사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여로보암은 다윗의 용사들 중에서 가장 높은 지휘관으로, 그는 한번에 300명의 적을 죽이기도 하였습니다. 엘르아살과 삼마를 비롯하여 생명을 걸고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 온 세 용사, 요압의 아우 아비새와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 등 용맹한 전사들이 다윗과 함께 하였습니다. 이들 중에는 빛나는 전과로 후손에게 회자될 영웅도 있지만 이름 없이, 빛도 없이 사라진 용사들도 있습니다. (디럭스 바이불)

 

요압의 용맹성이 없었다고 한다면 다윗은 많은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훌륭하게 되는 데는 반드시 타인의 협조가 있어야 합니다. 성공은 타인의 피와 땀과 눈물을 마시고 자란 연약한 순과도 같은 것입니다. 즉 자기를 위하여 희생한 그들의 수고를 모르고 교만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쓸어버리십니다. 그래서 성공이라는 것은 다른 삶의 협조가 어느 정도냐 여하에 따라서 성공이 좌우됩니다.

 

요압에 대하여 국민일보에 연재되었었던 성경의 인물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해 본 "김영진" <성서원 회장>님의 글에 의하면

 

“요압은 수리야의 세 아들 중 둘째였다. 아비새 요압 아사헬 3형제는 장군의 기질을 가진 유능한 장사들이었다. 그 중에서도 요압은 더 뛰어난 사람으로 군대장관이 되었다. 그러므로 다윗왕에 의해 선택받아 다윗 왕과 함께 평생을 지낼 만큼 측근에서 일한 사람이다. 

 

요압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세운 나라를 다윗이 세운 나라에 통합하여 다윗왕국을 건설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람이었다. 그 후에도 에돔 암몬 수리아 라마 등을 무너뜨리고 정복하는 데에도 크게 공헌했다. 그 외에도 다윗을 도와 그림자처럼 참모로 일한 다윗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였다. 한 마디로 말한다면 요압은 능력을 갖춘 행운아였다.

 

그러나 요압이 다윗에게 항복하고 귀순하여 돌아오는 아브넬을 죽인 것은 큰 잘못이었다. 아브넬은 사울 왕의 충신이었고 사울 왕이 전사하자 그의 아들 이스보셋을 마하나임에서 왕으로 세운 사람이다. 그러나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국운이 다윗에게 기울어지고 이스보셋과의 불화가 생기자 다윗 왕에게로 돌아왔다.

 

그때에 요압이 아브넬을 살해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 요압이 아브넬을 정적으로 여기고 또한 위협적인 인물로 생각했기 때문에 살해했다는 해석이 많다. 요압이 그런 이유에서 아브넬을 살해했다고 하면 큰 인물을 역사에서 제거시킨 큰 실수를 범한 것이다. 사람의 욕심이 역사의 흐름을 막아서도 안되고 역사의 방향을 그르쳐서도 안 된다.

 

우리는 선한 역사를 이루어가는 협력자가 되어야 하고 나라와 민족을 돕고 보호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 개인의 욕심을 위해 역사에 상처를 남겨도 안되고 역사를 부정하게 만들어도 안된다. 사람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되 필요하고 소중한 인물이라면 더욱 보호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이루어 가실 때에 특별히 헌신된 사람을 세워주심과 동시에 많은 동역자들을 세워 함께 그 역사를 이루어가게 하셨습니다. 

 

모세에게는 아론과 훌과 갈렙과 여호수아와 같은 훌륭한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다윗에게는 본문의 요압과 아비새와 후새와 같은 동역자들을 세워 주셨습니다. 바울에게는 바나바와 실라와 디모데와 누가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등의 많은 동역자가 있었습니다. 예수님도 열 두 명의 제자를 세워 당신의 구원의 역사를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가정이든 마을이든 회사이든 교회이든 우리는 함께 해야 합니다. 좋은 동역자, 협력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공동체가 아름답게 세워져가고 그럴 때 우리 각 개인이 평안과 자유와 부요함도 누립니다. 그렇지 않고 반대로 그저 자신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평안함과 안일함과 유익만을 구한다면 자유와 평안과 번성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갈등과 시기와 분쟁과 상처와 아픔만을 남깁니다.

 

오늘 교회는 다양한 계층이 모여서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봉사하는 곳입니다. 출신이 다르고 ,지역이 다르고, 연령이 다르고, 남녀가 다르고, 노소가 다릅니다. 또 빈부귀천의 차이도 있습니다. 계층 간의 차이가 있습니다.

 

다양한 성도들이 모여 있기에 사람의 소리가 날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교회의 모습입니다. 가정생활을 해 보면 혈육으로 맺어진 몇 사람 되지 않는 가족도 때로는 소리가 나야할 때가 있고 부부간에도 의견이 맞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계층의 사람이 모인 교회를 향하여 하나의 목표를 가지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성도가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교회의 일치를 위해서 힘쓰는 협력자가 되어라 고 하십니다.

 

생텍쥐페리는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수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 너무 집착하지 마라. 타인과 함께 타인을 통해서 협력할 때에야 비로소 위대한 것이 탄생한다.” 는 말을 하였습니다.

 

다윗의 주변에는 협력하는 부하들이 많았습니다.

자기 주변에 협력자가 많을수록 점점 강성해집니다.

 

성도 된 우리 주변에도 복음을 위한 충성 된 협력자들이 많이 모임으로 복음을 위한 일군으로 점점 더 강성해지기를 바랍니다.

 

2.여호와께서 함께 하셨습니다.(9)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

 

사람은 누구나 독불장군으로 살 수 없습니다.

 

성도 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대해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적으로 노력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정적인 요인은 하나님의 도우심입니다.

 

시편124편8절에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

 

사실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정확하게 적용되는 공식이 있습니다. 객관적인 능력에 상관없이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시지 않으면 실패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면,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면 앞으로 계속 승리하며 강설 할 수 있습니다.

 

요셉이 범사에 형통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인은 그의 신앙과 성실한 삶을 하나님이 인정하시고 그와 함께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해 주시겠다는 약속은 엄청난 복입니다.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모든 일이 형통할 것입니다.

 

다윗도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 떨지 않았던 것은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 의지하며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승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민수기14장9절에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희망을 가지는 것은 우리의 조건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희망의 말을 하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아무도 우리에게 해를 끼치지 못합니다.

 

시도행전18장10절에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아무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라고 힘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이야기하시고 그분의 평화를 갖고만 계시지 않으십니다.

멈추지 말라, 포기하지 말라, 늦추지 말라, 그러나 말하라. 그러면 내가 너와 함께 한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남편과 아내, 자녀 친구 동료들이 함께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상의 어떤 이들도 함께 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너와 함께하기에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마라. 여기 하나님의 임재의 약속이 있습니다. 우리 편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진실로 놀라운 일입니다.

 

다른 약속을 하신 것은 어떤 사람도 너를 해하지 못할 것이고 신성한 보호가 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보호하기 위해 계실 것입니다.

 

출애굽기34장24절에 “내가 이방 나라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고 네 지경을 넓히리니 네가 매년 세 번씩 여호와 네 하나님을 뵈려고 올 때에 아무도 네 땅을 탐내지 못하리라.”

 

하나님께서 대적을 쫓아내십니다. 계속적인 승리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야할 미래에는 우리를 해하려는 악한 세력이 참으로 많습니다. 우리가 가야할 길은 멀고 험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왔다면 이후에는 더욱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걸어가야 합니다.

 

빈손으로 올 때의 대적보다 가졌을 때에 해치려는 대적이 더욱더 많음을 잊지를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해하려는 대적을 쫒아 내십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어떠한 대적도 우리를 함부로 할 수 없습니다. 목자가 있는 한 늑대와 이리는 우리를 해할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8장31절에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천하무적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무능하고 연약한 존재라고 움추려 들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무능한 나에게도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초라한 우리 인생도 복되고 귀한 존재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하나님의 계획안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말고, 준비하면서 때를 기다리시기를 바랍니다. 어려움이 크면 그 뒤에 다가오는 복도 크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인생을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오해가 생기고, 살아가는 것이 재미없고, 평소에 잘 지내던 사람이 돌멩이를 던지고, 아무도 내 힘든 마음을 몰라줄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용히 들어보시기를 바랍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 음성을 듣게 되면 새 힘을 얻습니다.

 

나는 부족하고 연약합니다. 무능합니다. 그러나 감사한 것은 무능한 나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우리는 행복합니다.

 

다윗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셨기에 점점 강성해졌습니다.

성도 된 우리에게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점점 강성해지기를 바랍니다.

 

3.말씀대로 하였습니다.(10)

 

“다윗에게 있는 용사의 우두머리는 이러하니라 이 사람들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성도 된 우리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큰 역사가 있습니다.

다윗도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해주셨기에 점점 강성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도록 성도 된 우리가 할 일은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말씀으로 맺어진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택한 자와 언약을 맺으시고 이 언약의 말씀에 따라 성경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신명기4장1절에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 것이요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게 되리라.”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를 준행 할 것을 말씀하며 이스라엘아 이제 내가 너희에게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고 합니다.

 

'규례(후카)는 대개 도덕법, 의식법, 시민법, 사회법 등과 같이 세부적으로 규정된 법규를 가리킵니다. '법도'(미쉬파트)는 규례로부터 파생된 인간과 인간, 인간과 하나님 간의 모든 공적, 사적 권리와 의무를 가리킵니다(Keil).

 

성경에서 이 두 단어는 자주 혼용되고 있기 때문에 엄밀히 구분하기는 어럽습니다.(레 3:17; 수 24:25; 삼상 30:25; 왕상 6:12; 시 119:12-16).

그리고 이 두 단어는 상호 연결되어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중언법적 표현으로 말씀과 같은 뜻이기에 규례와 법도를 준행하라 것은 말씀을 준행하라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 내 생각과 이성과 내 가치관과 내 의를 초월하여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오늘 예배드리는 우리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이성적인 생각을 버리시고, 자기 의를 내려놓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기로 삼으셔서 두 배에 가득 차는 역사를 이루시기 바랍니다.

 

사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쓰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성령님은 보혜사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입니다. 성령님은 내 안에 들어오셔서 생각나게 해 주시고 가르쳐 주십니다. 나를 하나님의 도구로 부단히 사용하십니다. 내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발을 떼면 성령님이 도와주십니다.

 

사도행전 8장에 성령님께서 빌립에게 가사로 내려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빌립이 말씀대로 가니까 에디오피아 내시가 있습니다. 내시가 성경을 읽는데 깨닫지 못합니다. 빌립이 가르쳐 주는 순간에 성령님께서 감동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그 이후 내시를 통해서 복음이 들어가서 에디오피아가 부강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6.25 전쟁이 일어났을 때에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원한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법이 없습니다. 내 생각이 어떻게 되든 내 환경이 어떻게 되었든, 내 실력이 어떻든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물을 내리기만 하면 하나님은 잘 되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은 형통하게 만드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때로는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말씀대로 살려고 애써야 합니다. 이 마음과 정신과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인생의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에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의 말씀이요, 살아있는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이요, 기적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주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이 풍랑을 향해서 잠잠하라고 말씀하시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향해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했더니 그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주의 말씀은 생명의 능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더불어 다윗을 힘껏 도와 나라를 얻게 하고 그를 세워 왕으로 삼았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여기서 ‘이르신 말씀대로 함이었더라’ 는 구절은 여호와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이르신 말씀(삼상16:1;삼하3:9,18)을 지칭하는 구절입니다.

사무엘도 하나님이 하신 말씀대로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윗을 왕으로 세워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하는 것입니다.

 

성도 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므로 점점 강성해지기를 바랍니다.

 

1,부하들의 협력이 있었습니다.(6)

2.여호와께서 함께 하셨습니다.(9)

3.말씀대로 하였습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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