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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할지어다/레 20:7-8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7|조회수0 목록 댓글 0

마 5:13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예수님 당시 소금은 주로 사해 근처에서 나왔습니다. 이곳에서 나는 소금은 요즘 우리가 먹는 정제된 소금처럼 순수하지 않았습니다. 모래, 흙, 석고, 그리고 여러 광물질이 섞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비가 오거나 습할 때 소금 성분이 녹아내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짠맛이 덜하거나, 아예 짜지 않은 소금도 흔했습니다. 그럴 때 사람들은 맛을 잃은 소금을 밖에 내다 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짠맛을 잃어버린 소금과 같은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것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있어 왔습니다. 요사이 이런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짠맛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들일까요? 겉은 그리스도인인데 속은 그리스도인다움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말합니다. 대표적으로 거룩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세상으로부터 영향력을 잃어버립니다. 심할 경우 조롱을 당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요사이 거룩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예배의 거룩’(Holiness in Worship)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기보다는 자기만족을 위하거나 사람들을 의식하며 예배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가고 있습니다.

‘삶의 거룩’(Holiness in Daily Life)을 잃어버린 그리스도인들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사명의 거룩’(Holiness in Mission)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더더욱 많아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삶의 목적을 하나님과 무관하게 세우고 살아가는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에게 심각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거룩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마치 소금이 그 짠 본연의 맛을 잃어버린 것처럼 그리스도인다운 거룩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거룩을 회복하는 것, 그리고 거룩을 지키는 것입니다.

 

이제 이런 영적 과제를 마음에 새기면서 오늘 본문을 보다 깊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거룩은 명령이다

 

본문 7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할지어다.”

여기서 너희는 누구일까요? 일부의 영적 지도자들을 말하는 것일까요? 거룩한 삶을 살기로 서원한 일부의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여기서 너희는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구원하신 모든 하나님의 백성을 말합니다.

 

그러면 “거룩할지어다”라고 하셨는데, 거룩이란 무엇일까요? 이 말은 히브리어 ‘카도쉬’(קדוש)라는 말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 카도쉬는 “구별되다, 따로 세워지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거룩할지어다라는 말은 ‘하나님께 속한 구별된 존재로 살라’라는 말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 안에 ‘메노라’(מְנוֹרָה)라는 금촛대가 놓여있습니다. 순금 한 달란트, 즉 금 34kg으로 만들었습니다. 창문이 없는 성소 안에서 거룩한 공간을 밝히는 용도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금촛대는 특별할 것이 없습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일반 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만일 이 금촛대가 부잣집이나 왕궁에 있었다면 그저 평범한 금촛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금촛대가 거룩한 성소에 놓였고, 거룩한 공간을 밝히는데 쓰였습니다. 하나님께 속했고, 하나님을 위해 쓰임을 받기 위해 구별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메노라가 특별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거룩하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거룩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속해서 구별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한 것은 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도덕적으로 순결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들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로 구별됐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거룩할지어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요? 한 마디로 구별의식을 가지고, 구별된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단 1:8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음식과 그가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의 귀족 출신 청년이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그들을 훈련시켜서 왕궁에서 일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포로로 끌려온 사람이지만 특별 대우를 했습니다. 특히 왕실의 음식을 먹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는 왕의 호의이면서 동시에 동화 정책의 일부였습니다. 바벨론의 문화를 따르고 그들의 교육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벨드사살”이라는 바벨론식 이름을 지어주고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잊게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뜻을 정하였습니다. ‘나는 바벨론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께 속한 사람이다.’ 한 마디로 여호와께 속했다는 구별의식을 가지고 살기로 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왕이 하사하는 음식을 먹지 않았습니다. 특히 이 음식은 우상에게 제물로 바쳐졌던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것이 왕에게 알려지면 큰 벌을 받을 수 있는데도 먹지 않았습니다. 한 마디로 구별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룩할지어다라는 명령은 이렇게 구별의식을 가지고 구별된 삶을 살라는 명령입니다. 오늘 우리가 거룩을 잃어버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가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구별의식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별의식을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습니다. 대신 구별의식을 선택적으로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 주일에는 그리스도인이라는 구별의식으로 예배하고 교회 봉사합니다. 그러나 평일에 가정이나 일터에서는 이 구별의식으로 살지 않습니다. 그래서 선택적으로 거룩을 지켜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은 선택이 아니라 명령입니다. 다니엘처럼 언제나 어디서나 구별의식을 가지고 구별된 삶을 살라는 명령입니다.

 

거룩은 순종의 결과이다.

본문 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내 규례를 지켜 행하라” 우리가 이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려면 앞 절과의 연결된 맥락 안에서 봐야 합니다. 이 말씀은 단지 규례를 지켜 행하라는 독립된 메시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거룩을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규례를 지켜 행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순종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거룩과 순종은 어떤 관계이기에 이렇게 연결해서 말씀하신 것일까요?

 

오늘날 반도체 산업을 보면, 미국은 원천기술과 설계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첨단 칩의 세밀한 구조를 설계하고, 전체적인 시스템을 설계하는 능력이 탁월합니다. 하지만 그것을 구현하고 생산하는 기술은 한국과 대만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반도체 기업들은 반드시 한국의 삼성전자나 대만의 TSMC와 협력해야 합니다. 설계만 있고 생산을 못하면 그 기술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단지 ‘도면 속의 이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거룩은 하나님께서 주신 설계도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인간상과 하나님의 백성의 삶에 대한 설계도와 같습니다. 그리고 순종은 공장에서 설계도대로 제품을 만드는 생산기술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할 때 거룩은 삶의 현장에서 열매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순종이 중요합니다. 순종이 없는 거룩은 마치 설계도만 있고 공장에서 제품을 만드는 생산기술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순종할 때 거룩이라는 열매를 풍성하게 맺게 될 것입니다.

요 17:17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신 말씀 중의 한 부분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게 될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한 마디로 진리이신 말씀을 통해서 거룩하게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선 말씀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어긴 죄가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걸어가야 할 좁은 길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이 걸어가는 넓은 길이 무엇인지 이것이 왜 문제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아가게 되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됩니다. 마음과 생각이 구별됩니다. 삶이 구별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찾으시는 거룩입니다.

 

유럽을 가보면 큰 도시의 중앙에 대성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대부분 수백 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합니다. 밖에서 보면 거대한 고딕 양식으로 하늘을 찌를 듯한 첨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높은 석조 기둥 위의 천장에 화려한 성화들이 장식되어 있고, 커다란 창문에 스테인드글라스가 아름답게 빛나고 있습니다. 게다가 파이프오르간을 연주하는 소리가 성당 내부에 울려 퍼지면, 그 공간은 신비롭고 압도적인 경외감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그 공간에 머무는 사람들은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감정적인 경건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가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감정적 경건은 성경이 말씀하는 거룩이 아닙니다. 거룩의 그림자일 수는 있어도 거룩 그 자체는 아닙니다.

우리가 찬양을 부르며 때로는 소름 끼치도록 전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큰 감동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가슴이 뜨거워지며 나도 모르게 ‘아멘’이 터져 나올 때가 있습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시며 우리에게 은혜를 감각적으로 느끼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또한 거룩이 아닙니다. 거룩으로 들어가는 문일 수는 있어도 거룩 그 자체는 아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거룩은 감정이 아니라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에 순종해서 살아갈 때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게 되고, 그 구별을 통해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것, 그것이 거룩입니다. 말씀에 대한 순종을 통해 거룩을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거룩은 은혜의 선물이다

 

본문 8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앞의 7절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깨끗하여 거룩할지어다” 우리가 스스로 거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두 말씀은 서로 모순이 되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리 스스로 거룩하라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는 이 두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돛단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돛단배는 바람으로 항해합니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돛단배는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바람이 불어줘야 망망대해를 건널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불어도 돛단배가 돛을 올리지 않으면 그 바람의 힘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람이 불 때도 돛이 순풍의 방향으로 세워져야 앞으로 갑니다. 만일 역풍의 방향으로 세워지면 앞으로 가지 못하고 오히려 뒤로 밀릴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바람과 같습니다. 배가 항해를 시작하게 하는 힘, 배가 지속적으로 앞을 향해 나가게 하는 힘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는 힘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거룩을 결단하게 하는 힘, 거룩을 이루어가게 하는 힘,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옵니다.

그리고 인간의 순종은 돛과 같습니다. 돛을 높이 올려서 바람의 힘을 받는 것, 돛의 방향을 바꾸어 가며 지속적으로 바람의 힘을 받는 것, 모두 배에 탄 뱃사람의 수고로 이루어집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거룩한 삶을 살기로 다짐하는 것, 말씀을 따라 살면서 거룩을 이루어가는 것, 우리의 순종으로 이루어집니다.

 

이제 다시 8절을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거룩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씀입니다.

장로교의 영적 스승인 칼뱅은 그의 명저 [기독교 강요]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성화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되고, 성령의 능력으로 유지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완성된다.”

우선 거룩을 이루어 가는 성화가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벧전 2:9를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하나님께서 택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나라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거룩의 시작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령의 능력으로 유지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 2:13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거룩을 향해 지속적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향해 완성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롬 8:30을 보면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거룩은 우리 자신의 온전함이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이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렇게 거룩을 완성시키도록 이끌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거룩은 은혜의 선물입니다. 우리 스스로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 시작도 할 수 없고, 과정도 지속할 수 없고, 그리고 열매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이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거룩을 이루고자 할 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은혜 안에서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거룩할지어다.” 우리가 거룩의 명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하나님께 속하여 구별되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거룩의 명령을 마음에 새기고,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라는 구별의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여 거룩을 이루어 가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이 거룩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은혜 안에서 거룩을 이루어 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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