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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가까이 하라/약 4:1-10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7|조회수0 목록 댓글 0

오늘 본문은 야고보 사도가 우리에게 한 가지 분명한 권면을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는 권면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한 분이라도 어느 순간 마음을 들여다 보면 하나님과 멀어져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습니다. 분명히 예배도 드리고, 기도도 하고, 봉사도 하고 있는데 마음 한구석에 하나님이 멀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멀리 떨어진 친구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주 연락하지 않으면 어느덧 어색해집니다. 만나도 처음에는 할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한참을 어색하게 있다가 겨우 대화를 이어갑니다. 거리가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가까이 하지 않으면 멀어집니다. 멀어지면 어색해지고, 어색해지면 더 멀어집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매일매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떻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지 세 가지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정욕을 다스리라

 

본문 1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부터 나는 것이 아니냐”

 

야고보는 우리 안에 일어나는 다툼의 원인이 ‘정욕’이라고 진단합니다.

 

‘정욕’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 ‘헤도네’(ἡδονή)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성적인 욕망만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내 자신의 쾌락과 만족을 인생의 중심으로 삼는 상태를 말합니다. 영어 ‘hedonism(쾌락주의)’이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 정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 마음에서 하나님이 빠져나간 자리에서 옵니다. 마음에 하나님이 계실 자리가 비어 있을 때 그 자리에 정욕이 들어와 자리를 잡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텃밭을 한 달 동안 돌보지 않았답니다. 한 달 뒤에 가 보니 채소는 자라지 못하고 잡초가 무성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답니다. “나는 잡초를 심은 적이 없는데 어찌 잡초가 가득할까?” 답은 간단합니다. 비워두면 잡초가 자라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모셔두지 않으면 그 자리에 정욕이 자랍니다. 정욕을 다스리려면 우선 마음에서 하나님이 차지하시는 자리를 회복해야 합니다.

 

본문 2-3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

 

정욕이 자리잡으면 기도도 변질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도하고 있는데, 그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야고보의 진단은 분명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정욕으로 쓰려는 잘못된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무릎을 꿇어도 두 가지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는 “주님, 당신의 뜻이 무엇입니까?” 묻는 기도입니다. 또 하나는 “주님, 내 욕심을 채워주십시오” 구하는 기도입니다. 정욕이 자리잡은 마음에서 드리는 기도는 후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욕을 다스리지 않으면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정욕이 우리 마음을 다스리는 한 우리의 기도조차 하나님을 향하지 않고 우리 자신을 향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먼저 우리 안의 정욕을 다스려야 합니다. 정욕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 모시기를 바랍니다.

 

 

2. 두 마음을 버리라

 

본문 4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냐.”

 

야고보는 매우 강한 표현을 사용합니다. ‘간음한 여인’이라는 말입니다. 충격적인 표현입니다. 그러나 구약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는 신랑과 신부의 관계로 비유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랑이시고, 우리는 신부입니다.

 

신부가 다른 사랑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야고보는 우리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것이 곧 영적 간음이라고 말씀합니다.

 

 

어떤 분이 결혼식에서 신부에게 묻습니다. “이 신랑만을 사랑하시겠습니까?” 신부가 대답합니다. “네, 사랑하겠습니다.” 그런데 결혼 후에 신부의 마음 절반은 다른 사람에게 가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그것을 결혼이라고 부를 수 있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두 마음’입니다.

 

 

본문 8절 후반부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 ‘딥쉬코스’(δίψυχος)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말은 ‘디’(둘)와 ‘프쉬케’(영혼)가 합쳐진 말입니다. 한 사람 안에 두 영혼이 있다는 뜻입니다.

 

한 영혼은 하나님을 향하고 있는데, 또 한 영혼은 세상을 향해 있는 사람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마음으로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야고보는 이런 사람을 ‘두 마음을 품은 자’라고 부릅니다.

 

 

신앙생활을 30년 가까이 한 한 집사님이 어느날 이런 고백을 했답니다. “나는 분명히 교회를 다닙니다. 매주 예배도 빠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마음이 늘 비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분의 마음은 절반은 교회에, 절반은 세상에 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쪽도 충만하게 채워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은 자는 어디에서도 만족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도 가까이 못 가고, 세상에서도 평안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두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마음을 하나로 모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두 마음을 품은 채로는 결코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없습니다. 마음을 성결하게 하시고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3. 겸손히 낮추라

 

본문 6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여기서 ‘교만한 자’와 ‘겸손한 자’가 대조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는 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겸손’이라는 말은 헬라어 원어 ‘타페이노스’(ταπεινός)를 번역한 말입니다. 이 말은 단순히 자신을 낮춰서 표현하는 겸손한 태도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본래 의미는 ‘낮은 곳에 있다’, ‘땅에 엎드려 있다’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한계와 죄를 인정하고 엎드리는 자세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인정하고, 내가 피조물 됨을 인정하는 자세입니다.

 

본문 10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이 말씀에는 중요한 영적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낮아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신다는 원리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높아지려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추시지만, 우리가 스스로 낮아질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의 삶이 그랬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주를 위해 목숨을 버리겠다”고 큰소리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주님을 부인했습니다. 자기 힘을 의지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후 베드로는 무너졌습니다. 통곡하며 회개했습니다. 그렇게 자기 무너짐을 인정하고 낮아졌을 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는 초대 교회의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낮아지는 자를 하나님께서 높이십니다. 무너지는 자를 하나님께서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원리입니다.

 

본문 8절을 다시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우리가 한 걸음 다가가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눅 15장의 탕자의 비유에 보면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오기로 마음을 정하고 일어났을 때, 아직 멀리 있을 때부터 아버지가 달려가셨습니다.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한 걸음 다가오기를 기다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겸손히 낮추고 한 걸음만 다가가면, 하나님께서 그 나머지 거리를 메우러 우리에게 달려오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려면 주 앞에 겸손히 낮추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친히 우리를 높여 주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 있는지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정욕을 다스리고, 두 마음을 버리고, 주 앞에 겸손히 낮추는 것입니다.

 

본문 8절은 이렇게 약속합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이 약속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한 걸음만 하나님께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정욕을 내려놓고, 두 마음을 버리고, 겸손히 낮추는 그 한 걸음을 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더 큰 은혜로 우리에게 가까이 오시고, 우리를 친히 높여 주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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