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예수를 깊이 생각하는 해/

작성자엘리야|작성시간26.06.18|조회수0 목록 댓글 0

본문이 들어있는 히브리서는 아주 중요하며 가치 있는 책이지만 그 저자, 저작연대 그리고 지를 받는 그 당시 사람들이 처한 역사적, 종교적 상황은 어느 정도 나와 있습니다. 당시 히브리서의 독자들이 처하였던 상황은 매우 어려웠습니다. 신앙 때문에 고난과 핍박과 비방을 받았고 재산을 잃기도 하였고 옥에 갇히기도 했으며 심지어 목숨을 잃기도 하였습니다. 히브리서 10장에 보시면 이 같은 상황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혹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로 사귀는 자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히10:32-34)

여기서 ‘고난의 큰 싸움을 참았다.’ ‘비방과 환난’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 ‘갇힌 자’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하였다.’는 말들은 당시 기독교인들이 얼마나 큰 고난 중에 있었는지를 잘 표현해 주는 말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들이 받았던 환난과 핍박은 A. D 49년에 있었던 로마황제 글라우디오의 유대인 추방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합니다. 글라우디오가 로마를 통치하고 있었을 때, 유대지구에서 큰 폭동이 있었는데 이때부터 글라우디오는 로마에서 유대인들의 폭동을 우려한 나머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라는 명령을 내렸다고 합니다. 이 추방명령에는 대개 모욕과 박해와 그리고 재산몰수가 뒤 따랐습니다. 로마에 살고 있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이 추방명령으로 인하여 자기의 산업을 빼앗기고 사방으로 흩어져 어려움과 고난 중에 살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는 이때 추방되어 고린도로 온 믿음 좋은 부부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본서의 저자도 이때에 이탈리아 로마를 떠나있었다고 말합니다. 추방명령에 의해 로마를 떠났는지 아니면 다른 이유에서 이탈리아를 떠났는지 모르지만 “이탈리아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는 말씀을 볼 때, 떠나 있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이탈리아를 떠나 있는 한 저자가 글라우디오의 추방명령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로마나 로마근처에 남아 있는 신앙공동체, 어쩌면 작은 가정교회에 설교식의 편지를 보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 설교의 중심내용은 이 같은 고난과 박해와 천대의 상황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다른 것에 있지 않고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문에서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셨고 12장에서는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예수를 바라보면, 박해와 고난 중에서도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은 그 예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가 그 분을 바라보면 승리할 수 있는가? 달리말해,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신가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대상이시며 신앙생활에 승리를 주시는 주님에 관해 본문은 2가지로 말씀하고 있음으로 이것을 살펴봄으로 은혜 받고자 합니다.

1. 주님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사도라 부른 것은 히브리서의 독특한 표현입니다. 사도란 단어는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이며, 예수께서는 반복하여 자신을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보냄을 받은 자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셨다.”고 하셨고, 5장에서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고 하셨으며, 6장에서는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산다.”고 하셨고 7장에서는 “내가 그에게서 났고, 그가 나를 보내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8장에 가서는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는 말씀과 10장, 11장, 17장에 가서도 계속하여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말씀에 근거하여 볼 때,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은 사도임을 알 수 있고 또한 첫 번째 사도이시고, 위대한 사도이시고, 또한 모든 사도직의 원천이기도 하십니다. 요한복음 20장에 보시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는 말씀에서 모든 사도들은 예수님에 의해 보냄을 받은 자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뜻에서 예수님은 사도일 뿐만 아니라 모든 사도직의 원천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보냄을 받은 자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신 뜻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당시의 백성들에게 전하는 사명을 가지신 것이고 예수님에 의해 보냄을 받은 사도들은 생명을 내놓고 예수의 말씀과 구원사역을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역초기부터 마지막까지 ‘하나님 나라’를 전파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야말로 아버지께서 아들 예수에게 맡기신 귀한 메시지이며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사도들이 주역할은 하나님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가르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본다면 사도의 역할은 선지자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구약의 선지자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선포하는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사도로서의 사명을 다 하셨다는 말씀과 선지자로서의 임무를 다하셨다는 말씀은 같은 것입니다. 이 역할은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는 역할입니다.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뜻을 인간들에게 전하는 역할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앞부분에 보시면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로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고 하셨는데, 여기서도 하나님이 아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는 사도시며 선지자로서 세상에 오셔서 그 임무를 감당하셨습니다.

2. 예수님은 대제사장이십니다. 제사장 또는 대제사장의 역할은 사도나 선지자의 역할과는 다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하여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일을 하지만 제사장은 범죄한 인간을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서 용서를 구하는 역할을 하는 자입니다. 다시 말해 백성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를 제사장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의 직책을 대제사장으로 언급한 것은 이미 히브리서 2장 7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주제는 여기뿐만 아니라 7-10장에 가서는 더 구체적으로 전개되고 있습니다. 범죄하고 타락한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사장, 그리스도의 모습은 곧 중보자의 모습입니다. 두 사람 사이를 화해시키는 화목케 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누가복음 13장에 보시면 한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어떤 한 사람이 포도원을 사서 그 포도원에 포도나무를 심었습니다. 열매 맺을 때가 되어서 열매를 구했지만 열매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3년을 연이어 찾아와서 열매를 구했지만 얻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과원지기에게 “열매없는 이 나무를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들은 과원지기는 주인에게 애원합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비리소서” 주인에게 열매없는 과수를 위하여 애타게 부르짖는 이 과원지기는 곧 중보자 예수님의 모습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해가 바뀌고 연조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열매가 있어야하는데 그런 열매없는 인생들을 위해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더 거름을 주겠다고 간청하시는 모습이 곧 대제사장으로서의 주님의 모습입니다.

주님은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며, 대제사장으로써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려 우리의 죄 값을 치르고 우리를 사서 하나님에게 드린 유일한 구원자이시며 지금도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시는 천상의 유일한 중보기도자이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님을 대제사장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본문 1절을 다시 한 번 더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하시면서 그 예수가 어떤 분이신가를 두 가지로 설명하는데 곧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자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에 이어서 2절 이하 6절까지는 모세와 비교하면서 그 예수는 하나님의 일에 충성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사환으로써 충성했고 예수님은 집 맡은 아들로 충성을 다했다고 말씀합니다. 2절에서 6절까지에서 ‘집’이란 말이 무려 일곱 번이나 나타나는데 여기서의 ‘집’은 초막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 곧, 하나님의 가족을 말합니다. 그래서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 충성했다는 말은 모세가 하나님의 백성 또는 하나님의 가족을 위하여 충성했다는 뜻이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그렇게 인정하고 있듯이 모세는 분명히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해 충성을 다했던 인물입니다.

그러면 모세가 어떤 일에 충성을 다했는가? 그것은 선지자로써의 사명과 제사장으로써의 역할에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말씀을 받아 히브리인들에게 전하였고 그것을 기록하여 현재에도 남아 있습니다.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 없이 그때그때 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하여 주는데 충성을 다했던 사람이 모세입니다.

또한 모세는 제사장의 역할에도 충성을 다했습니다. 사실인즉 모세시대의 대제사장은 그의 형 아론이었지만, 실제적인 대변자역할은 아론이 하지 않고 모세가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시내산 밑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귀걸이, 목걸이, 팔찌를 빼서 부어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신이라고 하며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뛰놀았습니다. 그런데 이런 우상제작과 숭배에 앞장 선 사람이 아론이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가지고 내려 왔을 때, 이 우상숭배의 모습을 보고는 대노하면서 그 우상을 깨뜨려 버립니다. 그리고 나서 모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범죄한 이스라엘백성들을 위하여 용서해 달라는 기도를 드립니다.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출32:31-32)

우상숭배 이후, 백성들의 죄에 대한 용서를 이끌어 낸 사람은 다름 아닌 모세였습니다. 백성들의 고통과 아픔과 죄를 대신 안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서 처절하게 회개하며 용서를 구하는 제사장 또는 중보자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이 두 부분에 있어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들에게 알려주고, 가르치고, 선포하는 역할과, 백성들의 아픈 사연을 하나님 앞에 내 놓고 중재하는 역할을 잘 했다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모세는 하나님의 온 집에 사환으로써 충성을 다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충성과 비교하여 예수그리스도의 충성을 말씀하면서 모세보다 우월하신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2절에서 ‘그리스도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충성했다‘고 하시고, 3절에서는 ’예수는 모세보다 존귀하시다‘고 하셨고 6절에서는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집의 사환 즉, 일꾼으로 표현했으나 예수님은 아들로 표현함으로 모세와 예수의 신분차이가 확연히 들어 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더 중요한 차이는 ’집 지은 사람이 집 보다 더 존귀한 자‘라고 하시면서, 모세는 집의 하나 즉, 이스라엘 백성 중 하나이지만 예수님은 그 백성을 있게 한 창조주라는 말씀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가족 중 일원이면서 일꾼으로써 그들을 위해 충성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창조주로써 그들을 위해 하나님의 아들로 충성하셨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면에서 똑같은 충성이지만 충성의 질이나 본질 면에서는 모세보다 그리스도가 월등히 우월하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충성 내용은 하나님의 말씀, 또는 하늘나라를 세상에 선포하신 것입니다.

요7:1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요12:49 내가 내 자의로 말한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나의 말할 것과 이를 것을 친히 명령하여 주셨으니

요14:10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이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요17: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이 같은 말씀들의 공통점은 예수님은 자의로 말하지 않으시고 아버지의 말씀을 하신다는 것이고 그 일에 충실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로써 하늘로써 오신 선지자로 그 사명을 다 하신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써의 임무에도 충성을 다하셨습니다. 당신을 따르는 무리들을 위해 중보기도 하셨으며 미래의 교회공동체를 위해 중보기도 하셨고, 드디어 당신의 몸을 인간들을 위해 대속물로 주심으로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죄인들과 하나님 사이의 다리를 놓아주심으로 믿음으로 천국에 이를 수 있는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자기를 비어 사람들과 같이 되어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대제사장으로써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부활승천하사 하늘에 올라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지금도 지속적으로 인류를 위해 중보기도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써의 사명을 완수하셨고 다만 중보기도 사역만큼은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환난과 고난이 있을 때 다른데 기웃기웃하지 말고 우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으로써 충성을 다하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바로 볼 때,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2005년도에는 개인과 가정 위에 좋은 일만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국제정세나 현 정부의 사정을 볼 때, 그리 만만한 한 해가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얼마 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한 지진과 해일로 인하여 수십만의 사상자가 있었는데, 앞으로는 처처에 기근과 지진은 더 심하여 질 것 같고요, 고유가 시대가 될 것이며, 중동지역의 사태는 더 심각하여 질 것이며, 곳곳에 전쟁에 대한 소문은 날로 늘어만 가고, 사이버 범죄가 더 기승을 부릴 것이고, 암을 비롯한 이름 모를 각종 질병이 만연할 것이고, 사스보다 더 심각한 독종 바이러스가 퍼질 것이고, 자연재앙은 더욱 더 거대해질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정세도 기독교인이 살아가는데 결코 만만치 않은 세상이 될 것입니다. 사업과 생업은 더 힘들어지고 청년 실업자 수는 더 늘어나고 이것으로 청소년들의 가치관이 비뚤어지고 나라의 장래가 암울하게 될 것입니다. 잘못된 정치사상과 보안법철폐나 과다한 세금징수는 나라의 국운을 흔들만한 악제로 작용할 가능성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음란퇴폐문화가 전 국민을 타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것이고, 종교 다원주의의 발달로 기독교의 정체성에 많은 위협을 받을 것이고 교회가 정부로부터 억압과 핍박을 받을 가능성이 많을 것입니다. 이 같은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도도하게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변질되지 않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이런 삶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고, 고난과 핍박이 있고, 경제적 어려움이 있고, 자연 재해가 있고, 각종 질병이 있다 해도, 예수를 깊이 생각하고 예수에게 삶의 초점을 맞추고 예수만을 바라보며 산다면, 자기를 바라는 자에게 주님께서 능력과 은혜와 축복과 승리를 주실 줄 믿습니다.

우리가 흔들림 없이 두려움 없이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숭고하게 간직한다면, 마침내 세상을 이기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2005년 한 해 동안, 비록 고난과 슬픔이 있어도 우리의 시선을 그리스도에게 고정시키고 그리스도에게 집중하여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살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약 사도로서 대제사장으로서 충성하신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한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깊이 생각하여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사로도서, 대제사장으로서 충성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인하여 기뻐하실 것이고 또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유심히 보시 사 보살펴 인도하여 주실 것입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