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베스트셀러가 된 「인생수업」이라는 책 서문에서 번역자 류시환 씨는 저자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주고 있습니다.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기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이다.”
여러분은 어떻게 살아가십니까?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내 삶의 순간순간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생각하시며 살아가십니까? 그가 이야기하는 별은 꿈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별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불행한 것은 이를 수 없는 별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꿈이 없는 것이 불행입니다. 비록 꿈이 실천되지 않았다고 해도 그것은 불행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얻는 최대의 축복은 꿈을 갖고 있는 사람들, 기대하는 사람들, 소망을 지닌 사람들, 하나님이 주신 삶의 목표를 지닌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믿는 사람들이 누리는 최고의 은총이며 특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꿈의 백성들, 복 받은 백성들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꿈을 꾸었고 요셉이 꿈을 꾸었고 모세가 꿈을 꾸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꿈이 사라지면 더 이상 믿음이 없어졌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살이하던 애굽 땅에서 탈출합니다. 그들이 그냥 무덤덤했다면 탈출까지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꿈이 있었기 때문에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자유에 대한 꿈, 가나안 복지에 대한 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대한 꿈이 있었기 때문에 애굽 땅에서 떠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삶에 잘못된 문제가 있어 내가 서있는 이곳이 있어야 할 땅이 아니라고 생각될 때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현실에서 떠나기는 쉽지 않습니다. 꿈이 없으면 못 떠나갑니다. 가야할 길이 없고, 가고자 하는 목표와 방향 없으면 못 떠나갑니다. 그런 점에서 애굽을 떠날 수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축복받은 백성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애굽을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꿈꾸었던 목적지인 가나안에 못 들어간 채 40년 동안 광야를 헤맵니다. 이제 40년이 지나서 여호수아가 이끄는 대로 요단강 앞까지 다가섰습니다. 요단강만 건너면 그들이 그토록 꿈꾸던 가나안복지입니다.
요단강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장례식 때 우리가 부르는 찬송 가사 가운데 ‘요단강 건너가 만나리’라는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요단강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전혀 새롭고 다른 낯선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서를 가만히 읽다보면 이것이 단순히 죽음에 대한 의미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의미로 요단강은 새로운 약속의 세계에 들어가는 관문입니다. 지금까지 서 있었던 광야는 여기저기 흔들리는 곳이었지만 이제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지경을 넓히기 위한 것, 영역을 넓히기 위한 것, 승리하는 삶을 시작하는 접경으로서의 강이 요단강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삶을 보면 하나는 광야에서의 삶이 있었고, 다른 하나는 요단강을 넘어선 가나안에서의 삶이 있었습니다.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신앙과 불신앙이 교차되는 곳, 목적지가 명백하지 않아서 이리저리 헤매는 장소입니다. 때로는 자기 훈련기간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머물러 살기는 너무 힘들고 황무한 곳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광야에만 너무 오랫동안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예수를 믿으면 광야를 거쳐 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광야는 되도록이면 짧은 시간이어야 하고, 과감하게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이 애굽에서 탈출하여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40년 동안 머물렀던 광야는 실제로는 1주일이면 통과할 수 있었던 거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거리를 반복해서 돌고 돌다가 무려 40년간의 세월을 흘려보냈습니다. 1주일에 가야할 거리를 40년의 세월동안 지냈다는 것은 얼마나 큰 문제가 있다는 뜻입니까?
그들의 신앙에는 성장과 성숙이 없었습니다.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 야단을 맞아서 회개했습니다. 회개하고 나니까 하나님께서 다시 축복해 주셨습니다. 축복을 받고 난 후 다시 편안해져서 죄를 지었고 하나님께 징계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무려 40년 동안의 세월을 반복하며 살았습니다. 그때 그들의 마음은 황폐해졌습니다. 하나님을 믿기는 믿었지만 무섭게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했지만 도망가면서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을 잠시 누리다가도 마음속에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는 불신앙이 그들의 삶을 붙잡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몇 년 동안 믿었는지에 대한 기간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속에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만 광야 같은 곳에서 끊임없이 쳇바퀴 돌듯이 나의 신앙도 반복하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광야를 과감하게 넘어가야 합니다.
어느 목사님이 가난한 한 남자의 집을 찾아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떤 분이 쓰라고 주신 돈을 이 가난한 사람에게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몇 번이고 그 집의 문을 두드렸지만 아무런 응답이 없었습니다. 목사님은 나중에 교회에서 이 남자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당신 집을 찾아가 불렀는데 아무도 없었다고 했더니 이 남자가 목사님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언제 오셨어요?” 목사님이 방문했던 일시를 말해주었습니다. 그때 남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사실 그때 제가 집에 있었는데, 저는 목사님이 오신지 모르고 외상값을 받으러 온 사람인 줄 알고 숨죽이고 조용히 있었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믿을 때 이런 모습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복 주시려고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주시고,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물을 주시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마음은 불안합니다.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 다 맡길 수 있을까? 하나님께 기도하면 날 정말 사랑하시게 될까? 하나님은 인생에 나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실까?’하고 하나님 앞에 다 내어 놓지 못하고 겁내며 문을 꽁꽁 닫아 놓습니다. 그러다가 가끔 내가 필요할 때만 ‘주님, 내게 문제가 생겼으니까 도와주세요.’하고 요청하고, 또 문제만 해결되면 ‘주님, 이제 내 인생을 내 마음대로 살게 놔두세요.’하면서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된 삶을 향해서 나가지 못하고 불안하고 걱정하고 근심하면서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말씀합니다. “이제 그만 광야생활을 멈춰라. 이제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와라.” 그런데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말합니다. “저는 광야에서 살래요. 저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갈래요. 그런데 왜 먹을 것은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 밖에 없나요? 새로운 것을 좀 주세요.” 이러면서 요단강을 건너갈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요단강을 건너가야 가나한 복지가 열립니다. 그 때부터는 우리의 지경을 넓히는 것입니다. 때로는 투쟁도 하고, 때로는 질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께서 주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우리의 마음이 억눌리고 기쁨이 없고 감사가 모자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경험을 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요단강을 건너가지 않고 계속해서 광야 속에서 이리저리 헤매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는 드디어 가나한 땅을 눈앞에 두었습니다. 40년 동안 빙빙 돌던 그 오랜 광야에서의 여정을 이제 끝내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다고 했던 가나한 땅을 이제 바로 요단강만 건너면 만나게 됩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주 이상한 선택과 결단을 하라고 말합니다. 그는 백성들에게 전쟁을 앞두고 있으니까 전쟁 준비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전쟁에서 싸우고 이길 것인가 전략을 설명하지도 않고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요단강을 건너기 위해서 공병대를 먼저 투입한 것도 아니고, 전투부대를 투입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으로 먼저 하나님 앞에서 성결하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붙잡혀 하나님의 말씀에 의존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가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몸을 닦아도 성결해지지 않습니다. 내속에 있는 죄악이 아무리 크다고 그것을 다 들어내도 깨끗해지지 않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거룩한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셔야만 내 속에 있는 죄가 용서받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를 통해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 인생에 하나님께서 앞서가라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에게 언약궤를 들라고 말씀하십니다. 연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써 있는 돌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 언약궤를 제사장들이 어깨에 메고 백성들보다 앞서 가라고 말씀합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고 더불어 계신다는 표식입니다. 바로 이 언약궤가 앞서 가고 뒤를 따라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보여주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의 원칙이 있습니다. 힘들고 어려운 위기에 부딪쳤을 때 제일먼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전략과 생각을 준비하는 것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이 내 인생의 앞길에 가도록, 하나님이 나보다 앞서 인도하시도록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것을 가르쳤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계속해서 그렇게 기도해야 됩니다. “하나님, 나보다 앞서 가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를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신 하나님, 엘리야와 사도 바울과 베드로에게 말씀하시고 앞서 인도하셨던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길에도 그렇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의 말씀을 내 가슴으로 품는 것이 성결하게 되는 비결이며 시작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무엇을 하던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것을 내 가슴으로 품은 것이 바로 성결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이 내게 다가올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 중 하나는 내 자신이 해야 할 일이고, 하나는 공동체가 함께 해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은혜에 응답하는 것이 믿음의 사람들의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은혜 되게 하는 것은 우리의 순종에 달려 있습니다. 내가 하기에 달려있습니다. 은혜는 내가 순종하면 은혜가 되지만, 내가 거절하면 더 이상 내게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옛날에 나이 많은 현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 앞에만 가면 작고 큰 문제가 해결되었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습니다. 한 젊은이가 이 현자를 시험해보기로 하고 자기 손에 작은 새 한 마리를 잡아다가 질문을 합니다. “선생님은 모든 문제를 잘 풀어 대답을 가르쳐주신다고 하셨는데 제가 문제를 낼 테니 답을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지금 제 손에 새 한 마리가 있습니다. 이 새가 살아있습니까? 죽어있습니까?” 만약 현자가 죽어있다고 하면 손을 펴서 새를 날려 보내려고 했고, 살아있다고 하면 자기 손을 꽉 쥐어서 새를 죽여 버리려고 했습니다. 청년은 현자가 틀린 답을 할 수밖에 없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노인은 이 말을 듣자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이렇게 대답합니다. “젊은이, 그 새가 죽고 사는 것은 자네 손에 달렸다네.”
우리는 은혜라는 말로 하나님께 너무 많은 것에 대해서는 다 핑계를 대고 우리는 아무 것도 안 하면서 게으르고 나태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면 주실수록 믿음의 사람들은 더욱 부지런해지고, 열정이 생겨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움을 기다리는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역사에 자신의 삶 전체를 걸 수가 있어야 합니다.
여호수아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면서 새벽에 일어났다고 성경은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히 지도자가 갖는 성결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도자가 되면 될수록 새벽에 일어나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합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전국에 있는 직장인 2,300명에게 전자우편으로 설문 조사를 했습니다. “당신은 아침형 인간입니까? 아니면 밤을 선호하는 올빼미형 인간입니까?” 그랬더니 비율이 60:40 정도로 아침형 인간이 좀 많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계속해서 “아침이 좋습니까? 아니면 저녁이 좋습니까?”를 물었더니 95.9%가 아침을 선호했습니다. 그런데 올뺌이형 인간에게도 물어봤더니 계속 밤을 더 선호하겠다는 사람은 절반이 되지 않았습니다. 전체적으로 볼 때 70%가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밤에 일할 수밖에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병약한 분들은 밤에 잠이 오지 않아서 밤늦게 주무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가급적이면 건강한 사람들, 밤에 꼭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은 새벽에 깨어 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여러 가지로 좋습니다. 특히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더욱 더 새벽을 살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3장, 6장, 7장, 8장에 계속해서 새벽에 일어나서 모든 일을 감당했다는 말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새벽을 산다는 것은 어둠의 문화를 극복할 준비를 갖췄다는 것입니다. 새벽에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새벽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시편 46편 5절에서 새벽에 하나님께서 믿음의 사람들을 도와주신다고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새벽이라는 시간에 어제의 죄악과 방황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어제 가졌던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서 다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말씀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성결이란 아침 일찍 일어나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이뤄가야 하는 삶의 축복입니다. 아침에 기도하고 말씀을 보지 않으면 하루가 우연 속에서 진행이 됩니다. 나에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을 행하셔도 우리가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무심히 넘깁니다. ‘어쩌다가 맞아 떨어졌을 거야. 오늘 재수가 좋아서 그랬을 거야. 오늘 운이 좋아서 그랬을 거야.’하고 하나님의 손길을 느끼지 못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기도하는 사람, 새벽에 준비하는 사람, 새벽에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운 사람의 하루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깨닫는 삶이 됩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주시는구나.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구나. 하나님이 내 마음의 기쁨을 주시는구나.’ 그래서 여호수아는 아침에 일어났습니다.
여호수아가 공동체에게 보여준 성결의 중요한 모습이 또 있습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널 때는 지팡이를 쳐서 홍해가 갈라진 다음에 건넜는데, 놀랍게도 여호수아가 요단강을 건널 때는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들고서 물이 넘실거리는 요단강에 그냥 발을 내딛을 때 요단강의 물이 멈추어 끊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셨습니까?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내어놓을 준비를 하셨습니까? 그러면 우리들이 여호수아처럼 행동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환경과 상황은 안 바뀌고 아직도 어렵다고 생각되는 삶의 여건들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하나님, 여호수아가 했던 것처럼 문제가 그대로 있고 고통스러운 환경이 변하지 않고 그대로 있지만 내가 여기서 또 한걸음을 내딛겠습니다.” 그 때 요단강을 건너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몸을 사리고, 하나님께 다 내어 놓으며 마음을 맡기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들어주실까, 내가 발걸음을 내딛으면 정말 요단강처럼 갈라질게 하실까에 대한 확신에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러면 우리의 삶에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여호수아는 말씀합니다. “네 몸을 거룩하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워라. 그리고 순종하면서 앞으로 나가라. 하나님께서 기이하고 놀라운 일들을 네게 보여 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를 깨끗하게 해 주시고 말씀으로 용서해 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단강을 건널 생각은 안하고 다시 광야에서 빙글빙글 돌다가 인생을 끝내려고 한다면 이것은 죄악입니다. 이제는 광야생활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앞에 두고 요단강을 건너야 됩니다. 미지에 세계이고, 때로는 죽음처럼 두렵기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말씀을 붙들고 갈 때 하나님께서 요단강을 건너게 하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가나안 땅을 우리에게 열어 주실 것입니다.
-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애굽을 떠났지만 아직까지 광야에 머물면서 요단강을 건널 생각을 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똑같은 길을 돌고 또 돌고 진정한 생의 목표를 바라보지 못하고 방황할 때가 많았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가나한 복지를 향하여 요단강을 믿음으로 걷는 순종함으로 귀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씀을 믿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의 복지에 들어 갈수 있는 축복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결코 두려워하지 않게 하시고 겁내지 않게 하시며 의심으로 무너지지 않고 하시고 말씀을 듣고 내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