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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선하심(나1:7-8)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0 목록 댓글 0

[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를 아는 일은 성경에서 무수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도 “여호와는 선하시며” 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그분의 완전한 본성을 반영합니다.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요일 1:5)라는 말씀이 이 사실을 암시합니다. 하나님의 본성은 완전하시며, 부족함이나 결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선하시며 그 자체로 아무 결함이 없는 순수한 절대 선이십니다.

 

하지만 피조물인 우리 사람은 하나님의 완전함에 참여하거나 하나님과 교통을 나누어야만 선합니다. 그러나 완전한 선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본질상 선하십니다. 그분은 선하실 뿐 아니라 선 자체이십니다. 피조물의 선은 부가된 자질이지만 하나님의 선은 그분의 본질에 속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히 선하십니다. 피조물의 선이 한 방울의 물이라면 하나님의 선은 무한한 대양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선은 영원토록 변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는 악(惡)이 공존하여 있는 것이며 그러나 결국은 하나님이 모든 것들을 합력(合力)하도록 해서 하나님의 선(善)과 의(義)를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의 선에 기인하는 것이고 언제나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합니다.

또한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옵니다. 그리고 긍휼과 진리, 의와 화평이 사람의 마음속에 크게 영향력을 발휘할 때 모 든 좋은 것이 주어집니다.

 

그런데 우리가 슬픈 일들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기가 힘들 때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이 선하시다고 느끼기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느끼지를 못합니다. 종종 하나님의 선하심이 숨겨진 것처럼 느낄 때도 있습니다.

 

예수님까지도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살면서 우리도 이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라고 의아해 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상황 하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난 후에 살펴보면 하나님의 선하심과 선하심을 향하여 역사하심을 봅니다. 이 말씀은 오직 좋은 일들만이 우리에게 일어날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나쁜 일들도 일어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통하여 선하심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사실 선하신 하나님은 믿지 않는 자들에게나 이 세상의 피조물들에게 한없는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와 동일하게 태양과 바람을 주시고, 우주의 만물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자녀와 자녀 아닌 자들은 구별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갖는 관심과 자녀가 아닌 자들에게 갖는 관심은 분명히 다릅니다.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를 향해 특별한 관심을 갖고 계시고, 우리를 기르시고, 우리를 돌보십니다. 하나님의 돌보심 아래 우리를 두십니다. 우리가 있는 곳이 어디든지 하나님의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행여 우리가 다칠까, 어긋날까, 무슨 문제가 생길까 하나님은 우리를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시고, 우리를 돌보십니다. 그 하나님의 돌보심, 결코 변함없는 그 하나님의 사랑하심, 그 하나님의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생각할 때, 우리는 찬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례미야애가3장25-26절에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다리며 찬양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1.환난 날에 산성이십니다.(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우리의 인생은 환난의 연속입니다.

 

때로 고통과 중압감으로 점철된 시기를 지나야 할 때가 있습니다. 모든 걱정거리가 산재한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혹자는 걱정을 가리켜 ‘작은 두려움의 시냇물’이라 정의한 바 있습니다.

 

설교가 존 라이스는 “걱정이란 하나님께서 마침표를 찍는 곳에 또 다시 물음표를 찍는 것이다.” 풀톤 쉰 감독은 “걱정이란 무신론의 한 형태이다. 걱정이란 믿음의 부족,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의 부재를 드러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14장1-2절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이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떤 상황으로 인도하시면 그것에 반드시 책임을 져주신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런 곤경에 처했을 때, 곤경의 바다를 갈라지게 하려면 하나님께서 오직 하나님만이 아시는 이유 때문에 우리를 환난에 처하도록 하셨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환난을 허락 하셨다는 사실을 계속 상기하는 일입니다(시37:23,24).

 

모든 환난은 하나님이 정하신 뜻에 따라, 하나님의 보호 가운데 일어납니다. 역경을 허락하신 하나님께서 또한 건져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환난이 다가와서 우리를 흔들 때 우리가 받은 은혜를 쏟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아무리 흔들려도 딱 자리를 지키고 요동하지 않는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 사람이 환난을 당하면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납니다. 환난을 당하면 마음이 더욱 완악해져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대로 환난의 날에 자신을 돌아보며 회개하고 하나님께 피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의 산성이 되어 주십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왕 산헤립의 침략을 받고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습니다. 앗수르의 군대장관 랍사게가 예루살렘 거민들을 조롱하고 히스기아 왕에게 편지를 보냈습니다. 여호와가 감히 내 손에서 예루살렘을 건지겠느냐고 조롱하며 위협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그 편지를 하나님 앞에 펴놓고 기도했습니다(왕하 19:14). 하나님께서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왕하 19:20). 그날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앗수르 군대 18만 5천 명을 한밤중에 다 죽이셨습니다(왕하 19:35). 하룻밤 사이에 온 군대를 잃은 산헤립은 고국으로 돌아갔으나 아들들에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머지않아 앗수르는 바벨론에게 망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한 히스기야 왕에게 산성이 되어주셨습니다.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유다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의 산성이 되어주십니다. 

 

히스기야 왕뿐만 아니라 여호와를 의뢰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은 피난처가 되시고 산성이 되어 주십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진정한 피난처는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만이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환난 날에 산성이 되십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고 절대적으로 보호해주십니다.

 

시편31편1-2절에 “여호와여 내가 주께 피하오니 나를 영원히 부끄럽게 하지 마시고 주의 공의로 나를 건지소서 내게 귀를 기울여 속히 건지시고 내게 견고한 바위와 구원하는 산성이 되소서”

 

다윗은 어려움이 닥치면 여호와 하나님께 피했습니다. 환난과 시험 중에 있는 자가 하나님께 피해 도움을 청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자를 책임져주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마귀와 귀신과 악인들을 꾸짖으시고 그들을 영원한 지옥 불에 던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람들이 죄를 지면 징계를 하기도 하시지만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들을 반드시 용서해주시고 그 자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영생을 주십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기 때문에 악인들에게 고통을 당하는 연약한 자들을 지켜 보호하십니다.

 

다윗이 악인들에게 고통을 당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구해주시니 다윗의 신앙고백이 3절에 나옵니다. “주는 나의 반석(바위)이시고 산성(山城)이십니다.” 높은 산의 견고한 성은 그 누구도 함락시킬 수 없습니다. 그곳으로 피해 가는 자는 맘 편안히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산성과 같은 분이십니다.

 

본문7절에서 나훔 선지자는 하나님이 세상을 심판하실 때 모든 사람이 그의 진노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세상을 벌 하시는 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는 피난처가 되어주실 정도로 선하신 분이십니다.

 

환난 날에 산성이 되어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나아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십니다.(7)

 

“여호와는 선하시며 환난 날에 산성이시라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누군가가 자신을 알아준다는 것은 기뻐 할 일이요 기분이 좋습니다.

 

영국 속담에 “고향에서는 이름으로 알아주고 타향에서는 의복으로 알아준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마 고향에서는 그 사람의 이름만으로도 그 사람과 그 사람에 대한 평판을 알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반면에 타향에서는 그 사람의 이름을 모르기 때문에 의복을 보고 알아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의복을 보고 알아주는 것보다는 이름으로 알아주는 것이 더 바람직합니다.

 

세상에 안다는 것은 중요합니다. 자신을 알면 적(원수 마귀)을 이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면 자신을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을 알면 주님의 제자가 됩니다.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이 나를 알면 나에게 함과 능력을 주십니다.

 

주님이 나를 아시니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시고, 예수님이 나를 아시니 백전백승이 가능합니다. 이것이 인생 승리의 비결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맥을 찾아가지만 성도는 신맥(信脈)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보통의 다른 신과 다릅니다.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유일신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의 어떤 신보다 뛰어나신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는 모든 일을 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종종 나를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망망대해에 홀로 있는 것처럼 고독할 때가 있습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을 걸고 달려왔지만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손을 바라보며 낙심할 때도 있습니다. 마지막 남은 내 자존심마저 모래성처럼 무너지고 기댈 곳조차 보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내 이름 석 자마저 초래해보여 숨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누구도 내 아픔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할 때, 그 누구도 나의 슬픔의 눈물을 닦아줄 수 없을 때 소리 없이 다가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아무도 나를 눈여겨보지 않을 때 변치 않는 특별한 사랑으로 다가오시는 분이 있습니다. 바로 우리의 영원한 후원자요 보호자이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아는 것보다 우리를 더욱 잘 아십니다.

우리의 행동을 아시며, 우리의 생각을 아시며, 우리의 말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고 계시며, 듣고 계시며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떠날 수 없으며 하나님 앞에 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중에 있어 하나님께 피하는 사람을 실망시키시지 아니하시며 도와주시고 그 사랑의 날개 아래 숨겨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우리가 약할 때 강한 줄로 믿어야 합니다.

 

달팽이의 속도를 아십니까?

 

순식간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우리는 눈 깜빡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합니다. 그 눈 깜빡할 사이는 어느 정도의 시간입니까? 달팽이는 시속 3 미터로 기어갑니다. 눈 깜빡할 사이의 시간은 3분의 1초입니다.

이렇게 찾다보면 우리가 오랜 시간 공부를 하여 많은 지식을 소유한 것 같지만 아는 것은 너무나 조금이며 지극히 부분적인 지식을 가지고 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정보를 소유하여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것 같지만 잘못된 지식으로 사람을 오해할 때가 참 많습니다. 또한 어리석은 결정을 내릴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지식을 다 갖고 계십니다. 사람들의 과거뿐 아니라 앞으로 다가올 장래일도 아십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사는 물리적 세계를 다 아십니다. 우리의 겉모습뿐 아니라 우리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잇는지, 무슨 마음을 품고 있는지를 다 아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지식을 소유하고 계십니다.

 

본문7절에 “그는 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시느니라”

 

자기에게 피하는 자'란 곧 하나님만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심과 자신의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 로서만 말미암는다는 사실을 믿고 그분께 전적으로 의뢰하는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디모데후서2장19절에 “그러나 하나님의 견고한 터는 섰으니 인침이 있어 일렀으되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하며 또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 하였느니라.

어쩌면 이단 사상이 사람들의 신앙을 무너뜨릴 수는 있지만 하나님의 교회는 무너뜨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터 위에 굳게 서 있기 때문에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견고한 터에는 이중으로 인침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친다는 말은 하나님의 소유를 표시하는 말이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보증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인 치신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아십니다. 하나님은 미리 아신 자들을 정하시고, 정하신 자들을 부르셨습니다(롬8:29,30). 부르신 자들을 의롭다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결코 변치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아시고 보호하시고 확증하십니다.

 

그러므로 거짓 교사들이 아무리 극성을 부려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자들을 넘어뜨릴 수 없으며, 하나님의 교회를 파멸시킬 수 없습니다.

 

시편91편9-11절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세상은 다양한 자연재난으로 휘청 이고 있습니다.

수많은 생명들이 끊임없는 전쟁 속에 고통을 당하는 현실입니다. 여기저기서 땅속의 불들이 밖으로 쏟아져 나옵니다.세계 곳곳에서 기상 이변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폭우와 대형 토네이도, 폭염이 뒤섞이고 있습니다.

기상 이변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수도 없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더욱이 최근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창궐하여 거의 2년여 동안을 힘들게 하고 있습니다. 뿐 만 아니라 델타변이가 나타나더니 전파력이 더 강하다는 오미크론이 발생되어 또 다시 전 세계가 안간 힘을 쓰고 있습니다. 과학의 힘으로 막지 못합니다. 과학의 힘으로 막지 못합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 피하는 자들을 아심이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3.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십니다.(8)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보호하시며 인도해주심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대적하는 대적들을 쫓아내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하나님의 자비하심, 풍성한 공급자로서의 면모에서만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 공의에 입각한 권능의 행사를 통해 더욱 적극적으로, 구체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까지 복음이 전파되고 교회가 성장하면서부터 사단은 외부의 세력을 이용하여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을 흔들어 보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교회나 성도들이 사단의 타협에 결코 후퇴하거나 중단됨이 없이 신앙의 전진을 계속함으로 복음은 더욱 왕성하여져 갔습니다.

만일 핍박으로 인해 뒤로 넘어지거나 생명의 복음 전하는 일을 쉬었다면 교회와 성도들이 오히려 힘을 잃고 말았을 것입니다.

 

사실 그 신앙이 살아 있으니 박해가 있는 것이고 믿음으로 살려고 하니 사단의 시험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사랑 입은 자는 아무도 대적할 자가 없습니다.

 

다윗이 아버지 심부름으로 전쟁터에 갔다가 골리앗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군사는 벌벌 떨며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고 화가 나서 왕 앞에 나가서 싸우겠다고 말할 때 용기가 가상해서 사울 왕이 장비를 착용했으나 무거워 벗어 던지고 물매와 도 몇 개로 골리앗 앞에 섰습니다. 누가 이길 것인가? 너무도 명백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이 내편이시다 라는 강대한 믿음으로 골리앗 에게 물매를 던졌을 때 골리앗은 썩은 막대기처럼 쓰러졌습니다. 세상 살아갈 때 하나님은 든든한 배이십니다.

 

그렇습니다. 대적을 물리쳐 주십니다. 도단성에 거하던 엘리사가 아람군대에 포위되었을 때 엘리사가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 말과 불 벙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열왕기하 6:17) 엘리사를 포위한 아람군대의 눈을 어둡게 하여 그들이 오히려 사마리아성으로 포위되어 갔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절대로 버리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의 본질은 영적 전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을 수행하라고 이미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은 총과 칼과 숫자와 병기로 이기는 전쟁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우리의 거룩성으로 싸우는 전쟁입니다. 우리가 거룩할 때에 이기는 전쟁입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과 대적해서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르비딤에서 아말렉과 싸운 이스라엘 백성을 보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지나오면서 지치고 피곤하고 영양실조에 걸리고 목이 말라서 르비딤에서 그들은 시험에 들어 모세를 향해서 원망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바위를 쳐서 물을 내어서 마시게 했는데 그러자 마자 그들을 습격해 온 것이 아말렉입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광야에서 멸절시키려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지치고 피곤하고 무장도 되지 않고 훈련도 안 되었으니 아말렉에게 멸망당할 수 있습니다.

 

신속히 여호수아를 세워서 장정들을 조직하여 군대를 편성하여 아말렉을 대적하러 나갔습니다. 그

 

러나 상대가 안 됩니다. 아말렉에게 밀리고 밀리고 수많은 이스라엘 청년들이 죽고 상처를 입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그 전쟁터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올라가서 그 전쟁터를 향하여서 지팡이를 들고 손을 들어 하나님께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여호수아와 그 군대들에게 어마어마한 능력이 임하였었습니다. 그들은 일당백, 일당천의 능력이 임하고 아말렉은 힘 빠진 여인들과 같았습니다. 순식간에 이스라엘백성은 아말렉을 치고 밀고 나가고 수많은 아말렉 군사들이 상처를 입고 죽임을 당했었습니다. 모세가 팔이 아파서 팔을 내리고 기도를 그치니까 그만 그 능력이 사라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아말렉이 또다시 의기 충천해서 밀고 들어오매 이스라엘은 파죽지세로 무너졌습니다. 또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모세가 손을 내리면 졌습니다. 나중에는 아론과 훌이 모세의 한쪽 손과 다른 손을 붙잡아 들어 올려서 해가 질 때까지 기도를 계속하니 아말렉의 군대가 완전히 참패를 당해서 물러간 사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쟁도 실제로 사람이 싸우는 전쟁의 배후에 영적인 전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과 사탄의 사자들과 영적인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데 그것이 육신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사탄의 사자들은 아말렉을 통해서 싸우고 하나님의 사자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서 싸운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거기에 중대한 역할을 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성도님들과도 함께 하십니다.

 

본문8절에 “그가 범람하는 물로 그 곳을 진멸하시고 자기 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시리라.”

 

여기서 문맥적으로도 흑암으로 쫓아낸다는 표현은 어떤 대상을 완전히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한다는 관용적 의미를 가집니다.[옥스포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적들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의 천국 가는 길에, 많은 장애가 그 앞길을 가로막을지라도 염려할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면, 모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크신 사랑만큼 하나님의 온전한 공의와 그 공의를 실현하는 위엄은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1.환난 날에 산성이십니다.(7)

2.자기에게 피하는 자들을 아십니다.(7)

3.대적들을 흑암으로 쫓아내십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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