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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함이 있는 믿음(약2:14~20)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7|조회수0 목록 댓글 0

사랑하는 창원극동방송 애청자 여러분, 오늘은 야고보서 2장 14절로 20절 말씀을 본문으로 “행함이 있는 믿음”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해드리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 가운데에서 요절이 되는 부분은 14절과 17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야고보서의 주제를 한 마디로 말하면, ‘행함’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믿음’을 외쳤습니다.

믿음으로써만 구원을 받는다! 믿음으로써만 의롭다하심을 얻는다!

소위 말하는 ‘이신득의’(以信得義)입니다.

다른 것은 다 필요 없어요. 오직 믿음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서를 읽어보면 달라요.

너희가 ‘믿음, 믿음’ 그러는데, 그 믿음이라는 게 도대체 뭐냐는 거예요.

너희가 아무리 믿음이 있다고 큰소리를 쳐도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겁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믿음은 좋습니다. 신앙생활을 너무나 잘 해요. 주일도 잘 지키고 십일조생활도 잘 하고 교회에서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행동을 보면 예수님의 사랑은 머리에서만 머물러 있고, 손과 발은 꼼짝도 안하고 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야고보 사도가 주장하는 것이 바로 그거예요.

믿음이 필요 없다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믿음’이라는 단어는 명사(名詞)가 아니라 동사(動詞)입니다.

지금도 연세가 많으신 어르신들께서는 많이 복용하고 계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특정 상품이기 때문에 이름을 거론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마는 지금은 워낙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다들 아실 거예요.

“이 소리가 아닙니다. 이 소리도 아닙니다. 땡땡땡은 소리가 나지 않습니다.”

기침이나 가래와 같은 기관지 계통의 질병을 가지신 분들이 많이 애용하시는 약품이죠.

그 약을 선전하는 문구가 뭐예요? 이 말 저 말 다 소용이 없다는 거예요.

소리 없이 일하는 것, 소리 없이 작용하는 것, 그것이 최고라는 말입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하신 적이 있으셨습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 말씀인데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지막 날에 이 사람 저 사람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 나와서 말하기를‘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는 것을 주님도 보시지 않으셨습니까?’라고 말을 할지라도 우리 주님께서는 꼼짝도 안 하신다는 거예요.

오히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호통을 치실 거랍니다.

얼마나 무서운 말씀인지 몰라요.

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대로 실천하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그 집을 든든한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들인 줄 믿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부딪힐지라도 반석 위에 세운 집은 무너지지 않습니다.

왜 그래요? 이 집은 주추를 반석위에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아서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와서 그 집을 강타하면 그 집은 한 순간에 폭싹 주저앉고, 바람에 날아가고, 창수에 떠내려가게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흔적도 못 찾아요.

하나님께서 싹 쓸어버리실 때에는 마른 지푸라기처럼 다 태워버리실 거라고 나훔 선지자가 예언을 했습니다.(나1:10)

그러나 실천하는 믿음, 행동하는 믿음은 확실한 믿음이어서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해서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야고보 사도가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거예요.

삶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헛된 것이라는 겁니다.

듣기만 하고 실천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거예요.

행함이 없는 믿음, 열매 없는 신앙, 그것은 죽은 믿음입니다.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여러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믿는 것도 중요해요. 그러나 머리로 알고 가슴으로 믿어도 손과 발이 움직여서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19절 말씀을 보실까요?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 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믿는 것이 다가 아니에요.

알면 뭐해요? 알았으면 믿어야죠. 그리고 정말 믿는다면 그 말씀대로 살아야죠. 실천하지 않는 믿음은 있으나 마나라는 것입니다.

참회 없는 지식이나, 회개하지 않는 삶은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에 믿음과 행위는 떼어내려고 해도 떼어낼 수 없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입니다.

수레바퀴가 하나면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제자리에서 뱅뱅 돌고 앞으로는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겠죠?

‘믿음과 행함’은 수레바퀴처럼 두 개가 온전하게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잠언 3장 27절과 28절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네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

 

여러분, 어려운 이웃을 도와줄 힘도 있습니다. 마음도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돕지 않는 것은 잘못입니다.

고난 받는 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은 있으나, 구체적으로 돕지 않다면, 그것은 위선입니다.

야고보 선생이 주장하는 행함으로써 구원을 받는다는 ‘이행득의’(以行得義)와 바울 사도가 주장하는 믿음으로써만 구원 받는다는 ‘이신득의’(以信得義)는 상충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에 대해서 무지한 이방인들에게 오직 예수, 오직 믿음, 오직 말씀으로써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친 것이고, 야고보 선생은 행함은 없이 단지 지식적으로만 믿고 거기에 만족해 있는 유대인들을 깨우치기 위해서 행함이 없는 믿은 죽은 믿음이라고 했던 거예요.

그러니까 결국 바울이 말하는 믿음이라는 것은 결국 야고보 선생이 말하는 행함이 있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려면, 온전하고 튼튼한 나무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라고 하는 뿌리가 든든하게 박혀 있어야 하고요, 그 다음에는 행함(선행)이라고 하는 열매가 주렁주렁 열려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라고 하신 말씀을 잘 되새겨 보아야 합니다.

세상에 소금이 녹지 않고 맛을 낼 수가 있을까요?

한 자루의 양초가 자기 몸을 태우지 않고 빛을 낼 수가 있겠어요?

머리로 생각만 하고, 몸은 꼼짝도 안하고 있으면 그렇게 해서 세상의 소금이 되겠어요? 세상의 빛이 될 수 있겠습니까?

내가 먼저 손해 보고, 내가 먼저 양보하고, 내가 먼저 실천해야 세상의 빛도 되고 세상의 소금도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오늘도 믿음의 실천으로 주님 나라에 합당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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