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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해의 매듭(시116:17-19)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시간은 아주 귀합니다. 시간은 저축이 불가능하고, 복구도 불가능합니다. 재생산도 안 됩니다. 그래서 시간은 금입니다.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한 해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시험에 떨어진 학생에게 물어보고, 한 달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조산아를 낳은 어머니에게 물어보고, 한 주일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주간지의 편집자에게 물어보고, 한 시간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연인에게 물어보고, 일 분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버스를 놓치고 허둥거리는 사람에게 물어보고, 일 초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아차! 하는 순간에 벌어진 자동차 사고로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사람에게 물어보고, 천분의 일초의 가치를 알고자 하면 속도를 다투는 올림픽 경기에서 은메달을 딴 선수에게 물어보라는 말이 있습니다.(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천사들의 제국》중에서)

 

시간의 가치는 누구에게나 똑같으나 누구에게나 가치 있는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시간을 관리하는 사람에 따라 가치 있게 되기도 하고 무가치하게 되기도 합니다.

 

쌀독의 쌀은 퍼내야 없어지고, 지갑의 돈은 써야 없어지지만, 시간은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없어집니다. 잃어버린 돈은 찾을 수 있지만 한 번 잃어버린 시간은 영영 찾을 길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들로서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시간을 가치 있고 선하게 활용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내게 재산이 없다고 탄식하지 마셔야 합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시간이 재산입니다. 꼭 붙잡고 관리만 잘 하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은 소중한 재산의 재산이 될 것이요 복을 가져 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시간 낭비와는 과감한 단절을 결행하고 내게 주어진 시간을 구원과 상급의 때로 잘 관리해야 합니다. 소중한 시간 망가지면 모든 것을 다 잃게 됩니다.

 

시간이라는 것은 한 번도 쉼 없이 갑니다. 어느덧 한 해를 매듭을 지을 시간입니다.

 

올해의 마지막 주일이며 2021년도가 5일 남았습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이 “한 해의 매듭”입니다.

 

매듭이란 실, 끈, 로프 등을 묶어 맺은 자리를 뜻합니다.

 

올 한해의 삶이 아무리 시작이 좋고 과정이 좋았다 할지라도 그 끝이 안좋다면 그것은 실은 다 버립니다.

하루 종일 바느질을 했는데, 만약 끝부분 매듭을 바로 짓지 않았다면 그 바느질은 헛수고입니다. 실이 풀려버리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올 한해의 삶도 한해를 매듭짓는 것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우리는 붙잡을 수 없는 시간을 잘 관리하여 올해의 마지막까지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1.감사제를 드리라 하십니다.(17)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성도의 본분 중의 하나가 감사입니다.

올 한해의 일들을 뒤돌아보면 감사가 넘쳐납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감사해야 할 이유가 많이 있겠지만 가장 큰 감사의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당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영원히 변함없는 우리의 가장 큰 감사의 이유가 되어야 합니다.

그를 우리를 위해 대제사장으로 세우시고 그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모든 것을 다 들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가장 큰 감사의 이유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믿게 하시며 그를 우리의 주님으로 영접하게 하시며 오늘까지 그의 말씀 따라 살게 하신 성령님의 역사가 또한 우리의 가장 큰 감사의 이유이어야 합니다.

 

이제 이 해도 며칠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금년 한 해 살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게 받았음을 고백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일이 많았어도 예수 그리스도보다 더 크고 그를 믿는 믿음보다 더 큰 감사의 이유는 없다고 날마다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난 올 한 해 동안 이런 저런 문제들을 안고 힘들게 살아온 성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들고 슬퍼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은혜를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본문17절에 “내가 주께 감사제를 드리고”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은 자기의 형편이나 사정에 따라 임의대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감사의 대상이 되는 하나님의 요구에 따라 하나님의 정하신 법도대로 행하여야만 됩니다. 출애굽기 23장14-17절에 무교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을 지키게 하였는데 모든 절기마다 거기에 맞는 격식이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는 그것 자체가 축제여야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항상 그 마음 에 고마움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속에 품고 있는 고마움을 입술로 자주 고백되어야합니다.

 

현대인들은 고마워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이 적습니다. 부모님은 자라나는 자식들에게 사랑하며 사는 법, 감사하며 살아가는 법을 실질적으로 자신의생 활에서 보여 주고 또한 가르쳐야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도 감사함으로 예배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고 즐거이 받으시는 제사는 감사제라고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원 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시56:12)

다윗이 하나님을 향한 서원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제”란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삶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성도의 마땅한 행위입니다. 우리의 삶 전체를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입니다.

예배를 바르게 드리지 못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떠납니다.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면 진노를 당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민족은 이 문제에 실패하였습니다. 가인도 예배에 실패하였고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 애굽의 포로에서 해방시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가서 예배에 실패하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경제의 신입니다.

부도덕한 방법으로 바알과 아세라를 섬겨 결국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고 말았습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시29:2)라고 했는데 합당한 예배를 드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예배를 회복시켜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배하는 자를 찾는 다고 예수님을 말씀하셨습니다(요4:23-24)

 

성도 된 우리는 형식과 외식, 율법적인 신앙에 매여 억지로 드리는 예배가 아니라 성령님으로 기뻐하며 드리는 예배, 또한 내게 주시는 진리의 말씀을 통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순종하는 삶으로 이어지는 성령님의 교통함과 교제가 있는 살아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성령님의 임재가 없고 말씀이 없는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가 아닙니다. 그 예배는 거짓된 예배입니다. 하나님께 거짓으로 드려진 예배는 한계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참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로마서12장1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배는 내 삶 전체가 하나님 앞에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지는 시간입니다. 육의 본성인 나의 자아가 하나님의 거룩하신 임재 가운데 완전히 소멸되고 죽는 시간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진정한 주인 되신 예수님(갈2:20)께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우시며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예배를 통해서 일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없이 예배를 드려왔습니다.

 

오늘은 올해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마지막이란 새로운 시작입니다. 올 한해를 보내고 다음 주일 맞이할 새해도 감사의 제사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최선을 다해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2.서원한 것을 지키라 하십니다.(18)

 

“내가 여호와께 서원한 것을 그의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내가 지키리로다.”

 

서원은 이행을 전제로 한 하나님과의 약속을 의미합니다.

 

민수기30장2절에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결심하고 서약하였으면 깨뜨리지 말고 그가 입으로 말한 대로 다 이행할 것이니라.”

 

이 말씀 속에 서원에 대한 기본적인 요소들이 들어 있습니다. 서원은 그 약속의 대상을 하나님으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서원’이라는 말과 ‘서약’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서원(ר󰕋󰘁)은 재산의 일부를 여호와께 바치겠다는 약속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보답으로 감사 예물을 드리기로 약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서약(ר󰘕אּ)은 하나님을 위하여 절제를 약속하는 것, 다시 말해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기를 다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서약이 절제를 약속하는 것이라는 것은 ‘결심하고 서약한다’는 말씀에 나타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무엇인가를 약속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원래 서원이란 감사제의 일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것을 헛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누리고 있는 행복의 일부를 포기하거나 어떤 희생을 감수하기로 하나님께 자진해서 약속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구하는 사람들은 그 기도의 응답이 이루어졌을 때 거기에 대하여 어떻게 감사하며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될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서원을 살펴봅니다.

 

야곱은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여, 그리고 그에게 복을 주신다면, 하나님 위해 그 성소를 세우고, 십일조를 바치기로 맹세했습니다(창 28:20-22).

입다는 싸움에 승리를 얻고, 개선할 수 있다면, 그가 만나는 최초의 사람을 희생으로서 바칠 것을 서원했습니다(삿11:30-40). 한나(삼상 1:11-),

압살롬(삼하15:7)도 또한 하나님께 서원을 세우고 있습니다.

 

잘못된 서원도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어떤 사람은 거짓된 경전에서 소유물을 성소의 용무로 쓰기 위해 「헌물」(예물)로 드린다고 서약하고, 하나님께 바친 것이니 다른데 쓸 수 없다는 「고르반」이라는 말을 써서, 부모를 부양할 의무에서 해방된 것으로 생각, 그 자신은 그 소유를 하나님께 바친 경건한 자라는 영예를 얻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책망하셨습니다(마15:5, 막 7:6).

 

마가복음7장9-13절(마15:3-6)에서,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얼마나 율법의 근본정신을 잘못 취급하는지를 보이셨습니다.

 

그들은 사람이 「고르반」이라는 말을 써서 맹세한 경우에는, 가령 그 가리켜 서원한 것이 부모의 부양에 필요한 것이라 해도, 그 취소는 인정할 수 없었던 것으로, 그들은 인륜보다 의식이 중요하다고 했던 것입니다.

 

구약 당시 유대인들에게는 일상적인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서원이기는 하지만, 그다지 장려된 것 같지는 않습니다.

 

잠언20장25절에 “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

 

전도서5장5-6절에 “서원하고 갚지 아니하는 것보다 서원하지 아니하는 것이 더 나으니 [6] 네 입으로 네 육체가 범죄 하게 하지 말라 천사 앞에서 내가 서원한 것이 실수라고 말하지 말라 어찌 하나님께서 네 목소리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네 손으로 한 것을 멸하시게 하랴

 

사실상 유한한 사람으로서, 그것도 다급한 일 또는 위기의 상황에서 하나님께 서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많은 문제를 내포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사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서원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그리고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도 그렇게 인정하시겠는가 하는 문제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오히려 서원자 자신에게 해로울 경우도 있고, 심지어 입다의 경우처럼 자식을 죽여야 하는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더욱 경건하게 살아보려고 하는 사람이나 하나님께 특별한 소원을 가진 사람이 주로 서원을 합니다. 그러나 서원은 실수나 즉흥적으로 해서는 안 됩니다.

서원을 하기 전에 많은 준비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가장(家長) 또는 가장처럼 의지할 수 있는 영적 지도자와 상담도 가져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번 하나님께 드린 서원은 비록 상황이 바뀌고, 해가 되는 경우가 있을지라도 반드시 지킴으로서 하나님의 영광과 이름에 손상이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사실 성도의 예배에는 서원이 있어야 합니다. 예배는 받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고 봉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은밀히 약속한 서원을 드리면서 약속 이행을 위해서 다짐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외아들 이삭을 드렸습니다. 하나님은 이삭을 받으시고 예비하신 양으로 대신 받으셨습니다. 예배는 충성의 삶입니다. 목숨을 내놓고 충성으로 드리는 예배에서 향기가 납니다. 이런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예배를 잘 드리시고 한 해를 잘 매듭지으시기를 바랍니다.

 

3.성전 뜰에서 지키라 하십니다.(19)

 

“예루살렘아, 네 한가운데에서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할렐루야”

 

본문은 시인이 서원 이행을 다짐하는 내용입니다.

 

시인이 받은 은혜는 정말 갚을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것을 드려도 다 갚을 수 없기에 ‘은혜’입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진심으로 감사를 표현하며 살아갑니다.

 

자신을 짓누르던 사망과 고통에서 벗어난 시편 기자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을 찬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그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의 잔을 높이 듭니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자신이 고통 중에 드렸던 서원을 이행하겠다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죽음과도 같은 고통의 결박을 끊으셔서 그가 하나님을 마음껏 찬양하게 하십니다. 그의 입술에 절망과 탄식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 흐르게 하십니다. 하나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기쁨으로 자신의 삶을 드립니다. 자격 없는 자에게 베풀어 주신 사랑의 빚을 갚는 마음으로 살아가고자 합니다. 은혜를 기억하고 서원을 지키는 삶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합니다.

 

시편84편1-4절에 “ [1] [고라 자손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장막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2]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살아 계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3] 나의 왕, 나의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여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 둘 보금자리를 얻었나이다 [4]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항상 주를 찬송하리이다 (셀라)

 

사실 하나님의 성전 뜰에 살게 하심을 입은 자가 복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거주지가 있습니다. 어디에 살든지 거주지는 그 사람의 신분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악이 많고 음습한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이 거주지라니 정말 놀라운 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사장만이 살던 곳에 내가 살 수 있다니 특별한 은혜를 입은 줄 알아야 합니다.

 

본문에서 시인은 “하나님이 택하신 거룩한 성 예루살렘의 중앙, 예배의 장소인 성전 뜰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며 거기서 서원을 갚겠다 는 의지를 피력한다. 이는 시인이 예배시마다 여호와께서 은혜 베푸심을 기억하고 여호와의 이름 을 부르며 찬송을 드릴 뿐 아니라 자신이 서원한 것을 상기함으로 변함없이 지키고 갚아나가겠다 는 의지를 피력한 것으로 풀이된다.”(옥스포드)

 

성도 된 우리들이 교회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결국 이 세상에서 제일 복된 삶은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는 삶입니다.

교회 문지기로 지내는 하루가 궁궐에서 보내는 3년보다 낫다는 고백을 가지고 교회를 사랑하고 아끼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에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치고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 없습니다. 당대가 아니면 그 다음 대라도 하나님이 반드시 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수많은 교회와 성도들의 모습에서 안타까운 것은 너무도 쉽게 조건과 환경에 치우쳐 이를 끝까지 인내하며 견디지 못하고 변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와 여기에 모인 우리들만이라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섬겨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형제와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도 변치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예배의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복음전파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교회를 사랑하고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이런 교회가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입니다.

 

미국의 어느 목사님께서 살아 있는 교회와 죽어 가는 교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살아 있는 교회는 교실, 주차장 등 늘 공간의 문제가 대두된다.
그러나 죽은 교회는 공간을 염려하지 않는다.
살아 있는 교회는 아이들과 소년 소녀의 재잘거리는 소리로 늘 시끄럽다.
죽어 가는 교회는 죽은 듯이 조용하다.
살아 있는 교회는 언제나 일꾼이 부족하다.
죽어 가는 교회는 일꾼을 찾을 필요가 없다.
살아 있는 교회는 언제나 예산을 초과해서 쓴다.
죽어 가는 교회는 은행에 잔고가 많다.
살아 있는 교회는 새 얼굴과 이름 알기가 어려워 애먹는다.
죽어 가는 교회는 해를 거듭해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다.
살아 있는 교회는 선교 사업이 활발하다.
죽어 가는 교회는 교회 안에서만 움직인다.
살아 있는 교회는 주는 자로 가득 차 있고, 죽어 가는 교회는 타내는 자들로 차 있다.
살아 있는 교회는 믿음 위에 운행되고, 죽어 가는 교회는 인간적 판단 위에 운행된다.
살아 있는 교회는 배우고 봉사하기 위하여 바쁘고, 죽어 가는 교회는 편안하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교회를 지향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를 더 많이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곧 여호와의 성전 뜰에서 지키리로다.” 하며 서원이행을 약속하였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교회를 사랑하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교회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비록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이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냐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사1:12)고 할지라도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것보다 마당만 밟을 지라도 교회에 나오는 것이 더 좋습니다.

 

2021년도 한 해를 예배로 잘 매듭지으시고 또 다시 시작인 2022년도를 예배로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1.감사제를 드리라 하십니다.(17)

2.서원한 것을 지키라 하십니다.(18)

3.성전 뜰에서 지키라 하십니다.(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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