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즐거움이 그다지 많지 않은 시대입니다. 세상은 도와달라는 사람들의 아우성의 현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즐거움을 가진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걱정으로 세월을 보냅니다.
돈이 있어도 걱정, 돈이 없어도 걱정, 유식해도 걱정, 무식해도 걱정입니다.
또 지위가 높으면 높은 대로 걱정, 지위가 낮으면 낮은 대로 걱정, 자식이 많아도 걱정, 자식이 없어도 걱정입니다.
걱정의 원인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백 년도 못사는 인생, 걱정만 하다가 간다면 어찌 슬프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마음을 내려놓고, 비우면 걱정은 사라지고, 즐거움은 더 커집니다.
스트레스가 많은 오늘날 진정한 행복을 얻으려면 때로는 구부릴 줄도, 돌아갈 줄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지나치게 곧은 나무는 부러지기 쉽습니다.
태풍 속에서도 살아남는 것은 고집스레 곧게 뻗은 큰 나무가 아니라 바람에 따라 몸을 휠 줄 아는 유연한 나무입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융통성이 필요합니다. 상황에 맞게 구부리고, 펼 줄 도 아는 사람은 삶의 어느 순간에서도 즐거움과 쉼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14장절에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요한복음14장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요한복음16장22절에 “지금은 너희가 근심하나 내가 다시 너희를 보리니 너희 마음이 기쁠 것이요 너희 기쁨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진실로 참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있습니다.
세상이 주는 것은 비록 근심 걱정뿐일지라도 머지않아 영원한 기쁨의 근원이신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의 앞에는 기쁨이 충만하고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항상 생명의 하나님 앞에 사시는 생활로 범사에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한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교회가, 하나님의 사람들이 있어야 할 장소는 바로 이 혼탁한 세상입니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바로 이러한 불의한 세상을 구원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사찰과 같이 저 산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 있습니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금년 한 해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큰일을 행하신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십니다.(21-22)
[21]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22] 들짐승들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들의 풀이 싹이 나며 나무가 열매를 맺으며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가 다 힘을 내는도다
성도 된 우리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 할 일은 많습니다.
본장에서 요엘 선지자는 앞서의 메뚜기 재앙보다 훨씬 더 심각한 심판이 있을 것임을 경고하며 이스라엘의 회개를 촉구했고 나아가 미래에 있을 메시야의 구원에 대해 선포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재앙의 신속함과 심각함에 대해 탁월한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하고 회개를 촉구했던, 선지자는 이제 분위기를 전환하여 미래에 임할 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특히 백성들이 회개하고 바른 예배를 드리면 긍휼을 베푸시고 잃었던 것을 회복시키며 가나안땅이나 생축이나 시온이 다시는 두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침입해오는 적군을 쫒아버리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기쁨을 공급해주시고 원기를 회복시키고, 때마다 먹을 것을 마련하시되, 풍부하게 공급하심으로서 백성들로 하여금 여호와를 찬양하고 오직 하나님만을 피난처로 받아들이도록 하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큰일을 행하신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회개할 때 큰 일 을 행하셨습니다.
지금 우리는 과거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지만 또한 그 어느 때보다 윤리적, 사회적으로 병들어 있습니다.
성도 된 우리의 영적인 나태함은 또 어떻습니까? 예배의 형식만 있을 뿐,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 하나님을 사모하는 열정과 헌신이 담긴 예배가 점점 힘을 잃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 요엘 선지자는 타락한 유다를 향해 선포했듯 “너희 심장을 찢으라”(13절)고 말합니다.
우리의 심장을 찢을 때만이,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가능합니다. 회개 기도를 회복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국가적, 개인적 문제의 저변에 깨어지지 않은 마음,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나 중심의 사고가 자리 잡고 있음을 깨닫고 우리는 마음을 찢는 회개와 아울러 하나님께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하나님께로 뜻을 돌이키고, 하나님의 품으로 돌아오기만 하면 탕자를 기다리시는 아버지처럼 우리 하나님은 용서해 주십니다.
요엘 2장 18절에 “그 때에 여호와께서 자기의 땅을 극진히 사랑하시어 그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실 것이라.”
하나님께로 돌이키는 그 순간에 자기의 땅과 택하신 백성들을 사랑하시고, 불쌍히 여겨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를 향하여 돌이키는 순간 이미 용서하시고 기다리십니다. 우리를 향하여 뛰어나와 반겨 맞아 주십니다.
그리고 기쁨과 감사의 잔치를 베풀어 주십니다. 그리고는 그 잔치에서 함께 먹고 마시며,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본문21절에 “땅이여 두려워하지 말고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여호와께서 큰 일을 행하셨음이로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무생물인 땅을 향해 외치신 이유는 하나님이 내리신 복이 무생물인 땅이라도 기뻐할 만 큼 놀라운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시126:2,3).
우리는 이 표현을 통해 메뚜기 재앙이후 하나님의 회복으로 그땅이 받은 복 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가를 짐작 해 볼 수 있습니다.“ [QA성경시스템연구]
사실 징계와 심판으로 나타나셔서 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은 구원과 복을 통해서도 큰일을 행하십니다.
본래 우리 하나님은 심판과 채찍보다는 복을 주시기 원하시고, 복을 주시되 길게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을 듣고, 잘 배우며, 지켜 행할 뿐만 아니라,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기억하며, 하나님을 시험치 않고 시험에 합격하며, 겸손하게 낮추는 자가 되면 놀라운 은혜로 복을 주십니다.
신명기11장8-9절에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 차지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할 것이며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여 그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셔서 거기서 복을 누리며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큰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이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2.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십니다.(23-24)
[23] 시온의 자녀들아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할지어다 그가 너희를 위하여 비를 내리시되 이른 비를 너희에게 적당하게 주시리니 이른 비와 늦은 비가 예전과 같을 것이라 [24] 마당에는 밀이 가득하고 독에는 새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로다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아서 땅 바닥이 마치 거북이 등처럼 쩍쩍 갈라진 땅에 단 비가 오기 시작한다면 정말 기쁘고 감격이 큽니다.
이스라엘 땅은 우리나라의 땅하고는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봄에 씨를 뿌렸다가 가을에 거두지만, 이스라엘은 지역 여건상 가을에 씨를 뿌립니다. 그리고 그 다음 해 늦은 봄에 추수를 합니다. 씨를 뿌려야 하는 파종기가 되는 10월 경에 비가 내려야 뿌린 씨가 싹이 틀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파종기에 내리는 비는 농사짓는 데는 필수적입니다. 이렇게 씨를 뿌린 다음에 바로 내려야 하는 비를 ‘이른 비’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봄비입니다.
그리고 추수 전인 3월경에 내려서 농작물의 성숙을 촉진시키는 비를 ‘늦은 비’라고 합니다. 늦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충실한 열매를 맺기가 힘듭니다. 모든 농작물이 잘 익으려면 반드시 늦은 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이처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충분히, 그리고 시기적절하게 내려주셔야 그 해 가 풍년이 될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여지없이 흉년이 되고 맙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은혜에 절대 의존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복이 아니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감사한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우리의 삶을 위해 충분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시기적절하게 주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주시듯이 우리에게 충분한 은혜를 시기적절하게 내려주시는 분입니다.
히브리서4장18절에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라는 것은 그때 적절한 은혜를 하나님이 생각하시고 보내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한번이나 두 번의 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고 평생토록 때를 따라 돕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는 일평생 지속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서 어른이 될 때까지 정말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될 때까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쓸 만한 일꾼이 될 때까지 하나님이 이 세상에 허락하신 사명을 이룰 때까지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하고 하나님의 간섭과 사랑이 필요합니다.
좋은 직장도 내가 잘나서 얻은 것 같지만 사실 하나님이 다 손쓰신 것입니다. 집도 우연히 내가 잘 얻었다 그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미리미리 예비하시고 우리에게 허락해주십니다.
돈을 내가 능력 있어서 잘 벌었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벌 수 있는 능력을 나에게 주신 것입니다.
시편121편5-8절에 “[5]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6]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7]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8]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
여기서 시인은 여호와를 가리켜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자"라고 합니다.
왜 절묘한 시점에 우리가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고 화를 복으로 받기도 하며 엄청난 복을 받아 누리기도 하는 걸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한 시도 눈을 떼지 않으시고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움을 주시는 것도 하나님이 우리의 처음과 나중을 지켜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면에서 충분한 도움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의뢰하는 자에게는 그 어떠한 환난과 역경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 어떠한 해도 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악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충분한 도움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호하시면 우리의 영혼은 영원토록 안전합니다. 우리의 원수는 끝까지 우리와 싸우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까지 완전하게 지키십니다. 참 이스라엘인 우리에게는 전능자가 곁에 있습니다.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어떤 순간에만 지키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마치 자동차 보험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언제부터 언제까지만 책임지겠다고 약속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바로 "너의 출입을 지키시되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켜주신다"고 약속해 주셨습니다.
성도 된 우리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필요한 때 필요한 은혜를 준비하셨다가 공급해주십니다.
“때를 따라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필요한 때에 필요한 은혜를 넉넉히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3.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하시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십니다.(25-27)
[25]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느치와 황충과 팥중이가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 주리니 [26]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27] 그런즉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에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누구든지 수치를 당하는 것을 좋아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창피를 당하고 수치를 당하는 것처럼 참기 힘든 것은 없습니다.
우리 인류가 이루어 놓은 찬란한 역사 가운데는 자랑스럽고 고귀(高貴)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반면에 수치스럽고 부끄럽게 살다가 간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조선시대의 위대한 성리 학자였던 이이와 이황은 각기 ‘사단 칠정론’에서 인간에게는 자기의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를 ‘수치지심’(羞恥之心)이라고 합니다. 수치지심이 없다면 그야말로 짐승과 같은 것입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은 ‘원치 않는 백성’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수치’라는 말은 원어 성경에 ‘카사프’라는 말입니다. 그 뜻은 ‘간절히 바라다, 열망하다, 사모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수치를 모른다는 말은 ‘원치 않는’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원치 않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 이름을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은혜나 호의를 도무지 사모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백성들을 모이라고 부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사람에게 원래 주신 본성인 기쁨이 나오도록 되어 있었는데 아담이 선악과를 먹음으로 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수치심에 가리고 두려움에 숨는 삶으로, 즉 기분 나쁜 삶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바로 타락입니다.
이사야49장23절에 “왕들은 네 양부가 되며 왕비들은 네 유모가 될 것이며 그들이 얼굴을 땅에 대고 네게 절하고 네 발의 티끌을 핥을 것이니 네가 나를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나를 바라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해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가 그리스도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의 은혜보다 세상 명예나 물질을 더 사모하면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수치를 당하고 창피를 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멀리 떠날 때는 언제나 이방 민족을 들어 쳐서 수치를 당하게 하셨습니다.
신앙인들의 불순종 때문에 수치라는 옷을 입고 있는 신앙인이 많습니다. 이스라엘이 과거에는 출애굽 하였으나 현재는 광야에서 방황하였듯이 과거에는 대단한 일이 있었는 것 같은데 지금은 무기력과 수치로 살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한 수치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지금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수치는 우리가 입고 있을 옷이 아닙니다. 무기력과 수치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본문26절에 “너희는 먹되 풍족히 먹고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오늘 이 시대 성도를 이기게 하는 힘은 찬송입니다. 거듭난 노래입니다. 어려울 때 노래하면 하나님이 힘을 주시고, 고통 할 때 찬양하면 하나님은 상한 우리의 심령을 어루만져 주시고, 괴로울 때 찬양하면 문제가 해결됩니다.
찬양에는 놀라운 역사와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우리가 찬양할 때 많은 사람이 보고 두려워한다고 하였습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나 혼자 스스로 그 문제를 풀 수 없을 때 한숨만 짓지 마시고 찬송을 부르기 시작하시기를 바랍니다. 삶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찬양이 메마르면 은혜가 메마르고, 찬양 할 때 감동이 없으면 내 신앙이 죽어간다는 증거입니다.
사실 사람은 누구를 막론하고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실수하게 되고 죄를 범하게 됩니다. 따라서 죄와 실수로 인해 수치를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찬송하는 자는 영영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합니다. 다윗이 범죄 하였지만 그는 항상 여호와를 찬양하였기에 하나님은 그를 구원하시고 높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술의 찬송을 기뻐하십니다. '찬송 중에 거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윗은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광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함이 될 것이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찬송 속에 우리의 마음이 담기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노여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용이 없는 형식과 외식을 아주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찬송소리를 그치라고 하셨고, 비파소리도 듣지 않겠다고 하셨으며(암5:13), 그런 예배는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3) 고 하셨습니다.
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지만 마음은 내게서 멀다'고 하며 노여워 하셨습니다.
그렇게 내용은 빠지고 껍데기만 있는 제물을 드리니 내가 어찌 그것을 기쁘게 받을 수 있겠느냐고 하셨습니다(말1:8).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행하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 것이라 내 백성이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하였습니다.
마음을 다하는 진정한 찬송을 올려 드려 영원히 수치를 당하게 않게 하시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시기를 바랍니다.
1.큰일을 행하신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십니다.(21-22)
2.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시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십니다.(23-24)
3.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하시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라 하십니다.(2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