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생활하다 중간 중간 낙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자기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낙심 하는 중요한 이유는 그 마음에 주님을 근본적으로 만나지 못해서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사람도 일시적으로 마음에 낙심하여 주님을 떠나는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은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믿는다 해도 인생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길이 필요합니다.
1. 권면을 잘 받으면 신앙이 떨어지는 길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히3:13)
우리는 잘못 갈 수 있습니다. 그러할 때에 누군가 옆에서 권면해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운전하다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 차를 목적지와 다른 방향으로 운행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옆에서 다른 사람이 지적하여 주면 그 권면으로 운전에서의 실수를 막을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남의 권면을 잘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권면하는 사람도 잘해야 합니다. 남이야 무슨 짓을 하든 방치해 두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잘못한 길을 걸을 때는 바로 말해야 합니다. 반면 그 권면을 잘 듣는 것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말해 주어도 듣지 않으면 권면의 보람이 없습니다. 권면하는 사람은 권면 한 마디를 하기 위해 관심을 가지고 기도로 준비하여야 하고, 또한 받는 사람도 권면을 잘 받어야 유익합니다. 다윗은 간음죄로 인해 많은 범죄가 뒤를 이어 버림받을 신앙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나단 선지자가 지혜롭게 권면할 때에 그것을 불쾌하게 여기지 않고 겸손히 권면을 받았기에 다윗은 위기에서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남의 말을 듣지 않으면 결국 신앙의 위기에서 면할 수 없습니다.
2. 죄의 유혹에서 강팍함을 막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15절에서는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 했습니다.
죄가 들어오면 우리가 하나님과 멀어지고 신앙은 떨어지게 됩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죄가 들어 왔기에 하나님을 멀리 떠나 피하게 되었습니다.
죄가 우리에게 가장 가깝게 접근할 때 유혹을 통해 들어오는 것입니다. 사단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로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것은 죄의 유혹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죄의 유혹을 받으면 사람이 교만해집니다. 교만한 사람은 남의 권면을 받지 않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만 하면 아무리 죄가 들어 와도 문제는 간단히 해결됩니다. 그런데 교만해지면 남의 말을 듣지 않고 계속 자신을 합리화시키게 됩니다. 온갖 이유와 변명으로 자기가 잘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자기의 잘못된 것을 지적받을 때에 일언반구의 말도 변명하지 않고 내가 죄인이로소이다 하면서 솔직히 자기의 죄를 회개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자기의 죄를 합리화시키면 회개는 멀어지고 그때부터는 마음이 자꾸 강퍅해집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으로부터 매를 맞아도 맞는 줄도 모르고 마음은 은혜와는 멀어지게 되어 반역의 마음으로 종잡을 수 없이 어두워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강퍅하여지는 지경까지는 가지 말아야겟습니다. ‘강퍅’은 옛날 애굽의 바로가 하나님의 역사를 보면서도 마음이 점점 굳어져 마지막 멸망까지 이르게 될 때의 이야기에서 떠올릴 수 있습니다. 강팍은 이제 마지막 심판만이 남습니다. 강팍하면 인생은 더 이상 나갈 길이 없습니다. 마지막입니다. 바로가 강팍할 때 애굽의 군대와 같이 홍해에서 끝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3. 처음의 받은 은혜를 끝까지 잡고 가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14절은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여한 자가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처음의 받은 은혜를 잊어버리지 말고 처음의 받은 은혜를 끝까지 잡고 가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의 받은 은혜를 끝까지 잡지 못하고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매일 반복되는 신앙생활이다 보니 오래도록 하면 사람들의 마음에 타성이 붙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같은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타성이 붙게 되기 쉬운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우리 신앙의 타성은 우리 신앙의 열정을 식게 만듭니다. 교회 생활을 오래하면 자연히 식상 되고 안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앙생활을 오래해도 타성을 막기 위해서는 항상 초심을 변치 말아야 합니다. 저는 목회 일을 계속 하면서 저도 모르게 습관과 형식으로 하는 일이 되어 질까 하여 항상 염려가 됩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개척을 처음 시작 했다’고 생각을 해 봅니다. 에베소 교회가 받은 책망은 초심의 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의 감격을 잃게 되면 그리고 그것이 계속 지나면 나중에는 나도 모르게 형식화 되어지는 것입니다.
마태복은 19:30절에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음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먼저 된 자로 부름을 받았으나 그들은 그 주신 은혜를 바로 잡지 못해 하나님의 축복에서 멀어지게 되었습니다. 처음의 사랑을 회복하여 믿음의 길을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처음으로 은혜를 체험할 때 기뻐하고 감격했지만 처음의 은혜를 끝까지 잡고 있지 못해 중간에 우리의 신앙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이것은 세월이 지나면서 신앙이 식어지기 때문입니다.
뜨거운 불의 원리는 한번 뜨거웠던 것이라고 계속 뜨거운 법은 없습니다. 열의 법칙은 시간과 비교가 되는 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식어지는 법입니다. 식어지는 현상을 그대로 두면 점점 더 식어서 고체화되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중간에 식어지지 않는 방법은 다른 법이 없습니다. 한 번 은혜를 받았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불이 붙도록 뜨거워지게 불을 지펴서 붙이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 충만하지 않으면 중간에 식어지고 우리의 신앙은 중간에 뒤로 물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의 은혜를 계속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은혜를 채우는 일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신앙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나에게 권면하고 충고하는 사람의 말을 꼭 잘 들어야 합니다. 다음은 강퍅함을 막아야 합니다. 겸손해야 강퍅해지는 것을 막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처음 받은 은혜의 초심으로 항상 돌아가야 합니다.