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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이기는 힘(시66:16-20)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17]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18]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19]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20]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힘이 필요합니다.


힘의 사전적 정의는 “사람이나 동물이 몸을 움직이거나 몸의 어느 부분으로 물건을 움직일 수 있는 근육의 작용. 또는, 그 작용의 세기”라 합니다.


힘을 능력이라고도 합니다. 즉 “power”입니다.
“power”는 어떤 일을 하거나 이룰 수 있는 힘이나 능력. 또는, 다른 대상에 대해 어떤 작용을 미칠 수 있는 힘입니다.


우리가 살면서 가장 괴로운 때가, 무엇을 해도 안 되는 상황에 빠질 때, 내가 무엇인가 하고 싶어도 아무 것도 할 수 있는 힘이 바닥날 때입니다.


마음이나 육체에 힘이 빠지면 가정생활이나 사회생활하기가 어렵습니다. 힘이 있어야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질병과 고난을 이길 수 있습니다.


힘이란 참 좋은 것입니다. 사람을 살맛나게 하고 신나게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것도 힘이 있어야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대개 사람들은 오늘의 힘이 되고 내일의 소망이 되는 것을 예수님에게 두지 않고 이 세상에 두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힘이라고 하는 것은 건강이고 그 건강은 운동하는 것이나 잘 먹는 것에 기인한다고 생각하고는 열심히 운동하고 또 몸에 좋고 자기 몸에 맞는 음식을 찾아 힘을 기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저마다 행복하고 좋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뜻 되로만 되는 것이 아님을 압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지만 새롭게 용기를 내어 살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성도 된 우리들에게는 신실하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긍정적이고 적극적이고 창조적인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박국3장19절에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힘이십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과 능력이십니다.
이런 고백은 비단 하박국 선지자만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시편18편1절에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의 삶은 한 마디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살았습니다. 어려운 일이 많았습니다. 다윗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이 힘이 되심을 진솔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진짜 힘이 있는 사람은 자기의 약함을 알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오늘을 이기는 힘도 바로 하나님을 의지함에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기쁨과 감사로 찬양하며 살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를 바랍니다.(16)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나님이 나의 영혼을 위하여 행하신 일을 내가 선포하리로다.”


오늘 우리는 어두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대입니다. 사람들이 돈이 있어도 어디에 투자해야 좋을지 몰라 어쩔줄 모릅니다.


기업을 하는 사람도 전망이 불투명하니까 시설투자도 사람에 대한 투자도 망설입니다. 직장인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위에서 정리해고지시가 내려오는데 내가 정리될까봐 불안하고 내가 안전하고 다른 사람을 정리한다 해도 무슨 말과 함께 그를 설득할 일이 보통 고민스럽지 않다고 합니다.


학생들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이룰 꿈이 있고 목표가 분명할 때는 힘이 들어도 방향을 분명히 정하고 인내하고 열심히 하면 되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해 휴학을 하는 학생들이 많습니다. 또 시대적인 어둠으로 인해 방황을 많이 하는 청소년들도 많아졌습니다.


실직자가 많이 생겨나므로 수많은 가정이 깨어졌고 깨어져 가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밝은 미래가 보이지 않는 듯합니다. 경제사범은 늘어가고 사회의 윤리는 점점 무너지고 있습니다. 탈선하고 가출하는 청소년들이 많아지고 청소년범죄가 심각해져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성도가 오늘을 이기는 힘을 가지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코람데오 의 삶을 말합니다.


성도가 하루하루를 하나님 면전에서 산다고 하면 보람 있고 가치 있는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를 바랍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은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일은 하나님의 활동을 구체적으로 인식함으로써 더욱 강해질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알수록 더 잘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성경공부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삶에 지쳐 스스로를 돌아볼 겨를을 갖지 못하는 날이 많습니다. 하루하루가, 한 주간 한주간이 언제 지나는지 모를 정도로 빠르게 지나갑니다. 지난 일은 며칠 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무슨 일을 했는지도 기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신을 하나님 앞에 세웁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루를 어떻게 살았는지, 어떻게 살 것인지를 돌아보고 계획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모든 삶을 내어놓는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놀람을 삶 속의 당연함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신비를 일상에서 수시로 체험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성도가 세상을 살아가는데 어려운 일들이 있습니다. 세상이 성도들을 가만히 나두지 않습니다. 세상에는 성도들의 신앙을 훼손시키기 위한 유혹들이 많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삶은 환경과 조건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 견고함은 하나님을 높이 경외하는 열심과 진실함과 신앙심에서 옵니다.


즉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노동자이든 학생이든 어떤 모습으로 어떠한 상황 가운데 있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면 그 삶은 복 받은 성공한 삶입니다. 우리의 삶의 모든 순간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야 우리의 삶은 힘을 받고 견고해집니다.


여호수아24장14절에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의 역사의 적용으로 그의 사랑에 대한 보답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섬기며 그것이 계속되도록 하라고 권면한 것처럼 이제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는 성도는 오늘도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를 내가 혹시 거스르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갑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다른 것이 두렵지 않고, 다른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재산이나 지식이나 권력은 많이 가질수록 더 불안하고 두려움이 많습니다.
하나님 한 분을 떠나면 불안해지고 염려합니다.
이 모든 불안과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길은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 없고 전능하신 하나님의 품안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아무 것도 두렵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잘 살고 모든 면에서 성공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성도 된 우리들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오늘을 살면 바르게 살 수 있습니다.


본문에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너희들아 다 와서 들으라.” 하였습니다.


진실한 성도는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이외에는 무엇도 두려워하거나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영적 수준에 우뚝 서도록 더욱 노력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만 두려워하며 오늘을 바르게 사는 것이 오늘을 이기는 힘입니다.


2.죄악을 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17-18)


“내가 나의 입으로 그에게 부르짖으며 나의 혀로 높이 찬송하였도다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오늘을 바르게 사는 것은 성도의 하루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오늘을 바르게 사려면 죄악을 품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행동은 마음에 무엇을 품고 있느냐에 따라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마음에 품은 생각대로 말하고 행동하게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거나 그 사람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대강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평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사람을 섬기려는 마음을 가지고 산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복을 주십니다.


갈라디아서6장7잘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말씀은, 영적인 법칙에서나, 자연법칙에서 모두 동일한 진리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님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님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는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두고,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게 되는 것 역시 진리입니다. 자연은 그래서 거짓이 없습니다.


그런데 모든 만물 가운데 유독 사람에게는 거짓이 많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것을 탄식하여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 안경이 좋아야 합니다. 정신의학에서 사용되는 용어 중에 “마음의 색안경”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물을 보는 마음의 상태를 두고 한 말입니다. 마음에 품은 사고의 색깔에 따라 사물이 다르게 보입니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를 가지고 사물을 보면 모든 사물이 밝게 보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이고 소극적인 생각으로 사물을 보면 모든 사물이 어둡게 보입니다.


성도에게 가장 위험한 때는 죄를 범할 때입니다. 거짓말, 위선, 술취함, 방탕 등 눈에 보이는 외적인 죄가 있는가 하면, 마음에 품은 시기, 질투, 미움, 저주 등 보이지 않는 죄, 내적인 죄가 있습니다. 이러한 죄가 문제입니다.


죄는 어떤 것이든 엄청난 파괴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한 개인을 파괴시켜 인격이 파탄 나게 만들고 삶을 파괴시킵니다.


성도 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하며 하나님을 뜻을 알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하는데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기도의 긍정적인 응답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어두운 세상을 향해 아무런 영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에 의해 영향을 받는 성도면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18절에 “내가 나의 마음에 죄악을 품었더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여기서 “죄악을 품으면” 이란 표현은 ‘죄 악을 본다’ 라는 뜻으로 마음속으로 죄악을 선호하며 죄악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가리킵니다. 이는 실제 행동으로 죄를 범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죄에 관심을 가지는 것까지도 기도의 응답을 방해하는 요소가 됨을 말해줍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 앞에서 응답되고 참된 능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안에 존재하는 모든 죄를 씻고 그것이 우리 안에 존재하지 않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의 겉으로 드러나는 말과 행동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존재하는 모든 악한 생각조차 말끔히 씻어 버리고 새롭게 될 때, 우리의 삶은 기도의 능력을 가집니다.


오늘 시인이 하나님 앞에 드린 간구에 자신의 정결함과 결백함을 확신하였듯이 오늘 우리 성도 역시 이런 정결함과 결백함을 가지고 하나님께 우리의 행동 뿐 아니라 우리의 생각과 마음까지도 인정함을 받아야 합니다.


사실 누구든지 하나님을 믿으면 욕심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이기심을 버리고 이타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야 하겠다는 동기를 부여하고 그러한 마음을 품을 때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사도행전8장21절에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바르지 못한 사람 자신은 '도'와 '분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분깃은 '몫' 또는 '제비 뽑아 얻은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후에 제비를 뽑아 팔레스타인을 분할한데서 유래한 표현입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 나라에서 얻게 될 복을 말합니다.


사도행전8장22절에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성도의 삶의 기본적인 것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죄를 마음에 품고 있지 말고, 하나님 앞에 다 고백하여 깨끗한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는 것입니다.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하였습니다.


죄악을 마음에 품지 않고 세상을 바르게 사는 것이 성도에게 오늘을 이기는 힘입니다.


3.하나님을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19-20)


“그러나 하나님이 실로 들으셨음이여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기도를 물리치지 아니하시고 그의 인자하심을 내게서 거두지도 아니하셨도다.”


시편66편의 표제를 보면 “시,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저작자가 분명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커크패트릭이라는 사람은 이 시편이 히스기야 시대에 앗수르의 침략이 끝났던 때로 배경을 추정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라가 망할 뻔 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구원을 받은 후 과거의 출애굽 때와 비교하면서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입니다.


성경은 찬송에 대한 중요성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말씀하신 이사야 43장 21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도 하나님을 찬송하기 위해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찬양에는 힘이 있습니다. 찬송을 떠나서는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 부르는 자와 듣는 자의 영혼이 하나님께로 향하며, 믿는 자들의 마음의 문이 열리고,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의 문이 열리게 됩니다.


음악사에 보면 모든 국가들이 전쟁에 음악을 사용하였습니다. 한국전쟁 때에 중공군은 피리와 징을 사용하여 중공군이 진격할 때마다 요란한 소리에 아군이 혼란할 지경이었다고 합니다.


전쟁에 음악을 사용하는 것은 병사들의 사기를 고무시켜 전쟁에 승리하게 하는 중요한 전략입니다. 군가는 병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중요한 요인입니다. 동시에 아군의 음악소리는 적군의 마음을 약하게도 만듭니다.


옛날 신라시대 한 전쟁에서 적군의 수가 신라 군사의 수의 배가 되었습니다. 신라가 승전의 가망이 전혀 없었습니다. 한 영리한 장군이 피리 부는 병사를 동원하여 처량한 음악을 연주하게 하였습니다. 적군이 이 피리소리를 듣고 고향과 부모와 처자가 생각나게 한 것입니다. 결국 적군은 배나 되는 많은 병사를 가지고 있었지만 병사들이 전쟁을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가게 하였습니다.


음악의 힘은 대단합니다. 우리가 부르는 찬양의 힘은 그 이런 음악의 힘에 비할 것이 아닙니다. 그 힘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찬송은 큰 능력입니다. 찬송은 곡조 있는 기도입니다. 찬송은 우리의 신앙입니다. 찬송은 우리들이 하나님께 올려 드릴 수 있는 최고의 가치요 제사입니다.


실로 찬양은 가치가 있습니다. 찬양은 복의 문을 열게도 합니다. 그리고 마귀의 진을 멸하는 강력한 무기이기도 합니다. 지옥의 문을 강타하는 그리고 좋은 것을 지키는 방어의 벽이기도 합니다. 찬양이 강력한 교회에는 마귀들이 들어오지 못합니다. 마귀들이 싫어하고 무서워하는 것은 찬양입니다. 영적 무기 창고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할 가치 있는 무기가 찬양이라는 무기입니다.


찬송과 일반 음악이 다릅니다.


일반 음악은 사람을 대상으로 합니다.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도 있고 조국에 바치는 노래도 있고 황제를 위한 교향곡도 있습니다. 공통점은 그 대상이 사람이나 이 땅위의 것입니다. 찬송은 하나님께 바치는 것입니다.


본문19절에 “내 기도 소리에 귀를 기울이셨도다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성경에 하나님께 찬양하라는 말이 400번 이상 나옵니다. 찬양은 내가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찬양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찬양이라는 단어를 보면 “할랄”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이는 “소리를 발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기쁜 감정을 소리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명확한 소리로 표현하는 것을 말합니다. “자말”이라는 단어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는 “악기로 연주하다” 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하나의 단어는 “야다” 라는 말입니다. 이는 “몸을 흔들다”라는 뜻입니다. 손을 들고(시 63:4, 13) 손뼉을 치고(시 47:1) 일어나서(시 134:1) 찬양하라고 하였습니다. 박수 치거나 몸을 흔들면 경건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반대입니다. 신약에는 “아이노스”라는 단어인데 역시 찬양의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에파이네오” 라는 단어인데 “박수 갈채 받다, 기리다, 칭송하다”라는 의미입니다.


병들었던 영국 사회를 변화시켰던 존 웨슬리 형제는 일찍이 찬송의 능력을 소중히 여겼으며, 찬송하는 성도들에게 이렇게 설교하였습니다.

"기운차게 찬송하라. 맥 빠진 사람처럼, 혹은 조는 사람처럼 하지말고 음성을 높여서 힘차게 찬송하라. 당신이 사탄의 노래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면 당신의 음성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다른 사람이 당신의 음성을 듣는 것을 수치스럽게 여기지도 말라."


생명의 찬양을! 병든 영국 사회를 건져낸 웨슬리의 찬양의 힘이 다시금 우리에게 요청되고 있습니다.

환난과 핍박을 견뎌낸 우리 선배 신앙인들의 승리의 찬송이 또다시 힘차게 불러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이 오늘을 이기는 힘입니다. 오늘을 이기기 위하여 삶과 찬송을 일치시켜 찬송의 힘을 얻고 오늘을 이기는 힘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시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을 두려워하시기를 바랍니다.(16)
2.죄악을 품지 마시기를 바랍니다.(17-18)
3.하나님을 찬송하시기를 바랍니다.(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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