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길을 여호와께 맡기는 교회(시37:5)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또 한해가 시작 되었습니다. 역사는 반복되어 찾아옵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현재에 머무를 수 없습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멈춰 세울 수 없습니다.

 

한홍 목사의 시간의 마스터 라는 책에 “시간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태고적 어느 시점에 시간을 만드셨고, 그 시간 속에 인간이 살도록 했다. 창조하셨기에 그 분은 시간의 정당한 소유주(owner)가 되신다. 우리는 시간의 주인으로부터 매순간 시간을 임대받아 사용하고 있는 관리인(steward)과 같다.” 라 하였습니다.

 

인생의 자본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은 시간의 자본입니다. ‘시간이란 가치가 있기 때문에 시간은 황금이다 혹은 돈이다’라는 격언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 시간의 신비입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공자와 실패자로 나눠집니다.

 

금년도 표어를 “ 길을 여호와께 맡기는 교회” 로 정하였습니다.

 

시대에 없었던 어려운 시기를 횟수로 3년째 맞이하고 있습니다. 정말로 바이러스 문제로 사람은 속수무책입니다.

 

이때 성도 된 우리가 할 일은 ‘어떤 일을 만나든지 여호와께 맡기는 일’입니다.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광야 한가운데서 수영을 한다는 것은 참으로 특이하고 재미있는 경험일 것이다. 평균 바다 수면보다 400m가 낮은, 광야 한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의 사해는 염도가 매우 높기 때문에 어떠한 사물도 가라앉지 않고 물 위에 뜬다는 것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위험과는 상관없을 것 같지만 수영을 할 때 지켜야 하는 안전 수칙은 존재한다. 안전 수칙의 내용이란, 물에 들어가서 수영을 하지 말라는 것이다. 부력이 높아서 일단 바닷물에 들어가서 가만히 눕거나 엎드리면 저절로 몸이 뜨는 안전한 물이지만, 만일 몸에 힘을 주고 혹시라도 물에 빠질까봐 걱정을 하면서 물에 들어가 누우려한다면 몸의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리게 된다.

 

그러면 바닷물이 눈에 들어가게 되는데 사해 물은 보통 바닷물과는 달리 눈에 들어가면 몹시 쓰리고 아프다. 따라서 절대 수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수영을 한다고 첨벙거리다가는 자신이나 또는 옆에 있는 사람의 눈에 물이 들어가 오히려 위험을 낳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사람에게 공통되는 주의사항은 힘을 빼고 가만히 바닷물에 몸을 맡기고 눕는 것이다. 마치 아이가 어머니의 품에 가만히 안기듯이...

이와 같은 사해의 안전수칙은 하나님 나라에도 적용되는 듯 싶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에 가만히 안기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염려와 불안을 버리고 가만히 하나님께 누우면 최상의 안전한 상태에서 더 없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다. 공연히 자신의 수영 실력을 자랑하려 한다거나, 믿지 못해 팔을 내 둘르면 그 순간 모든 즐거움과 안전의 보장은 모두 깨지는 것이다. 그저 모든 것을 맡기기만 하면 된다.”[은혜목회정보 예화집]

 

분문에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하였습니다.

 

여기의 ‘길’은 삶의 여정뿐 아니라, 여정에 영향을 미치는 계획이나 행동이나 결과들을 가리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것을 운명이라고 하지만 신앙인은 이것들이 모두 여호와께 있음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이 이루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방법대로 맞추어 살면 그에 따른 혜택을 돌려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혜택은 복된 결과의 보장, 유익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올 한해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1.우리의 길(여정)을 맡기라 하십니다.(시37:5)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인생은 어딘가를 걸어가는 행진의 연속입니다. 막연히 걸어가는 인생이 아니라 언제나 정해진 길을 가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길은 여러 갈래가 있기 때문에 우리는 언제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길을 몰라서 방황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가지 말아야 할 헛된 길을 가기도 합니다. 한참 가다가 잘못 간 걸 알고 되돌아서 다른 길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다 연습이 있어도 인생은 연습이 없으니 지금부터라도 똑바로 가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인생이라는 긴 여정 가운데, 꿈과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 과정에서 왜 나는 저 사람보다 못할까, 남들과 비교해 때론 실망하고, 좌절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누구에게도 상대적인 잣대로 평가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체로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인생을 그 자체로 아름답게 여기는 사람, 누구와 비교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묵묵히 하며 어떤 경지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는 사람...그가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는 '진정한 승자'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온통 각자 자신의 문제로 아우성입니다. 염려, 근심, 좌절, 불안, 두려움으로 인하여 힘이 없어 합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이 곳 저 곳에서 자신의 인생을 맡기는 모험을 서슴치 않고 감행합니다. “ 누가 나 좀 도와줄 사람 없나요”라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지만, 별 뾰족한 수가 생기질 않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정신질환, 가정파탄, 자살로 귀결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 길을 항해에 비유합니다. 인생은 순탄하게 흘러갈 때도 있지만 걸음걸음 마다 역풍이 불어올 때도 많습니다. 모든 것이 순탄하면 좋으련만 역풍이 불어올 때 마다 거스르고 나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성도 된 우리는 우리 앞에 있는 인생의 여정이 아무리 힘들다 하더라도 결코 절망해서는 안 됩니다. 꽃은 아침에 피어나기 위해서 밤에 준비합니다. 아름다운 꽃 봉우리가 이슬을 머금고 활짝 피어나기 위해서는 어두운 밤 동안 준비해야 합니다. 밤이 없다면 꽃은 피어나지 못합니다. 우리 인생의 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 어두운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세상을 어렵게 만드는 밤을 인내하고 극복하지 못한다면 우리 인생의 꽃은 피어나지 못합니다.

 

인생의 길을 걸으면서 힘이 들 때 다른데 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기대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길을 가만히 되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많은 은혜를 입었습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성공할 때나 실패 할 때 낙심 중에 있을 때 변함없으신 손길로 인도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를 하나님이 기다려주셨고 구원해주셨고 도와주셨고 용서해 주셨고 또 복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또 한해를 선물 받았고 2022년이라는 세월의 길을 가야 합니다.

 

“삶은 여행”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은 길을 가는 것과 같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모두가 인정하는 진리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지금까지 여러분의 나이만큼의 여행을 해 오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혹 사람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스스로 자존하여 자기 인생의 길을 자기가 개척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만입니다.

 

상기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생길은 혼자 가는 외로운 길이 아닙니다.

 

어느 때는 인생의 캄캄한 밤에 길을 잃고 이제는 죽을 것처럼 보일 때가 올지라도 믿음의 눈을 들어 앞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그 때 우리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손길, 하나님의 안내 등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 나 잘 아십니다. 얼마나 자세히 아시는지 우리의 머리털까지 세신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자신의 머리털이 얼마인지 모르나 하나님은 아십니다.

 

그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부족이나 약점, 문제점을 너무나 잘 아시므로 우리 앞서 친히 인도하십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하였습니다.

 

우리의 여정을 우리의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께 맡기는 2022년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본향으로 가는 길을 맡기라 하십니다.(히11;16)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인생은 나그네 길을 갑니다.

 

마찬가지로 성도 된 우리도 땅위에서 나그네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나그네(파로이키아스)라는 말은 '지나가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외국에 잠시 머물거나 지나가는 순례자나 나그네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영구히 사는 자가 아닙니다. 이 세상을 거쳐 저 천국으로 갑니다. 나그네나 순례자는 항상 고향을 생각하며 지냅니다. 성도는 항상 하늘나라 본향을 생각하며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2장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사도 베드로는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나그네와 행인」으로 통칭하였습니다.

 

여기서 나그네란 고향을 따로 두고 객지를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하는 사람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목적 없이 돌아다니는 과객(過客)에 불가하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경우가 다릅니다. 세상에서는 똑같이 나그네의 인생을 살지만 확실한 목적이 있고 준비된 본향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있어 이 삶은 사실 나그네의 삶이고, 주인이 우리에게 본인의 것을 잠시 맡겨놓은 것을 위임받은 존재에 불과합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나그네요, 우리가 가야 할 본향은 천국입니다. 본향에 돌아갈 것을 잊어버리고 나그네가 전부인 줄 알고 사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오늘날을 보면 더욱 더 말세의 때가 이르렀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가슴깊이 와 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닌 잠시 머물렀다 본향인 천국으로 가고 있는 나그네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 나그네로 왔다가 본향, 천국으로 돌아갈 터인데 이 땅에서의 삶이 내 영원한 본향 하나님 품으로 갈 그 날을 고대하며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내 영혼을 보존하고자 살아갑니다.

 

특별히 히브리서 11장에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의 삶의 족적(足跡)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성도의 신앙적 삶의 실질이 궁극적으로 어떻게 표출돼야 하는 지를 웅변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세상을 한결 같이 나그네와 행인의 심정으로 살아갔습니다. 더 좋은 본향인 천상의 도성(都城)을 소유했기 때문입니다(히11:15-16).

 

바울이 성도의 물질관에 대해 언급하면서 ‘먹을 것’과 ‘입을 것’에 대해서만 지적하고 ‘거처할 곳’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는 배경에는 성도의 종국적인 처소가 지상이 아니 천상의 도성인 점을 염두에 두고 설명한 내용임을 짐작하게 합니다.(딤전6:8, 마6:31).

 

그렇습니다. 순례자들에게는 한 곳에 장기적으로 머무를 일정한 처소는 불필요합니다. 그들에게는 집이 아닌 장막 곧 텐트가 필요할 뿐입니다. 성도의 지상적 삶의 성격은 바로 하늘 본향을 향해 신앙의 순례 길을 떠난 이 시대의 영적 순례자들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현명하고 똑똑한 것 같으면서도 사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우리가 하늘 본향을 떠나서 이 세상에 와서 얼마동안을 살다가 우리 본향 하늘나라로 가야만 하는데 그 본향 길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심령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러다가 지쳐서 쓰러져 죽고 맙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행로 주변에는 갈 길을 찾아 헤매다가 지쳐서 쓰려져 죽은 영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자기의 갈 길을 찾지 못해 헤매면서도 자기 고집이 얼마나 강한지 모릅니다.

 

본래 사람에게는 자유의지가 있어서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합니다. 양은 목자의 인도함이 없이는 제 집을 찾지 못합니다. 길을 잃어버린 양은 목자에 의해서만 양의 우리로 돌아올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자가 없느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는 우리의 본향인 하늘나라를 찾을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형편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방위할 능력도 업습니다. 우리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방편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목자입니다. 옛날 청교도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서 살아갈 때만 평안을 얻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사실 우리는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위해서 무엇인가 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아니해서 우리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사람의 결국의 목표는 천국입니다. 우리의 본향이 천국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별별 고생을 다하며 상상도 할 수 없는 고생을 다 겪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복에 갖지 않고 오히려 이 땅의 복 보다도 더 나은 천국의 복을 미리 마음속에 가득히 채워 그 천국의 상황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의 기쁨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천국은 이 세상의 그 어떤 기쁨보다도 더 행복하고 기쁘고 좋다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성도 된 우리에게 암울하고 답답한 세상이나 문제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본향인 하늘나라를 향하여 달려가는 순례자로 살길 원하십니다.

 

순례자는 잠깐 거쳐 가는 나그네이기에 작은 것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너무 욕심을 부리지 않고 감사와 기쁨과 찬양으로 살아갑니다.

 

“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라 하였습니다.

 

성도 된 우리 인생여정의 궁극적 목표는 본향입니다. 본향의 가는 길이 멀고 험하다 할지라도 본향을 향해 가는 길을 하나님께 맡기는 2022년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3.너의 행사를 맡기라 하십니다.(잠16:3)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사람은 인생의 여정 속에 의식주 해결을 위해서 수많은 일들을 합니다.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일, 눕고 자고 일어나는 일, 걷고 뛰며 운동하는 일, 사업을 위해 동분서주 하며 물건을 구입하고 사람을 만나는 일, 직장을 통해 일어나는 일들을 합니다.

 

이러한 여정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염려가 있습니다. 그것은 살아 있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입니다.

 

현대는 정보 사회입니다. 인터넷의 도래로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엄청난 양의 정보를 우리는 거의 날마다 접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정보 과잉으로 인해서 우리가 꼭 알지 않아도 좋을 정보까지 습득한다는데 있습니다.

 

식자우환(識字憂患)이라는 말이나 "아는 것이 병이다" 라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현대인들은 너무 많이 알기 때문에 오히려 문제입니다.

 

이렇게 잘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이 없는 것까지도 시시콜콜 알게 되다보니까 근심도 많아집니다. 건강에 대해서도 몰라서가 문제가 아니라 너무 많이 알아서 걱정입니다.

 

성도 된 우리에게도 염려가 없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염려가 생겼을 때 해결방법이 있습니다.

 

잠언16장3절에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여기서 말하는 행사란 내가 계획하고 추진하는 모든 것들 내 계획 행동을 뜻합니다. 내가 주도하는 것들을 하나님이 주도하시도록 주도권을 넘겨드리라는 것입니다. 라틴어 번역인 벌게잇(Vulgate)성경은 이 구절을 “네 행사를 여호와께 보이라”로 번역하였습니다. 내 생각 계획 뜻을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도움을 요청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맡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는 “가랄”로써, 영어의 Commit, 즉 ‘위임하다’, ‘신임하다’, ‘옮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어에는 “맡김”이라는 뜻을 가진 또 다른 영어식 표현이 있는데, “Surrender”로써, 웹스터 사전은 이 단어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권력이나 통제, 또는 소유에 굴복하는 것; 영향력과 같은 무언가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맡기라” 는 것은 너의 장래를, 네가 도무지 알 수 없는 미래와 장래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네가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 네가 계획하고 경영하려고 하는 모든 것들, 그리하여 네가 성취하려고 하는 모든 일들을 여호와께 맡기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여호와께서 그 일들, 그 모든 계획과 경영을 성취시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결국 우리의 미래를 하나님과 함께 동행 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삶의 지혜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과 함께 우리의 미래를 살아가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우리가 늘 체험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어떤 계획을 세웠다 하더라도 이것을 이룩할 수 있는 힘이 사람에게 부족해서 실패할 때도 있고 하나님 편에서 보시기에는 기쁘신 일이 아니기 때문에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시날 평지에서 바벨탑을 쌓는 것을 원치 않으셨기 때문에 저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셔서 그들의 대 사업을 중단시키셨고(창11:1-9). 다윗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성전을 지어 봉헌하려고 계획은 하였지만 그가 사람의 피를 많이 흘렸으므로 그의 계획을 추진하는 일은 막으시고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하여 그 갸륵한 뜻을 이루게 하셨습니다(대상 22:6-16).

 

이와는 반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은 특별한 기적을 통해서라도 반드시 이루시고야 마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서들을 애굽에서 구출해 내시기 위하여 각종 재앙을 애굽에 퍼 부으셨고 끝없는 광야를 무사히 통과시키기 위하여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을 터뜨려 생수를 주셨으며. 가나안땅을 정복시키기 위하여 요단강을 마르게 하셔서 건너게 하셨고. 여리고 성을 뱅글뱅글 돌다가 함성을 지르므로 순간적으로 무너지게 하는 기적을 베푸시기도 하였습니다.

 

정말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신비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람으로 볼 때는 뻔히 안 될 것 같은데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수월하게 성취되고 사람으로 볼 때는 꼭 이루어 질 것 같아도 하나님이 원치 않으시면 다 됐다가도 실패합니다.

 

성도 된 우리는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라고 단호하게 명령하시는 모습에서, 그 동안 우리가 얼마만큼 맡기라는 말씀을 거부하고 독단적으로, 내 고집대로 살아왔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실패는, 오직 변함없으신 하나님께 나의 모든 행사를 전적으로, 온전하게, 지속적으로 맡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 우리 모두가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원하십니다. 내 자신의 고집과 교만, 독선 때문에 실패를 거듭해 왔다는 사실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2022년도가 새롭게 시작되었습니다. 우리가 할 것은 모든 것을 여호와께 맡기는 일 뿐입니다. 우리의 모든 길을 여호와께 맡기시기를 바랍니다.

 

1.우리의 여정(길)을 맡기라 하십니다.(시37:5)

2.본향으로 가는 길을 맡기라 하십니다.(히11:16)

3.너의 행사를 맡기라 하십니다.(잠16:3)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