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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꽃씨를 뿌리는 삶(사11:1-5)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지금은 희망을 말 할 때입니다.

사방팔방에서 한 숨 짓는 소리와 못살겠다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습니다. 혹 어떤 분은 사업이 잘되고 물질의 복 받고 가정이 평안하므로 감사할 수 있겠습니다만 온 나라 전체가 어려운 때에 특별히 나 혼자만 잘되었다고 그것을 너무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냥 다 함께 어려운 시기에 좌절하지 아니하고 포기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먹고 입고 숨 쉬고 있다는 자체가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위기 속에서 부정적인 마음으로 살면 그런 사람은 더 절망하게 되고 좌절하게 됩니다. 이럴 때 일수록 성도들은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버리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시편71편5절에 “주 여호와여 주는 나의 소망이시요 내가 어릴 때부터 신뢰한 이시라.”

 

하나님께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한 희망은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기대하며 사는 자녀들을 절대로 실망시키시지 않습니다. “가능성 없는 일이다” 내 마음 대로 결론 내리지 말고 어려울 때 일수록 더 기대하고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당장에 안 이루어져도 별것도 아닌 일이라고 할지라도 이루실 줄 믿고 바라보는 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 있을지라도 마지막까지 꼭 붙들어야 할 희망의 끈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돈이 아닙니다. 자식이 아닙니다. 명예가 아닙니다. 권력이 아닙니다. 우리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희망의 끈은 하나님입니다.

 

우리가 큰 어려움 앞에 문제에만 집중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집중적으로 그 문제를 갖고 염려한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고생은 사서하되, 걱정, 근심은 사서 하지 마세요. 왜냐하면 스트레스는 쌓이기는 쉽지만, 풀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오늘 어려움이 쌓이면서 희망을 기대할 수 없는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성도 된 우리는 희망이 없는 백성들과 나아가 우리의 가정과 개인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희망의 꽃씨를 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예수 그리스도가 희망입니다.(1-2)

 

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예수님의 탄생은 엄청난 큰 기쁨의 좋은 소식입니다.

 

지옥의 형벌을 받아야 할 사람이 죄 사함 받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게 되니,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가 세상에 탄생하는 사건은 창조 이래 가장 큰 사건이기 때문에 700년 800년 전에 예언되어 있고 4000년 전에 예언된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은 구약부터 신약에 이르기까지 모든 기록이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성경의 첫 권인 창세기부터 이미 예수님의 이야기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창세기3장15절에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것을 원시복음 즉 최초의 복음이라고 합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예표 하는 말씀입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님에 대해 구약성경은 예수님의 탄생과 사역, 성품까지 상세히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메시야의 처녀 탄생과 임마누엘, 그리고 메시야의 고난을 상세히 예언하고 있습니다.

본문1절에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예수님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오실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혈통을 가리키고 있는 것인데 여러 가지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이새의 줄기에서 날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새는 다윗왕의 아버지입니다. 그런데 이미 다윗의 후손들은 대를 이어 지금까지(이사야 당시) 유다의 왕위를 이어오고 있는데 왜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지 않고 다시 말해서 왕족이라고 하지 않고 이새의 줄기에서 날 것이라고 한 것은 본래 다윗은 왕이 되었지만 다윗의 아버지 이새는 왕족이 아니었습니다.

 

베들레헴의 작은 마을에 사는 농부였습니다. 이 미천한 신분이 그리스도가 가지실 신분임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의 예언대로 그리스도는 미천하고 보잘 것 없는 신분으로 베들레헴 마구간에 나셨고 나사렛 사람으로 자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에게 흠모할 만한 것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잘 것 없는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날 것입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관심의 대상이 될 수도 없는 지극히 평범한 가문에서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본문1절에서 다윗의 후손이라고 하지 않고 이새의 줄기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줄기는 말라버린 밑 둥과 같습니다. 희망이 없습니다. 천지를 창조하기 전의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와 비슷한 상황입니다. 뿌리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 뿌리에서 새순이 돋아나서 줄기가 되고, 그 줄기에서 싹을 내며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과연 이루어질까요? 이루어졌습니다. 이분이 메시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죄와 싸움, 폭력과 미움, 철천지원수로 얼룩진 세상을 평화의 나라로 바꾸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오늘날처럼 총체적으로 어려움을 만나 이 시기에 그리스도인은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에게는 고난 한가운데서도 희망입니다. 우리가 삶을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다면 넉넉히 고난의 상황을 이겨냅니다. 왜냐하면 우리 배후에는 역사의 주인이시요, 교회의 머리이신 예수님이 강력한 오른팔로 우리를 붙잡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어떠한 처지에서도 희망을 갖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장 8절에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우리에게 확신을 줍니다.

 

이 세상에는 돈을 자랑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기 권력을 자랑하는 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신의 명예를 자랑하는 자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에 참 희망은 정치가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경제인들에게 있지 않습니다. 이 시대에 참 희망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이 시대의 희망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이 영생입니다. 그 분이 생명입니다. 그 분이 나의 구주요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요한복음6장68절에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 인생의 희망입니다. 예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인생의 희망입니다. 거기, 생명이 있고 진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에 참 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하나님의 사람들로서 이 시대의 희망의 꽃 시를 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2.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이 희망입니다.(3-4)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4]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세상 사람들의 희망은 세속적인 일에 있습니다.

명예, 권력, 물질, 사랑 등 눈에 보이는 곳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사실 희망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지 않고 40일을 견딜 수 있습니다. 물 없이 3일을 버틸 수 있습니다. 숨을 쉬지 않고 8분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희망 없이는 한 순간도 견딜 수 가 없습니다. 희망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입니다. 희망이 사라지면, 인생도 끝이 나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희망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성도 된 우리에게는 세상적인 희망이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의 희망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전도서12장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님들이 만물에 깃들인 창조의 섭리를 깨닫게 되면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을 중심에서 경외한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을 행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되 억지로가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서 지키게 됩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공산군의 기습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했습니다. 한국전쟁을 미국이 보고를 받고 6월 29일 맥아더장군이 전용기를 타고 수원비행장에 도착하였습니다. 한국군의 전의를 파악하기 위한 전선시찰이 목적이었습니다. 그 때 북한군은 서울 한강에 포격하였습니다. 맥아더장군은 한강전선을 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보좌관들이나 한국 장성들이 위험하다고 했지만 맥아더장군은 한강으로 차를 몰게 하였습니다. 칠순의 맥아더장군은 손자뻘 되는 지금의 하사인 일등중사가 한강의 참호를 지키는 광경을 목격하고 말했습니다. “하사관, 자네는 언제까지 그 참호 속에 있을 셈인가?” “예, 각하께서도 군인이시고, 저 또한 대한민국의 군인입니다. 군인이란 명령에 따를 뿐입니다. 저의 중대장으로부터 철수명령이 내려지든지 아니면 제가 죽는 순간까지 이것을 지킬 것입니다.” “장하다. 자네 같은 군인을 만날 줄은 몰랐다. 지금 소원이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맨주먹으로 싸우고 있습니다. 무기와 탄약을 도와주십시오. 그것뿐입니다.” “알았네. 내가 여기에 온 보람이 있었군.” 맥아더 장군은 미국 의회를 설득하여 2개 사단 투입을 결정하게 하였습니다. 트루만 대통령은 주저하지 않고 미국 육군 지원부대를 보내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한 병사의 본분을 다하므로 미국이 지원을 시작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 사람의 본분이라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경외하다”는 말의 가장 기본적인 의미는 ‘두려워하다’, ‘떨다’ 이지만 이는 무서운 존재에 대한 공포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과 영광을 인정하는 거룩한 마음, 즉 “경건한 존경심”을 일컫는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왕으로, 나의 구원주로 섬기며, 그 분을 심히 두려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경외할 때 성도다운 성도, 교회다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나의 왕, 나의 구원주로 인정하며, 범사에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길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께서 보여 주신 길을 따라 삽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삽니다.

 

이 말을 다른 말로 바꾸어 말하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판단을 전적으로 옳다고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대한 전적인 신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욥의 말처럼(욥기 42:5) 이제는 하나님을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서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험하지 않고는 안 되는 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까지 성숙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다는 최선의 증거는, 우리에게 가장 귀한 것을 드리어 하나님을 섬기고 존귀케 하려는 우리의 자발적인 마음을 보이는 것입니다.

 

경외의 신앙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수준의 신앙입니다.

경외의 신앙은 굳은 것, 돌맹이들, 가시들을 갈아엎어서 옥토가 되는 수준의 신앙입니다.

경외의 신앙은 하나님의 후사로서의 영광을 얻게 되는 수준의 신앙입니다.

경외의 신앙은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는 수준의 신앙입니다.

경외의 신앙은 우리 예수님처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된 신앙입니다.

경외의 신앙은 전적으로 모든 것을 예수님께 의탁하여 순종하며 전적으로 쓰임 받는 신앙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친밀함을 보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고 진실 되게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에게 사랑의 고백과 그의 헌신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모세와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를 친구처럼 여기시고 그들과 대면하여 주셨던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으로 충만해진 사람은 단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삶의 가장 큰 즐거움으로 삼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보다 다른 그 무엇을 더 가치 있게 여기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이 희망입니다. 이 시대의 희망의 꽃 시를 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3.공의와 성실로 띠를 삼는 것이 희망입니다.(5)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오늘날 현대인들은 겉으로는 멋있게 차려입고, 교양 있고 고상한 것 같지만 그 속에 들어가 보면 온통 돈과 물질, 인기와 쾌락의 우상의 노예가 되어서 흥청망청 거립니다. 육체의 쾌락과 세상의 즐거움을 취하는데 전혀 돈을 아끼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은 거짓이 난무하고 있으며 정의를 찾을 수 없고 공의마저 무너지고 있습니다. 그 결과 희망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향하여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하였습니다.

 

허리 띠는 사람의 중심을 잡아 주어 힘을 쓰게 할 뿐 아니라 바지가 흘러내리지 않게 하여 활동을 용이하게 합니다. 유다 백성들의 복장에서는 더 더욱 허리 띠가 중요합니다. 허리 띠를 띠지 않으면 통치마 같은 겉옷이 발에 채이고 감겨 뛰는 것은 물론 걷기 조차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떠나던 날도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발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았다’(출 12:11)고 하였습니다.

 

본문5절에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을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허리띠를 삼는다”는 것은 공의가 통치의 근간을 이룬다는 말입니다. 따라서 그분에게서는 공의와 배치되는 어떤 속성들, 예를 들면 불공평이나 편견이나 부정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는 의롭게 통치할 것이며, 공의로 허리띠를 삼을 것입니다. 공의가 끊임없이 그를 에워싸고, 그에게 부착되어 있을 것이며, 그의 장식과 영예가 될 것입니다. 그는 낱낱의 행위를 위해 허리띠를 동일 것이며, 싸움을 위해 공의의 칼을 찰 것입니다. 그의 공의는 그의 힘이 될 것이며, 허리띠를 동여맨 사람처럼 그로 하여금 그의 과업을 신속히 행하게 해 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그의 추종자들은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했습니다(엡 6:14)

 

"사단의 능력은 거짓말에 있고, 성도의 능력은 진리에 있습니다."

 

진리의 허리띠를 생명벨트로 착용해야 합니다.

창세기3장에 사단은 거짓말을 해서 아담과 하와를 넘어뜨렸고, 예수님이 사단을 진단하기를 요한복음8장44절에 거짓의 아비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사단의 종노릇하는 사람을 보면 거짓말을 잘 하며, 이것이 사단의 통로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능력은 진리에 있습니다.

 

요한복음8장32절에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요한복음14장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거짓과 싸워 승리하는 비결은 진실입니다. 정직입니다. 진리만이 사단의 공격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터 위에 세워졌고 진리의 성령님께서 통제하시는 영역이기에 맨 먼저 진리로 삶의 중심을 붙들어 메야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옷 입고 굳게 서야 모든 거짓된 마귀의 공격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성실"은 변덕이 없는 신실함과 거짓이 없는 진실함을 의미합니다. 즉 변질이나 거짓됨이 없는 상태를 말합니다. 메시야 되신 그분의 통치는 그러한 성실에 기초한 것이므로 구든지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그분의 통치는 시대나 상황에 따라 변질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왕은 공의와 성실로 몸에 띠를 삼고 완전한 권위와 관심을 가지고 올바르게 학대받는 자의 편에 설 것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은 공의와 정직과 성실입니다. 이런 정치는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에만 있습니다.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공의로운 다스림을 보여 주셨습니다.

교회는 현 세상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이 미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전달하는 통로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일부분에 속할 뿐 완전하지는 않습니다. 지상교회는 완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세상의 정치는 희망이 없습니다. 희망은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본문4-5절에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

 

“이러한 통치 방법은 인간의 보편적인 인성을 기초로 해서 나온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나온 통치 방법이기 때문에, 불평 없이 감사함으로 모든 사람들이 이 통치 방법에 순종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공의를 중심한 통치체제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통치 방법은 지금까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지만 인간의 역사 이래 실현된 적이 없다. 그 이유는 마귀가 인간의 마음에 들어가서 불법을 행하도록 역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귀를 결박하고 그리스도께서 만왕의 왕이 되시고 주님의 공중 재림 시에 부활한 성도들이 통치하기 때문에, 천년왕국시대에는 전쟁이 없고 평화와 정의가 실현된다.”[사중복음-이성주]

 

공의와 성실로 삼는 것이 희망입니다. 이 시대의 희망의 꽃 시를 뿌리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예수 그리스도가 희망입니다.(1-2)

2.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는 것이 희망입니다.(3-4)

3.공의와 성실로 띠를 삼는 것이 희망입니다.(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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